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주인과 하인’ 원작
- LG아트센터 서울 기획공연 CoMPAS 25 시즌 프로그램
- 소리꾼 ‘이자람’의 5년 만의 신작 창작 판소리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삶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 앞에 놓인 길이 어디론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삶의 길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끝을 맺기도 한다.
예고 없이 닥쳐오는 죽음, 그 죽음으로 향하는 순간 내가 한 선택,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가능성, 그 가능성으로 인해 지속되는 누군가의 삶…. 사람들은 쉽게 자신이 한 행동이 다른 누군가와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속단하지만, 모든 행위는 늘 어떤 길로 연결된다.
작든, 크든 무언가에 영향을 미치고 흔적을 남기는 우리의 삶, 모든 것이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여기는 순간에도, 사실상 모든 것은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때로 그것은 ‘교훈’이라는 메시지의 형태로, 여전히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삶을 바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세계 고전 문학을 전통 판소리로 창작·변주하며 판소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소리꾼 이자람의 5년 만의 신작 '눈, 눈, 눈'의 초연이 있었다.
최근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단 6회의 공연으로 선보인 이자람의 판소리 '눈, 눈, 눈'은 오랜만의 신작인 만큼 팬들의 성원으로 매회 매진을 기록했다.
서양 고전 문학을 전통 판소리로 재해석해 창작·변주하는 작업을 계속해온 이자람이 이번에 새롭게 선택한 작품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의 단편소설 '주인과 하인'(원제:Master and Man, Хозяин и работник) 이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사천가'와 '억척가', 남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방인의 노래',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퓰리처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한 '노인과 바다'에 이어, '주인과 하인' 역시 소리꾼 이자람이 직접 대본을 쓰고 작창(작곡) 하는 방식으로 창작되었다.
19세기 러시아 마을에 사는 상인 바실리와 일꾼 니키타가 거센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밤을 지새우게 된 여정을 담은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자람은 '눈, 눈, 눈' 공연의 앞부분에서, 프랑스 지인의 추천이 있었다고 밝혔다.
파리에 살고 있는 오랜 지인을 만나 판소리로 담아내고픈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제안받은 소설 '주인과 하인'은, 소리꾼이자 작창가인 이자람의 해석을 통해 원작과는 조금 다른 ‘바실리’와 ‘니키타’를 탄생시켰다.
‘죽음과 구원, 이웃에 대한 실천적 사랑’이라는 톨스토이의 주제는 그대로 구현하지만, 바실리와 니키타를 비교적 고르게 대조하며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서술하는 소설과 달리, 판소리는 주로 바실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는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소리꾼 이자람이 ‘바실리’라는 인물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작가의 글’에서 이자람은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바실리’라는 인물을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으며, 왜 합당한 벌을 받지 않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인지 맥락을 내내 이해할 수 없었다고 피력했다.
“옳고 그름 사이”에서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는 바실리를 “나와 닮은 사람”으로 인정하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고 말하는 이자람은, 이야기 속 인물들이 “하나의 인간형이 아니라 ‘나 중의 하나’, ‘나 중의 어떤 순간’들이 겹쳐지는” 여러 모습의 축적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눈, 눈, 눈'이 그려내는 바실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쫓는 근시안적 사고를 하는 인물이자, 마음 깊은 곳에 ‘불안’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위험성을 알지 못한 채, 물질 축적을 통한 ‘만족’으로만 존재를 인식하는 ‘현대인의 자화상’과 같은 면모를 갖는다.
이에 반해 일꾼 니키타는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질문에 답을 잘 하지도 않고, 말이 좀처럼 없으며, 농담을 건네도 웃지 않고, 불평하는 법도 없는 “참말로 수상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바실리가 선명하게 그려지는 허영과 가벼움, 계산적 사고, 이기적 태도, 불안한 자존감, 과도한 욕심을 표출한다면, 니키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신비감과 무게감, 진중함으로 정반대의 대조를 드러낸다.
원작과 달리 바실리는 니키타보다 나이가 젊은 것으로 설정되었는데, 톨스토이는 나이가 50세인 일꾼 니키타가 주인인 바실리에게 “아버지를 모시듯 잘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눈, 눈, 눈'의 니키타는 바실리보다 나이가 많다.
인물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이자람 작품의 특성상, '눈, 눈, 눈' 역시 바실리와 니키타가 어떤 사람인지 재담과 소리, 너름새만으로도 충분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눈보라 속에서 썰매를 끄는 충직한 말에게 ‘제티’라는 이름을 부여해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원작에서 주인의 채찍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혹은 자신의 세심한 두 귀와 본능에 의지해 길을 찾아가는 말은 “무호르티”로 지칭되는데, 톨스토이는 “갈색 반점이 있는 말”을 뜻하는 보통명사인 ‘무호르티’를 마치 말의 이름처럼 사용한다.
'눈, 눈, 눈'은 말에게 무호르티 대신 ‘제티’라는 명확한 이름을 부여하고, 제티를 하나의 살아있는 캐릭터로 구현한다. 엄청나게 쌓인 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골짜기에 빠졌다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니키타가 준 당근을 맛있게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하며, 바실리가 잘못 이끈 길에서 ‘히히힝’ 울음소리를 내며 애를 쓰는 제티는 소리꾼에 의해 모든 장면에서 살아 움직인다.
1895년에 원작이 출간되었을 당시, 문학비평가인 N. N. 스트라호프가 “바실리, 니키타, 무호르티가 나의 오랜 지기가 되었다”고 표현했을 만큼, 소설 속에서 말은 두 인물 못지않게 인상적으로 묘사되며 눈보라와 사투를 벌인다.
'눈, 눈, 눈'은 이자람의 이전 작품인 '노인과 바다'와 마찬가지로 전통 판소리 양식을 보다 수용하기 위해, 고수의 북장단과 소리꾼의 재담, 소리, 너름새(몸짓) 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바탕소리’를 기반으로 한다.
프로그램북에 수록된 인터뷰에 따르면, 대본과 작창이 수정을 거듭할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 작업이 반복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전 작업보다 다양한 유형의 판소리 선율”이 활용되었다. 특히 “극적 상황을 돕는 장단 활용”이 눈에 띄는데, 인터뷰에서 이자람은 “장면마다 장단을 촘촘히 배치했다”고 덧붙인다.
소리꾼이 자유자재로 관객을 이끌어 나가며 서사를 전달할 수 있고, 과거의 먼 이야기도 현재의 일상처럼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 수 있는 판소리의 장점은, 10개의 챕터로 구성된 톨스토이의 소설을 보다 긴박하고 흥미롭게 ‘죽음과 삶’이라는 깊은 주제를 파헤칠 수 있도록 한다.
톨스토이가 일기에서 “1894년 9월 6일”에 처음 이야기의 영감을 떠올렸다고 밝힌 '주인과 하인'은 그가 평생 천착해 온 ‘삶의 의미와 죽음, 도덕적 갱생과 구원, 실천적 사랑’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대작들을 생산해 낸 중기 이후 1880년경부터, 피할 수 없는 죽음과 허무, 절망과 같은 존재론적 혼란 속에서 사상적 전환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종교 안에서 안식을 찾으면서 “모든 인류가 사랑과 용서를 기반으로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실천하려는 신념을 갖게 되는데, 1881년부터 1886년 사이에 집필된 단편들은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윤리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이웃 사랑의 실천을 주제로 담고 있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두 노인', 그리고 욕심과 탐욕이 죽음과 파멸을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갖고 있는 '바보 이반'과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는, '주인과 하인'과 유사한 맥락들을 꽤 엿볼 수 있다.
여관과 술집, 상점을 운영하며 재산을 축적한 상인 바실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가운데, 홀로 숲을 사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나무 값을 포함하면 2만 루블은 족히 넘는 숲을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낮은 구매가격을 제시해 지주를 속이고 거래를 빨리 마무리하려는 바실리의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다른 상인이 선수를 치기 전에 숲을 매수하려는 바실리는 계약금 3천 루블을 품에 지닌 채 ‘고랴츠키노 숲’으로 썰매를 타고 길을 떠나려고 하지만, 그의 아내가 만류한다.
날씨가 나빠지거나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염려하는 아내는 꼭 가야 한다면, 일꾼인 니키타를 데려가라고 말한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신고 있는 장화까지 저당 잡힐 정도로 고주망태가 되는 것만 빼면, 성실하고 정직한 일꾼 니키타는 친절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이웃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눈, 눈, 눈'은 니키타의 밝고 쾌활한 성격을 말 없고 진지한 성격으로 변경하면서, 술만 마시면 가진 것을 모두 소진하는 버릇은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 니키타가 술에 잔뜩 취해 아내 마르파가 가장 아끼는 옷들을 모두 꺼내 도끼질한 사건은 적용하는데, 소리꾼은 “억눌린 온순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한 니키타의 폭력성이 하숙을 한다면서 눌러 앉은 양조장 일꾼과 관련된 것임을 언급한다.
소리꾼은 니키타가 이후로 3개월 동안 술을 끊은 상태에 있으며, 집에서 나와 마방에서 지내고 있다고 덧붙인다. 바실리는 아내의 제안이 영 내키지 않지만 니키타와 동행하기로 결정하고, 썰매를 조종하면서 아들에게 말을 사줄 계획을 가진 니키타에게 제티를 비싸게 팔려고 흥정을 한다.
채찍을 손에 쥔 바실리는 숲에 빨리 당도할 욕심에 협곡을 가로지르는 험한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길에서 벗어나 눈이 잔뜩 쌓인 감자밭에 들어선 썰매는 목적지에서 왼쪽으로 벗어난 그리슈키노 마을에 도착한다.
하룻밤 묵고 가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다시 나선 길은 또다시 사라지고, 니키타는 고삐를 달라고 하지만 바실리는 끝내 고집을 피운다. 결국 본능으로 길을 찾는 제티에게 맡긴 썰매는 그리슈키노 마을로 되돌아간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 바실리는 그리슈키노 마을의 가장 부유한 어르신의 집에서 잠시 쉬지만, 해가 졌으니 내일 떠나라는 어르신의 제안을 마다하고 기어이 길을 나선다. 한 시간가량 늦은 손해를 메우려면 족히 1년이 걸릴 수 있음을 강조하는 바실리의 머릿속에는 온통 좀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는 조급함만이 가득하다.
소리꾼은 부채를 펴서 흔드는 순간 관객들이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를 흉내 내줄 것을 요청하고, 어둠 속에서 바실리와 니키타, 제티는 관객의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새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끝도 없는 땅 위를 힘겹게 전진한다.
어디가 길인지, 얼마만큼 시간이 지났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가운데, 골짜기에 몸이 빠진 제티는 어렵게 눈 속에서 땅 위로 올라오고, 낭떠러지로 미끄러져 한참을 내려간 니키타는 네 발로 기어서 겨우 위로 올라오는 과정들은 북장단과 소리, 너름새를 통해 긴박하게 속도감을 더한다.
마침내 니키타는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밤새 바람을 막아줄 공간을 찾아 제티의 목에 얹힌 멍에를 풀기 시작한다.
'눈, 눈, 눈'은 니키타가 바실리에게 “왜요? 겁이 나세요?”라고 묻는 대사를 추가한다. 바실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실소하지만, 그의 ‘불안’이 증폭되는 순간은 이때부터다.
바실리는 잠들면 안 된다는 니키타의 경고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숲을 팔아 번 돈으로 얼마나 많이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 부유한 현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쉬지 않고 돈을 벌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었다 깜짝 놀라 깬 바실리는 담뱃불에 비추어 시계를 확인한다. 자정을 조금 지났을 뿐 아침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는 인식은 그의 심장이 쿵쾅거리도록 만든다. 바실리는 니키타를 버려둔 채로 홀로 제티를 타고 길을 나선다.
니키타와 자신의 삶의 무게와 가치가 다르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살아야 할 이유가 많지만 니키타와 같은 삶은 “죽든 살든 그게 그거야”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바실리는 눈보라 속을 헤매기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이기적이고, 타인을 무시하며, 스스로 높다고 여기는, 거만하고 욕심 많은 바실리를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추위와 바람, 눈을 견디다 못한 제티는 고통스러운 외침을 쏟아내며 바실리를 떨어뜨리고, 니키타에게로 되돌아간다.
홀로 벌판에 남겨진 공포 속에서 말 발자국을 따라온 바실리는 니키타를 발견하고 안도한다. 눈밭에서 홀로 남겨졌던 때의 끔찍한 공포를 되풀이할 수 없는 바실리는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얼음장이 된 니키타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모피코트를 열어젖히고 자신의 몸으로 차가워진 니키타의 몸을 데우는 바실리는 더 이상 돈, 이윤, 재산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니키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몸을 녹이는 일에만 집중할 뿐, 그의 마음속에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기쁨이,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오른다.
소리꾼 이자람은 톨스토이가 길게 묘사하고 있는 바실리와 니키타의 마음을 짧게 축소해 상황의 긴박함을 더 드러내고, “내가 너를 구하나, 네가 나를 구하나, 웃음이 강물처럼 넘친다”는 말을 더하며, 두 사람의 포개진 하나가 된 몸 위로 하얗게 무게를 더하는 ‘눈’을 강조한다.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어리석은 한 사람의 변화, 자신의 미래만을 염두에 두었던 한 인간이 타인의 존재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게 되는 순간에 차오르는 기쁨, 이전의 모든 것들이 틀렸음을 깨닫고 함께하는 삶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느끼는 뿌듯함, 그리고 죽음을 예견한 니키타에게는 ‘삶’이, 삶을 붙든 바실리에게는 ‘죽음’이 찾아오는 신의 섭리….
톨스토이가 '주인과 하인'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 홀로 남겨질 때, 인간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자신보다도 타인을 더욱 아끼며 그를 통해 ‘안도’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따뜻함’을 갈구하도록 이끈다는, 인간 존재의 내면에 자리한 고유한 특징이다.
바실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죽음임을 인지하면서도 기꺼이 순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이 정말로 가치 있는 것들을 놓친 채 어리석은 집착으로만 점철되어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길을 나서지 않았으면,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으면, 좀 더 빨리 니키타를 끌어안은 채 살기 위해 분투했으면, 자신을 구할 수 있었을 바실리에게 타인을 위한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신의 의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부여하는 길로 연결된다.
“소설은 독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탐구가 되어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사상은 이자람이라는 소리꾼을 통해 판소리로 새롭게 분석되고 해석되어 또 다른 장르의 예술로 변모한다.
바실리를 통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유사점은,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무언가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주변의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안타까움, 바로 그것이 아닐까?
'눈, 눈, 눈'은 루마니아의 연출가 가보 톰파(Gábor Tompa)의 초청으로 2026년 국제 페스티벌 진출을 예정하고 있다고 한다. 2025년에 초연한 '눈, 눈, 눈'이 루마니아에서도 성공적인 판소리의 향연을 펼치기를 기대해 본다. 서울 앵콜 공연, 11월 8일~9일까지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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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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