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기생충' 영화에 꽂힌 '기생충 인간' 시대의 시선
[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기생충' 영화에 꽂힌 '기생충 인간' 시대의 시선
  • 김두호
  • 승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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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작품상 봉준호 영화 '기생충'에 대하여]
- 작품상 등 4개 부문상 수상은 할리우드의 반란
- 빈자와 부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누가 더 기생충인가
- 봉준호 감독, 불평등 사회에 던진 화두 ‘인간 기생충’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 4관왕의 쾌거를 이룬 봉준호 감독/사진=CJ<br>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 4관왕의 쾌거를 이룬 봉준호 감독/사진=CJ 

인터뷰365 김두호 칼럼니스트 = 지난 2월 9일, TV조선의 아카데미상 시상식 실황방송을 3시간 넘게 지켜보며 <기생충>의 4개 부문상 수상이 발표되는 매순간마다 감동이나 감격정도가 아니라 망연자실, 연쇄 충격에 잠시 분별력을 잃었다.

처음 각본상 수상자 발표 때 이미, 행여 착오가 아닌지 실감이 가지 않았다. 노미네이트 되긴 했지만 한국어 대사로 제작된 한국영화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선정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여기에 가능성 있는 부문으로 단지 한 가닥 기대를 한 외국어영화상도 예정된 듯이 무난히 차지하고,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등 명감독 후보들을 제치고 감독상까지 받는 장면이 떠오를 때는 아카데미상 시상식 현장 방송이 맡는지 진위에 혼란이 따랐다.

마침내 시상식 홀을 가득 채운 할리우드 슈퍼스타들의 기립박수가 터져 나오고 <기생충> 제작 출연진이 최고 영예의 황금빛 오스카 작품상 트로피를 손에 들고 수상 소감을 밝히는 역사적인 장면이 꿈이 아닌 현실로 눈앞에 펼쳐지다니.

흥분된 감정을 추스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영화 <기생충>의 성과를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냉큼 표현할 언어가 부족하고 말문이 막혔다. 지난 50여년 가까이 영화를 보고 기사와 평을 쓰기도 하고 매년 아카데미상 시상식도 지켜봐 왔지만 한국영화가 이리 놀라운 날을 맞이할 줄 언감생심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사진=CJ<br>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사진=CJ 

미국의 영화산업을 상징해온 할리우드는 작품의 경쟁력에서 절대 우위를 지키며 실력으로 세계 영화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해온 ‘영화의 메카’와 같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할리우드가 1929년부터 도도한 그들만의 권위와 전통을 과시하며 화려하게 치러 온 대표적인 그들 스타 중심의 축제다. 주로 백인남성 위주의 시상식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 않던 아카데미상시상식이 올해 한국영화 <기생충>의 축제마당으로 내놓은 것은 세계의 영화팬들은 물론 그들 스스로에게도 쇼크였고 반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충격을 받고 결과에 불만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그들 매체는 “봉준호 감독이 계급투쟁을 공포와 풍자로 묘사한 현대판 우화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했다.”로 평가하고 한국영화 <기생충>의 4개 부문상 수상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아카데미상, 왜 그리 대단한가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까지 받게 된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시간이 지났지만 이야기를 좀 더 계속해 보자.

어느 나라에서도 관객들이 제작 국적을 보고 관람할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영화는 예술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돈을 주고 작품을 골라서 보는 상품이다. 유럽이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도 영화산업의 역사가 있고 화제를 남긴 작품 목록도 있지만 대중예술을 표방한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몰리는 대다수 영화관객의 발길을 돌려놓지 못했다.

미국은 경제적 군사적 초강대국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어느 나라 국민도 이해관계 없이 미국에 감동하거나 마음속까지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바로 영화산업은 다른 차원에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 관객들은 미국영화를 보며 꿈과 사랑, 감동을 느낀 성장기의 애틋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영화감독이나 배우 등 대다수 세계의 영화인들도 ‘할리우드 키드’시절의 비화를 고백하며 영화인이 된 동기를 밝힐 만큼 미국은 일찍이 세계를 ‘할리우드 시네마’의 영토로 평정해 ‘시네마 천국’의 역사를 이끌어 온 막강한 영화대국이다.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 오스카 트로피를 안고 관중석에 앉은 스코세이지 감독을 바라보고 당신의 작품을 보며 영화의 꿈을 키웠다는 소감은 아주 자연스럽게 들렸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평생을 두고 관람한 수많은 할리우드의 걸작 장면과 잊을 수 없는 감독, 배우들의 얼굴을 머릿속에 한가득 채우고 산다.

오스카 4관왕의 수상의 기쁨을 누린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nbsp;©A.M.P.A.S.®&nbsp;
오스카 4관왕의 수상의 기쁨을 누린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A.M.P.A.S.® 

우리 영화인들이 영화시장을 개방하면 충무로가 붕괴된다는 위기감에서 미국영화 직접배급 반대 투쟁을 극렬하게 벌이던 때가 1988년 9월이다. 직배극장에 뱀을 풀어놓고 불을 지르는 사태가 발생해도 껌을 씹으며 시위 영화인들 앞을 지나 당당하게 미국영화를 보던 관객들의 얼굴이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투쟁 대열에 영화감독을 지망하며 충무로에 입문한 청년 영화인 봉준호 감독도 끼어 구호를 외쳤다는 일화가 알려져 묘한 감회로 다가서게 한다.

그 대단한 할리우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화려한 존재감을 세계 영화시민들에게 과시하던 축제에서 한국영화인을 기립박수로 축하하며 최우수 작품상을 안겨주다니, 떠올리기만 하면 여전히 흥분이 된다.

그러나 아카데미상을 안고 돌아온 <기생충> 영화인들을 대대적인 국민 축제행사로 맞이해야할 시기에 공교롭게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라는 괴질 감염사태가 확산되어 귀국직후 청와대 환영 오찬만으로 환영 분위기가 끝난 것이 수상 영화인은 물론 우리 영화인들에게도 안타까움을 남겼다.

세계화 된 한국판 ‘기생충 인간’

영화 '기생충'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인간사회의 신분이나 생활수준을 두고 상하 계층으로 양등분할 때 영화 <기생충>은 상위층 가정에 이를테면 운전기사인 하류 층 남자와 그의 가족들이 주인집 가정에 기생충처럼 빌붙어 살며 일어나는 해프닝을 미스터리 호러까지 혼합해 희화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영화평론가라는 필자는 <기생충> 작품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분석할 때 모든 면에서 흠이 없을 정도의 탁월한 수작으로 평가하는데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작품평이나 흥행 반응이 좋았던 <살인의 추억> <괴물> 등과 비교해서도 <기생충>이 그보다 더 수작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제목부터 인간들이 가장 혐오하는 ‘기생충’으로 굳이 정해야 했는지, 풍자 드라마의 코미디적인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사건의 당위성이나 리얼리티에서 좀 아쉬움이 따른 선을 넘어선 과장, 주인집 저택의 지하에서 난데없이 괴물인간이 등장한 후반의 반전, 사건 간의 연계성이나 갈등 묘사 등 드라마의 흐름이 다소 산만하고 부자연스럽다는 느낌도 따랐다. 그러나 한 작품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의 연출 기법을 활용한 ‘봉준호 영화’의 천재성과 독창성의 특별한 평가에는 이의가 없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봉준호의 <기생충>이 국내 영화상은 물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서 아카데미상 작품상까지 한 해 최고의 걸작으로 선정된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질문에 선뜻 대답한다면 ― 영화 <기생충>에서 극중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기생충 인간’은 바로 세계 어느 나라도 해소하지 못한 역사적 사회적 인류의 난제인 빈부격차의 현실을 대변하는 캐릭터이며 드라마의 주제다.

흥미 있는 그 주제를 두고 빼어난 수준의 작품으로 담아낸 한국판 기생충 인간 이야기에 세계의 관객들이 공감하고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한 결과를 이유로 볼 수 있다. 결국 성과로 보면 앞서 ‘기생충’이란 혐오 제목에 대한 필자의 불만부터 시대적 화두를 미리 읽지 못한 얕은 생각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봉준호의 <기생충>에서 주인과 운전기사인 ‘기생충 인간’의 신분을 서로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상류사회 또한 ‘기생충 인간’의 불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생충 인간시대’의 화두도 풀려나온다. 시장경제의 자본주의 민주 국가든, 사회주의 체제의 독재 국가든, 재력이나 권력의 중추가 되는 상류층, 가진 자들도 처신이 정직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면 국가와 사회조직에서 해충이 되고 공공의 적이 되어 ‘기생충 인간’의 조롱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영화 '패러사이트'(기생충) 스틸컷/사진=CJ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은 상위층 가정에 운전기사인 하류 층 남자와 그의 가족들이 주인집 가정에 기생충처럼 빌붙어 살며 일어나는 해프닝을 미스터리 호러로 혼합해 희화적으로 담아냈다./사진=CJ

<기생충>영화는 계층 간의 불신과 갈등이 대립과 충돌로 발전하기도 하는, 계급투쟁의 잠재된 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회적 문제점과 인간들의 속물적 탐욕세계를 애써 권선징악의 개념에 맞추지 않았다. 무섭고 음습한 비밀을 감추기도 하고, 일상에서 태연하게 편법과 비리를 자행하는 세상 풍경을 재미있는 드라마로 느껴보게 하면서 인간 모두에게 자성의 메시지를 우회적이고 우화적으로 제시한 작품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효과는 앞으로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영화시장에서 영화 한류의 바람을 일으킬 출발점이 되어 한국 영화인들이 작품의 국제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기회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끝으로 ‘충무로 시대의 막내’를 자처해온 봉 감독이 100년 역사의 충무로 시대를 구축해온 선배 영화인들에게도 영예를 나누어 주는 한마디 인사말의 예의와 여유를 보여주기 바란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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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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