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임금알', 정치 풍자극인가 재밌는 우화극인가?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임금알', 정치 풍자극인가 재밌는 우화극인가?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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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화극으로 권력 풍자...오태영 작, 이우천 연출 '임금알', 제약과 편견 깨는 강력한 한방
- 원제 '난조유사', 1970년대 검열로 하차 아픔 겪어...이후 8년 만에 ‘극단76’이 선봬
- 황무영, 이미숙, 김장동, 김예림 등 배우 열연에 박수를
연극 '임금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오태영 작, 이우천 연출의 '임금알'(3월 23~27일,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은 작가의 예민한 주제를 은유로 풍자했지만 마지막에 관객을 한방 먹이는 뼈있는 작품이다.

정치극으로 본 관객이라면 요즘의 세태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고, 엄혹한 통제와 검열의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관객들은 이 정도에 공연불가 판정을 내렸을까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저항의 작가 오태영은 유신의 칼날이 시퍼렇던 1970년대 국가 제정 연극제에 '난조유사(卵朝遺事)'란 원제로 출품했다가 검열에 덜미가 잡혀 하차해야 했다. 제목처럼 알에서 태어난 왕을 풍자했는데 ‘권력의 정통성’을 비꼬았다는게 이유였다. 8년 만에 ‘극단76’이 '임금 알'로 제목을 바꿔 공연했지만 표현을 다하진 못하던 시대였다.

의도된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정권 교체기에 이우천 연출이 '임금알'을 무대에 올려 작품과 공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극을 만들줄 아는 이우천은 각종 탈과 미니어처, 왕부터 전경까지 의상 코스프레로 우화극을 선보였다. 어찌보면 어른들의 동화같기도 하고,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이우천 연출은 관객을 웃게 해놓고 라스트에 거대하게 만든 닭을 등장시켜 알 대신 똥을 싸게 만들어 통쾌한 일격을 가한다. 끝판에 관객들은 가짜 알에서 나온 가짜 임금에게 달걀 대신 주최측이 준비한 플라스틱 공들을 무대에 던지는 성난 군중이 되어버린다.

이만큼 시대가 바뀌었지만 지금도 권력의 정통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다. 그 틈새를 80년대 기국서가 절묘하게 파고들었다면, 2022년 이우천은 우화를 통해 여전한 제약과 편견들에 한방을 먹인 것이다.

이우천 연출은 스토리텔링에도 뛰어나지만 상상력을 시각화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자식을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어리석은 학자와 그 아내이야기를 하면서도 사이사이에 동물 모형과 의상 변화를 통해 곁가지 에피소드를 부풀려 재미를 선사하는데, 제대로 웃음코드가 걸리면 배꼽를 잡게 만든다. 어설프지만 손때가 묻은 수공예적 소품들이 관객의 긴장을 풀어놓는 것이다.

연극 '임금알' 커튼콜에 자리한 배우들
 연극 '임금알'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 김예림, 이미숙, 황무영/사진=정중헌

여기에 배우 용병술이 특출하다. 임금알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허황된 학자 학갑 역의 황무영, 공모자이자 그의 아내 간난 역 이미숙, 왕조시대 임금 역 김장동과 알동 역 김예림 등 네 배우를 포스트에 세우고 8명의 배우를 코러스로 활용해 원하는 장면들을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야기는 네 배우가 끌어가고 코러스로 하여금 다역을 연기하게 하는 멀티 작전을 구사해 관객에게 빈틈을 주지않고 극에 몰입하게 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가짜 신화를 만들어내는 학갑 역의 황무영이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허황된 세계로 관객을 이끄는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는데도 밉기보다는 선한 기운으로 따라가게 된다. 관객과 배우와 무대를 끌고가는 것이 벅찰 법도 한데 이 배우는 슬림한 체구에서 실타래처럼 에너지를 쏟아냈다.

연극은 앙상블의 예술인데 학갑 역 황무영의 무모한 작전을 아내 간난 역 이미숙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실감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숙 배우는 여러 작품에서 필자를 웃기고 감동시켰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과장없이 연기파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중에도 일품은 닭 연기였다. 신화 속 왕들처럼 알에서 자식을 부화시켜야 한다며 남편은 부인을 닭처럼 행동하게 만든다.

연극 '임금알' 커튼콜에 자리한 배우들
연극 '임금알'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그가 온몸으로 해내는 닭 연기는 닭의 행동을 세밀히 관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특징들이 웅축되어 있었고, 이 몸짓을 무용처럼 리드미컬하게 연기해 관객들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부창부수처럼 두 배우는 일체가 되어 알로 시작해 알로 망하는 연기를 합작해냈다. 왕 역 김장동과 알동 역 김예림도 이들과 호흡을 잘 맞춰 웃음과 재미를 살려냈다.

이우천 연출은 현 집권자와 새 권력자를 화법이나 제스처로 풍자한 것 같은데 그 속내가 무엇인지는 간파하기 어려웠다.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지 않은 권력자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객석에 오태영 작가가 있었다. 44년전 이 작품 공연불가로 절필까지 했던 그가 이우천 연출의 '임금알'을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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