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아트센터 개관 2025년 '예술가들' 시리즈
-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전방위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2019년 초연작
- 2023년 올리비에상 오페라 부문 수상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불확실성(uncertainty)’은 미래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태, 알 수 없는 정보를 수반한 탓에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불확실성은 인간에게 ‘불안’을 조장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향하는 출구가 어디인지 확신할 수 없는 어려움, 추정에 기대어 발을 내디뎌야만 하는 불안정함이 망설임과 주저, 두려움을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혁명이 있기 전, 수렵 채집인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 소유물을 저장하기 힘든 수렵 채집 생활의 환경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미래의 무언가를 예상하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을 걱정해 봐야 무의미”했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계절을 기반으로 한 농업 경제로 변화되면서부터이다.
경작기와 수확기가 뚜렷한 농업 경제는 “다음해와 그 다음해 먹을거리까지 걱정”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불러왔다. 농가들은 가뭄과 홍수, 병충해를 걱정해야만 했고, 자연의 급작스러움으로 인해 흉년이 되어 굶게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이러한 “농업 자체의 근본적 불확실성”은 인간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켰고,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 미래에 대한 걱정이 주연배우가 되도록” 만들었다.
최근 GS문화재단이 새롭게 개관한 ‘GS아트센터’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출신의 세계적인 전방위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의 '시빌(Sibyl)' 내한 공연이 있었다.
드로잉과 영상, 연극, 오페라를 아우르는 다매체 작업으로 유명한 켄트리지의 '시빌'은 2019년에 작업한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원제:The Moment Has Gone)와 '시빌을 기다리며'(원제:Waiting for Sibyl)를 하나로 묶은 ‘더블 빌(double bill)’로 공연되는 작품이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GS타워의 공연장을 리모델링한 GS아트센터는 “장르의 경계를 허문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2025 기획 공연 시리즈의 일환으로, 매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정치와 과학, 문학, 역사에 기반을 둔 작품들을 1990년대부터 전 세계 박물관과 갤러리,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여온 켄트리지를 초청했다.
1955년생인 켄트리지는 남아공의 인종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지속되던 시기를 고발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로 유럽의 주목을 받으며, 탈 장르적 행보를 보여 왔다.
종이 위에 그린 ‘목탄 드로잉’이라는 가장 큰 특징을 기본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조각, 판화, 퍼펫, 연기, 댄스, 노래, 음악을 조합하는 퍼포먼스는 남아프리카 전통음악에서부터 서구 유럽의 클래식 음악까지 다채로움을 더한 총체 예술로서, 켄트리지만의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연극적, 음악적, 시각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켄트리지의 작품들은 정치적인 맥락 외에 “장난스럽고, 우울하며, 즐겁고, 심오하고, 풍자적이고, 지적이며, 철학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다방면에 걸친 켄트리지 작품들이 품은 독창성은 처음 제기된 주된 아이디어(콘셉트)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불확실성’의 과정이 불러오게 될 결과에 대한 ‘긍정적 믿음’에 근거한다.
2016년, 요하네스버그에 ‘덜 좋은 아이디어 센터(the Centre for the Less Good Idea)’를 공동 설립한 켄트리지는 특정 아이디어의 확신이 오히려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발전할 가능성을 무시할 위험을 품고 있음을 지적한다.
20세기의 역사가 “무엇이 최선인지 확신하는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와 “거창하고 대단한 정치적 생각”이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인식시켰다고 말하는 켄트리지는 스튜디오의 창작 작업 방식, 즉 “의심과 불확실성을 유지한 채로 다른 아이디어를 들여와 정보를 더하고 무언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주된 아이디어로 시작하지만 “모순과 불확실성의 여지를 남겨두는 방식”은 2부에 해당하는 '시빌을 기다리며'의 ‘운명’이라는 주제와 연관되면서, 알고리즘과 AI가 지배하게 될 현재와 미래를 경고하는 메시지까지 확장된다.
1막으로 구성된 소규모 오페라(chamber opera)인 '시빌을 기다리며'는 로마 오페라 극장이 ‘모빌(mobile)’의 창시자로 유명한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의 '워크 인 프로그레스(Work in Progress)'를 기념할 수 있는 작품을 의뢰하면서, 2019년에 초연되었다.
1968년에 70세의 칼더가 로마 오페라와 작업한 '워크 인 프로그레스'는 콘셉트부터 디자인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칼더가 관장한 연극적 퍼포먼스이자 “댄서 없는 발레 작품”으로, 칼더의 오랜 평생의 꿈을 성취한 작품이었다.
미술 평론가인 제드 펄(Jed Perl)에 따르면, 여러 가지 모양의 조각들을 가느다란 철사 혹은 줄에 매달아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예술의 혁신을 선보인 칼더는 모빌을 일종의 “그림자 인형(shadow puppet)”이자 “마리오네트(marionette)”처럼 여겼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관람하며 열정을 품었던 칼더는 그림자극과 서커스, 오페라와 발레에 매료되었고, 총체적인 예술 공연을 감독하고 작업할 기회를 꿈꿨다.
칼더는 '워크 인 프로그레스'에서 빨강, 파랑, 노랑, 흰색, 검은색의 삼각형과 원형 등의 거대한 모빌들이 음악에 맞춰 계속 회전하게 함으로써, 모빌이 주인공처럼 무대 위 ‘배우’이자 ‘댄서’가 되도록 만들었다.
또, 8명의 무대 작업자가 천장에서 내려온 와이어에 모빌 조각들을 달아주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조각에 ‘움직임’이라는 생명을 부여하는 ‘창조자’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무리를 지어 특정 형태를 그리며 무대 위를 누비는 자전거 타기를 통해 자전거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를 연계하고, 움직이는 모빌의 무한한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결코 최종적인 고정 형태가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한 칼더의 작품은,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난해한 글쓰기 방식을 반영하고 있었다.
칼더는 19분 동안 8개~10개의 짧은 상황들로 연결되는 작품이 자신의 삶 전체를 담고 있다고 말하면서, 작품 제목이 조이스가 1924년부터 파편적 구성으로 연재한 “진행 중인 작품의 단편들(fragments from Work in Progress)”을 염두에 둔 것임을 암시했다.
17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집필된 조이스의 ‘진행 중’인 단편들은 1939년에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라는 역작으로 출간되는데, 칼더의 작품 제목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진화 중인 ‘미완’의 작업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움직임’의 영역으로서의 자신의 예술을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켄트리지는 스튜디오 웹사이트를 통해, 칼더의 1968년 작품은 “천천히 돌아가는 모빌과 자전거를 타는 무리가 등장하는 아름답고 기발한 상황 퍼포먼스인 ‘해프닝(happening)’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시그니처 모빌이 핵심”인 만큼, '워크 인 프로그레스'가 품은 “회전, 혁명, 경쾌함”을 잃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프로그램 노트'에서,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의 동굴에 살면서 사람들의 운명을 참나무 잎에 써서 더미로 쌓아놓는 ‘쿠마에 무녀 시빌(The Cumaean Sibyl)’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13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의 ‘천국 편’ 마지막 부분에서 잎사귀에 적힌 시빌의 점괘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더니 “한 권의 책 속에 묶인 것”을 보게 되는 장면으로 생각이 이어졌음을 피력한다.
앞날의 운명을 묻는 많은 사람들의 ‘확신’을 향한 열망이 자연의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누구의 운명인지 몰라 흩어진 나뭇잎들을 뒤지면서 자신의 미래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코믹하고 아련하게, 은유적이고 회화적으로 무대 위에 구현된다.
칼더의 시그니처 모빌의 문양을 옷과 가방, 모자, 몸에 커다랗게 달고 있는 인간 ‘모빌’처럼 보이는 퍼포머들은 때론 회전하고, 때론 가만히 서 있으면서, 춤과 노래로, 움직임과 제스처로, 6개의 상황들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켄트리지가 이전 작품들에서 주로 사용해 온 현금 출납부(cashbook)와 대형 사전의 페이지를 영사한 바탕에 목탄과 먹물로 그린 드로잉들이 투사되고, 시빌을 연기하는 퍼포머가 드리운 그림자가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스크린은, 직접 보지 않고는 느끼기 어려운 현재성과 일시성, 불확실성, 상징성을 포괄한다.
시빌의 점괘를 얻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대기실 장면과, 겉만 보고는 알 수 없기에 어떤 의자에 앉아야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있을 수 있는지 세심하게 가늠하고 판별하려는 장면, 땅에 떨어진 종이를 귀에 대면 타자기로 치는 예언이 들리는 장면, 낙엽처럼 흩어져 버린 종이 위에 적힌 예언들을 확인하며 집어던지는 사람들과, 빗자루로 바람에 날리는 종이들을 쓸어 담는 혼란의 장면들은, 짧은 에피소드로 제시된다.
서로 연결되는 플롯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단편들은, 공기의 흐름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칼더의 작품 ‘유칼립투스(Eucalyptus)’를 떠올리게 하는 드로잉과 ‘모빌’ 문양들이 투영되는 속에서, 음악과 노래와 함께 끝없이 춤을 추는 무녀 시빌을 조명한다.
가수의 중성적인 목소리와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는 무용수 시빌의 움직임이 지속되는 가운데, 뒤편 대형 화면에는 무용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검은 잉크 흔적과 목탄 드로잉, 문구들이 동시에 함께 투영된다.
“우주로 조각조각 흩어진” 점괘들이 각자의 운명을 “실체와 사건, 관계”를 담은 채 어우러져 엮인 책을 한 장씩 펼쳐 보일 때마다 달라지는 문양들은, 스위스 정신의학자가 개발한 ‘로르샤흐 잉크 반점 검사(Rorschach Inkblot Test)’를 반영한다.
종이 위에 검은 잉크를 떨어뜨리고 반으로 접었다 펴서 좌우 대칭이 되도록 하는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만든 카드 그림들은 인간의 심리와 정신, 영혼을 이해하기 위한 투사 검사로 1921년부터 활용되어왔다.
켄트리지는 시빌이 운명을 점치는 방식을 로르샤흐 기법과 연계한다. 켄트리지는 2023년 '버클리 대학 강연회'에서, 스크린에 투영된 목탄과 잉크 드로잉들은 대부분 페이지 위에 직접 그린 그림들임을 언급하는데, 대략 1,500개의 그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춤추는 시빌 무용수의 움직임을 추적하기도 하고, 리듬에 맞춰 파편이 되는 붓의 잉크 자국들을 로르샤흐 기법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그림들은 나뭇잎이나 구불구불한 선, 나뭇가지를 단순히 표현하기도 한다. 우연과 불확정성, 예측할 수 없는 운명과 미지의 영역은 켄트리지의 다층적인 작업을 통해 거대한 ‘플립 북(flip-book)’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다.
오페라의 리브레토(libretto, 대본)는 켄트리지가 여러 권의 책에서 발췌하고 편집한 수많은 문구들이 스크린에 영사되는 방식으로, 또 나팔처럼 생긴 오래된 구식 메가폰에 실려 켄트리지의 녹음된 음성이 객석 곳곳으로 울려 퍼지는 방식으로, 공연에 적용된다.
핀란드어, 히브리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독일어, 아프리카 속담 등을 영어로 번역한 문장들은 모두 미래와 운명, 삶, 신과 종교, 기억과 망각, 죽음과 노화, 공허와 예측을 담고 있다.
켄트리지는 의미의 부재와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세상의 위험, 알고리즘을 굶주리도록 만들어야 할 필요성, 더 나은 신과 더 나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인간의 어리석음, 가까이 근접해 있는 죽음에 대한 경고를 제시하면서도, 기쁨이 공포를 능가할 수 있음을, 사랑만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음을, 어깨에 잠시 기대는 위로가 암울한 미래를 늦출 수 있음을 긍정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큼이나 알 수 없는 기대와 희망이 함께 존재함을 알리는 메시지는 '시빌을 기다리며'의 주제가 된다.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음악인 ‘이시카타미야(isicathamiya)’ 합창의 민속적인 음악은 예언의 전설적인 느낌을 강조하는데,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영적인 존재인 무녀 시빌과의 연계를 목적으로 구축되었다.
협력 연출가이자 공동 작곡가인 은란라 말랑구는 ‘음악 노트’를 통해, 시빌의 이야기와 아프리카의 전통을 잇기 위해 “역사와 기억을 자신의 몸에 품고 살아가는 예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남아공 출신의 가수들이 함께 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호사어, 줄루어, 세츠와나어로 노래되는 곡들은 때로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담긴 하나의 음절”만을 사용해 허밍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기다림 속의 불안과 절박함”, “시빌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불협화음”을 표현하고, “관객의 영혼을 초대”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2부 '시빌을 기다리며'의 음악들은, 1부에서 드로잉 애니메이션과 함께 제기된 역사와 스러짐, 폐허, 망각의 주제들을 ‘운명’과 연결한다.
말랑구는 기자간담회에서 남아공에 처음 금광이 발견되고 이민자들이 광부로 들어올 무렵 시작된 음악을 노래 작곡에 활용했음을 언급하는데, 폐광이 된 곳에서 불법으로 채굴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자마 자마(the Zama Zama)’ 광부들의 삶을 다루는 1부 애니메이션의 내용과 역사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1부인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는 켄트리지의 드로잉의 과정과 작업의 흔적들이 겹겹이 쌓이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적 특징이 잘 드러난 22분의 애니메이션과 재즈 피아니스트 카일 셰퍼드(Kyle Shepherd)의 곡이 라이브로 연주되는 가운데, 남성 4중창의 노래가 더해진다.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는 켄트리지가 드로잉을 하는 자신의 모습과 목탄 스케치를 프레임 단위로 촬영한 뒤, 촬영된 스케치와 자신의 모습을 겹치고 또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만들어내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Stop motion animation)’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떻게 아이디어가 생성되고, 변형되며, 발전해나가는지를 드러낸 1부는 켄트리지가 주장하는 “불확실성의 정치”를 반영한다. “명확한 행동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불확실한 콘셉트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일관성을 찾아내고, 관련이 없는 것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마치 ‘운명’처럼 나름의 ‘의미’에 도달한다.
한 박물관에서 예술품을 감상하는 켄트리지를 닮은 부유한 백인 신사 ‘소호(Soho)’는 버려진 폐광 속에서 작은 망치로 바위를 두드리며 금을 캐는 흑인 불법 노동자와 눈이 마주친다.
흑인 노동자가 만들어낸 물품들은 박물관의 전시품들이 되지만, 박물관에 걸린 정물화 속 과일은 부패하고, 풍경화 속 바닷물은 쏟아져 내리며, 조각품들이 주저앉고, 벽이 무너져 내린다. 폐허로 변한 박물관에 있던 소호는 무덤과 같은 좁은 공간에서 여전히 망치를 두드리고 있는 흑인 광부가 있는 황량한 폐광으로, 환상처럼 이동해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는 2020년 애니메이션 작품인 '시티 딥(City Deep)'에서 보다 구체화되는데, 켄트리지는 인터뷰를 통해, 식민주의 역사와 광산 산업의 몰락을 직면하고 폐허가 된 도시와 경제의 어려움, 또 다른 문제들로 이어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랐음을 드러낸다.
1부의 제목인 ‘흩어져 버린 순간들’의 역사와 시간, 죽음의 맥락들은 2부에 등장하는 무녀 시빌의 ‘흩어지는 점괘들’과 연계되며, 운명과 불확실성, 미래의 모호함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켄트리지는 움직이는 ‘모빌’이 혼란스러운 순간들을 통과하며 일렬로 세워지는 순간 특정 이미지를 구현하고, 또다시 혼돈으로 향하는 끝없는 변화를 반복하는 방식이 “불확실함 속에서의 창조”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철사 조각의 그림자들이 한순간 유칼립투스 잎과 같았다가 일순간 타자기가 되기도 하는 창의성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 속에서 탄생하고, 혼란스러운 작업의 과정을 거쳐 일관된 무언가에 도달하는 결과를 낳는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던 인류가 확실한 미래를 점치기 위해 애쓰며 달려와 현재에 마주한 것은 여전히 팽배한 ‘불확실성’이다. 어쩌면 불확실성만이 인류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운명’인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불확실성은 창의성과 독창성,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출구’가 되기도 한다.
켄트리지는 우리가 불확실함 속에서 창의적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독창적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시빌’이 말하는 운명은 인간이 가진 창의력, 바로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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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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