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의 365칼럼] 사랑과 우울증에 관한 ‘뇌과학’을 향한 질문...연극 '디 이펙트'
[주하영의 365칼럼] 사랑과 우울증에 관한 ‘뇌과학’을 향한 질문...연극 '디 이펙트'
  • 주하영
  • 승인 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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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 풍경]
- HBO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의 작가 루시 프레블의 연극 작품
- 2012년 영국 국립극장 초연 후 비평가협회상 최우수 신작상 수상
- 항우울제 임상시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4인극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한국 초연은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 세계 최초로 젠더 벤딩(Gender bending) 캐스팅을 시도한 특징이 있다. '로나 제임스(김영민)'는 여성이지만, 역할을 맡은 배우에 따라 성별이 변경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한국 초연은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 세계 최초로 젠더 벤딩(Gender bending) 캐스팅을 시도한 특징이 있다. '로나 제임스(김영민)'는 여성이지만, 역할을 맡은 배우에 따라 성별이 변경된다./사진=레드앤블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인간이 우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안데르스 한센은 '마음을 돌보는 뇌과학'에서,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은 다른 모든 질병을 제치고 “인간을 가장 괴롭히는 질환”으로 빠르게 등극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추산에 따르면, 약 2억 84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불안장애를 겪고 있으며, 2억 8000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언급하는 한센은, 뇌에 “특정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한 이들”의 숫자가 그토록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86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 개 이상의 시냅스”가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 신체의 모든 기관을 통제하고, 외부에서 전달되는 “감각 인상(sensory impression)”을 끊임없이 처리하며, 중요도를 판단하고 해석하는 엄청난 능력의 뇌가 ‘왜 항상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일에는 태만한 것인가’를 묻는 한센은,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센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건강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인간의 뇌 역시 행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단히 느리게 진행되는 진화”로 인해 여전히 “수렵채집인”의 신체와 뇌를 간직하고 있는 인간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이 설계된 상태에 있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폐쇄적인 공간의 임상시험 장소를 구체화한 무대는 영상의 도움으로 약물 시험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폐쇄적인 공간의 임상시험 장소를 구체화한 무대는 영상의 도움으로 약물 시험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사진=레드앤블루

뇌세포가 “생화학물질을 교환해 만들어내는 속삭임”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은 행동에 영향을 미쳐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목표를 갖고 있을 뿐, “외부 세계에 반응하는 과정”의 결과가 아니다.

밀려드는 엄청난 양의 감각 인상들을 결합해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의 목적은 기아와 전염병, 갑작스러운 죽음을 피하는 데 있다.

그런데 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목적을 가진 ‘느낌’이 우리를 ‘우울’로 인도하는 것일까?

최근 대학로에서는, 영국 극작가 루시 프레블(Lucy Prebble)이 2012년에 초연으로 선보이며 비평가협회상 최고신작상을 수상한 연극 '디 이펙트(The Effect)'의 막이 내렸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색상과 단어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 자극에 대한 반응 속도와 정확도를 측정하는 '스트룹 검사(Stroop test)'는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보다 가시적으로 제공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색상과 단어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 자극에 대한 반응 속도와 정확도를 측정하는 '스트룹 검사(Stroop test)'는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보다 가시적으로 제공된다./사진=레드앤블루

우울증과 신약 개발 임상시험, 두뇌의 역할과 사랑의 감정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이라는 개념을 탐구한 연극 '디 이펙트'는, 2023년에 다시 영국에서 재공연되며, 2024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 베스트 리바이벌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을 적용한 무대 연출로 대사와 인물에 보다 집중하도록 만드는 영국 연출가 제이미 로이드(Jamie Lloyd)의 특징이 강조된 재연 무대는, 2024년 미국 뉴욕 더쉐드극장(The Shed)에서도 공연되며 큰 호평을 받았다.

제작사 레드앤블루의 2025년 신작이자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 연극 '디 이펙트'는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 “세계 최초로 젠더 벤딩(Gender bending) 캐스팅을 시도”한 특징이 있다.

4주간 도파민을 촉진하는 항우울제 임상 테스트에 참여한 남녀 실험 대상자인 ‘트리스탄’과 ‘코니’, 임상 테스트의 총괄 책임자인 ‘토비 실리’ 박사, 관찰을 진행하고 감독하는 심리학자 ‘로나 제임스’를 희곡이 제시한 성별과 다르게 배치하는 방식을 일컫는 ‘젠더 벤딩’은, 캐스팅된 배우에 맞춰 인물의 성별을 변경하기 때문에 각색을 필요로 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관습적인 서사와 고정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초연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남성 인물인 '토비 실리(양소민)'를 여성 배우가 맡아 연기하는 '젠더 벤딩' 방식을 적용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관습적인 서사와 고정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초연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남성 인물인 '토비 실리(양소민)'를 여성 배우가 맡아 연기하는 '젠더 벤딩' 방식을 적용한다./사진=레드앤블루

연출을 맡은 민새롬은 프레스콜에서, “예민하고 민감한 이슈”를 주로 여성 인물에게 부여해 온 “관습적인 서사와 고정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밝히며, “젠더 벤딩으로 주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들의 특성과 해석을 배우들이 많이 찾아줬다”고 덧붙였다.

한국 초연이 ‘젠더 벤딩’을 시도한 것은 프레블의 원작이 여성 인물인 ‘코니’와 ‘로나’에게 보다 예민하고 우울증에 취약한 측면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통계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우울증을 더 많이 앓고 있다는 수치를 반영한 결과인데, 실제로 여성 4명 중 1명이 우울증을 경험할 때 남성은 7명 중 1명이 경험하는 확률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심장 전문의였던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는 정신과 전문의의 길을 택한 '토비 실리(민진웅)'는 성공지향적인 인물로 화려한 강연을 선보인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심장 전문의였던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는 정신과 전문의의 길을 택한 '토비 실리(민진웅)'는 성공지향적인 인물로 화려한 강연을 선보인다./사진=레드앤블루

원작의 경우, 남성 인물인 트리스탄과 토비가 보다 자유롭고 규율에 얽매이지 않으며 진취적인 측면을 가진 것으로 강조되는데, 이는 성별뿐 아니라 출신과 가족 배경에 따라 사회 내에서 입지가 달라지는 점을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 때문으로 보인다.

프레블은 극본을 쓸 때 사건의 배경에 대한 철저한 조사뿐 아니라 실제 무대 위에 서게 될 배우에 맞춰 대사를 구성하는 특징이 있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자유롭고 모험적이며 재치와 유머를 갖춘 '트리스탄(류경수)'은 여자들에게 호감을 표시하기를 즐기는 '표류자(drifter)'로 설정되어 있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자유롭고 모험적이며 재치와 유머를 갖춘 '트리스탄(류경수)'은 여자들에게 호감을 표시하기를 즐기는 '표류자(drifter)'로 설정되어 있다./사진=레드앤블루

2012년 초연 당시, 잉글랜드 출신의 여대생이었던 코나와, 북아일랜드 출신의 표류자였던 트리스탄은, 2023년 재연에 캐스팅된 배우인 ‘테일러 러셀(Taylor Russell)’과 ‘파파 에시에두(Paapa Essiedu)’에 맞춰 시의성을 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경되었다.

캐나다 출신으로 영국에서 비자를 유지하려는 여대생 코나와 노동자 계층의 빈곤 문제와 젠트리피케이션, 사회적 불평등이 자주 언급되는 지역인 영국 이스트 런던 출신의 트리스탄은, 우울증과 관련해 사회적 배경이 작용할 가능성을 암시했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원작에서 '코니(박정복)'는 여대생이지만 젠더 벤딩 캐스팅을 선택한 한국 초연의 경우, 역할을 맡는 배우의 성별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원작에서 '코니(박정복)'는 여대생이지만 젠더 벤딩 캐스팅을 선택한 한국 초연의 경우, 역할을 맡는 배우의 성별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사진=레드앤블루

프레블은, 한때 연인 관계였던 중년의 로나와 토비 역시 변화를 줌으로써, 노동자 계급 출신에서 심리학 박사가 되기까지 분투하지 않을 수 없었던 흑인 여성과, 영국 근대사에 자리한 ‘윈드 러시(Windrush)’ 세대의 자녀이지만 심장 전문의가 된 아버지로 인해 사회적 사다리를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던 흑인 남성의 구조를 더했다.

이로 인해 전체 배우 캐스팅이 흑인으로 구성된 2023년 재연은, 2024년 미국 뉴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미국 월간 연극 잡지 '플레이빌'에 따르면, 프레블은 배우들 각자의 출신 및 배경이 인물의 개인사가 되도록 대사들을 미세하게 조정했고, 배우 각자의 톤과 말하는 방식까지 대본에 적용했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임상시험 프로젝트의 최종 책임자인 '토비 실리(박훈)'는 예전에 연인 관계였던 '로나 제임스(이윤지)'와의 재회를 기쁘게 생각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임상시험 프로젝트의 최종 책임자인 '토비 실리(박훈)'는 예전에 연인 관계였던 '로나 제임스(이윤지)'와의 재회를 기쁘게 생각한다./사진=레드앤블루

이는 2012년에는 담아내지 못했던 지점들까지 뉘앙스를 통해 반영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가져왔는데, 가령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약물 치료를 거부하는 심리학자 로나의 경우, “흑인 여성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험 대상으로 삼아져 온 과거”의 그림자를 반영하고 있다.

로나 역을 맡은 배우 미셸 오스틴(Michele Austin)은 “흑인 공동체에는 흑인을 대상으로 한 과학 실험 관행의 역사로 인해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고 설명하는데, 실제로 극 속에서 토비는 로나에게 우울증 약 복용을 거부하는 것이 정치적 맥락을 담은 행위인지를 묻는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트리스탄과 코니 외에도 다른 참가자들이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무대는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트리스탄과 코니 외에도 다른 참가자들이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무대는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사진=레드앤블루

국내 공연의 경우, 2023년에 업데이트된 대본보다는 2012년 초연 대본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프레블이 트리스탄 역을 맡은 배우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아일랜드 탭 댄스나 힙합 스타일 댄스를 선보이며 코나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장면을 구성한 부분을, 국내 관객이 수긍할 수 있도록 트리스탄의 순수함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한 점이 눈에 띈다.

무대 또한 초연 당시 루퍼트 굴드(Rupert Goold)가 연출한 대기실에서 관객이 인물들을 관찰하는 무대나, 2023년 재연 당시 로이드가 연출한 현실과의 경계가 흐려진 SF 공간처럼 보이는 빈 무대와 달리,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형태로 실험실의 느낌을 강조했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약을 복용하는 행위는 음향을 통한 청각적 효과와 영상을 통한 시각적 효과로 강조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약을 복용하는 행위는 음향을 통한 청각적 효과와 영상을 통한 시각적 효과로 강조된다./사진=레드앤블루

휴대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의 반입이 허락되지 않는 상태에서 ‘4주’라는 시간 동안 폐쇄적인 공간에 갇혀, 흥분을 촉발하는 성분의 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실험’임을 인식하도록 구현된 무대는, 효과적인 조명과 영상, 음향과 함께 ‘답답함’과 ‘억압’이라는 요소를 관객이 감각할 수 있도록 적용되었다.

연극 '디 이펙트'는 건강한 참여자들에게 항우울제를 투여하고 복용량을 늘릴 경우, 동기 부여와 쾌락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관찰하는 제약 회사의 임상 테스트를 배경으로 한다.

코니는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서 호기심을 갖고 임상시험에 참가하지만, 로나 박사와의 대화 과정에서 우울증을 앓는 부모를 가졌을지 모른다는 암시가 제기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코니(옥자연)'는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서 호기심을 갖고 임상시험에 참가하지만, 우울증을 앓는 부모를 가졌을지 모른다는 암시가 더해진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코니(옥자연)'는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서 호기심을 갖고 임상시험에 참가하지만, 우울증을 앓는 부모를 가졌을지 모른다는 암시가 더해진다./사진=레드앤블루

한편,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임상시험에 참여한 트리스탄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다른 임상시험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트리스탄은 임신 가능성과 태아에게 미칠 영향 등 여러 위험 요소로 인해 여성 참여자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환경에서, 검사를 위해 자신의 소변을 담은 컵을 어쩔 줄 모르는 코니를 발견한다.

즉흥성과 자유로움, 순간의 즐거움과 탐험을 즐기는 트리스탄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코니에게 관심을 표현하지만, 코니는 자신에게 이미 남자 친구가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트리스탄은 여전히 휴게실에서 만날 때마다 코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녀를 자극하고, 코니는 엉뚱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한 트리스탄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도파민을 촉진하는 약 복용 때문인지, 실제 자신의 마음이 트리스탄을 향해 움직이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어 극도의 혼란을 느끼는 코니는, 결국 로나 박사에게 인간적인 도움을 청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임상시험에 참여한 '트리스탄(오승훈)'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다른 임상시험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임상시험에 참여한 '트리스탄(오승훈)'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다른 임상시험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사진=레드앤블루

실험실 밖 현실 속에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트리스탄을 향해 느끼는 강렬한 감정이 사랑인지, 약의 효과 혹은 부작용인지 몰라 고군분투하는 코니를 바라보면서, 예전의 자신을 떠올린 로나는 트리스탄이 ‘위약(僞藥)’을 복용하고 있음을 비밀리에 알려준다.

하지만 코니는 트리스탄의 마음이 진실한 반면, 자신의 마음은 ‘가짜’라는 사실에 또다시 괴로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상황을 공평하게 만들고 싶은 코니는 마지막 복용 단계에서 자신이 복용해야 할 약을 트리스탄의 입속으로 밀어 넣고, 트리스탄은 이내 발작과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모든 임상시험에 동반되는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 테스트를 위해 ‘위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여겼던 트리스탄이, 실제로는 분석자의 ‘편견’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려는 제약 회사의 의도로 인해 ‘진짜 약’을 복용하고 있었음을 로나 박사가 몰랐던 상황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즉흥성과 자유로움, 순간의 즐거움과 탐험을 즐기는 '트리스탄(이설)'은 원작에서 남성으로 제시되지만, 역할을 맡은 배우에 따라 성별이 달라진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즉흥성과 자유로움, 순간의 즐거움과 탐험을 즐기는 '트리스탄(이설)'은 원작에서 남성으로 제시되지만, 역할을 맡은 배우에 따라 성별이 달라진다./사진=레드앤블루

토비는 새로 합류하는 실험실 연구원에게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관행임을 토로하지만, 로나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임상시험약에 유독 활발하게 반응하는 두 환자인 코니와 트리스탄의 뇌 촬영 영상을 보면서 토비는 성공을 확신하지만, 로나는 그들의 반응이 약 성분이 아니라 서로에게 느끼는 강렬한 감정인 ‘사랑’ 때문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토비는 오히려 도파민이 사랑을 촉발하도록 자극한 것이라면, 항우울제가 “사랑을 창조하는 약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프레블이 주목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과 몸이 모두 뇌세포 간의 ‘화학물질’의 이동과 해석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라면, 서로를 향해 멈출 수 없다고 느끼는 강렬하고 위태로운 감정인 ‘사랑’ 또한 화학물질에 의해 조절될 수 있는 ‘신체적인 것이기만 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사랑과 같은 강렬한 감정이 화학물질에 의해 조절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우울증을 앓는 수많은 사람들은 ‘왜 약물 치료를 통해 완치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심리학자로 상담 치료를 주로 진행하던 '로나 제임스(이상희)'는 제약회사의 새로운 임상시험 감독자이자 관찰자로 합류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심리학자로 상담 치료를 주로 진행하던 '로나 제임스(이상희)'는 제약회사의 새로운 임상시험 감독자이자 관찰자로 합류한다./사진=레드앤블루

로나는 중증 우울증을 겪는 심리치료 전문의면서도 단 한 번도 항우울제를 복용한 적이 없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토비를 향해 로나는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로나는 오히려 예민한 사람들이 겪는 우울함이 질병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바꿀 필요를 알리는 일종의 경고이자 증상일지 모른다는 점을 주장한다.

하지만 토비는 우울증이 “화학적 불균형”으로 인한 질병이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또한, 임상시험에 참가한 코니와 트리스탄의 과도한 반응 역시 그저 “부작용의 케이스”일 뿐 “판매할 수 없는 약”을 입증하는 근거로 볼 수 없다고 피력한다.

연극 '디 이펙트'는 2006년 런던 북서부에 위치한 노스윅 파크 병원에서 미국 생명과학 회사인 파렉셀(Parexel)이 진행한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다발성 장기 부전이라는 부작용을 겪게 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6명의 남성 참가자들이 장기 손상과 손가락 혹은 발가락 상실, 머리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 증상 등 끔찍한 부작용을 겪으며, “엘리펀트 맨(Elephant Man)”이라고 불렸던 임상시험 관련 기사들은 프레블에게 매우 연극적인 소재로 여겨졌다.

본질적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일정 기간 진행되는 임상시험이라는 환경이, 정해진 시간 동안 연극이 진행되는 무대와 유사하다고 느낀 프레블은, 도파민이 사랑뿐 아니라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려는 관객에게도 작용하는 화학물질이라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단 한번도 항우울제를 복용한 적 없는 '로나 제임스(이윤지)'는 생존을 위한 목적이라면 뇌가 왜 우울로 침잠하지 않도록 이끌지 않는 것인지 답답해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단 한번도 항우울제를 복용한 적 없는 '로나 제임스(이윤지)'는 생존을 위한 목적이라면 뇌가 왜 우울로 침잠하지 않도록 이끌지 않는 것인지 답답해한다.

또, 자신이 극작 당시 느끼고 있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질문과 ‘우울증’에 대한 관심사를 반영했다. 자신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분석적인 태도를 보이는 코니의 “과도한 고민”은 실제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는 프레블은 “불안과 위협, 두려움을 느낄 때 경험하게 되는 감정이 사랑에 빠질 때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심박수가 과도하게 빨라지고,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며, 속이 뒤집히는 것 같은 느낌은 “사고의 충격에 휩싸였을 때와 같다”고 말하는 프레블은 실제로 자신이 항우울제를 복용한 적이 있으며, 연극 집필을 위해 단 며칠이기는 하지만 거주형 약물 임상시험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음을 피력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토비 실리(박훈)'는 누구나 정신 건강에 문제를 겪을 수 있으며 약물 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고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음을 피력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토비 실리(박훈)'는 누구나 정신 건강에 문제를 겪을 수 있으며 약물 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고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음을 피력한다./사진=레드앤블루

프레블은 2024년 '뉴요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집필한 이유에 대해 사랑과 뇌, 감정, 우울증과 관련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아닌지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것은 “인간의 감정에 일관된 진단 모델을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임을 강조하는 프레블은, 우울증을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때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꾸는 것이 신경전달물질을 바꾸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하는 프레블의 입장은 연극 '디 이펙트'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적용된 듯 보인다.

임상시험약 부작용으로 인해 ‘일시적 전기억 상실증(Transient global amnesia)’을 겪게 된 트리스탄 옆에서, 코니가 미래의 불안을 인지하면서도 그와 함께 발을 내딛는 선택을 하는 것은 도파민 혹은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결정이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코니(김주연)'는 임상시험약 부작용으로 인해 일시적 전기억 상실증을 겪게 된 트리스탄 옆에서 함께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 선택을 한다.
연극 '디 이펙트' 공연 사진. '코니(김주연)'는 임상시험약 부작용으로 인해 일시적 전기억 상실증을 겪게 된 트리스탄 옆에서 함께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는 선택을 한다./사진=레드앤블루

또한, 토비의 진심이 담긴 간절한 요청에 처음으로 항우울제를 먹는 선택을 하는 로나의 행보 역시 신경전달물질에 기대려는 마음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바를 배려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꿔보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 도박, 사랑, 권력과 같은 보상에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20여 년간 추적해 온 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는 저서인 '나라는 착각'에서, 자아 정체성은 “우리의 뇌가 수행하는 계산물의 결과물”이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아가 한데 엮인 한 편의 서사”라고 설명한다.

약물은 불안과 우울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개인적인 서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약물”이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을 피력하는 번스는, “강력한 약물을 쓴다고 해도 자신의 서사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들, 생각하는 모든 것들, 인식한다고 믿는 모든 것들은 과연 진짜일까, 가짜일까? 우리 내면에서 요동치는 강렬한 감정들은 모두 뇌가 만들어낸 생존을 위한 해석, 혹은 번식을 위한 환상이기만 한 걸까?

아니면, 과학자들이 제시하듯 우울의 감정은 일종의 염증 반응으로, 손상을 유발할지 모를 인자를 제거하고 치유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우울’로 침잠하게 되는 상태를 일컫는 것일까?

과연 이 모든 발견과 지식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길로, 보다 평안하고 즐거운 삶으로 이끌어 주는 해법이 되어주기는 할까? 뇌과학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는 날, 우리는 우울증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주하영
주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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