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만의 늪'에 빠진 한 남자의 비극...연극 '리처드 3세'
'자기기만의 늪'에 빠진 한 남자의 비극...연극 '리처드 3세'
  • 주하영
  • 승인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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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 번역 각색 '리처드 3세'
연극 ‘리처드 3세‘ 장면. 코르셋과 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최대한 몸을 꼿꼿이 세우려 애쓰는 리처드. 조명이 달린 마이크를 감싸 쥐고 있다./사진=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연극은 고양이처럼 여러 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원고로서 연극으로 상연되기 이전의 극본의 삶, 연출가와 배우, 혹은 다른 작가에 의해 읽혀지고 수정된 공연 대본의 삶, 반복되는 리허설과 연습을 통해 변화된 삶, 그리고 마침내 무대 위에 올라 관객들 앞에 펼쳐지며 공연되는 삶... 하지만 연극은 또 다시 배우와 관객의 상호작용 속에 다른 삶을 맞이하게 된다.“ 

연극 기호학자인 케어 엘람은 셰익스피어의 극작품들이 오랜 세월 ‘생산‘과 ‘수용‘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음과 관련해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엘람에 따르면, 공연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며,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묘사되고, 논의되고, 해석되는 과정 속에서 또 다시 새로운 텍스트들이 생산된다.

결국 처음 연극으로 상연되기 위해 만들어진 극본은 수많은 해석과 의견을 반영한 새로운 공연들로 반복적으로 재탄생하며 끝없는 ‘사후의 삶‘을 누리게 된다.

'자기기만의 늪'에 빠진 한 남자의 비극을 그린 연극 ‘리처드 3세‘ 장면./사진=LG아트센터

최근 LG아트센터에서는 1999년부터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화제작을 통해 젊은 관객들을 현혹시켜 온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2015년 작품 ‘리처드 3세‘가 소개됐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독일의 극작가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가 번역하고 각색한 오스터마이어 연출의 ‘리처드 3세‘는 “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잘 파고들 수 있도록 산문을 사용“했으며, 원전의 40%를 드러내는 과감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좀 더 이해하기 쉽고 중대한 일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새로운 텍스트는 추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힙합과 랩, 록 음악을 활용한 연출과 스탠드 업 코미디언처럼 관객과 소통하는 리처드는 완전히 새로운 ‘리처드 3세‘를 탄생시켰다.

오스터마이어는 2016년 아비뇽 페스티벌 인터뷰에서 ‘왜 '리처드 3세'인가’라는 질문에 “우선 리처드를 연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배우 ‘라르스 아이딩어’가 있었고,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작품을 연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리처드 3세 스스로가 이미 극 초반에 자신이 사악한 인물임을 관객들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어째서 관객들이 그에게 빠져들게 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면서, “우리 자신이 인간으로서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깊은 심연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하려면 철저하게 도덕적 관념이 없는 작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연출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사진=LG아트센터

극은 헨리 6세의 죽음으로 리처드의 형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르고 30년간 이어져 온 전쟁의 종식을 축하하는 요란한 파티장면으로 시작된다.

검은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배우들이 술잔을 든 채 객석의 통로로 입장하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금색과 은색의 색종이 조각들이 공중에 날리는 가운데 관객들을 향해 샴페인이 뿌려진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없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글로브 극장을 느낄 수 있도록 중앙으로 통하는 무대입구와 계단, 기둥으로 구성된 2층 구조물과 객석과의 거리를 가능한 좁힐 수 있도록 설계된 반원형 무대가 있을 뿐이다.

극은 관객들이 연기하는 인물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매우 친밀한 환경”을 유지하며, 배우가 객석의 빈 좌석에 앉거나 호응을 유도하고, 관객을 향해 즉석에서 질문을 던지는 등 이따금 영어와 독일어를 넘나들며 극본에 없는 대화를 이어나간다.

정신없고 현란한 파티 속으로 멜빵이 달린 검은 바지와 흰 셔츠 차림에 검은 가죽 머리띠로 두개골을 감싼 한 남자가 불편한 걸음걸이로 등장한다. 유난히 커 보이는 한쪽 발을 질질 끌며 어깨 위로 툭 불거져 나온 커다란 혹을 달고 있는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연극 ‘리처드 3세‘ 에서 형 에드워드의 대관식과 장미전쟁의 종식을 환영하는 현란한 파티 장면. 리처드는 줄 달린 마이크를 손에 쥔 채 자신의 속마음을 관객들에게 읊조리고 있다./사진=LG아트센터

치아교정기가 드러나는 어색한 미소 뒤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요란한 파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술을 진탕 마시고 짝을 이루어 향락을 즐기는 파티 속에 그는 소외된 ‘부적응자’로 자리한다.

남자는 갑자기 무대 중앙에 길게 매달려있는 줄 달린 마이크를 낚아채더니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다는 듯 관객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사랑 속에 군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악당이 되어 모든 즐거움이 헛된 것임을 증명하고야 말겠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는 정치적 욕망과 권력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존중에 굶주려 있다.

무기를 들던 손에 술잔을 들고, 전쟁터의 트럼펫 소리 대신 음악을 들으며, 근심어린 표정 대신 미소를 띠고 서로를 유혹하는 속에서 그는 자신만이 외롭게 남겨졌음을 인식한다. 전쟁터라면 갑옷 속에 자신의 흉물스러움을 감추고 절름거리는 두 다리 대신 말을 달렸을 테지만 평화의 시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거울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자작시를 읊는 것뿐이다.

그는 상처입고 비뚤어졌다. 사람들은 ‘굴욕’의 겨울이 지나갔다고 말하지만 그에게 ‘굴욕’은 여전히 지속되는 단어이다. 이 때문에 마이엔부르크는 ‘불만’이 아닌 ‘굴욕’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거짓과 기만을 통해 모두를 자신과 같은 어둠 속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리처드의 결심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관객들은 왠지 한 쪽 눈에 눈물마저 맺힌 리처드를 비난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미 관객들은 그에게 매료되어 있다. 때문에 관객들은 극을 관람하는 내내 때로는 과장되고 성가시며 우스꽝스럽고 혐오스러운 리처드의 당황스러운 행동들에 웃음으로 반응하고, 알지도 못하는 독일어의 대사를 무작정 따라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사진3- 실물 사이즈의 '퍼펫'으로 구현된 에드워드 왕세자와 어린 요크 공작, 리처드의 의식을 반영하는 무대는 두 조카들을 이미 죽은 존재와 다름없는 '인형'으로 인식한다.
연극 ‘리처드 3세‘ 장면. 실물 사이즈의 '퍼펫'으로 구현된 에드워드 왕세자와 어린 요크 공작, 리처드의 의식을 반영하는 무대는 두 조카들을 이미 죽은 존재와 다름없는 '인형'으로 인식한다./사진=LG아트센터

오스터마이어는 조셉 피얼슨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매우 매력적인 리처드를 만들기를 원했고, 사람들이 연민을 품고 동정할 수 있는 인물로 표현되길 바랐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에게나 있는 핸디캡과 콤플렉스, 어두운 욕망과 탐욕,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실연이나 개인적, 직업적 좌절과 같은 괴로운 순간들이 내면에 쌓아놓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아이딩어가 연기하는 리처드는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코믹하고, 비도덕적이고 통제 불능이면서도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고통 속에 놓여있다. 그는 세상을 두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 속 사람들을 두고 장난질을 치고 있지만 사실상 사람들은 자신 깊은 곳에 내재한 욕망의 속삭임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 실제로 리처드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거짓을 설파하고 음모를 꾸미지만 예측하지 못한 반응과 결과들을 통해 행동이 강화될 뿐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논리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제일 먼저 앤을 공략한다.

시아버지와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흉인 리처드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며 반지를 손에 끼우고 입맞춤을 하는 앤은 리처드에게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

리처드의 구애는 그야말로 절실하다. 그는 애초에 모든 비극의 원인이 앤의 지나친 ‘아름다움’에 있었음을 강조하며, 모든 것이 자신의 간절한 사랑의 왜곡된 방식이었음을 눈물로 호소한다.

자신을 향해 침을 뱉고 저주를 퍼붓는 앤에게 정말로 상처를 입은 양 눈물을 훔치며 뒤돌아서던 리처드는 갑자기 자신을 감싸고 있던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의 상태가 되어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긴 칼을 자신의 가슴에 찔러 넣을 것을 요구한다.

눈물로 호소하는 절실한 구애로 자신을 저주하던 앤의 마음을 돌려놓은 리처드
연극 ‘리처드 3세‘ 장면. 눈물로 호소하는 절실한 구애로 자신을 저주하던 앤의 마음을 돌려놓은 리처드/사진=LG아트센터

그의 간절함이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앤을 함락시켰다는 점은 리처드로 하여금 왜곡된 자신의 사고방식을 긍정하고 ‘자기기만’의 늪에 빠지도록 만든다.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에 따르면, ‘자기기만’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작동시켜 온 일종의 ‘인간본능’이다.

동물이 낯선 상대를 만나면 털을 곤두세워 자신의 몸을 부풀리거나 강렬한 보호색을 띄는 것과 같이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기만’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발동시킨다. 트리버스는 ‘자기기만’의 경향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불평등을 느끼는 편차에 따라 다르며, “편차의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자신의 지위를 경쟁적으로 상대와 비교하고 남을 폄하한다”고 말한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일은 만족감을 높여주고, 자연스러운 우월감에 빠지도록 만든다. 이 때문에 관객들을 향해 비스듬히 경사진 반원형의 무대는 이미 기울어진 리처드의 세상을 보는 관점, 타인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의미하게 된다.

흙으로 뒤덮인 황폐한 바닥, 화려함이나 따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철제의 기둥, 온 세상에 목소리를 들려주려는 듯 허공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소형카메라와 조명이 달린 마이크, 관객들이 바라보는 무대 위의 세상은 리처드의 내면이 만들어 낸 세상, 즉 그의 깊은 의식이 반영된 세상이라 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래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랩 가사 “악마는 프라다를 입지 않는다. 나는 분명 흰 티셔츠를 입고 있다(The devil doesn't wear Prada. I'm clearly in a fucking white tee)”를 인용하거나 거짓말 논란으로 스캔들을 불러왔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네가 한 짓을 봐(Look what you made me do)”의 가사를 차용한 랩들은 리처드의 내면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자신을 비난하던 적들에게 힐난과 분노를 날리며 자신조차 조롱하는 시니컬함과 코믹함을 담았다는 스위프트의 가사는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너희들, 즉 세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의 심리치료사이자 또 다른 자아, 양심이라 할 수 있는 Dr. TC와의 대화를 담고 있다는 타일러의 ‘고블린’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혐오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의 ‘악의’를 비난한다.

사진5, 8, 10 - 자신이 먹던 스프를 얼굴에 하얗게 바른 채 거울을 들여다보는 리처드, 자신 안에 숨 쉬고 있던 '또 다른 자아'와 직면하며 자신의 '파멸'을 예감한다.
연극 ‘리처드 3세‘ 장면. 자신이 먹던 스프를 얼굴에 하얗게 바른 채 거울을 들여다보는 리처드. 자신 안에 숨 쉬고 있던 '또 다른 자아'와 직면하며 자신의 '파멸'을 예감한다./사진=LG아트센터

거짓과 가장, 탐욕 그것은 리처드의 삶 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삶을 파멸로 몰고 가고 있다. 하지만 리처드는 ‘자기기만’에 빠진 채 점점 폭주하는 자신의 실체와 대면하지 못한다.

리처드의 또 다른 자아, 즉 ‘양심’은 형 클라렌스를 죽이고, 어린 조카들을 죽이고, 앤을 죽인 자신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있음을 인지하지만 여전히 코르셋으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목에 보호대를 끼운 채 자신을 꼿꼿이 지탱하려 애쓴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받침’을 내려놓아야만 침대에 누울 수 있고 잠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왕관’은 무거운 짐이자 불편한 족쇄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조차 연민할 수 없는 자아”를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어린 조카들의 시체를 보고 난 후 자신의 입 속에 집어넣던 스프를 온 얼굴에 하얗게 바른 채 석고처럼 굳어가는 ‘죽음의 가면’을 쓴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꿈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모든 악행의 결과인 유령들과 마주한 리처드는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휘청거린다. 치열한 보스워스 전투는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아와의 전쟁’이 되며, 그의 죽음은 스스로조차 연민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응징’이 된다.

마치 도살된 가축처럼 공중으로 들어올려지는 리처드의 육체, '자기기만의 늪'에 빠진 인간의 비극적 최후와 '헛된 삶'을 드러낸다.
연극 ‘리처드 3세‘ 장면. 마치 도살된 가축처럼 공중으로 들어올려지는 리처드의 육체는 '자기기만의 늪'에 빠진 인간의 비극적 최후와 '헛된 삶'을 드러낸다./사진=LG아트센터

마치 도살된 가축처럼 한쪽 발목만이 줄에 매달린 채 공중 위로 끌어올려지는 리처드의 육체가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헛된 삶이 주는 ‘허망함’, 그리고 자신을 기만한 자에게 내려지는 비극적 현실, 즉 ‘차가운 응징’이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는 ‘자기기만의 늪’에 빠진 한 남자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관객들이 그를 향해 알 수 없는 연민을 품는 것은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존재는 없다”는 그의 마지막 외침이 공허하고 외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는 또 한 번의 ‘사후의 삶’을 누렸을 뿐, 그 해석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오직 관객의 선택이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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