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화'는 안녕하십니까?...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당신의 '화'는 안녕하십니까?...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 주하영
  • 승인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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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콜센터 이야기’를 무대화한 '전화벨이 울린다'
사진=컬처버스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공연장면/ 사진=컬처버스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화를 “격정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격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동생 노바투스의 ‘어떻게 하면 화를 진정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쓴 책 ‘화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태어나고, 화는 서로의 파괴를 위해 태어난다. 인간은 화합을 원하고, 화는 분리를 원한다. 인간은 이익이 되기를 원하고, 화는 해가 되기를 원한다...인간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마저 희생시키고, 화는 상대방에게 앙갚음을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마저도 위험에 빠뜨린다.”

그는 이렇게 충고한다.

“화를 폭발시키는 당신,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라!”

최근 막을 내린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는 이연주 연출이 연극을 시작할 때부터 꼭 하고 싶었다던 ‘콜센터 이야기’를 무대화한 작품으로 2017년의 짧은 초연 공연에 이어 또 다시 관객들을 만날 기회를 찾았다.

이연주 연출은 “2013년 문득 쓰고 싶어져 초고를 썼던 ‘전화벨이 울린다‘의 재공연 무대를 새롭게 준비하고 싶었다”면서, “여전히 낯설고 새롭고 또 한 편으로는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어려운,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드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사진=컬처버스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공연장면/ 사진=컬처버스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한 공격, 억압, 폭력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매일 밤 화염이 급습한 화재 현장에 혼자 갇힌 채 “아무도 없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를 외치다 벌떡 일어나는 콜센터 상담원 수진은 고시원 옆방 남자의 웅얼거리는 소음 때문에 잠을 설친 탓에 지각의 연속이다.

가뜩이나 늦어서 눈치가 보이는 아침, 팀장이 수진을 불러 모니터링한 고객과의 대화녹음을 들려준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인사말이 무색하게 대뜸 전화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윽박지르고 다그치는 고객을 향해 수진은 그만 ‘음소거’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속에만 담고 있던 욕을 내뱉고 만다.

전화상담 수년 차임에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팀장의 꾸짖음에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수진은 요즘 들어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다. “언니들은 어떻게 참아요?”라고 묻는 질문에 시종일관 냉철한 태도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모든 욕설을 받아내는 1등 상담원 지은이 대답한다.

“화를 내봐야 내 기분만 나빠지는데 화를 왜 내니? 어차피 너만 상처받아. 욕먹었다고 기분 나빠지고, 팀장한테 혼나서 울고, 점수 낮아져서 월급 적게 받고, 우울증 걸려서 회사까지 잘린다. 그런 바보짓을 왜 하니?...그냥 연기한다고 생각해!”

수진은 밤마다 연기연습을 하는 옆방 남자 민규에게 ‘연기’를 가르쳐 달라며 도움을 청한다. 내면의 감정과 전혀 상관없이 다른 감정을 꾸며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수진에게 민규가 말한다. “연기는 내가 맡은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이예요. 그런 척 하는 게 아녜요.”

하지만 실제 자신의 감정이 어떻든 무조건 상대방에게 밝게 보이고 화가 치밀어도 그냥 잘 웃을 수 있게만 해달라는 수진은 다급하게 외친다. “그런 거 말고 그냥 제 감정하고 다르게 보이는 거, 그게 필요하다구요!”

애원하는 수진을 향해 민규는 체념한 듯 입꼬리만 올리고 기계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시킨다. “중요한 건 소리잖아요? 그냥 밝게만 들리면 되는 거죠?”

1983년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상대를 응대하는 직무를 수행할 때 40% 이상의 감정관리 활동이 요구되는 노동유형을 ‘감정 노동’이라 정의했다. 항상 밝고 친절한 음성, 표정, 그리고 몸짓을 유지해야 하는 서비스 직종의 사람들은 웃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얼굴은 웃고 있지만 실제 감정은 좌절과 분노, 혐오, 적대감, 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로 고통을 겪으며 심한 정신적 장애에 시달린다.

사진=컬처버스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공연장면/ 사진=컬처버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 불리는 이러한 심리적 불안 상태는 내면의 슬픈 감정과 외면의 밝은 감정의 부조화가 심할수록 불면증, 식욕감퇴, 무력감, 우울증으로 이어지며, 심한 경우 ‘자기 환멸’로 인한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다.

연기까지 배워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하는 민규에게 입꼬리를 잔뜩 끌어올린 채 기계적으로 밝은 목소리를 꾸며내며 가짜 웃음을 담아 연습을 계속하던 수진은 이렇게 말한다. “다 거기서 거기예요. 그만두면 어떻게 먹고 살아요?”

“마음과 마음을 이어줍니다! 신속, 전화, 친절”을 외치는 회사는 직원들에게 고객을 향한 미소와 이해, 따스함을 요구한다. 콜센터 직원들은 고객의 모든 불만과 요구사항을 잘 듣고 회사의 정책을 가장 친절한 태도로 관철하기 위해 존재하며, 회사는 좋은 서비스라는 이미지를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자 그들의 인내와 감정억압을 이용한다.

모든 요구에 항상 열려있어야 하는 직원들은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고객들의 무례함을 상대하며 자신들의 감정을 숨기고, 외면하고, 억압하는 일을 반복한다. 정말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전화를 못하게 막거나 먼저 끊어버릴 수 있게 해주면 안 되냐는 신입 직원의 말에 미영이 대꾸한다. “그러다 콜센터 싹 다 없어지게? 이게 다 욕먹는 값이야!”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공연장면/ 사진=컬처버스

전화를 걸어 불만을 토로하고 화를 내는 일이 권력인 양 행사하는 사람들, 그러한 화를 온화함으로 받아내며, 아무리 맞아도 아무리 욕을 먹어도 웃음과 친절로 마무리해야 하는 사람들...

세네카는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으로 “유예와 숨김”을 말하지만, 늘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고객들의 수많은 화와 엽기적인 요구에도 냉철함을 유지하던 1등 상담원 지은은 결국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객에게 익명의 전화를 걸어 그동안 참아왔던 욕설과 협박을 쏟아낸다. 형사고발을 당한 지은은 자신의 소지품이 담긴 상자를 쓸쓸히 들고 나가며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난 내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봐. ... 난 사람이니까, 괴물들하고 싸울 수는 없잖아? 근데 내 안에도 괴물이 있었나봐. 참을 수가 없었어. 나도 모르게 전화를 걸어서 욕하고, 소리 지르고, 협박하고, 나도 괴물이 되어버렸어. 내 안에 자꾸 빨간 불이 켜져. 나도 모르게 자꾸만 뜨거워지고, 너무 뜨거워서 뱉어내고 싶어. 더 이상은 감당이 안 돼!”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모든 것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왜 분노하며, 왜 참을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괴물이 아니라 ‘상처 입은 짐승’일 뿐이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어떤 의식도 없이 그저 자신 안에 들어찬 것들이 너무 커서, 어디에도 풀어놓을 곳이 없어서, 내 안에 가득 찬 분노, 좌절, 혐오, 상처들을 마구 쏟아낼 뿐이다.

그들은 전화기 너머에 있는 그 누군가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전화기 너머의 그림자를 향해 감정의 쓰레기들을 쏟아 붓는다. 그 일이 직업이기에, 밥줄이기에, 서비스이기에, 그들과 똑같은 짐승이 될 수는 없기에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받아내는 콜센터의 직원들은 상처가 점점 쌓여간다. 그들은 자신들도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내장 저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라 목구멍을 메우고 입안 가득히 밀려드는 감정의 찌꺼기를 더는 삼킬 수가 없다. 그들 역시 폭발한다. 그리고 그들 역시 자신들의 쓰레기를 쏟아낼 다른 검은 그림자를 필요로 한다.

사진=컬처버스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공연장면/ 사진=컬처버스

연기연습을 통해 실적이 좋아진 수진은 민규와 만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향해 서비스의 기본을 따지고 사장님을 불러달라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당황한 민규가 수진에게 말한다.

“정말 아는 사람이 더 한다고, 지금 갑질하시는 거예요? 갑질하려면 수진 씨한테 갑질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하세요... 지금 거울 좀 보세요. 제 눈에는 수진 씨가 더 괴물 같아요!”

악순환은 반복되고,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점차 짐승으로 변해간다. 상처입고 좌절하여 두 눈에 핏발이 선 채 온통 경계와 분노, 원망, 혐오로 가득 찬, 온몸에 털을 곧추 세운 짐승이 되어간다. 마치 누구라도 나타나기만 하면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로 말이다.

괴물을 상대하려면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처 입은 짐승을 상대하려면 인내와 너그러움, 사랑이 필요하다. 따스함과 연민, 그것은 모두를 변화시킨다.

어쩌면 ‘괴물은 저들이니까!’라는 우리의 안일과 무지가 문제였던 것은 아닐까?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올라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던 그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괴물’ 혹은 ‘짐승’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내 안에서 자라온 ‘괴물’을 쏟아내고도 자신이 ‘괴물’이었는지도 모르는 채 의기양양하게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고 우쭐했던 적은 없을까? 나는 아니라고, 나는 단 한 번도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그 누군가를 향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쏟아낸 적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세네카는 말한다. 육체의 병 못지않게 마음에도 온갖 질병이 존재하며, 화는 솔직함이 아닌 ‘분별없음의 표현’이라고... 화의 최대 원인은 ‘나는 잘못한 게 없다’라는 생각이며,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이라고...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아무리 명백하고 확실해 보이는 것도 그 자리에서 바로 승인을 해서는 안 된다. 더러는 거짓이 진실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판단에 앞서 반드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자명해진다.”

우리는 이제 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혹시나 ‘괴물’로, ‘짐승’으로 변한 적이 없었는지, 고통스럽기에 외면하고 무시해버렸던 추한 진실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추하고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는 묻는다. ‘화가 당신을 버리기 전에 먼저 화를 버릴 수 있는가?’라고.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