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리뷰] 영화 '우키시마호', 수면 위로 끌어올린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365리뷰] 영화 '우키시마호', 수면 위로 끌어올린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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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키시마호'/사진=메이플러스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1945년 해방 후 만여 명의 강제 징용 조선인과 가족 등을 태우고 일본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제1호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의문의 폭발로 침몰된 사건이다. 

74년 전 수천 명의 강제 징용 조선이 희생된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사건이 일어난 지 7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사건은 역사 교과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가슴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현재 일본 정부의 진상규명이나 희생자에 대한 사과나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우리 정부도 2015년 이후 관련 조사를 멈췄다. 

영화 '우키시마호'는 잊혀가는 우키시마호 사건을 조명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당시 사건을 쫓는다.

해방 후 8월 22일 일본 북동부 아오모리 현 오미나토 항을 출발한 우키시마호는 부산항이 아닌 일본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다 8월 24일 일본 중부 연안의 마이즈루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침몰한다. 당시 역사적 상황과 배경으로 시작해 폭침 당시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들의 증언, 일본 현지인의 목격 증언과 관련 한·일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영화 '우키시마호' /사진=메이플러스

"아이가 거머쥐고 우는데 배 가운데가 두 동강이 나서 가라앉고...붙잡고 살겠다고 울면서 기어 올라갔다"(생존자 증언)

당시 일본 정부는 사망자가 500여 명이라고 밝혔을 뿐 정확한 탑승자 명단과 사고 경위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박한 우키시마호에 3일간 작은 배가 오가며 조선인을 태웠을 정도로 배에는 조선인들이 가득 찼다고 한다. 당시 배가 출항했던 시모키타반도 일대에 동원됐던 강제징용자들의 수 등을 감안한다면 1만여명이 탔고, 희생자수만 8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측은 당시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의한 폭발로 주장했다. 그러나 배가 중간 부분이 꺾이며 V자 모양으로 가라앉았고, 폭발된 선체 부위가 모두 바깥쪽을 향해 구부러져 있었다는 사실은 내부 폭발에 의한 것으로 일본 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또 폭발물을 목격했거나, 폭발 직전 고위급 일본 장교들은 구명보트를 타고 빠져나갔다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이어진다.

김진홍 감독의 영화 '우키시마호'의 생존자 증언 영상<br>
김진홍 감독의 영화 '우키시마호'의 생존자 증언 영상 /사진=메이플러스

사고 후 일본은 배를 즉시 인양하지 않고 수년간 선체 인양과 유해 수색을 미루며 부실하게 대응했다. 9년이 지난 1954년에서야 선체 인양 작업을 진행했지만 원형 그대로가 아닌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했다. 영화에서 공개한 2012년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마이즈루만에서 찍은 수중 촬영 영상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70여년이 흐른 현재 우키시마호 잔해는 더이상 찾기 힘든 상황으로, 아직도 바닷 속에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유해가 묻혀있다. 

영화는 단순히 반일 감정을 자극하거나, 애국심에만 호소하지 않는다. 짜임새 있는 흐름은 90여분간 몰입도를 높인다. 감독의 노련미가 엿보인다. 

3년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한 김진홍 감독은 1985년 당시 녹화된 증언자들의 영상을 입수해 이 영화를 완성했다. 김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며 "역사적 실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74년이 흐른 현재 생존자는 두 명 뿐으로, 보존 자료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 격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장면 중간 중간 침몰 당시 아비규환의 모습 등 당시를 재현한 장면들도 있다. 내레이션은 배우 안재모가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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