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인터뷰] '40년 유머인생' 서민 교수, '유튜브계의 유재석'을 꿈꾼다
[365인터뷰] '40년 유머인생' 서민 교수, '유튜브계의 유재석'을 꿈꾼다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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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학자 서민 교수 인터뷰
- 작가, 강연자, 칼럼니스트, 방송인, 유튜버로 활약...진보에서 보수 성향 정치논객으로
- 못생겼다고 놀림받았던 어린 시절, 친구 만들고 싶어 시작한 유머 연구
- 서른에 시작한 글쓰기, 수년간 매일 두 편씩 연습...유머와 글 실력은 재능아닌 수년 간의 노력의 결실
- 요즘 유튜브에 푹 빠져 "난 유튜브에 특화된 사람 같다"
기생충 학자이자 서민 단국대 교수. 작가, 강연자, 칼럼니스트, 유튜브로 활약하고 있다.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어린 시절 못생겼다는 놀림을 받았어요. 누가 봐도 못생겼는데요.”

거리낌 없이 진지하게 자신을 못생겼다고 얘기하는 이 사람. 한때 자신을 괴롭혔던 외모 콤플렉스는 이미 오래전 과거 얘기가 됐다. 기생충 학자로 널리 알려진 서민 단국대학교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1967~)의 거침없는 입담엔 자신감이 넘친다.    

40여년 전 어린 시절 친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유머 연구’ 10년 만에 "좀 웃기기 시작했다"는 서 교수에게 유머는 삶의 일부다. 그의 재치 넘치는 말들은 글에서도 묻어난다. 그동안 그가 집필한 책만 30여권. 그의 글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날카롭고 솔직하다. 비꼬는 듯한 반어적 표현은 그만의 '전매특허'라 할 만하다. 서른 살부터 수 년간 매일 두 편씩 글을 써온 고행의 결과다. 

서민 교수를 설명하는 타이틀은 참 많다. 교수이자 기생충 전문가가 본업이지만 작가, 강연자, 칼럼니스트,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6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 애견인이기도 하다. 요즘엔 정치 논객으로 더 유명하다. 한때 진보 진영 성향이었던 서 교수는 어느샌가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 평론가가 됐다. 지난해엔 이른바 조국흑서로 불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동저자로 참여해 정치권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예전보다 뜸해진 요즘, 유튜브 방송에 푹 빠져 있다는 서 교수를 인터뷰365가 만났다.

'정치·시사평론가' 서민, "내가 '변절자'가 된 이유" 

기생충 학자이자 서민 단국대 교수.  

- 요즘 정치·시사 평론가로 주목받고 있다. 블로그에 쓴 글들이 심심찮게 기사화 되고 이슈화 된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졌다는 방증일텐데. 실감이 나는가?

"예전에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쓴 글이 기사화되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내가 그 대상이 되니 신기하다. 뭐 이런 걸 기사화하나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꼭 기사화되었으면 하는 글은 게재가 안 되더라고." 

- 언제부턴가 갑자기 현 정권을 비판하는 정치 관련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기가 있었던 건가.

"정치는 저의 관심사 중 일부였지, 원래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가끔 글을 쓰는 정도였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고, 그 후엔 칼럼도 접다시피 했다. 당시엔 우리 편(진보 진영)이 집권했으니 쓸 말이 없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어 너무 다행이다, 너무 행복하다는 글도 썼었다. 그 당시엔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주로 썼다.

그러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계기로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삭히다가 지난해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6개월 후에 그 블로그가 소위 '빵' 터진 거다. 가장 고마운 분이 진중권 선생님이다. 제 글이 재미있다고 공유하면서 방문객이 그야말로 '폭발'했다. 그러다 '조국흑서'란 책을 낸 후 공동 저자 중 내가 방송에 주로 나가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팬클럽도 두 개나 생겼다."  

- 쓴 글이 호응을 얻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제 글이 위로를 준다고 하더라. 그 말이 너무 좋았다. 현재 (현 정권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내 글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쓰게 된다."

- 정치적 성향이 진보에서 보수로 바뀌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신을 '변절자'라고도 말한다. 정치적 성향이 바뀐 계기도 위와 같은 맥락인 건가.

"진보 정권의 민낯을 조국 사태 때 본 거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후 모든 정책에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도덕적이고 대중과 서민의 편에 서 있는 정부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깨졌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잘하는 게 하나 없는 정권이 도덕성마저 없으면 이게 뭔가 싶었다. 실상을 알고 나니 계속 진영 논리에 갇혀 있고 싶지 않았다."

- 집권 여당이나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적 발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비난이나 악플에는 상처 안 받나.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나를 믿으면 된다. 소위 '대깨문'들이 공격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같은 진영 내에서 싸우는 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하는데, 거의 95%의 국민이 찬성했던 사안이었고 정당했다고 본다. 그런데 찬성했다고 편을 가르는 이런 시각 자체가 안타깝다. 의견은 좀 달라도 이젠 정권 교체라는 큰 틀에서 협력해 가야 한다."

서민 교수 

-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때론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는데. 

"팩트는 정확하되, 그 해석이나 의견은 자유 아닌가. 제가 막 쓰는 것처럼 보여도 여러 곳에 게재된 기사들을 바탕으로 쓴다. 제보를 받아도 기사로 팩트 확인이 안 된 건 쓰지 않는다. 법을 준수하는 범위에서 제 나름대로 송사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고소당하면 아내가 드러눕는다."

- 보수 정치 논객으로 불린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들어오면 진출할 생각은 있나.

"없다. 난 기생충 학자다. 정치 실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제 의견을 얘기하는 것 외에는 일체 다른 (정치적)활동을 할 마음은 없다."

가장이자 6마리의 강아지 아빠 

-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나.

"아내, 그리고 6마리의 강아지(페키니즈)와 산다."

- 정치적 이슈를 몰고 다니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은 어떤가.

"처음엔 자제하고 적당히 하라고 하더니 어느 순간 포기했다. 예전 1~2주에 한 번씩 신문 칼럼을 쓸 때도 걱정을 많이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매일 같이 글 쓰고 때론 고소까지 당하니 마음 약한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겠나. 처음 고소를 당했을 땐 아내가 한 달 가까이 우울증에 빠져있었다. 이젠 아예 귀를 닫고 산다. 적응했다."

- 평소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아내 자랑을 많이 하던데, 소개하자면.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30대 매일 같이 술만 마시고 '들개'처럼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6개월간의 짧은 결혼 생활을 끝내고 나름대로 즐겁게 살고 있었지만, 주변에서는 홀로 떠도는 딱한 사람으로 보더라. 이런 시선이 싫어 결혼식에 참석하면 밥도 안 먹고 집에 왔다. 가족에 대한 질문이 나올까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니 내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결혼식에서 떳떳하게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어떻게 보면 아내는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준 사람이다."

서민 교수

- 애견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민 교수의 명함만 봐도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명함 뒷장엔 그가 키우는 6마리의 페키니즈 강아지 사진이, 앞장 배경에는 강아지 발바닥과 뼈다귀 모양의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그려있다.

"아내가 내게 준 행복 중 하나는 개를 함께 키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해준거다. 집에 가면 반겨주는 강아지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행복하다. 한편으로는 강아지들을 더 잘 먹이기 위해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 줄 아나? 아내에게 송금할 때다. 월급 외에 강의료 등 가외 소득을 보내면 아내가 너무 좋아한다. 아내가 없었으면 강연 등 외부 활동을 했을까 싶다. 열심히 살다 보니 이렇게 내 이름도 알려진 거고. 오늘날 제 명성의 90% 이상은 아내 덕이다. 내게 동기부여를 준거나 마찬가지다. 요즘엔 코로나19 이후 외부 강연이 좀 줄면서 아내의 잔소리가 심해졌지만.(웃음)"

- 아까 말한 '들개'처럼 살던 30대 시절이 궁금하다.

"매일같이 약속 잡고 바쁜 척하며 살았던 시절이다. 인생은 스스로 충실해야 하는데, 화려한 척하며 살았다. 되돌아보면 남들에게 '나는 이혼 후 이렇게 멋진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애써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돈만 많이 쓰고 한심했던 생활이다. 그 시절에 딴 공부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 이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노력 끝에 성취감을 느낀 후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됐다. 내 나름대로 교수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 피나는 글쓰기 연습을 통해 (책이)잘 팔리는 작가가 됐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젠 사람들이 날 보고 멘탈이 강하다고 얘기한다. 나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네오'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강적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힘을 의식하면서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선 강적을 향해 "자, 언제든 덤벼봐"란 손짓을 보낸다. 그런 비슷한 느낌이랄까. '내가 보기에도 난 괜찮은 놈이다'고 자신을 믿고 인정하면 타인의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자동차 얘기를 꺼냈다. 그는 "지금 타고 다니는 차가 2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올해로 21년 된 차(EF소나타)로, 6년 전 어머니가 쓰던 차를 물려받았다. 그는 "안 쓰고 세워져 있는 게 아까워서 50만 원을 드리고 가져왔다.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아내가 결혼 전부터 사용했던 자동차를 함께 썼다. 서 교수는 "제 차로 저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저를 평가하는 건 차가 아니지 않나"며 "후진 차도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 차는 안바꿀 생각인가. 

"당분간 바꿀 생각이 없다. 2020년까지 타야지 했는데, 5년 더 타려고 한다. 차가 너무 좋다. 제 차를 보고 '빈티지를 좋아하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은 바꿀 돈이 없다. 하하. 대신 좋은 블랙박스를 장착했다. 오래된 차일수록 누가 발로 찰 수도 있으니까."

'학자'서민, 32세에 교수·논문 100편 이상...내가 기생충학을 전공한 이유 

- 교수, 작가, 칼럼니스트, 강연자로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업 작가가 아니지만, 집필한 책도 30여권에 이른다. 강의나 연구로도 하루 시간이 빠듯해보인다.  

"학교에서 일한 후 오후에 방송이나 강연을 하고 집에서 책을 썼다. 2017년엔 책을 서너 권 냈다. 주말엔 항상 다음 주에 있을 강의 준비나 원고를 썼다. 주말엔 마음 편히 놀아본 적이 없다. 그렇게 8~9년간 쉬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외부 강연이 없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좀 게을러진 것 같다. 요즘은 유튜브에 푹 빠졌다."

- 학자로 사는 삶이 궁금하다. 기생충 연구는 언제 하나. 

"내년부터는 정치에 관심을 덜 두고 기생충 연구자로 돌아갈 예정이다. 사실 요 몇 달간 연구를 많이 못 해서 마음이 항상 불안하다. 공동 연구 외에 나머지 연구는 ‘때려치운’상황이다."

- 연구를 잠정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지방 강연을 하러 갔는데 기생충 연구나 하라는 말이 많았다. 휴게소에서 차를 세우고 '안 되겠다, '문재인 정권' 교체 전까지는 연구를 때려치워야겠다' 생각했다. 그 다음부터는 당당하게 "때려치웠다"고 말한다. 그래도 공동 연구하는 작업이 있어서 1년에 세 편 정도는 논문을 쓴다. 지금도 논문은 계속 쓰고 있다. 한참 몰두할 때는 1년에 10편은 쓰곤 했다. 논문이 출간되어서 나오면 그렇게 기분이 뿌듯하고 좋다. 그동안 쓴 논문이 100편이 좀 넘는 정도인데,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 기생충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나. 

"보통 의대를 입학하면 환자를 보는 과를 택한다. 그런데 교수님이 기생충학을 전공하면 교수가 수월하게 된다며 '당근'을 주셨다. 내가 1992년 대학원(서울대학교 의과대학)조교로 들어갔는데, 전년도에 박사를 딴 29세 여자 조교수가 있었다. 교수님이 내게 "군대를 다녀오면 넌 32살에 교수가 될 수 있다"며 엄청난 미래를 보여주셨다."

- 실제로 그 미래가 실현됐나. 

"레지던트 마치고 군대 다녀온 후 펠로우란 과정을 거치면 교수가 되는데, 정말 만 32살에 교수가 됐다. 그 당시 기생충학은 사람이 없어서 뽑지 못한 대학이 좀 있었다. 현재 몸담은 단국대도 그중 하나였다. 내가 부임하면서 과가 생겼다."

- 신설된 과의 첫 교수였던 건가.

"그렇다. 그전까지는 없었다."

- 방송이나 강연, 책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생소했던 기생충학을 소개하며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기생충과 교수님들이 과거에는 기생충학을 연구한다고 말하면 부모님들이 이해를 못 하셨는데, 요새는 저로 인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씀하신다. 책 쓸 때 딴짓한다고 저를 한심하게 보던 교수님들도 있었는데, 제가 논문을 많이 쓴다는 걸 아신 후 외부 활동을 이해해주시더라. 지금은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신다."

- 현재는 기생충 분야를 전공하려는 학생은 많아졌나.

"인기는 예전부터 없었다. 내가 이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던 1992년 당시에도 기생충은 이미 멸종했다는 의식이 팽배해서 왜 하나 싶었다. 교수님께서 "우리는 연구하는 단체"라며, 멸종된 공룡도 연구하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21세기에는 기생충의 시대가 온다면서.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말은 사기였다. 그 시대는 절대 오지 않더라고.(웃음) 후배나 제자한테도 굳이 권하지 않는다."

- 정치적 발언에 대한 학교에서의 반응이 궁금하다.

"대학교수란 직업이 다른 직종에 비해 정치적 발언이 자유로운 편이다. 동료 교수분들은 응원해준다. 다만,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학교 이사장님이다. 학교에서 '높은 분'들 마주치지 않으려고 슬슬 도망 다닌다. 혹시 불러서 뭐라고 하실까 봐. 아직 그런 말씀은 안 하셔서 다행이다."

'인간' 서민, 외모 덕분에 생긴 목표...유머와 글솜씨는 끈기와 노력의 결과 

- 스스로 얼굴이 못생겼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약점을 대외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누가 봐도 못생겼는데요. 뭘, 하하. 콤플렉스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혀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콤플렉스를) 극복했다고 느꼈던 적이 악플이 달린 내 사진에 나도 "이 사진 보니까 정말 못생겼네"라는 댓글을 쓰는 날 발견했을 때였다.   

어린 시절 못생겼다는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 외모는 내가 목표를 세우고 끝까지 노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공부나 글쓰기 연습을 할 때, 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거울을 봤다. 거울을 보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이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덕분에 내가 원래 걸어가야 할 운명을 뛰어넘어 이렇게 이름도 알릴 수 있게 됐다. 처음엔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어머니도 눈이 작은데, 더 작은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으니. 2세를 전혀 생각 하지 않으신 건가 싶었다. 지금은 감사드리지만."

- 열 살 때 웃기고 싶단 목표를 세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왜 그렇게 웃기고 싶은 건가?.

"어릴 때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시작이었는데 어느 순간 제 삶이 됐다. 웃기면 내 기분도 좋아진다. 남에게 즐거움을 주면 저도 즐겁다. 

예전에는 친구가 웃기면 나도 웃긴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강박관념에 편하게 웃지도 못했던 때가 있었다. 웃기지 않으면 좌절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오래되니 강박관념이 없어지고 저절로 제 입이, '주둥아리'가 먼저 나온다. 말하다가 웃기지 않아도 그렇게 미안한 생각이 안든다. 지금은 열 번에서 한두 번만 웃기면 된다는 여유가 생겼다."

그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인생이 너무 외로웠던 시절이었다.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 재미있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이른바 유머에 대한 '동기부여'를 안겨준 시기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에 인기 많은 아이의 특징을 살펴봤더니 그 답은 '유머'에 있었다고. 그때부터 유머에 관심을 두고 30년 넘게 연구 했다고 말했다. 

서민 교수는 사진을 찍는 동안 알아서 척척 포즈를 취했다. 익살스런 표정과 재치넘치는 포즈로 현장에 웃음을 안겼다.  

- 현재의 위트가 노력의 결과인건가. 유머는 타고난 재능이거나 어느 정도 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재능이 없는 보통사람은 노력을 아무리 하더라도 개그맨의 중간 밖에 안된다. 그래도 충분하다. 거기까지만 가도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은 웃기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다 싶으면 포기한다. 나 역시 재능이 징그럽게 없었는데 그 재능을 뚫을 정도의 피나는 노력을 했다. 정말 웃길 때까지 노력했다."

- 그간 방송에서 뛰어난 입담을 보여왔는데, 그 역시 노력한 건가. 

"2013년 한 프로그램에 바쁘다는 이유로 대본을 안 보고 준비 없이 출연한 적이 있다. 방송할 때는 카메라를 봐야 하는데, 대본을 계속 보게 됐다. 작가가 대본만 계속 읽을 거면 당신을 써야 할 이유가 있냐며 따끔하게 지적하더라고. 결국, 잘렸다.

그러다 몇 년이 흘러 뒤늦게 내 잘못을 깨달았던 사건이 있었다. 2017년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함께 출연하는 개그맨 엄용수 분을 뵈었는데, 그분이 A4 종이 앞뒤로 깨알같이 글을 써오셨더라. 그 프로그램의 대본만 30장이었는데 말이다. 물어보니 오늘 (방송에서) 할 말이라고 하셨다. 그 당시 출연진만 10명이어서 준비한 말들을 다 못할 텐데도, '말발'로 살아온 분이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난 방송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이후부터 대본에 줄을 치면서 숙지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도 미리 공부하고 고민했다. 그때부터 제가 방송에서 먼저 잘린 적이 없다. 나중엔 그만두려고 하면 오히려 제작진이 붙잡는 사태까지 생겼다."

-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 '기생충 콘서트',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조국흑서)'(공동저자), '서민적 글쓰기' 등 전공인 기생충 뿐 아니라 과학서, 글쓰기 책, 소설, 의학사 등 분야도 다양하다. 

"지옥 훈련의 결과다. 서른 살에 쓴 글이 중학생 수준이란 말도 들었던 적이 있다. 글을 정말 잘 쓰고 싶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매일같이 두 편씩 글을 썼다. 글도 재미없고 댓글도 없었지만 그렇게 혼자서 3~4년을 썼다. 댓글보다 중요한 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들이 점점 쌓여가더라. 그러던 어느 날 글을 쓰다 앉은 채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자세라면 뭔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십 대에 드디어 첫 책을 발간하게 됐다. 글을 쓰기 위해 살아온 인생이었다. 내 글쓰기 능력은 노력의 결과다."

- 지속적으로 책을 쓰는 이유가 있나. 

"책을 써야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2018년 ‘의학세계사’라는 책을 썼다. 의학 역사를 몰랐는데, 그 책을 쓰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 글을 쓰면 그 분야에 해박한 전문가가 된다. 책을 쓰는 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책은 쓰고 싶다."

- 글쓰기나 유머 모두 재능보다 노력을 통해 일군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내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그래도 안 죽고 버티게 해준 그 힘은 '웃기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처음 몇 년 해서도 안 되길래 10년 이상 노력하니 그때부터는 좀 웃기더라. 그런 거다. 그 목표가 자신의 진로와 관계된 게 아니더라도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목표를 세우면 된다. 정말 절실하면 노력하게 된다."

- 인생 선배로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생충은 자손 번식이 삶의 목표다. 연가시의 경우 곤충 몸에 사는데 짝짓기 알 낳기를 물속에서 한다. 곤충을 물가로 가게 하려면 목마르게 해야 하는데, 이 어려운 것을 연가시가 한다. 전 이걸 '기생충 정신'이라고 부른다.

요즘 노력을 얘기하면 '꼰대소리'라고 하지만,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은 자기가 꼭 되고 싶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노력을 하다 보면 길이 열린다. 이 세상은 틀렸어,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유튜버'서민 "'유튜브계의 유재석'이 되고 싶다"

- 최근엔 유튜버로도 변신했다. 여러 곳의 유튜브 채널에 활발히 출연 중이다.

"방송에서는 말할 기회가 별로 없다. 또 다른 사람이 치고 들어올까 봐 말도 빨라진다. 유튜브는 제가 원 없이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와 잘 맞는다. 지금 대여섯 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고 있다. 유튜브의 매력에 푹 빠졌다."

- 유튜버로서의 삶은 어떤가. 

"유튜브에서 그동안 내가 웃겼던 것들이 발휘된다. 지금까지 유튜브를 위해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유머 연구나 글쓰기 연습이 모두 다 유튜브를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는 수단이고, 글을 쓰다 보면 어떤 분야를 잘 알게 되고 말도 잘하게 되니까. 유튜브가 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열심히 하고 있다."

- 유튜브 출연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던가. 

"조회 수가 500명 정도 나오는 채널이었는데, 출연 후 어느 날엔 5만 명을 찍더라. 처음엔 초반에만 반짝하는 게 아닌지 반신반의했는데, 확신이 들었다. 아내가 항상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한 6개월은 웃기는데, 그다음에는 안 웃겨." 그런데 6개월이 넘어도 사람들을 계속 웃기고 있는 걸 보면 난 유튜브에 특화된 사람 같다.(웃음)"

- 개인 유튜브 채널 운영에 대한 계획은 없나.

"아직 없다. 좋은 사람이 운영하는 채널을 잘 되게 도와주고 뿌듯함을 느끼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채널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개 채널에 출연하게 됐다."

-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요즘 유튜브에 푹 빠졌다. 약간 웃기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 저의 애드리브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 정치 분야 콘텐츠인가?

"정치 관련 이야기도 조금 할 수는 있겠지만, 제 삶에서 웃기는 이야기를 콩트처럼 풀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 앞으로 어떻게 불리고 싶은가.

"유튜버 서민? 유튜브계의 유재석? 하하."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leesun@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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