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영원히 청년 같은 감독' 꿈 꿔"
[인터뷰365]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영원히 청년 같은 감독' 꿈 꿔"
  • 박상훈 기자
  • 승인 2019.11.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려운 경제 이야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영화 '블랙머니'
-"400만 넘으면 스태프들과 휴가...500만 관객 기대"
- 문화계 블랙리스트 올라 두 작품 무산 경험
-"난 '거장' 아닌 '괜찮은 감독' 정도"

[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정지영 감독이 7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충무로의 '명장'으로 평가받는 그는 1983년 데뷔 후 1990년 당시 금기시되던 '빨치산'을 소재로 전쟁과 이념의 비극을 그린 영화 '남부군'(1990), 베트남 전쟁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최초의 영화이자 베트남전을 현대사적 의미로 재조명한 '하얀 전쟁'(1992) 등을 통해 매 작품 국내외 영화상을 휩쓸었다.

2012년 사회 고발 영화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1985' 이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두 차례나 작품 제작이 무산된 정지영 감독은 6년간 '블랙머니'에 매달리며 시나리오를 고치고 또 고쳤다.

신작 '블랙머니'는 정 감독의 색채가 묻어나면서도 좀 더 대중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어려운 경제 이야기를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영화적인 장치를 활용해 풀어냈다.

영화는 IMF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소재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금융 스캔들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자산가치 70조 은행이 1조 7000억 원에 넘어간 희대의 사건 앞에 금융감독원과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를 파헤친다.

정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로 "이 사건이 그냥 덮혔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개봉 전 서울 삼청동에서 <인터뷰365>와 만난 정지영 감독은 연일 이어진 홍보일정에도 지친 기색 없이 "영화를 위한 일인데 힘들지 않다"며 "관객 반응이 좋아 흥행도 기대하게 된다"며 들뜬 모습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려운 경제 이야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영화 '블랙머니'

-7년 만에 신작 '블랙머니'가 나왔다. 준비 기간이 길었다고 들었는데.

"영화 내용이 경제 이야기다. 어렵고, 방대하고, 복잡하다. 시나리오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관객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공부를 많이 했다. 시나리오 버전도 수십 가지가 있었고 6~7년간 많이 고쳐가면서 완성했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이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건가.

"그전엔 언론을 통해서 이런 사건이 있구나 정도만 알았다. 경제 이야기니까 정확히 파악해서 알아내기도 힘들고 귀로 듣고 흘리는 정도였다. 나보다 이 사건에 관심이 많았던 제작사 대표가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제작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나?

"처음엔 '이거 어려워서 되겠나?' 했지. 제작사 대표가 계속 설명해줘서 들어보니 '어려워도 잘만 풀면 재미있는 영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또 국민들이 나처럼 흘려듣지 않고 꼭 알아야 될 것 같은 이야기라는 느낌이 왔다."

-투자를 받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투자자가 나서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민 펀드를 만들려고 준비했다. 각계각층의 저명한 인사 50명 정도가 모여 제작위원회도 만들었다. 영화계 어르신도 있고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었다. 그분들과 힘을 합쳐 시민 펀드를 준비했는데 마침 투자자가 나타났다.(웃음)"

-재미있는 영화라고 강조했는데 결과는 만족스러운가.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투자자들도 그렇고 많은 스태프도 관객들이 재미있어할까 이런 근심을 하더라. 나라고 안심할 수 있었겠나. 용기를 얻은 게 영화 '국가부도의 날'(2018)을 봤는데 아주 상업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는데 380만 명이 들었다. 내가 볼 때는 내가 써놓은 시나리오가 '국가부도의 날'보다는 상업적인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고 300~400만 명 든다고 큰소리쳤다. 촬영을 시작할 때 스태프들한테 400만 넘으면 동남아 여행을 가자고 공헌했다. 관객들의 반응도 예상보다는 좋아서 500만은 될 것 같다.(웃음)"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은데 '블랙머니'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한민국에서 정식으로 금융자본주의 문제를 제기한 영화는 처음이다. 금융자본주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라는 이야기를 한국에서 최초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다면.

"이 사건이 그냥 덮어졌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거기다 이렇게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정부에서 그들에게 돈을 물어줘야 하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말이 안 되는 거지 뭐."

영화 '블랙머니' 조진웅, 이하늬 스틸컷/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블랙머니' 조진웅, 이하늬 스틸컷/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주인공 '양민혁' 검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동안 영화 속에 많은 검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검사를 사실적으로 다룬다. '양민혁'은 다혈질인 데다가 성질도 급하다. 그런데 귀엽다. 그냥 밉지만은 않은 게 매력이다."

-조진웅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평소에 일하고 싶은 배우였다. 영화 '끝까지 간다'(2014)부터 마음에 들어서 계속 지켜봤다. TV 드라마를 잘 안 보는데 '시그널'을 계속 보게 되고, '독전'(2018) '완벽한 타인'(2018) 등 다 봤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는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 작품에 잘 맞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실 감독들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나선 '이렇게 연기할 거야'라는 게 그려지는데, 조진웅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좀 오버하는 것 같아서 당황했다.(웃음) 그런데 촬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생각한 '양민혁'보다 훨씬 더 잘 표현하더라. 나중엔 진짜 저 모습이 '양민혁'이라고 생각했다."

-이하늬가 연기한 '김나리' 변호사와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6년 넘게 시나리오를 썼으니 '김나리'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겠나. 그동안 '양민혁'과 '김나리' 사이에 사랑도 만들어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해봤다.(웃음) '김나리'는 다혈질적인 뜨거운 남자 '양민혁'과는 달리 아주 냉철하고 차가운 여자다. 두 캐릭터를 대비시킬 때 부딪히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 두 사람의 호흡도 돋보여야 하고 어떤 순간엔 약간 '썸'을 타는 듯하기도 하고, 또다시 냉정해지는 관계를 만들었다."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하늬를 캐스팅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주위에서는 이하늬를 많이 추천하는데 내가 이하늬에게서 냉철함을 발견한 적이 없어서 불안했다. 추천한 사람들은 알고 추천한 건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캐스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연기하는 모습이 아니라 예능프로그램(KBS '동물의 사생활')에서 냉철함과는 좀 다르지만 당당한 모습을 발견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니까 이하늬가 사람이 좋아서 겉으로 냉철함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속은 자신감과 단단함으로 꽉 차 있더라."

-촬영 현장에서는 기대했던 대로 잘 해줬나?

"그럼.(웃음) '김나리'는  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공들여 완성한 캐릭터다. 이하늬에게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이 영화에서 필요 없다. 너의 냉철함과 지성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하늬가 가진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 의상도 단색으로만 입는다. 또 대부분 안경을 쓰고 있고 긴 머리를 푸는 장면도 딱 한 번 뿐이다."

-이하늬는 감독님이 현장에서 항상 직접 달려와 배우에게 이야기를 전달해 그 열정에 놀랐다고 하더라. 불편함을 감수하고 메가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다른 감독들이 어떻게 찍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연기적인 부분에서 배우한테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감독이 멀리서 목소리로만 전달하면 '잘 전달이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눈빛을 보면서 직접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로만 던지면 배우가 이 감독이 뭘 말하는지 모를 수도 있지 않나. 배우와 감독이 가까이서 눈을 마주 보고 교감을 해야 정확한 말뜻과 마음속까지 서로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직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올라 두 작품 무산 경험

-그동안 준비한 다른 작품은 없었나.

"두 작품을 준비했었다. 둘 다 사회정치적인 소재가 아니었다. 하나는 사극이고 하나는 멜로드라마였는데 다 마지막 단계에서 제작이 무산됐다. 당시에는 '내가 뭐 실력이 없으니까' '나이를 먹었으니까 사람들이 안 찾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내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안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생존권을 박탈시키는 거 아닌가. 진짜 말이 안 된다. 나라를 위해서도 바보 같은 짓이다."

-멜로를 준비했다는 점이 새롭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나.(웃음)"

-'부러진 화살'(2012) '남영동 1985'(2012) 개봉 당시와 비교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남영동1985'같은 경우는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게 있어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싫어할 수도 있었다. '블랙머니'는 정권 차원을 넘어선 영화라고 봐야 한다. 어느 정권을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고 금융자본주의 사회를 관객들과 함께 들여다보자고 만든 영화다."

-배우 이경영과는 연속으로 호흡하고 있는데 색다른 역할을 맡긴다거나 다른 배우를 캐스팅할 생각은 없었나.

"이경영을 '남영동1985'에서도 나쁜 놈으로 만들었고 이번에도 악역으로 나오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연기를 잘하니까 캐스팅 한 거다. 이경영의 눈빛에서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 선한 역할이든 악한 역할이든 이경영한테 맡기면 안심이 된다."

-80년대부터 꾸준히 영화를 찍고 또 상업영화를 선보이는 유일한 감독이다. 당시 활동했던 감독들의 부러운 시선이나 응원의 메시지는 없었나.

"이 영화가 잘돼서 본인들에게도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줬다. 반드시 그러길 바란다. 투자자들 입장에서 우리가 구세대,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라 감각이 낡았을 거라고 생각해 꺼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잘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감독들이 노는 것처럼 보여도 늘 작품을 준비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지금은 영화에서 볼수 없지만 감독님 작품에서 전성기를 보낸 여러 배우들의 모습들도 떠오르더라.

"한국 영화의 좋은 자산이 있다면 좋은 배우들을 많이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에는 안성기가 다른 영화에 출연하면 쓸 배우가 없었다. 배우들은 나이를 먹으면 스타성에서 밀리면서 스스로 위축된다. 그러지 말고 안성기처럼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영화에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원하는데 인기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슬그머니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말하자면 관객들의 응원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자리 아닌가. 화려했던 시절만 생각하지 말고 작은 역할이라도 영화에 출연해줬으면 좋겠다. 그게 관객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난 '거장' 아닌 '괜찮은 감독' 정도"

-작품이 개봉하면 정지영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보는 관객들도 많아질 것 같다. 스스로 대표작을 꼽아본다면.

"'블랙머니'.(웃음) 내가 만든 모든 영화가 다 내 자식 같다. 상을 탔던 작품만 자식인가. 전부 다 아깝고 다 사랑스럽다. 다만 내가 좀 더 예쁜 자식을 낳았어야 되는데 조금 부족했다 이런 것들은 작품마다 다 있다."

-충무로의 '거장' '명장'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린다.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나?

"제일 좋은 건 '영원히 청년 같은 감독'이다. 이 말이 제일 좋다. 전설, 거장, 명장 이런 건 난 잘 모르겠다.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괜찮은 감독 정도? '거장'이라는 말은 임권택 감독님에게 붙여달라."

-정지영 감독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

"영화는 소통의 수단이다. 어떤 감독은 영화를 일부 지식인들과 나누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을 철저히 일반 대중과 만나고 싶어 한다. 나는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과 만나고 싶어 하는는 욕심 많은 감독이다.(웃음) 관객들이 나를 버리지 않고 찾아준다면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관련기사

-->
관심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