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영화에 바친 영화 같은 영화인생 귀향길 동행기
[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영화에 바친 영화 같은 영화인생 귀향길 동행기
  • 김두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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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출신 영화제작자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의 애향가
미수를 맞이한 영화제작자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이 고향인 성주를 찾았다. 이 회장은 아내와 함께 언젠가 자신이 잠들 묘를 미리 준비해 두고 있다고 했다. 가묘 쌍 봉분 앞에 선 이 회장./사진=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칼럼니스트 =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에 사는 7080 고령세대 대다수 사람들의 고향은 농어촌이다. 산업화로 농경시대가 밀려나면서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그들의 가슴 한 켠에는 가난하고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망향의 한이 자리 잡고 있다.

1960년대부터 708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에 10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한 대표적인 영화제작사 동아수출공사의 이우석(1935∼) 회장에게 고향 산천은 미수를 맞이한 지금도 울컥울컥 눈물에 젖게 하는 인생 드라마의 시작 무대였다. 정치 경제 교육 국방 등 각 분야 명사 중에 성주 출신이 많지만 영화산업에서 제작자로 입신양명의 꿈을 이룬 성주 사람은 이우석 회장이 유일하다. 그래서 성주 지역주민이나 성주 출신 인사들은 영화 만드는 ‘동아수출공사 이우석’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최근 짙어가는 신록 사이에 진달래가 만발한 어느 봄날에 문득 이우석 회장으로부터 성주 고향길 함께 동행하자는 제의를 받고 즐겁게 나섰다. 또 한사람의 동행자로 한국환경진흥연구소장이면서 풍수지리학에 조예가 깊고 이우석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최무웅 박사(건국대 이공대 명예교수)가 참여했다.

성주는 KTX로 김천구미역에서 내려 마중 나온 이 회장 고향 친척인 이건상 전 성주군산림조합장의 승용차를 타고 30분쯤 달리면 닿은 거리였다.

이우석 회장이 까마득한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하고 고향에 대한 애착, 애향심이 남다르게 깊은 데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일본과 고향에서 보내면서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이지매’의 설움을 겪은 탓이다. 일본에서 유래된 이지매의 말뜻은 우리나라에서도 미운 오리새끼처럼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와 같다. 지금도 일본은 물론 우리 청소년사회에서 가장 경계하고 있는 문젯거리인데,

나는 3살 무렵 아버지가 계신 일본에 건너가 살 때 조센징으로 이지매를 당해 제대로 학교생활을 못했어요. 해방 후 귀국해서는 또 우리말보다 익숙한 일본말이 튀어나와 왜놈으로 왕따를 당해 정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학교 졸업장이 하나도 없어요. 평생을 학교 밖에서 홀로 필요한 공부를 하며 사회생활을 하였지만 내 활동 분야에서 최고의 반듯한 인물이 되려고 당당하고 치열하게 살아 왔다오.

본인이 다닌 초등학교
해방 후 일본에서 귀국해 어린시절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은 영화제작자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 '왕따' 설움을 당했던 그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영화산업에서 제작자로 입신양명의 꿈을 이뤘다. 

오래전부터 스스로의 생애를 함축한 이 회장의 고백을 들었지만 고향 길에 다시 듣는 그의 성장기 체험담은 그대로 기적을 스스로 만들어 낸 영화 같은 얘기가 차고 넘쳤다. 어쩌면 강원도 통천 출신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입지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회장이 평생을 두고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성주’ 땅으로 들어서면서 첫 방문지는 바로 그의 생가 인근의 성산이씨 집성촌이었던 월항면 한개마을. 지금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관광지로 보존되어 있다.

그곳 인근에 머잖아 이 회장 자신이 아내와 함께 돌아갈 집이 있다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로 생가 동네 뒷동산에 잔디공원으로 다듬어 놓은 가족묘지였다. 진달래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묘원 왼쪽에 오래전 별세한 부모님이 모셔져 있고 그 오른쪽에 생존해 있는 이우석 회장 부부가 영면할 가묘 쌍 봉분이 나란히 조성되어 있었다.

KakaoTalk_20220521_144655882_13 무덤앞에서
필자는 영화제작자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의 제의를 받고 이 회장의 고향인 성주를 함께 찾았다. 진달래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 회장의 가족묘원에서. 

건너편에는 지역 명산인 방울음산 봉오리가 올려다 보이고 오른쪽 멀리 운무로 가려진 가야산 자락이 가로로 길게 뻗어 있는 경관 좋은 남향 언덕이었다. 묘원을 둘러보며 묘 터와 수맥을 보는 최무웅 박사가 “이 회장 자리를 조금 위쪽으로 옮기면 어떠시냐”를 건네자, 이 회장은 부모보다 윗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다“고 응답, 그에 대해 다시 최 박사는 “율곡 이이도 부모보다 윗자리에 잠들어 있다”고 답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700년 된 은행나무 보호수가 있는 이 회장 생가 마을을 빠져나와 성주군청 바로 옆에 동네 크기로 남아 있는 성산이씨 문중 재사(齊舍)를 관람하고 성주군청으로 이동했다. 군청 현관에 들어서니 정면 벽에 억대 장학금을 기부한 성주 출신 인사의 기념동판이 시선을 이끌었다. 이우석 회장과 함께 이수빈 전 삼성부회장의 이름도 보인다. 한 집안 후손인데 이수빈 전부회장이 촌수가 높고 연세도 많은 이 회장을 ‘아제’(아저씨의 방언)로 부르며 깍듯이 예우한다.

KakaoTalk_20220521_144655882_07 군청현관에 전시되어 있는 거액 장학금 기부 기념동판
성주군청 현관에 전시되어 있는 억대 장학금을 기부한 성주 출신 인사의 기념동판. 이우석 회장의 이름도 보인다./사진=김두호

읍내를 돌아보며 인상에 남는 곳은 성벽 바로 밑에 있는 고 서석준 경제기획원장관의 기념관이다. 생가를 기념관으로 바꾸어 관광명소로 조성해 놓은 그분의 기념관은 아웅산 테러로 희생되면서 못다 핀 인재의 한을 잠시 숙연한 감정으로 접하게 한다.

“내가 독하게 살아서 누가 별세했다고 눈물을 잘 안 흘리는 데 서석준 장관이 떠났을 때는 한참 울었어요. 나와 친 형제처럼 정을 나누며 나를 참 좋아하고 영화 만들며 사는 나를 부러워하며 자주 만나고 살았어요.”

이 회장은 서 장관 이야기에 금새 시선을 하늘로 돌리면서 길게 한숨을 몰아쉰다.

또하나 이 회장의 고향 성주에서 볼만한 관광지는 그 유명한 ‘사드기지’와 세종대왕 왕자태실을 빼놓을 수 없었다. 사드 기지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지만 몇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로 길목이 설치 반대와 철수를 외치는 헌수막 담장으로 이어져 있다. 살벌한 불안감에서 금방 발길을 돌리게 할 뿐이다.

머잖아 돌아가 쉴 곳이라는 이 회장의 동네 맞은 편 선석산 산자락이 병풍을 두른 산맥 복판에는 묘하게 조성된 세종대왕자태실 유적지 봉오리가 있다. 18왕자와 함께 인근에 있는 원손 단종의 태실까지 19기의 태실 석물이 볼만한 관광 사적지로 보존되어 있었다.

유적도 많고 지금은 ‘참외의 명산지’로 알려진 성주가 고향인 영화제작자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한국영화인들이 세계적인 영화인으로 인기를 누리는 K시네마의 뿌리이기도 한 20세기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끈 영화제작자의 한사람이다. 그의 제작 영화사를 통해 많은 영화인재들이 발굴 되었고 많은 영화가 화제 작품 목록에 오른다.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의 생가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700년 된 은행나무 보호수 앞에서 이 회장과 필자가 나란히 섰다.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의 생가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700년 된 은행나무 보호수 앞에서 이 회장과 필자가 나란히 섰다. 

<이어도>의 김기영, <바람불어 좋은 날>의 이장호, <세번은 길게 세 번은 짧게>의 김호선, <만추>의 김수용, <깊고푸른 밤>의 배창호, <장사의 꿈>의 신승수, <겨울나그네>의 곽지균, <칠수와 만수>의 박광수, <돼지가 우물이 빠진날>의 홍상수 등의 영화인들이 ‘이우석 영화‘ 출신들이다.

그는 여전히 서울 양재동에 ‘동아수출공사’의 영화사 간판을 내리지 않고 매일 영화사로 출근한다. 최근에는 인천에 국내에서 손꼽는 영화 및 드라마 제작 대형 스튜디오 세트장을 오픈하면서 각계 인사를 초청했다. 그 개업식에 성주 출신의 명사들이 대다수 초청되어 자리를 함께 하며 보람을 나누었다.

“나는 아직도 영화 속에서 살고 있어요. 반듯하고 당당하게 영화제작자로 살다 가겠습니다.”

88세 미수를 맞이한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강철소리가 날 정도로 울림이 크고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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