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위한 투쟁, 그리고 공론의 장...연극 '엘렉트라'
정의를 위한 투쟁, 그리고 공론의 장...연극 '엘렉트라'
  • 주하영
  • 승인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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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한태숙 연출·고연옥 각색 연극 '엘렉트라'
연극 '엘렉트라' 속 엘렉트라(왼쪽)와 클리탐네스트라(오른쪽) 포스터 컷/사진=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정의란 무엇일까?

정의란 '옳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무엇이 옳단 말인가? 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인가? 국가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민족, 혹은 내 이웃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인가?

정의의 의미는 목표에 따라 변한다. 이 때문에 정의를 세우는 일은 우선 정의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에드워드 본드는 '폭동, 전쟁, 정의 그리고 역사'라는 글에서 "정의는 모든 상황과 관련한다. 옳고 그른 것의 경계, 공정함과 불공정함의 경계, 그리고 유죄와 무죄의 경계... 모든 경계에서 인간은 정의를 위해 투쟁한다. 정의를 위한 투쟁은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고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가 정당한가의 문제는 곧 우리의 삶이 정당한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정의는 그렇게 우리의 삶에 매 순간, 모든 곳에서 숨 쉬고 있다.

한국에 '정의 신드롬'을 몰고 왔던 정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2012년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시행한 '사회 정의에 관한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의 38%가 미국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데 반해, 한국 사회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한 한국인은 74%나 되었다. 하지만 이 조사를 바탕으로 미국 사회가 한국 사회보다 더 정의롭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조사는 얼마나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를 측정한 것이지, 정의 그 자체를 측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비판을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잘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는 정의와 도덕에 관한 문제들이 불러올 논쟁과 충돌의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공적인 담론의 장을 펼쳐 보이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임을 지적하면서, 정의에 관한 원칙들을 두고 공개적으로 다투는 것은 "나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성숙되고 자신감 넘치는 민주주의의 징표"라고 주장한다.

엘렉트라(앞쪽)와 클리탐네스트라(뒤쪽)
연극 '엘렉트라' 공연 장면/사진=LG아트센터

최근 LG아트센터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3대 비극 중 하나인 '엘렉트라'를 통해 현대인에게 '정의란 무엇이고, 복수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의 장을 펼쳐 보인 한태숙 연출, 고연옥 각색의 연극 '엘렉트라'가 공연됐다. 

연극 '엘렉트라'는 소포클레스의 원작과 달리 '21세기의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도시'라는 새로운 시대적 배경과 장소를 설정함으로써 엘렉트라를 '게릴라 전사'로 설정하는 파격적인 변신을 꾀하였다.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내통해 남편 아가멤논을 죽이고 자식들을 버린 클리탐네스트라는 게릴라 군에게 납치되어 무너진 성전 아래 위치한 지하벙커에 감금되어 있고,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해 복수를 맹세한 엘렉트라는 자신의 '정의'를 입증하기 위해 '딸'로서가 아니라 정당한 '사형 집행인'으로서 어머니를 죽일 것을 공표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인해 어머니를 혐오하는 딸의 전형으로 여겨지던 '엘렉트라'와 멀리 보내졌던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돌아와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를 살해한다는 내용은 골격만을 남겨놓은 채 상당부분 해체되어 전혀 다른 이야기로 재현되었다.

하지만 소포클레스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던지고자 했던 질문이라 할 수 있는 '아가멤논의 살해에 따른 복수는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주제는 그대로 품은 상태에서 보다 복잡한 차원의 질문, '나의 정의가 다른 누군가에도 정의일 수 있는가'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연극 '엘렉트라' 공연에서의 엘렉트라./사진=LG아트센터

한태숙 연출은 프로그램을 통해 연극의 주제가 던지는 질문이 현대의 관객들에게 보다 밀착될 수 있도록 작품의 배경을 '종교분쟁으로 참혹한 내전을 겪은 그리스'로 두었지만, "언젠가는 붕괴될 수밖에 없는 조건인 독재와 부패, 이념에 대한 갈등, 궁핍한 경제로 억압된 분노가 폭발하게 되는 것은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리스 비극이지만,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고 현실을 반추하게 만드는 서사로 동기를 강화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극이 시작되면, 폭격에 무너져 버린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지하로 보이는 벙커에 잡혀 있는 클리탐네스트라가 섬뜩한 저주를 퍼붓는다.

"내 딸이 지금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저 년의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고 가는 곳마다 돌팔매질 당하고 쫓겨나게 해주소서. 혹시 자식이 생긴다면 그 자식조차 제 어미를 조롱하게 해주소서. 평생 자신을 저주하며 짐승처럼 죽게 해 주소서."

저주는 그야말로 끔찍하다. 자비로운 신이 자신의 복수를 허락한 탓에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남편 아가멤논을 죽일 수 있었다고 말하는 클리탐네스트라는 자신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엘렉트라에게 '신을 상대로 싸워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엘렉트라를 비난하는 클리탐네스트라(왼쪽)와 분노하는 엘렉트라(오른쪽)
연극 '엘렉트라' 공연 장면. 엘렉트라를 비난하는 클리탐네스트라(왼쪽)와 분노하는 엘렉트라(오른쪽)/사진=LG아트센터

그녀는 독기를 품은 엘렉트라가 사적인 복수심을 채우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폭탄을 던지며 희생시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른 사람의 정의는 부정하면서 자신의 정의가 옳은 것인지는 의심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엘렉트라는 제물만 바치면 그 어떤 죄도 용서해 준다는 신 따위는 용서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기에 신전을 부숴버린 것이라고 비웃으며 큰 소리로 외친다.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당신들보다 낫지 않겠어요? 난 어떤 짓을 해서라도 당신들을 이겨야만 하니까요!" 

클리탐네스트라가 엘렉트라에게 되묻는다. "남편을 죽인 여자가 죽어 마땅하다면, 어미를 죽인 자식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

극 초반부터 연극 '엘렉트라'는 관객들에게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 놓는다.

스스로가 정의라고 믿는 것을 위해 자신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두 여인... 관객들은 자신의 딸을 상대로 무자비한 저주를 퍼붓는 어머니 클리탐네스트라도, 개인적인 복수를 실현하기 위해 게릴라를 이용하는 듯 보이는 엘렉트라도 옳지 않음을 인식한다.

엘렉트라(중앙), 오레스테스(왼쪽), 클리탐네스트라(오른쪽)
연극 '엘렉트라' 공연 장면. 엘렉트라(중앙), 오레스테스(왼쪽), 클리탐네스트라(오른쪽)/사진=LG아트센터

동생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문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엘렉트라는 10년이라는 세월이 오레스테스를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염려한다. 누군가가 다치는 것이 싫어 기지를 발휘해 위험에 처한 사령관을 구한 오레스테스는 게릴라들의 은신처인 지하 벙커로 와 자신의 존재를 밝힌다.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은 동생 오레스테스를 축하하며 기뻐하는 누나 엘렉트라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잘 모르겠어. 어디에서도 싸움은 끊이질 않아. 다들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하지만 난 확신이 없어.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정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인지."

폭탄과 독가스, 총을 쏘며 전쟁을 이어온 누나가 두려워 돌아올 수 없었다는 오레스테스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복수'라는 엄청난 무게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는 10년 동안 버려두었던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 지금껏 누려왔던 자유를 잃고 어떤 목적을 위해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한다.

"우리가 사람인 건 내가 무엇이라서가 아냐. 무엇이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야. 최악이 뭔지 알아? 내가 원하지도 않는 걸 강요받는 거야!" 

그는 자신의 이름 속에 규정된 운명이나 의무에 의해 구속된 삶이 아닌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구현해달라는 '신의 정의'는 복수에 대한 강요와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신의 저주'일 뿐 강요받는 고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의무와 책임,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한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클리탐네스트라를 향해 총을 쏘려는 엘렉트라, 그녀를 만류하는 사령관
연극 '엘렉트라' 공연 장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클리탐네스트라를 향해 총을 쏘려는 엘렉트라와 그녀를 만류하는 사령관/사진=LG아트센터

사실상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갈등하며 분노하고 고뇌한다.

엘렉트라는 어머니에 의해 살해당한 아버지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축제를 벌이는 집안에서 울었다는 이유로 창고에 갇혀 매질을 당하고, 자신에게 겨눠진 총부리 앞에서 억지로 춤과 노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녀는 살해당하고도 조롱당하는 아버지와 죄를 뉘우치지 않는 뻔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복수'에 둘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엘렉트라에게 "아이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여자가 있을 수 있다"는 여동생 크리소테미스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아이기스토스가 부패하고 악독한 군주인 것이 복수의 구실을 더욱 강화한다는 점에서 다행한 일이며, 부정한 어머니의 편을 들어준 신을 거부하고 저항하며 '복수'가 '정의'임을 모두에게 증명하는 것만이 숨을 쉴 수 있는 일이다.

크리소테미스는 의붓아버지인 아이기스토스에게 끊임없이 성추행을 당하고, 이미 충분히 불행한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편안함을 가져오려면 "힘없는 자가 힘 있는 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체념할 정도로 고통에 지쳐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또 다시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아이기스토스와 직면하자 한번은 맞서 싸울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기스토스는 태어날 때부터 버려져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자신이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은 정당하며, 끔찍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자신이 클리탐네스트라에게 의존하고 크리소테미스를 탐하는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클리탐네스트라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친 남편을 죽인 자신을 정당화하며, 증오하는 일에 삶을 낭비하며 '재앙'을 불러들이는 엘렉트라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음에 분노하여 딸을 향해 끔찍한 저주를 퍼붓는다.

'해방자들'이라 불리는 게릴라군(디아나,산드라, 워커,농부, 리베르)
연극 '엘렉트라' 공연 장면 속 '해방자들'이라 불리는 게릴라군./사진=LG아트센터

모두 자신만의 '정의'가 정당하다고 외친다. 모두 자신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게릴라 폭탄전문가 디아나의 말처럼, 그들에게 정의는 "그저 자기가 원하는 걸 갖기 위한 최고의 핑계거리, 혹은 수단"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복수'는 자신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몸부림, 혹은 자신의 존재가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공포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규정한 '돌파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정의는, 복수는 실패한다.

아이기스토스의 말처럼, 그들 각자 모두 "자신들만이 정의롭다고 믿을 뿐 다른 사람의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누군가의 죄를 묻기에 앞서 자신의 진실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는다.

디아나의 말처럼, 지옥을 벗어나고 싶다면 "피하지 말고 두 눈으로 앞을 똑바로 봐야만" 한다. 설혹 또 다른 지옥으로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더 큰 고통을 불러온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에드워드 본드는 말한다. "정의는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의 이상이다. 정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엄이며 존엄성이고, 존중과 복종 사이의 갈등, 자존감과 비겁함 사이의 갈등의 핵심에 놓여있다. 정의를 위한 전쟁에는 경계가 없으며 평화 또한 없다. 투쟁은 끝없이 지속된다.... 하지만 정의는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할 때 창조된다." 

연극 '엘렉트라'는 관객들에게 '나의 정의만큼 상대의 정의도 존중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과연 인간에게 '정의'만큼 크고 어려운 과제가 또 있을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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