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오영수의 연극 '라스트 세션' 만원관객...가득찬 열기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오영수의 연극 '라스트 세션' 만원관객...가득찬 열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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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회 전석 매진...프로이트 역 맡아 화술과 제스처로 웃음 유발하는 연기에 기립 박수
- 밀려드는 광고 제의 뿌리치고 무대에 오른 오영수 "이 작품으로 다시 중심 잡아"
배우 오영수가 출연한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사진=파크컴퍼니
배우 오영수가 출연한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이 작품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오영수 배우의 출연 소식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으며,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90여 분의 공연을 빈틈없이 이끈 77세의 노배우를 향해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사진=파크컴퍼니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월드 클래스' 오영수 배우가 커튼콜 무대에 서자 300여 관객들이 박수와 함께 일제히 기립했다. 한 겨울에 객석은 열기가 가득 찼고, 노배우는 관객의 오마주에 감격의 표정으로 답례했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있는 연극 '라스트 세션(LAST SESSION)'을 대학로 티오엠 1관(~3월 6일)에서 관람했다. 전회 매진이라 엄두를 못냈는데 오 배우와 주최 측의 배려로 보게 된 것이다. 2인극에 4명의 배우(프로이트 역 신구 오영수, 루이스 역 이상윤·전박찬)가 조합을 이루는데 이날 출연진은 오영수, 이상윤이었다.

2020년 한국 초연을 놓치고 이번에 만난 '라스트 세션'은 주제부터 형식까지 접근이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무신론과 유신론이 맞붙어 학술대담처럼 이어지는 토론 형식이고, 극 중에 인용된 책이나 전문 용어도 생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품격 있는 희곡을 무대 완성도가 높게 공을 들였고, 연출이 물 흐르듯 유려하고 깔끔한데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신구는 완벽을 추구하는 80대 대배우이고, 오영수는 국립극단 출신의 탄탄한 경력의 개성 있는 연기자이다. 여기에 훤칠한 외모와 반듯한 성격의 이상윤과 연기파 전박찬이 노련한 시니어와 대결하는 젊은 혈기로 맞붙어 시너지를 발산했다.

배우 오영수가 출연한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포스터./사진=파크컴퍼니

하지만 ‘사건’이 없었다면 평단의 호평과 객석 점유율이 높은 수작에 머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영수 배우가 출연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에서 히트를 치고, 1월 9일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까지 거머쥐면서, 일약 월드 스타가 되었으니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경사가 생긴 것이다.

여기서 의문은 이미 '오징어 게임'으로 주가가 폭등한 오영수 배우가 왜 밀려드는 광고 제의를 뿌리치고 90분간 전문적인 대사를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을 했느냐다.

이에 대해 오 배우는 “잠시 자제력을 잃었는데 이 작품을 만나 다시 중심을 잡게 되었다”고 했다. TV 드라마에서 세계적 인기를 얻고, 영화에서도 스님 전문 배우로 정평을 얻었지만 필자는 그의 본향은 연극이기 때문에 그가 여러 제안을 물리치고 무대로 돌아왔다고 본다.

먼저 작품을 분석해 보면 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의 상상력과 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종교나 윤리, 정신분석학의 세계는 심오하지만 난해하기 마련인데 작가는 무신론을 대표하는 프로이트와 유신론을 변증하는 루이스가 펼치는 지적 논쟁에 예리한 위트와 지적인 유머를 가미해 재미를 살려냈다. 서로의 주장을 펼치면서도 상대를 인정하고 인간적 감정 교류로 관객을 즐기게 하는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오경택은 완벽하게 꾸민 무대에서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관객들이 토론 베틀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런던의 프로이트 서재를 골동품과 소파 등으로 재현한 무대와 소품 디자인(김혜지), 공습 등을 실제처럼 느끼게 한 음향도 연출 의도를 잘 받쳐 주었다.

지루할 수도 있는 무대를 배우들의 동선과 미장셴으로 변화를 주고, 무엇보다 작품 본연의 아우라에 집중한 오경택의 연출 감각이 탁월했다고 본다. 철학을 논하면서 감정의 흐름을 놓지지 않은 것, 팽팽한 대립 구도에서 신구 세대의 브로맨스를 살려낸 점도 매력이었다.

배우 오영수가 출연한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오영수 배우의 공연 장면./사진=파크컴퍼니

이날의 히어로는 역시 오영수였다. 그가 '오징어 게임'의 배우이고, 골든글로브 조연상의 월드 스타 후광이 아니라 그의 개성에 맞는 작품을 만나 자신만의 특기를 살리면서 힘을 뺀 원숙의 연기를 펼쳤다고 필자는 보았기 때문이다.

이 90분 간의 토론 연극에서 객석의 웃음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관객들은 오영수 연기에 반응할 태세를 갖추었는데, 이를 간파하기라도 한 듯 프로이트 역의 오영수는 리듬을 타듯 객석을 잔잔하게 진동시켰다.

작가의 희곡 속에 날카로운 위트와 유머 코드가 깔려 있지만 이를 관객 반응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온전히 배우의 역량이다. 평소 노역에 일가견을 보여온 오영수 배우는 실타래 풀 듯 유려한 화술로 대사를 끌어가면서 구부정한 몸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몸짓, 특히 타이밍을 절묘하게 계산한 특유의 호흡으로 노련하게 관객의 웃음을 유발시켰다.

77세의 노배우가 그 많은 대사를 외워 관객을 끌어가는 에너지에도 존경이 가지만 물 만난 고기처럼 특유의 제스처와 호흡으로 관극을 즐기게 해준 월드 스타에게 객석의 기립박수는 당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오영수가 출연한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배우 오영수와 이상윤(사진 왼쪽)./사진=파크컴퍼니

여기에 오영수를 빛나게 해준 멋진 조력자가 이상윤이었다. TV드라마에서는 낯익은 얼굴이지만 연극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는 이상윤은 외모나 인상 자체가 유신론자인데다 튀지 않으면서 그림자처럼 오영수와 미장셴을 만들어 가면서 리드미컬하게 대사를 받쳐주며 자신의 주장을 펴는 젊은 학자의 캐릭터를 살려내 호감을 안겨주었다.

구강암으로 보철판을 끼고 고통을 견디던 프로이트가 주치의도 딸도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루이스에게 보철판을 빼게 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한데, 오영수와 이상윤은 논리의 벽을 뛰어넘어 아버지와 아들 같은 뜨거운 케미를 보여준 점도 이 작품의 백미였다.

'라스트 세션'을 관람하면서 새삼 느낀 것은 관객의 수준이다. 300 여석을 채운 관객들은 90분간 숨소리조차 들리지않을 정도로 무대에 몰입하면서 잔잔하면서도 미세한 반응으로 극에 리듬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파도처럼 기립박수를 연출했다.

지적인 연극으로 객석을 매진시킨 파크컴퍼니(대표 박정미)의 기획력도 평가할 부분이다. 오영수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주효했지만, 오 배우는 명불허전으로 관객에게 멋진 연기로 답례, 코로나로 얼어붙은 공연계를 녹인 것도 오영수 배우의 미덕이라고 본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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