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낙원상가’, 웃음 뒤 짙은 페이소스 깔린 ’박카스 인생들’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낙원상가’, 웃음 뒤 짙은 페이소스 깔린 ’박카스 인생들’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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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미 희곡, 류성 연출...5명의 연기파 배우들 열연
연극 '낙원상가' 공연 장면.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그들도 나와 우리인 것을... 그래서 더욱 헛헛하고 아린 실낙원(失樂園)의 랩소디.

대학로 씨어터 쿰에서 2월 3일부터 13일까지 공연하는 '낙원상가(樂園喪家)'는 우리의 그늘진 곳을 비추면서도 비루하지 않게, 절망 위에 희망 한술을 얹어 판타지를 자아내는 신묘(神妙)한 연극이다.

신춘 무대에서 정상미 작가와 류성 연출의 창작 초연을 만나는 설렘에 내로라하는 5명의 연기파 배우들이 합을 이뤄 기대가 컸던 작품인데, 희곡의 무게와 연출의 해석력, 배우들의 앙상블이 잘 어우러져 보는 재미와 짙은 여운을 안겨주는 역작이었다.

연극 '낙원상가'는 노인들이 소일하는 탑골공원 일대와 그 주변에서 노인상대로 매춘하는 아줌마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유사한 소재의 작품들이 너무 리얼한 묘사로 혐오감을 주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핵심을 파고 들되 은유적으로 묘사, 70년대 한국영화의 아우라 같은 낭만과 페이소스를 안겨준다.

연극 '낙원상가' 공연 장면.

작가 정상미는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해 2019년 '제발, 결혼'이란 희곡집을 낸 중견이다. 공연장에서 구매한 '낙원상가' 희곡을 읽어보니 웬만한 발품을 팔지 않고는 표현하기 힘든 현장 묘사와 사실적인 대사들이 돋보였다. ‘소외된 세대’인 탑골공원 노인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따라지 인생을 조명한 작가 의식도 남다르지만 그들 가슴에 도사린 열정과 꿈을 담아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작품을 희곡 그대로 무대화하면 사회성 짙은 문제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출가 류성은 현실 자체를 리얼하게 그려내기 보다는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

현실은 어둡고 암울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흔한 다툼과 인정을 코믹하게 표출, 이중적 층위를 형성했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웃지만, 그 웃음 뒤에는 헛헛한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이다.

류성 연출은 “각 장면들마다 코믹한데 서글픔이 뒤따르고, 즐거운데 울적함이 흘러들었으면 싶었다. 일면 비루해 보이지만 그게 아름답고, 서로 싸우는데 은근한 정이 보여졌으면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노년의 쓸쓸함과 막장 인생의 비루함을 리얼하게 묘사해 쇼킹함을 주기 보다는 꿈(낭만)과 판타지(행복)가 현실과 교차케 함으로써 거기서 빚어지는 ‘제3의 감정’들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연극 '낙원상가' 공연 장면.

이런 연출 의도를 살릴 수 있으려면 배우들의 커리어가 필수다.

‘낙원상가’에는 출연하는 우상민 고인배 이태훈 권범택 차유경 배우는 60대 이상의 ‘원로예술인’들이다. 이들은 무대에서 서로 충돌하고 공존하면서 시끌벅적한 연기를 펼치지만 그 저류에 쓸쓸함이 배어나오는 캐릭터를 노련한 개인기와 앙살블로 보여준다.

우상민은 커피나 술을 팔아 이문을 챙기는 삐끼 남순 역을, 권범택은 넉살 좋은 수전노 역을 걸판지게 해내면서 러브라인을 펼치지만 현실은 어둡다.

젊은 시절 미8군에서 연주한 경력의 섹서폰 연주자 장기풍 역을 맡은 고인배는 젊은 시절 문희로 불렸던 미모의 박카스 아줌마와 서로 신분을 속인 연애를 하지만 그 꿈이 현실에선 부서져 버린다.

여기에 이태훈 배우가 베트남전에 참전해 훈장을 받은 옹고집 캐릭터로 끼어들어 삼각관계를 이루는데, 후반부 3자 대면 장면은 영화 ’25시’의 안소니 퀸 같은 웃픈 표정의 미장셴이 이 작품의 압권이다.

연극 '낙원상가' 출연진들.

배우들의 개인기도 눈여겨 볼 만하다.

연기파 우상민은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양면 연기로 4명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극을 이끌었다. 고인배 배우가 적역을 맡아 멋진 춤 솜씨를 보였고, 대학로연극인광장 제정 제1회 올해의 연극인상을 받은 차유경이 한껏 끼를 발휘하는 개성 연기를 펼쳤다.

셰익스피어 연극의 광대 캐릭터 같은 만동 역의 권범택은 특유의 코믹 연기를 보였으나 찰리 채를린 같은 페이소스가 풍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 센 참전 용사 주식 역 이태훈은 특유의 뚝심과 성격 연기로 극의 중심을 받쳐주었다.

연극 '낙원상가' 공연 장면.

첫공이어서 배우들의 연기가 다소 경직된 점은 풀리겠지만, 무대 디자인과 공간 활용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대 중앙을 돌담으로 가로질러 벽을 만들고 그 안쪽에 탑을 배치한 의도는 좋았지만, 앞쪽 너른 공간 비어있을 때가 많은 것은 옥의 티였다. 5명의 배우들은 무대 왼쪽의 장기판, 오른쪽의 벤치에서 주로 움직여 자주 빈 무대가 노출된 것이다.

두 개의 건반 악기를 동시에 연주해 라이브 음악으로 극의 분위기를 살린 김승진, 남루하기 보다는 다소 화려한 멋으로 분위기를 밝게한 조문수의 의상도 돋보였다.

원로예술인 지원 공연이지만 신구 세대가 조화를 이룬 ’낙원상가’는 사회성 짙은 주제를 재미와 페이소스로 성찰하게 했다는 점에서 신춘 연극계 화제를 모을만 하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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