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태양’을 향해 전진하는 ‘저항’...뮤지컬 '시지프스'
[주하영 365칼럼] ‘태양’을 향해 전진하는 ‘저항’...뮤지컬 '시지프스'
  • 주하영
  • 승인 20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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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3관왕 달성
-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과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시지프스' 엮은 창작 뮤지컬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무대에 구현하는 4명의 배우들은 때론 해설자로, 혹은 인물로 서로 역할을 달리하며, ‘극중극’이라는 이야기의 틀을 넘나든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장면.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무대에 구현하는 4명의 배우들은 때론 해설자로, 혹은 인물로 서로 역할을 달리하며, ‘극중극’이라는 이야기의 틀을 넘나든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폐허가 된 세상, 시간이 멈추고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세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포탄을 피해 숨고, 불안 속에 잠을 청하고,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는 것 외에 남은 것이 없는 세상에서, 여전히 삶의 목적을 찾아 헤매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에게 ‘희망’으로 불리는 것은 과연 존재할까?

죽음 외에 출구가 없는 세상, 감옥과 다름없는 땅 위에서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 내일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위들을 계속하는 데에는 ‘습관’이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함을 지적한다.

인간은 “돌연 환상과 빛을 잃은 세계에서 이방인이 되었음”을 느끼고, 더 이상 “구원이 없음”을 인지한다. “잃어버린 고향의 추억도, 약속된 땅의 희망”도 없음을 깨달은 인간은 “광채 없는 삶의 하루하루”를 시간 속에 흘려보낸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사진. 폐허가 된 세상 속에 버려진 4명의 배우들은 실존주의 문학의 대명사격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준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장면. 폐허가 된 세상 속에 버려진 4명의 배우들은 실존주의 문학의 대명사격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준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카뮈는 세계가 우리에게 얼마나 두껍고 완강하게 닫혀있는지를 깨닫는 것, “하나의 돌이 얼마나 낯선 것”인지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부조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 광채 없는 시간의 삶을 끌고 가야 할 필요가 존재하고, “현재라는 이름의 지옥”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고집스럽게 버티는 것”뿐이다.

무겁게 짓눌러오는 운명 앞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체념을 거부하며 고통을 수용하고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 “폐허의 한복판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 그것을 카뮈는 ‘저항’이라고 부른다.

카뮈는 “부조리의 인간은 오직 남김없이 다 소진하고,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까지 소진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매일 부조리한 현실을 의식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고독한 노력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에 끝없이 도전하고 있음을, 그러한 지탱을 통해 인간 삶의 유일한 진실을 증언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식 포스터 컷.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한 뮤지컬 '시지프스'는 과수원뮤지컬컴퍼니의 2024년 창작 신작이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식 포스터 컷.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한 뮤지컬 '시지프스'는 과수원뮤지컬컴퍼니의 2024년 창작 신작이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는, 폐허가 된 세상 속에 버려진 4명의 배우들이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시시포스(Sisyphus or Sisyphos)’를 엮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뮤지컬 '시지프스'의 공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뮤지컬 '시지프스'는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창작뮤지컬상, 아성크리에이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과수원뮤지컬컴퍼니의 2024년 창작 신작이다.

팬데믹과 세계 전쟁으로 황폐함만 남은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시지프스'는 카뮈의 ‘부조리주의’ 3부작으로 불리는 소설 '이방인'과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 가운데 소설과 에세이를 함께 엮어 엉망이 된 세상 속에서도 절대 멈추지 않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캐릭터 컷. '고뇌를 수행하는 자'인 '언노운(이형훈)'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를 연기하며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뮤지컬 '시지프스' 캐릭터 컷. '고뇌를 수행하는 자'인 '언노운(이형훈)'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를 연기하며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시지프스'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 속 대사인 “온 세상은 무대이며, 모든 인간은 그저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를 극 구조로 사용한다.

관객이 없는 곳에서 존재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배우들은 파괴되고 버려진 극장에서 관객의 환호를 상상하며, 왠지 자신들과 닮은 듯 느껴지는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의 삶’을 무대로 펼쳐 보인다.

고뇌를 수행하는 자 ‘언노운’, 시를 노래하는 자 ‘포엣’, 슬픔을 승화하는 자 ‘클라운’, 별을 바라보는 자 ‘아스트로’로 구성된 4명의 배우들은, 무대 한가운데에 남겨진 초라한 테이블 위에 놓인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북 치는 광대 인형’을 자신들과 동일시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사진. 무너져내린 극장에서 배우들은 무대 한가운데에 남겨진 테이블 위에 놓인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북 치는 광대 인형’을 자신들과 동일시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장면. 무너져내린 극장에서 배우들은 무대 한가운데에 남겨진 테이블 위에 놓인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북 치는 광대 인형’을 자신들과 동일시한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아직도 어디선가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무너진 극장에서, “망가지고 버려진 존재”로 자신을 인지하는 배우들 중 포엣은 공연이 끝나고 시원하게 먹던 ‘아이스크림’을 떠올린다.

과거 속 달콤한 순간은 ‘상상’을 통해 배우의 동작으로, 연기로, 환상으로, ‘현재’로 부활한다.

어쩌면 “세상이 끝나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상상’만으로 세상 전체를, 모든 인간 군상을 무대 위에 불러올 수 있는 ‘배우’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4명의 배우들이 관객의 환호를 상상하며, 카뮈의 '이방인'을 무대에 구현하도록 만든다.

배우들은 때론 해설자로, 혹은 인물로 서로 역할을 달리하며, ‘극중극’이라는 이야기의 틀을 넘나든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평가하기도 하고,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기도 하며, 이해되지 않는 태도와 행동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기도 하는 배우들은 그리스 고전극의 ‘코러스’의 역할과 닮아있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 뫼르소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특징을 설명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태도와 행동에 질문을 던지는 배우들은 그리스 고전극의 '코러스'의 역할과 닮아있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장면. 뫼르소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특징을 설명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태도와 행동에 질문을 던지는 배우들은 그리스 고전극의 '코러스'의 역할과 닮아있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신들에게 미움을 받아 커다란 바윗돌을 산꼭대기 정상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시시포스는 배우들과 닮은 존재로 제시된다.

무거운 돌을 힘들게 굴려 올리자마자 가파른 비탈을 따라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는 운명, 시시포스(시지프스)의 반복되는 노동은 매일 무대 위에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비유된다.

또, 매일 밤 창조된 세상과 인물들의 삶이 막이 내림과 동시에 신기루처럼 자취를 감추고, 다음날 또다시 반복된다는 점에서, 공연과 시시포스의 운명은 같은 선상에 놓인다.

배우들은 시시포스와 닮은 남자, ‘뫼르소’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출구가 없는 세상”에서 저항하는 법을, 굴복하지 않는 길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삶을 찾고자 애쓴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시시포스(시지프스)의 반복되는 노동은 매일 무대 위에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비유된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장면.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시시포스(시지프스)의 반복되는 노동은 매일 무대 위에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비유된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소설 '이방인'은 뮤지컬로 전환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작품이다. 실존주의의 또 다른 대표자인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해 “소설의 각 문장이 섬과 같다”는 평가를 받은 '이방인'은 카뮈 자신도 인정했듯, “절제된 표현을 통한 감각주의”를 표방한다.

사르트르의 표현에 따르면, “수동적이고, 꿰뚫을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는, 반짝이는 그 자체로의 세계”를 창조한 '이방인'의 문장들은 뫼르소에 대한 모호함과,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보이는 무감각한 태도,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이는 이유에 대한 명쾌하지 않은 설명, 삶의 권태와 수동적 사고에 대한 독자의 답답함의 이유가 된다.

카뮈의 나이 29세였던 1942년에 출간된 '이방인'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모호함을 간직하고 있는 소설”로 여겨지며, 뫼르소의 당혹스러운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수준의 분석이 끊이질 않는다.

또, 소설에 이름도 없이 완전한 침묵 상태로 등장하는 ‘아랍인의 존재’와 뫼르소의 연인 마리와 죽은 어머니까지 ‘일차원적으로 묘사되는 여성 인물들’은 비판과 논란의 요인이 되어왔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사진. 배우들은 소설 '이방인'의 이야기에 나름대로의 해석과 주인공 뫼르소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담아낸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장면. 배우들은 소설 '이방인'의 이야기에 나름대로의 해석과 주인공 뫼르소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담아낸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시지프스'는 이러한 어려움을 ‘배우들이 오늘의 이야기로 카뮈의 '이방인'을 관객에게 연기와 노래로 전달’하는 설정을 통해 극복한다.

소설 '이방인'의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뮤지컬은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이라는 전보를 요양소로부터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엄마가 어제 죽었는지, 오늘 죽었는지 알 수 없다’는 초반부의 설정을 그대로 유지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오후에 버스로만 2시간, 내려서 2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뫼르소의 여정은 넘버(노래)로 표현된다.

“흔들리는 차, 뜨거운 열기, 휘발유 냄새” 속에서 느끼는 뫼르소의 “어지럽고 메스꺼운 고통과 두통”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길 위에 던져지고 부서진 “상처 난 돌멩이”로 연결되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 승객들과 관객, 세상을 살아가는 길 위에 놓인 평범한 ‘돌’이라는 모든 사람들로 확장된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 폐허가 된 극장의 '경사로'는 신들에게 형벌을 받아 무거운 돌을 힘들게 굴려올리는 시시포스(시지프스)의 가파른 비탈을 형상화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장면. 폐허가 된 극장의 '경사로'는 신들에게 형벌을 받아 무거운 돌을 힘들게 굴려올리는 시시포스(시지프스)의 가파른 비탈을 형상화한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시지프스'에서 ‘돌’은 매우 지친 상태로 무감각하게 주어진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현존이자, 배우들이 오늘 하루를 견디기 위해 ‘상상’을 불러와 무대 위에 구현하는 ‘이야기’이다.

주어진 운명의 무게이자 삶 그 자체이기도 한 ‘돌을 굴리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는 태도를 “혁명이자 저항”으로 바라본다.

태양 앞에서 두 눈을 뜨지 못하고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시간 속에서 살아있음을 인식하고 세상의 멸망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후회 없이 자신만의 ‘돌을 굴려나가는 것’, 뮤지컬 '시지프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고 일관적인 메시지를 유지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사진. ‘돌'을 굴리는 일은 주어진 운명의 무게이자 삶 그 자체이기도 하며,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는 '혁명'이자 '저항'의 태도이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장면. ‘돌'을 굴리는 일은 주어진 운명의 무게이자 삶 그 자체이기도 하며,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끝없이 전진하는 '혁명'이자 '저항'의 태도이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배우들은 관객이 좀 더 뫼르소에게 감정적 이입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어머니를 요양소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원작 소설보다는 뫼르소가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많이 느끼는 상태로 설정한다.

또,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아랍인 여성을 무참히 폭행하고 그로 인해 칼을 들고 나타난 아랍인 남성을 뫼르소가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이 발생하게 된 맥락에 있는 인물, 뫼르소의 이웃인 ‘레몽’을 여성 배우인 ‘포엣’이 연기하는 것으로 배치한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인종차별 문제를 설명하던 포엣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개인주의”로 점철된 레몽을 연기하는데, 상상력을 발휘하는 무대가 성별을 이유로 경계를 둘 필요가 없음을 언급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캐릭터 컷. '시를 노래하는 자'인 '포엣(정다희)'은 공연이 끝나고 시원하게 먹던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며 상상을 통해 무대 위에 환상을 현재로 불러온다.
뮤지컬 '시지프스' 캐릭터 컷. '시를 노래하는 자'인 '포엣(정다희)'은 공연이 끝나고 시원하게 먹던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며 상상을 통해 무대 위에 환상을 현재로 불러온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희화화되며 웃음을 낳는 레몽에 대한 묘사는 자칫 불편함을 가리는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데, 뮤지컬은 이 지점에서 레몽이 부탁한 사과의 편지를 뫼르소가 대신 써주는 행동을 한 데 대한 질책을 제기한다.

레몽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먼저 속인 건 아랍인 여성이기 때문에 레몽을 위해 증언을 해준 것이라는 뫼르소의 변명을 덧붙이거나, 모든 비극은 뫼르소가 편지를 대신 써달라는 레몽의 부탁을 수락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판단은, 소설 '이방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뮤지컬은 엄마의 장례식 바로 다음날 우연히 만난 마리와 코미디 영화를 보고 하룻밤을 보내는 뫼르소의 행동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지적하거나, 평범한 회사원이던 뫼르소가 총을 갖고 있었던 이유와 그 총으로 왜 사람을 죽인 것인지에 대해 나름의 의문을 던지며,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다. 이러한 단절들은 이야기에 배우들 나름대로의 해석과 뫼르소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음을 관객이 인지하도록 만든다.

실제로 뮤지컬은 뫼르소의 이웃인 살라마노 영감님과 잃어버린 개에 관한 에피소드를 전달함에 있어 뫼르소가 원작보다 영감님과 친밀한 관계였던 느낌을 부여하거나, 살인죄로 감옥에 갇힌 뫼르소를 찾아온 마리의 장면을 그려냄에 있어 원작보다 훨씬 더 안타까움을 담는다.

또, 뫼르소가 엄마의 환영을 보는 장면을 추가해 원작에는 없는, 아픈 아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고 아이스크림을 언급하는 따뜻한 기억을 간직한, 보다 친밀한 관계로 해석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캐릭터 컷. '슬픔을 승화하는 자'인 '클라운(정민)'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광대처럼 웃지만 신랄하고 매의 눈으로 관찰하는 '배우'에 대해 설명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캐릭터 컷. '슬픔을 승화하는 자'인 '클라운(정민)'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광대처럼 웃지만 신랄하고 매의 눈으로 관찰하는 '배우'에 대해 설명한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소설 '이방인'을 지배하는 작열하는 태양의 이미지는 LED 100장을 조합해 만든 장치를 통해 전자음향과 함께 긴장감을 부여한다.

무대 중앙 벽의 LED 장치는 태양과 대조를 이루는 푸른 바다가 되기도 하고, 1940년대의 원작의 배경을 드러내기도 하며, 이동하는 버스와 감옥의 철창 등 공간의 변화를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아랍 남성을 쏘려고 했던 레몽을 만류하며 빼앗아 두었던 총으로, 아무런 악감정도 없으면서,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 속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뫼르소의 순간은, LED 태양과 함께 긴박감과 심리적 부담을 증폭한다.

엄마의 장례식 날과 똑같이 이마를 정면으로 내리쬐는 태양은 뫼르소를 괴롭히고, 뫼르소는 10미터쯤 떨어져 서 있는 아랍인의 손에서 번쩍이는 칼날이 햇빛에 번쩍여 두 눈을 뜰 수 없도록 만드는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는 흘러내리는 땀에 손가락이 미끄러져 방아쇠를 당긴 건지, 뜨거운 열기와 빛을 견디지 못해 태양을 향해 총을 쏜 건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뫼르소는 이미 쓰러진 아랍인의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방의 총성을 울린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사진. 전쟁으로 황폐해진 미래를 암시하는 무대 세트는 LED 조명의 효과를 통해 변화를 더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공연장면. 전쟁으로 황폐해진 미래를 암시하는 무대 세트는 LED 조명의 효과를 통해 변화를 더한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이해하기 어려운 뫼르소의 살인에 대한 재판은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조차 눈물을 흘리지 않은 “냉담함”이 문제가 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후회보다는 일종의 난처함”을 느끼는 뫼르소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움이 무엇인지, 왜 영혼의 죄를 걱정해야 하는지, 왜 무덤덤한 자신의 태도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뫼르소는 삶에서 자신을 소외시킨 채 모든 상황에 적극적이기를 거부한다. 뫼르소를 둘러싼 예심판사와의 갈등, 변호사와 검사의 반대되는 주장, 교도소 부속 사제와의 만남 등을 무대에 구현하는 배우들은 뫼르소의 수동적 태도가 “죽음을 외면한 만큼 삶 또한 외면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또,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한 사람의 낯선 행동과 태도, 특정인과의 관계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속내를 담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 조금 더 이해하려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는 포용의 관점, 배우들이 소설 '이방인'을 전달하면서 염두에 두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뮤지컬 '시지프스' 캐릭터 컷. '별을 바라보는 자'인 '아스트로(이선우)'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앞에 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은  자신만의 ‘돌’을 굴리는 일임을 강조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캐릭터 컷. '별을 바라보는 자'인 '아스트로(이선우)'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앞에 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은 자신만의 ‘돌’을 굴리는 일임을 강조한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더불어 배우들은 자신의 삶에서조차 이방인으로 자리했던 뫼르소의 깨달음을 통해 현재 삶의 중요성을, 다음 세상이나 미래가 아닌 이 순간을 견디고 있는 지금의 소중함을 인식할 필요성을 토로한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앞에 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은 오늘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돌’을 굴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뿐이다.

뫼르소는 삶 속에 이미 흘러간 것들에 대한 후회에 파묻혀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형선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무거운 책임을 인식하며, 증오의 시선을 기꺼이 수용할 것을 외친다. 그는 영혼의 안식을 위해 신에게 구원을 청하는 대신, 현재에 남겨진 삶의 시간을 뜨겁게 느끼며, 가까이 다가가면 살아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태양’이라는 죽음을 향해 곧장 걸어갈 것을 다짐한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사진. 세상이 끝나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상상’만으로 세상 전체와 모든 인간 군상을 무대 위에 불러올 수 있는 ‘배우’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뮤지컬 '시지프스' DIMF 공연장면. 세상이 끝나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상상’만으로 세상 전체와 모든 인간 군상을 무대 위에 불러올 수 있는 ‘배우’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사진=과수원뮤지컬컴퍼니

카뮈는 1955년에 쓴 미국판 '이방인'의 서문에서, 뫼르소를 “지극히 사적이고, 고독한 변두리의 주변인”으로 설명하면서, 그가 실재하는 것 이상을 말하는 ‘거짓’을 거부했기 때문에 사회에 위협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뫼르소가 관행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있는 그대로 느끼는 바를 가식 없이 말하는 진솔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이라고 말하는 카뮈는, 소설 '이방인'이 “영웅적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피력한다.

시시포스의 형벌, 죽음 외엔 출구가 없는 삶에 주어진 고난과 어려움, 그 부조리함 속에서 존재의 의미와 성취를 찾는 ‘반항’, 뮤지컬 '시지프스'는 인생의 행복과 만족은 결국 최종 목적지가 아닌 ‘여정’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끔찍하게 힘들지만 쏟아내는 노력 속에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 공연이 끝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겠지만 열정을 불사르는 시간 속에 만들어지는 영원의 순간들,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외친다. 매일매일 돌을 굴리라고. 아무것도 없지만, 무대 위에 돌을 굴린다면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된다 할지라도 후회 없이 삶을 살아내야 할 필요, 뮤지컬 '시지프스'가 ‘위로’의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3월 2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2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주하영
주하영
jhy0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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