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1970년대 명동의 향수를 자극하는 리얼리즘 연극 '울 엄마 그리기'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1970년대 명동의 향수를 자극하는 리얼리즘 연극 '울 엄마 그리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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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두께가 이끼처럼 묻어있는 올드함...공감과 눈물 자아내
'울 엄마 그리기' 포스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김영무 작·연출의 '울 엄마 그리기'는 요즘 연극에서 느낄 수 없는 끈적함이 묻어났다.

이야기는 분명 현대이고 배우들도 현역들인데 올드한 느낌이 드는 것은 김영무 선생의 소재와 형식과 표현방법에 예전의 정서가 녹아있기 때문이리라.

70년대 명동예술극장에서는 봄가을 시즌에만 몇편의 연극이 막을 올렸다. 고전 번역극도 있었지만 '죽은 나무 꽃피우기' 같은 창작극도 있었다. 이해랑·이진순 등의 연출에 장종선의 사실적인 세트가 인상적인 리얼리즘 연극들이 많았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해 가치관이 흔들리던 시대의 가족관계를 그린 작품들이 주류였는데 김영무 작가의 신작 공연을 보면서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고 향수가 묻어났다.

칠순을 넘긴 노작가는 프로그램의 글에 산고 끝에 태어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가 참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원금 받기도 구차해 오기로 한달 공연에 나섰지만 역시나 관객의 호응도가 낮았다.

그래도 등단 51년째의 김 작가는 극단 춘추의 단원이어서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며 문고헌 연출에게 감사를 표했다.

원로 배우 정욱이 예술감독을 맡으며 목소리 연기까지 했고, 배우 홍정재·권남희·이창익·김정근(현역 아나운서)·도유정·김현숙·최성희가 더블로 배역을 맡았다.

필자가 관람한 날 무대에는 중견 홍정재(어머니 역)와 이창익(아들 역)이 나왔는데 2인극을 보듯 연기 호흡이 잘 맞았다. 여기에 신예 최성희가 어머니 친구 역으로 가세했다.

이 작품을 전후 세대 연출가가 연출했다면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작가가 연출까지 맡아 작품의 의도를 손상하지 않았다.

필자가 이 작품을 '올드'하다고 하는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세월의 두께가 이끼처럼 묻어있다는 의미다.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모르면 이 작품은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한국 전쟁 휴전 무렵에 아들을 고아원에 남겨두고 신병치료차 미국에 가 정착했던 어머니가 다시 중병에 걸려 35년만에 한국을 찾으면서 극이 시작된다.

신부님의 도움으로 아들 집에 입주 가정부로 들어가면서 모자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듯이 서로는 화해를 하지만 엄마는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다시 바람처럼 떠나 생을 마감한다.

김영무 연출은 별다른 장치없이 대사만으로 극을 이끌어 전반부는 다소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홍정재와 이창익의 앙상블이 살아나 작가가 그리고 싶어한 한국적인 여인상을 보여주면서 모자간의 응어리를 풀어냈다.

특히 전쟁의 상흔이 할퀸 가족의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눈물과 공감을 자아냈다. 노작가가 그려내고 싶은 한 여인의 초상이 오래된 장맛처럼 형상화된 것이다. '울 엄마 그리기'란 제목은 라스트에서 '울 아들 그리기'로 반전된다.

올드한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네 역사와 인생의 때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6월 9일까지 대학로 오르다 소극장.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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