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구원하는 '작지만 소중한 리스트'...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삶을 구원하는 '작지만 소중한 리스트'...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 주하영
  • 승인 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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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던컨 맥밀런(Duncan Macmillan) 극작, 'Every Brilliant Thing'(내게 빛나는 모든 것)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콘셉트 컷. 이봉련과 김진수의 '혼성 캐스팅'으로 진행되는 공연은 매일 다른 관객들에 의해 '새로운 공연'을 선물한다.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미국의 현대철학자 셸리 케이건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삶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고 있다면 계속해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이고, 그렇지 않다면 삶을 지속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나는 ‘도덕적’인 차원에서 무엇이 우리의 삶을 좋은 것으로 만드는지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한 인간의 삶을 더 좋은 것으로 만드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으로부터 나는 많은 축복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이 복잡한 질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과연 무엇이 삶에서 얻어야 할 가치이고 무엇이 피해야 할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것들 중 과연 어떤 것이 삶을 빛나도록 만들고 어떤 것이 삶을 어둡게 만드는 것일까? 내 삶에서 ‘행복’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삶이 거듭될수록 ‘행복’이란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점점 ‘행복’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우리의 잘못일까? 아니면 사회의 잘못일까?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에 우리를 지탱하도록 만드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25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는 2013년 6월 러들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초연하고, 2014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연이은 매진과 호평을 받은 던컨 맥밀런의 1인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의 막이 내렸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포스터. 이 공연은 김진수(오른쪽), 이봉련 두 배우의 더블 캐스팅으로 진행되는 '1인 즉흥극'이다. 이 극이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의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진행되길 바라는 극작가 던컨 맥밀런은 ‘Note’를 통해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래이터(Narrator)’의 경우, 성별, 인종, 출신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2007년 첫 작품 ‘몬스터(Monster)‘이후 동시대의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다루는 영국 극작가로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관심을 모아 온 맥밀런은 2015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로버트 아이크와 공동 각색한 작품으로 연극비평가협회상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6년 맥밀런의 주요작품 5개를 묶어 출간한 ‘희곡집 제1권(Plays One)‘을 소개하는 글에서 아이크는 연극 속에서 ‘죽음’이라는 결말이 너무 쉽게 등장하는 것은 연극이 현실이 아닌 환상인 탓이며, 그로 인해 “연극이 죽음을 위한 완벽한 예술형식”이 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매일 밤, 연극 속 인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살며, 자신의 말을 하고 죽는다. 공연은 반복될 수 없다. 지나간 공연은 이미 지나간 삶이기 때문이다.

하루 저녁 짧은 시간 안에 응축된 삶, 비틀거리고 걸려 넘어지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의 삶 속에서 관객들은 자신을 본다. 살려고 버둥거리고 있지만 사실은 죽음을 향해 매순간 다가가는 삶, 그러한 삶에 대한 인식은 ‘우울함과 서글픔’을 안기지만 그로 인해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아이크는 맥밀런의 작품들이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죽음으로부터 삶을 부여잡을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발견하고 ‘우울증과 자살, 중독’과 같은 문제들과 싸워나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작고 사소한 것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해나가는 그의 극들이 “진정으로 삶과 죽음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2014년 ‘더 가디언‘의 린 가드너로부터 “삶을 긍정하도록 만드는 우울증에 관한 가장 재미있는 극”이라는 평을 받은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시도를 한 엄마를 둔 7살 아이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에 출연한 배우(김진수)는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관객들을 웃으며 맞이하고, 극이 시작됨과 동시에 관객들은 웃으며 서로를 격려하게 된다. 관객이 함께 숨쉬고 반응하는 모습에 따라 연극은 조금씩 다른 공연으로 펼쳐진다.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행복을 갈망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반짝이는 것을 발견할 수 없어 기나긴 고통과 우울 속에 방황하다 자살에 이르게 되는 인간의 심리, 삶, 그리고 그로 인한 영향을 다룬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단순히 자살과 우울증에 관한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죄의식을 품은 아이의 트라우마와 사회가 지닌 문제점들을 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지닌다.

극장 입구에서부터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배우는 관객들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어온 듯 느끼도록 만든다.

짧은 단어나 문장이 적힌 포스트잇을 건네며 번호를 호명하면 읽어달라고 부탁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던 배우는 모든 관객들이 입장을 마치자 “이 공연은 관객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연입니다. 주변에 앉아 있는 다른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열쇠는 여러분들이 쥐고 계십니다!”라고 말한다.

서로를 향한 격려의 박수로 시작된 극은 배우를 중심으로 원으로 둥글게 앉아있는 관객들의 시선 속에 “리스트는 그녀의 첫 번째 시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 빛나는 모든 것들,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들에 관한 리스트였어요!”라는 말로 이어진다.

아이스크림, 물싸움, 자야할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TV보기, 줄무늬 양말, 롤러코스터, 길가다 사람들이 넘어질 때... 7살 아이에게 밝은 미소와 웃음을 선사하는 리스트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 새 관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공연 장면. 극장 안 모든 관객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있는 배우(이봉련).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아이는 1987년 11월 9일, 엄마가 처음 자살을 시도한 날 자신의 ‘리스트’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7살 아이에게 ‘죽음’은 너무나 추상적인 단어이다.

‘죽음’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강아지 셜록 본즈가 더 이상 음식을 삼킬 수도 없을 만큼 늙어버렸을 때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행해졌던 안락사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어떤 일에 연루되어 있는 것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아이는 “너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수의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에게 죽음은 자신의 팔에 안겨있던 강아지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듯 혹은 무거워지는 듯 느껴졌던 경험,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흔적, 자신이 사랑하던 무언가가 하나의 ‘물체’처럼 변해가던 기억으로 존재한다.

아이는 엄마가 병원에 실려 간 날 평소와 다르게 아빠가 자신을 데리러 왔던 기억을 관객들에게 털어놓는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불길한 예감,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는 것들을 말하는 아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흥분물질인 아드레날린이 온 몸을 휘젓고 다니는 ‘생존 반응’에 대해 이야기한다. “투쟁하거나 도피하거나 그냥 가만히 서 있거나!”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콘셉트 컷/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7살 아이는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빠가 자신에게 엄마의 자살시도를 설명했던 “엄마가 멍청한 짓을 했어!”라는 짧은 문장 대신 어린 아이가 받을 충격을 감안해 최대한 ‘이유’를 설명하려는 아주 ‘긴 대화’를 상상 속에 구현한다.

끝없이 ‘왜?’라고 되묻는 아이에게 끈기 있게 답해주는 상상 속 아빠는 “어른이 되면 이런 저런 일로 머리가 복잡해진다”거나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다”든가, “엄마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거나, “상상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참기 힘들 수 있다”는 등 아이가 꿈꾸던 부모와 자식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세상 모든 물건이 굴러 떨어지는 듯”한 음악을 틀어놓은 채 서재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아빠에게 다가서지 못한 아이는 혼자 “햄 빠진 햄 마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엄마를 위해 세상이 살만한 곳임을 느끼게 해 주는 ‘빛나는 것’들에 관한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엄마가 퇴원하는 날, 아이는 8장이 넘는 종이에 빼곡히 적힌 314개의 리스트를 베개 위에 올려놓는다. 자신이 작성한 리스트의 ‘맞춤법’이 모두 고쳐져 있다는 사실로 엄마가 리스트를 읽었음을 인식한 아이는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여러분이 우리 엄마가 괴물이었고, 그런 엄마로 인해 제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렇지 않았거든요. 우리 집에는 부엌에 피아노가 있었어요. 우리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공간... 우리 가족은 그 곳에 모여 노래를 부르곤 했죠!”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공연 장면. 던컨 맥밀런은 가능한 무대를 원형으로 만들어 배우를 가운데 두고 관객들이 서로를 마주하도록 만들 것을 권한다. 관객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수의사, 패터슨 선생님, 교수, 연인 샘, 아버지 등 각 인물들로 ‘캐스팅’되고 즉석에서 대사를 만들어 배우와 소통한다. 관객들에 따라 공연은 매번 조금씩 달라지며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7살 이후 자신이 적어온 '빛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관객들에게 읽어주는 어른이 된 아이(이봉련).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맥밀런은 아이의 엄마 역시 살기 위해,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위로’의 손길을 찾아 몸부림치던 사람이었음을 그녀가 즐겨 부르던 레이 찰스의 ‘내 눈물 속에 빠져(Drown In My Own Tears)‘라는 노래를 통해 암시한다.

4살 때 동생이 죽는 것을 보았고 7살 때 시력을 잃었으며, 10살과 15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던 흑인 가수 레이 찰스... 삶 속에 눈물이 넘쳐 “흐르는 눈물 속에 빠져 죽을 듯” 보여도 매일 매일 견디며 “나는 혼자가 아니길 바라는,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기를 바라는” 노래 가사는 엄마의 삶의 고통과 우울의 무게를 설명한다.

흔들리는 엄마를 붙들어 준 ‘작은 손’이었을지 모를 ‘리스트’는 10년이란 시간 속에 어느 덧 잊혀지고, 아이가 17살이 되던 해 엄마는 두 번째 자살시도를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저녁으로 먹은 파인애플 피자만 위 속에 남아있지 않았더라도 죽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엄마를 향해 독설을 내뱉는다. “그렇게 약을 때려 넣고도 살아있는 걸 보면 나보다 건강한 거 아냐? 그렇게 죽고 싶으면 차라리 다리에서 뛰어내려!”

그날 밤, 끓어오르는 분노와 원망으로 온 몸을 벌벌 떨던 아이는 침대 아래에 놓여있는 먼지 가득한 박스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리스트’를 발견한다. 멈춰져 있던 리스트는 계속된다. 오래된 책들의 냄새, 심하게 웃다가 우유가 코로 빠져나올 때, 싸운 뒤 화해할 때, 디저트를 메인으로 먹을 때, 입맛에 딱 맞는 오렌지를 발견했을 때...

이제 리스트는 보다 공격적으로 엄마가 움직이는 모든 반경 속에 놓이기 시작한다. 음성 메시지 속에, 냉장고 문 위에, 도마, 주전자 뚜껑, 바게트 빵 위에 붙여지는 리스트들은 그렇게 또 한 번 엄마의 삶을 붙들어 놓는다.

999개를 끝으로 좋아하던 책 사이에 끼워져 잊혀진 리스트는 한 동안 아이에게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대학생이 된 아이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모방 자살’이라는 전염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그 책을 읽기를 권하는 교수에게 분노를 느낀다.

아이는 세상이 다른 사람의 죽음을 설명함에 있어 얼마나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인식한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콘셉트 컷/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미디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TV에 나오거나 신문 1면에 보도만 되어도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방치한다. 언론은 죽음을 보도함에 있어 지켜야 할 원칙들을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끝내는 결정을 할 때 그 이유가 단순한 것들이라고 착각하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복잡한 속내,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으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 베르테르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는 어느 덧 자신의 ‘사랑’을 발견하고, 사랑의 환희와 고통의 무게를 경험하는 어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빛’으로 흘러넘치게 만들었던 ‘사랑’은 리스트를 또 다시 시작하도록 만든다. 만 개가 십만 개가 되고 수 십 만개가 될 때까지, 어른이 된 아이가 결혼에 이르고 시간이 흘러 반복되는 일상 속에 ‘지루함’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사랑과 서로 마주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싸우는 시간이 늘어 더 이상 리스트를 작성할 수 없을 때까지 리스트는 계속된다.

백만 개에서 17만3022개가 모자란 채 끝이 난 리스트는 ‘사랑’이 짐을 싸 집을 떠나던 날 박스에 넣어진 채 버려진다.

엄마의 ‘우울’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 자신 역시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아이, 엄마를 원망하고 분노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엄마가 느끼는 ‘고통’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이는 그렇게 자신 역시 “사랑받기 힘든 사람, 혹은 같이 살기 힘든 사람”일지 모른다는 확신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투쟁하거나 도피하거나 아니면 가만히 서 있거나!’ 고통 앞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대처방식은 늘 같다. 7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아이는 자신의 리스트를 다시 찾는다. 리스트는 ‘우울’ 앞에서 가만히 서 있거나 도피하던 아이를 ‘투쟁’으로 이끈다.

아이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기 시작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행복은 왜 변했을까”에 대한 질문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콘셉트 컷.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집단 면담과 상담을 통해 변화된 그는 관객들을 향해 외친다. “만약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절망의 늪에 빠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오히려 삶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닐까요?”

리스트는 절망 속에서 방황하던 그를 구원하지만 그의 ‘작은 노력’에 의해 끊임없이 유예되던 엄마의 죽음을 끝내 막지는 못한다. 장례식이 있던 날, 아이는 자신이 멈추었던 리스트를 다시 시작한다.

백만 개를 끝으로 완성된 리스트는 출력되어 아버지의 안락의자 위에 놓여진다. 리스트는 어쩌면 또 다른 ‘우울’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 모를 또 다른 사람의 ‘삶’을 구원한다. 백만 개의 리스트는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구원한다.

맥밀런은 프로그램북의 ‘인사말‘을 통해 “이 작품은 우울과 자살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울과 자살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지 갈등하는 순간에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이 “너무 감성적으로 표현되지 않으면서도 중요하고 민감한 것들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을 빌리고 있음을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당신은 이상하지도 않고, 당신은 그것을 헤쳐 나갈 것이며 견뎌낼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매우 진부하고 부족한 말일지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콘셉트 컷/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진부할지 모른다.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과 고통의 혹독함 속에 어쩔 수 없이 ‘끝’을 향해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건넬 수 있는 ‘위로’ 또한 그것밖에 없지 않을까?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그 때 필요한 것은 나를 이해하는 누군가의 따뜻한 메시지, 공감의 눈빛이 아닐까?

괴롭고 힘든 것이 나만은 아니라는 생각, 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남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8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내게 가장 빛나는 것은 무엇일까? 힘들기만 한 내 삶에 작은 반짝임으로 위로를 더해주는 것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 작지만 소중한 것, 행복을 위한 자신만의 리스트를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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