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내 친구 문인수 시인
[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내 친구 문인수 시인
  • 김두호
  • 승인 20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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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면 즐겁고 언제나 마음이 평온했던 그리운 친구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그리운 내 친구 문인수 시인.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나다, 인수다. 두호야, 잘 있제? 얼굴 좀 보고 싶다. 언제 한번 내려 오거레이.”

내 친구 인수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감이 촉촉하게 묻어나온다. 대구에서 인수의 목소리가 들려온 지 몇 달이 지나갔다. 서울서 살 때는 자주 만났다. 그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의 정다운 언어가 모두 시어(詩語)로 들려 만나면 즐겁고 언제나 마음이 평온했다.

어느 해 무작정 그가 그리워 대구로 내려간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만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서로가 가족과 먹고 자야하고, 이사람 저사람 만나고, 이 일, 저 일로 움직이며 맞이하는 일상으로 한번 떨어져 살게 된 간격을 더 이상 좁히지 못하고 생각나면 목소리로 안부나 나누며 살았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오래전에 이삿짐을 싣고 대구로 내려갔다. 그곳 영남일보에서 한 시절 기자로 재직했다. 고향은 성주지만 대구에서 성장했다.

우린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던 대구 대명동 언덕배기에 있는 교정에서 고교시절을 함께 보냈다. 경북고등학교가 대봉동 경북중학교로 옮겨간 건물에 신설된 지 4년 된 대구고등학교였다. 그는 10대 후반에 이미 타고난 문학성 재질을 드러냈고 고교생답지 않은 창작시를 교지에 발표하면서 학생 시인으로 두각을 내밀었다.

기대하던 대로 일찍 박목월 시인이 발행하던 ‘심상’을 통해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꾸준히 시집을 내고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국내 시단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의 한사람으로 결국 인생의 전 후반을 시인으로만 살았다.

2004년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달북' 시집 출간 때 필자에게 남겨준 문인수 시인의 육필 서명.

가끔 잊을 만 하면 주고받던 안부 전화도 뜸해진 채 ‘인수 보러 가야지, 대구 한 번 내려가야지’ 그런 막연한 생각을 반복하며 살던 어느 날 아침, 조간신문을 넘기다가 문인수 시인의 부음 기사를 보았다.

이럴 수가 있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친구 인수가 무정하게 내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나다니. 정신을 차려 생각해보니 인수가 무정했던 게 아니고 내가 더 무심했다. 아마도 떠나기 전의 육신이 한동안 편치 않았을 터인데 먼저 내가 전화 한통화도 못하고 말았으니.

인수에게 나는 용서를 빌었다. 허망하고 미안하고 또 그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다. 그가 생전에 남긴 시집들을 끄집어냈다. 이제 이승에서 그는 만날 수 없지만 두고 간 내 친구 인수의 시혼(詩魂)을 접신하면서 그의 안식을 신에게 빌었다.

- 노작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낸 ‘문인수 달북’ 중에서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 그리고 아무른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 /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 암흑의 밑이 투득, 타개져 /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 놓은 / 대답이 두둥실 만원이다. 

책장에서 끄집어낸 친구 문인수 시인이 생전에 필자에게 준 시집 '홰치는 산', '달북'. 이젠 만날 수 없는 친구의 안식을 신에게 빌었다.

문인수 시집 중 ‘홰치는 산’은 1999년에 출간한 네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그의 고향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용봉리의 해발 782m 방울음산이 주제가 되고 있다. 시인의 기억 안에 갈피마다 끼워 둔 소재들, 태어나 자라면서 보고 느낀 농경시대의 가난하고 슬프고 불행하던 모습들이 제목을 달리해 전설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방울음산 이야기’로 시작된 시집에서 ‘풀뽑기’를 옮기면서 다시 한 번 내 친구 고 문인수 시인을 향한 추모의 정과 함께 명복과 안식을 빌어드린다. 

아버지 따라가 묵정밭을 맨 적 있습니다 / 쇠비름풀 여뀌바랭이 서껀 이런저런 잡초들 수없이 뽑아던졌습니다 / 검붉은 맨살의 흙이 드러나면서 밭뙤기 한 두락이 새로 나는 것 볼 수 있었습니다 / 아버지, 일평생 마침내 논 서른 마지기 이루고, 그러나 송충이 같은 자식들 그 푸르게 일렁이던 논들 다 갉아먹어 버리고 빈 들 노을 아래 서 있던 / 아버지, 이른 중반 넘어서면서 망령드셨습니다 / 처음에는 세상사 관심거리가 하나 둘 줄어 들더니, 마을이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식솔들의 잦은 불상사에 대해서도 영 남의 일이 되어 갔습니다 / 그러고 나서 아버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나중에는 당신의 자식들, 심지어는 늘 곁에서 수발드는 어머니보고도 당신 누구요, 우리집 사람 못봤오, 했습니다 / 그리고 그런 다음 아버지, 이미 다 팔아 치우고 없는 농토, 그 논에 물꼬보러 간다며 나섰습니다 / 없는 소, 없는 일꾼들을 부렸습니다. 품 안의 새끼들을 어르고 입안의 혀 같은 당신의 아내와 자주 두런거렸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 어느 날 아버지 검불같이 남아있던 당신의 육신까지도 뽑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아버지, 비로소 아버지의 풀 뽑기가 마저 끝났습니다 번듯하게 눕는 아버지의 땅, 그곳으로 드는 아버지, 아버지, 보였습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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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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