분노와 복수심에 구속된 광대의 '악몽'...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
분노와 복수심에 구속된 광대의 '악몽'...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
  • 주하영
  • 승인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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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프랑스 떼아뜨르 드 뤼니옹, 장 랑베르-빌드·로랑조 말라게라 공동연출
국립극단의 해외초청작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 공연장면. 무대 가운데에 위치한 분장실에 앉아 목주름 장식을 걸치고 '리차드 3세'로 변모하는 광대의 모습이다./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심리치료사 일자 샌드는 ‘서툰 감정‘에서 감정은 “움직임을 향한 충동, 또는 욕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은 곧 ‘움직임’의 전 단계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분노‘와 같은 감정은 공격적인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따라서 만약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얼굴이 밝아지면서 웃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면 그것은 곧 자신이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분노의 감정은 사실상 그 이면에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감정을 감추고 있고, 그 상처 입은 마음이 ‘복수’의 형태로 충동적으로 나아가도록 만들기 때문에 우리가 분노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그 이면에 숨겨진 슬픔이나 두려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자 샌드에 따르면, 어떤 의미에서 분노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현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놓기 위해 싸우는 “강력한 에너지”를 품은 ‘의지’의 표현이며, 현실이 달라지길 바라는 ‘희망’의 갈구라 할 수 있다.

국립극단 리차드 3세_2017년 프랑스 뤼니옹 극장 공연사진_05Tristan Jeanne-Vales 제공으로 크레딧 표기 바랍니다
2017년 프랑스 뤼니옹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리차드 3세' 장면. 하얀 분칠을 한 광대 리차드, 파자마를 입고 목주름 장식을 한 하얀 분칠의 광대는 '사악함'을 상징하는 이마 위 두 개의 '검은 점'을 가지고 있다./사진제공=Tristan Jeanne-Vales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는 국립극단의 해외초청작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RICHARD III: Loyaulté me lie)‘의 무대가 펼쳐졌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장 랑베르-빌드와 제랄드 가루티가 2인극으로 각색한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은 광대로서 리차드의 역할을 하는 배우 장 랑베르-빌드와 그로 인해 불행을 겪게 되는 여인들과 버킹엄 공작 외 다른 인물들을 연기하는 로르 올프, 두 배우에 의해 환상 속의 그로테스크한 ‘악몽’ 혹은 ‘마술쇼’와 같은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순회하는 서커스단의 천막극장에서 펼쳐지는 연극무대를 관람하는 인상을 남기는 무대세트는 배우의 분장실로 보이는 커다란 거울이 달린 화장대와 의자를 중심으로 양 날개가 접혀져 있다. 곧이어 등장한 배우는 연극을 시작함과 동시에 세트의 양 날개 부분을 옆으로 펼쳐 보인다.

2층으로 구성된 무대배경은 마치 축제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오락게임들, 가령 다트판 맞추기나 풍선 터뜨리기, 망치 내려치기, 과녁 맞추기와 같은 옛날 게임들과 술, 솜사탕, 풍선, 팝콘을 파는 행상들을 활용하며, 의상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무대 바닥을 청소하는 대걸레, 무대 가림막으로 사용되는 커튼을 통해 끊임없이 ‘연극’임을 드러낸다.

[국립극단]리차드 3세_2018년 명동예술극장 공연사진_06
국립극단 해외초청작 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 공연장면. 레코드 판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접시들은 '세상'을 상징한다. 형수인 엘리자베스 왕비(로르 올프)와 리차드(장 랑베르-빌드)를 제외한 궁정대신들은 녹음된 '소리'로만 존재하는 '환영들'로 등장한다./사진=국립극단  

공동연출을 맡은 로랑조 말라게라는 유제니 파스토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공연에서 제3의 배우는 무대장치이다. 거대한 장난감과 같은 세트는 갖가지 소리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오브제를 보여주며 마치 마술 상자와 같은 재미와 궁금증을 자아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공동연출이자 리차드를 연기하는 장 랑베르-빌드가 이러한 무대장치의 기술적인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극에 “기묘함을 불어넣고 동시에 놀랍도록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선사함”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한꺼번에 여러 배역을 소화해야 하는 로르 올프가 혼자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장면들이나 어린 조카들과 유령들이 등장하는 장면의 경우, 기계적 음성으로 표현되는 녹음된 목소리들, 솜사탕이나 풍선, 베게에 투사되는 인물 비디오 영상들, 도르래에 의해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퍼펫 등으로 대체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처음 막이 열리면 공연에 늦기라도 한 듯 허겁지겁 달려온 하얀 분칠의 광대가 미안한 듯 관객들을 향해 수줍게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무대 한 가운데 위치한 분장실 거울 앞에 앉아 목주름 장식을 두르더니 갑자기 셰익스피어 ‘리차드 3세‘의 첫 대사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는 리차드가 대사를 통해 묘사하는 꼽추의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으며, 절름거리는 불편한 다리나 말라비틀어진 팔을 드러내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푸른 색 줄무늬의 파자마를 입고 있을 뿐, 도자기로 만들어진 갑옷을 덧입을 때와 왕위에 올라 광대 모자를 왕관처럼 쓸 때를 제외하고는 복장의 변화도 전혀 없다.

그는 하얀 분칠을 한 얼굴의 양미간 위쪽으로 선명하게 두드러져 보이는 두 개의 검은 점을 사악하게 움직이며, 이제 분노와 악의에 가득 찬 리차드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국립극단]리차드 3세_2017년 프랑스 뤼니옹 극장 공연사진_01Tristan Jeanne-Vales 제공으로 크레딧 표기 바랍니다
2017년 프랑스 뤼니옹 극장에서 공연된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리차드 3세' 장면. 왕좌에 앉은 리차드 3세의 모습/사진=Tristan Jeanne-Vales 제공

장 랑베르-빌드의 리차드는 ‘분노’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자신을 흉물스럽게 빚어낸 자연에 분노하며, 어머니에게 외면당하고 지나가는 개에게 조차 비웃음을 당하는 세상에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그는 ‘분노’의 겨울이 지나가고 먹구름이 사라진 여름이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화 속에서 배가되는 그의 외로움과 우울함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품고 있는 욕심과 거짓, 조롱과 배신을 마음껏 벌하고픈 복수 지향적 행동들을 강화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무대 배경은 리차드의 ‘세상을 보는 시선’을 상징한다. 그에게 세상은 우스꽝스러운 ‘서커스’이며 ‘곡예’이고, ‘가장’이며 ‘게임’이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헤이스팅스 경의 목을 치는 일도, 왕위에 오르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많은 신하들을 처형하는 일도 망치 내려치기나 모래주머니로 과녁 맞추기와 같은 ‘게임의 일환’일 뿐이며, 둘째형 조지나 어린 조카들을 죽이는 일도 얼굴 영상만 허공에 떠 있는 풍선을 터뜨리거나 솜사탕을 깃털처럼 날려버리는 일일 뿐 그 어떤 도덕적 판단이나 양심의 소리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장 랑베르-빌드_24모래주머니를 던져 과녁을 맞추는 게임으로 형상화된 신하들의 처형장면.
국립극단의 해외초청작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 공연장면. 모래주머니를 던져 과녁을 맞추는 게임으로 형상화된 신하들의 처형장면이다./사진=국립극단 

그에게 큰형 에드워드는 베게에 수염이 달리고 왕관이 씌워진 채 줄에 의해 움직이며 2층 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영혼 없는 시체일 뿐이며, 앤은 ‘반지’로 상징되는 유혹에 쉽게 사로잡히는 목발 짚은 불구자일 뿐이다.

또한, 권력의 향방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는 버킹엄 공작은 그의 ‘분신’ 혹은 ‘분열된 자아’라 할 수 있다.

신하들은 모두 같은 모습의 과녁판 ‘인형‘이거나 레코드판처럼 도는 둥근 접시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로만 존재하는 환영일 뿐이고, 왕좌는 마치 뻐꾸기시계에서 튀어나오는 뻐꾸기인 양 2층에 매달려 앞으로 쭉 뻗어 나와 있는 높은 ‘의자‘일 뿐이다.

장 랑베르-빌드_29하얀 베게에 안면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Faceshift'기술을 적용한 에드워드 왕세자(왼쪽)와 어린 요크 공(오른쪽), 리차드 3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버킹엄 공작(로르 올프(왼쪽))과 리차드(장 랑베르-빌드(오른쪽))
 국립극단의 해외초청작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 공연장면. 리차드 3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버킹엄 공작(로르 올프(왼쪽))과 리차드(장 랑베르-빌드(오른쪽). 하얀 베게에는 안면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Faceshift'기술을 적용한 에드워드 왕세자(왼쪽)와 어린 요크 공(오른쪽)의 모습이 담겨있다./사진=국립극단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리차드의 ‘사악한 꿈’ 혹은 ‘악몽’과 같은 무대는 끊임없이 관객을 참여시킨다.

리차드는 관객을 일으켜 세워 무대바닥을 쓸던 막대걸레로 몸을 훑는가 하면 객석을 뛰어다니며 팝콘과 과자를 던져주고 관객들을 무대 위로 끌어내 모래주머니 던지기 게임에 동참시킨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리차드에 의해 조종되며 그가 던져주는 것을 받겠다고 손을 흔들어대는 물질에 미혹된 ‘수하들’이 되기도 하고, 그에게 반기를 든 신하들의 처형에 게임으로 참여하는 ‘공범자’가 되기도 하며, 마침내 2층에 매달려있는 왕좌에 앉게 된 리차드를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어리석은 ‘군중’이 되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오브제의 사용과 놀라운 상상력이 합체된 기술적 효과, 그리고 관객들을 유연하게 무대로 끌어들이는 광대의 익살스러움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리차드의 세상‘을 관객들이 맘껏 즐기도록 만든다.

관객들의 불편함은 바로 다름 아닌 거기에 존재한다. 익살스러운 리차드와 앤, 버킹엄, 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자객, 시종 등으로 수시로 변모하는 로르 올프를 바라보던 관객들은 웃고 즐거워함과 동시에 어딘가에서 퍼져오는 섬뜩함과 불편함을 느낀다.

자신의 아들을 저주하는 어머니 요크 공작부인과 왕좌에 오른 리차드 3세, 어머니 요크 공작부인의 두 손에 들려있는 손수건은 숙부인 리처드의 손에 살해당한 두 조카 에드워드 왕세자와 요크공을 상징한다.
국립극단의 해외초청작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 공연장면. 자신의 아들을 저주하는 어머니 요크 공작부인과 왕좌에 오른 리차드 3세의 모습. 어머니 요크 공작부인의 두 손에 들려있는 손수건은 숙부인 리처드의 손에 살해당한 두 조카 에드워드 왕세자와 요크공을 상징한다./사진=국립극단 

연극을 위해 시키는 대로 게임에 동참하면서도 그 행위 뒷면에 숨겨져 있는 ‘살인’과 ‘폭력’이라는 끔찍한 의미에 도달하게 될 때 밀려드는 뜨끔함과 날카로운 죄의식... 어쩌면 그것은 리차드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양심’의 소리이며, 무도덕으로 점철된 그의 잔혹한 세상이 ‘비극’으로 향해야 함을 긍정하는 관객들의 ‘이성’의 소리인지도 모른다.

리차드의 세상을 향한 ‘복수’는 사회에서 외면당한 현대인들이 벌이는 21세기의 분노의 범죄와 닮아있다.

검은 상복과 베일 차림의 요크 공작부인은 자신의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인 리차드를 ‘괴물’이라 부르며 그의 잔혹한 행위들을 비난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를 퍼붓는다.

이에 광분한 리차드는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양 손에 든 총을 마구잡이로 난사한다. 타인을 향해 발사된 분노의 총알은 돌고 돌아 결국 리차드 자신을 조준하기 시작한다.

분노로 인해 방향성을 잃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는 범죄의 발생은 리차드가 유일하게 1인 2역으로 연기하는 자객의 우발적 살해 장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1인 다역을 연기하는 로르 올프와 다르게 시종일관 리차드만을 연기하는 장 랑베르-빌드는 형 조지를 살해하기 위해 고용된 두 자객 중 양심의 갈등을 겪으며 우물쭈물하는 ‘소심한 자객’의 역할을 맡는다.

둘째형 조지를 살해하기 위한 자객으로 분한 로르 올프(위)와 장 랑베르-빌드(아래)/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의 해외초청작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리차드 3세: 충성심의 구속' 공연장면. 둘째형 조지를 살해하기 위한 자객으로 분한 로르 올프(위)와 장 랑베르-빌드(아래)/사진=국립극단

코주부 안경을 쓴 채 벌벌 떨며 망설이던 자객이 별안간 조지로 형상화한 풍선을 터뜨려버리는 장면은 터져버리는 풍선이 ‘살해’를 의미하게 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는 주변의 다른 풍선들마저 무작위로 마구 터뜨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닥을 쓸어내며 충격을 확산시킨다. 그의 ‘우발성’은 어머니 요크 공작부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장면에서 반복되며, 분노가 광기로 변한 공포 속으로 관객들을 몰아넣는다.

장 랑베르-빌드의 ‘리차드 3세‘에는 헨리 6세의 미망인인 마가렛 왕비와 튜더왕조의 시작인 리치몬드 백작이 등장하지 않는다.

정치적 맥락 속에서의 권력관계와 구조가 아니라 “복수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려는 인간의 악의”를 드러내는 데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장 랑베르-빌드는 프랑스 고어(古語)로 “충성심이 곧 나를 규정한다”(Loyaulté me lie)는 리차드 3세의 좌우명을 리차드가 자신이 믿는 것을 향해 “돈키호테와 같은 순진함”을 갖고 나아가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는 리차드가 “비록 자신에 대한 일방적인 충성이었을지 모르지만 타락했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충성을 지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무대는 마치 이미 죽음을 맞이한 리차드 3세의 ‘사후의 꿈’ 혹은 어두운 구름 속을 배회하는 하얀 분칠을 한 유령의 ‘기이한 악몽’을 보는 것만 같다.

[국립극단]리차드 3세_2017년 프랑스 뤼니옹 극장 공연사진_02Tristan Jeanne-Vales 제공으로 크레딧 표기 바랍니다장 랑베르-빌드_33화려하지만 깨지기 쉬운 도자기(porcelain)로 만들어진 리차드의 갑옷 (34 갑옷을 입혀주는 시종을 연기하는 로르 올프)
2017년 프랑스 뤼니옹 극장에서 공연된 장 랑베르-빌드의 연극 '리차드 3세' 장면. 화려하지만 깨지기 쉬운 도자기(porcelain)로 만들어진 리차드의 갑옷./사진 제공=Tristan Jeanne-Vales

왜곡된 영상이나 깃털, 풍선과 같은 오브제로 표현되는 유령이 된 인물들, 환상 속에서 들려오는 환청과 같은 음성들, 그리고 도르래로 연결된 접시들처럼 서로 맞물리며 힘의 방향만 바뀔 뿐 끊임없이 타락을 향해 움직이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화려하게 빚어졌지만 깨지기 쉬운 도자기로 된 갑옷을 입고 있는 리차드...

2015년 3월, 530년 만에 발견된 리차드 3세의 유골로 실제 장례가 치러졌던 레스터 성당의 영상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가운데 그 유려한 갑옷마저 벗어던진 채 파자마 차림으로 ‘의자’에서 떨어져 허공에 매달려 둥둥 떠 있는 리차드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검은 구름 속에 떠내려가는 육체의 허망함과 마주한 것만 같다.

역사 속에서 ‘광대’처럼 한바탕 자신만의 논리에 맞춰 일방적인 충성만을 추구했던, 분노에 사로잡히고 복수심에 구속되었던 리차드의 ‘악몽’은 관객들에게 ‘공포’를 일깨운다.

‘악몽’은 ‘경고의 메시지’이다. 실제가 아닌 세상을 ‘현실’로 겪는 악몽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남기는 교훈이며 무의식의 가르침이다.

악몽이 현실이 될지 모를 무서움에서 벗어나려면 악몽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외면당했다고 느끼는 자가 불러온 ‘분노’가 야기한 광기와 잔혹함의 결과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일자 샌드는 말한다. “감정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일 뿐, 우리 자신이 아니다.”

장 랑베르-빌드의 ‘리차드 3세‘는 우리에게 감정에 자신을 내맡긴 한 광대의 비극, 감정에 굴복해 버린 악의적인 사람의 질주와 ‘공포’를 보여준다. 우리는 무대를 보며 웃지만 그 웃음으로 인해 더 큰 공포를 느낀다. 공포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 감정에 굴복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그 감정에 저항하기를 원하는가?”

일자 샌드의 말처럼, 그 선택권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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