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럽한인경제인단체 이끄는 태권도 지도자 출신 사업가 고광희 회장
[인터뷰] 유럽한인경제인단체 이끄는 태권도 지도자 출신 사업가 고광희 회장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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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태권도 사범으로 스페인 정착...16년간 '마스터'로 불리며 수만명의 제자들 양성
-우연한 기회에 사업가로 전향 후 20여년 간 활동..."한국 위상 크게 높아져"
-현재 27개국 유럽회원국 소속되어 있는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이끌어...소속 회원들과의 '상생'에 초점
-"한국 젊은 청년들, 전문성과 성실성으로 유럽 시장에 도전한다면 좋은 결실 맺을 것"
고광희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 고 회장은 36년전 태권도 지도자로 스페인으로 건너간 후 현재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럽 대표 한상(韓商)인이다. /사진=재외동포재단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이하 ‘총연합회’)는 27개의 유럽 회원국가가 소속되어 있는 최대 한인 경제인 단체다. 이 단체를 3년 째 이끌고 있는 고광희 회장은 36년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 정착한 후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궈온 유럽 대표 한상(韓商)인이다.

고 회장은 1982년 태권도 사범으로 스페인으로 건너가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수 만명의 제자들을 양성하며 태권도 보급에 힘써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도자로서 은퇴한지 20여년이 흐렀지만, 대쪽같은 성품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그를 향해 제자들은 여전히 ‘마스터’(스승님)라고 부른다.

20년전 우연한 기회에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고 회장은 현재 마드리드에 3000㎡ 규모의 대형 종합스포츠 센터를 운영하며 한국 LED 제품을 유럽에 수출하는 ‘코리아 LED’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제품을 유럽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바람에서 회사명에도 ‘코리아’를 넣었다.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기 전 스페인 한인총연합회장을 6년간 역임한 이유도 이 곳에 뿌리를 내린 교민으로서 늘 한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현재도 고 회장은 유럽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기업들의 상생 기회를 마련하고, 한국 우수 중소 기업들의 유럽 진출을 돕기 위해 일년에 열번 이상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총연합회 회장으로서 눈코뜰새 없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17차 세계한상대회’에서 만난 고 회장은 “한국에 있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는 어떤 단체인가

유럽의 한인 경제인들이 만든 경제 단체다. 유럽에 40만명의 교민이 있는데, 대다수가 무역을 한다. 올해 기준 27개의 회원국이 소속되어 있는데, 나라별로 보면 한인 경제인 단체 중 최대다. 회원 수는 3000여명에 달한다. 2000년에 창설되어 외무부에도 2007년에 등록된 단체다.

유럽한인경제인단체는 소속 회원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상생'에 초점이 맞춰있다. 대표적으로 회원사들끼리 사업 아이템을 공유한다. 총회를 열 때마다 연합회에 소속된 각 국의 지회장들이 하나의 아이템을 가져오면, 함께 상생 방안을 찾는다. 예를 들어 아르간 오일에 대한 아이템이 있다면 이를 함께 공유하고, 각 회원국에서도 판매가 가능한지에 대해 논의한다. 회원국으로 유통망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더 나아가 한상 대회 같은 행사에 참여해 회원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도 수출을 할 수 있도록 판로를 함께 모색한다.

고광희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 /사진=재외동포재단

-지난 3년 간 유럽한인경제인단체를 이끌어 오면서 뿌듯했던 점은.

단체의 책임자로서 회원국간의 좋은 교류가 이뤄지고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왔을 때다. 동일한 아이템으로 서로 다른 국가의 시장과 연계해 좋은 결실을 맺었을 때는 마치 내 일처럼 뿌듯하다. “고맙다, 소주 한잔 사겠다”는 전화가 오면 그만큼 보람차고 기쁜 건 없다. 총연합회 회장을 맡은 후 회원수가 4개국이 늘었다는 점도 보람차다.

-유럽은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의 한상들의 위상은 어떤가.

스페인에 온지 햇수로 36년 됐다. 그 당시만해도 한국인이냐는 질문이 전혀 없었다. 내게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묻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런데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개최 계기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국가 브랜드'가 참 중요하구나 새삼 느꼈다. 유럽 시장이 진입 장벽이 높은 건 미주에 비해 배타적이라고 해야하나. 과거 그들이 한국을 봤을 때 자기네들과 게임이 안되는 나라로 봤다. 우월감이라고 해야하나. 이제는 '메이드 인 코리아'는 좋은 가격의 좋은 퀄리티를 가진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보는 한국의 이미지는 잘 살고, 급속도로 성장 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예전에 길거리를 걷다 보면 5대 광고엔 한국 제품이 없었는데 이젠 주요 거리에서 삼성, 현대, LG 등 한국 기업 브랜드의 광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굉장히 뿌듯하다.

-고향은 어디인가. 스페인에는 어떻게 정착을 하게 됐나.

전라남도 광주 출신이다. 1982년 처음 태권도 사범으로 스페인으로 가게 됐다. 이전에는 멕시코에서 1여 년간 머물었다. 1970년대 지도관 전남 본관 태권도 수석 사범으로 있으면서 제자들을 양성하다 25세에 멕시코 국립대학 '우남(UNAM)대학'에 학생 겸 지도자로 건너갔다.

-해외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태권도를 하면서 늘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대표적인 배우가 이소룡이었는데,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체육관에서 그의 액션이나 제스쳐를 따라 해보곤 했다. 나도 저런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태권도 사범으로 해외로 나가 그 꿈을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에 동양무술이 빛을 볼 수 있는 서양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던 찰나 멕시코에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거다. 1년 정도 거주하고 있는데, 친형 이 스페인에 국비 유학생으로 가게 되면서 스페인으로 권유했다. 스페인 국왕이 태권도를 하고 있으니, 여기로 오면 어떻겠느냐고. 국왕이 태권도를 한다는 건 이미 그 시장이 열려있다는 의미아닌가. 혼자 개척해야 하는 멕시코보다는 더 수월하게 안착할 수 있겠다 싶더라.

-그래서 삶의 터전을 스페인으로 옮긴건가.

사실 처음엔 1년만 있으려 했다. 막상 스페인에 도착해서 보니 마치 다른 세상같았다. 삶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더라. 치안 걱정도 없었다. 다들 문도 안 잠그고 자더라고.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지 않고, 그 돈으로 삶을 즐기더라. 집을 산다고 하면 국가에서 장기로 융자를 해주니까. 주말에는 모든 가족들이 야외에서 바비큐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더라. 그들의 삶은 내겐 큰 충격이었다.

처음 멕시코로 떠날 당시 김포공항에서 한국돈을 바꿔보니 전 재산이 47달러였다. 그 당시 돈이 많이 필요도 없었고,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거든. 스페인에서도 빈주먹으로 출발했다. 그리곤 알뜰 살뜰히 돈을 모았다. 그러다보니 1년만 있겠다고 생각했던 스페인에 아예 눌러 살게 됐다. 마드리드에서만 산지 벌써 36년이다. 이젠 마드리드 문지기가 다됐다. 하하하.

-현재 스페인의 태권도 수준은 세계 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다시 현지에서의 태권도 위상은 어떻던가.

난 179cm로 작은 키는 아니지만,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들에 비해 작은 체구인데, 방방 뛰어다니며 날아다니듯 운동하고 격파 하니까. 자신들에게 없는 재주를 갖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신비로움도 있었겠지만, '태권도'라는 동양무술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컸던 것 같다.

나를 거쳐간 제자들이 수 만명에 이르는데, 현지 제자들은 지금도 내게 '마스터'로 부르며 극진한 존경심을 표한다. 나 역시 그들에게 스승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술과 담배도 안하고 늘 모범과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해왔다. 물론 지금은 사범으로서는 은퇴는 했지만, 지금도 늘 정장 차림이다. 대충 추리닝을 걸치고 밖에 못 나간다. 어디에서 제자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또 단체를 이끌다보니 행동도 더 조심스러워진 점도 있고.

고광희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 /사진=재외동포재단

-스페인에 정착해서의 삶이 궁금하다.

처음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체육관에 사범으로 들어가서 6개월 후 독립했다. 당시 체육관을 다니던 한 스페인 제자가 동업을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왔다. 나는 운동을 가르치고 경영관리는 제자가 하는 걸로. 새롭게 문을 연 체육관이 꽤 잘됐다. 시범 행사를 하면 한달에 200여명의 새 문하생들이 체육관에 들어왔다. 매달 평균 500-600여명의 제자들이 태권도를 배웠다. 그렇게 16년간 마드리드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며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했다. 틈틈히 한 프랑스대학의 스포츠과에서 태권도 강사로도 활동했다.

-원래 스페인어를 잘 했나.

사실 운동에는 그렇게 많은 언어가 필요하진 않다. 그래도 잘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 당시 스페인에서 함께 살던 친형이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있어서 형한테 미리 필요한 문장과 용어들을 하루 전에 익혀서 종이에 써서 읽으면서 가르쳤다. 수업시간에 학생을 세워놓고 설명하다가 생각이 안나거나 문장이 길어지게 되면 써놓은 메모지를 꺼내서 보고 읽곤 했는데, 학생들이 배꼽을 잡고 웃더라고. 하하. 그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더 나를 잘 따랐다. 아마 그들의 눈에 내가 잘 가르치고 싶다는 열정과 성의가 보였나 보더라.

-타국에서의 삶이 힘들거나 외롭지 않았나.

다행히 그렇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제자들이 사업을 하려면 앞다퉈 나서서 무보수로 도와주려고 한다. 또 스페인 사람들의 성향이 우리와 비슷한 면도 있다. 빨리 뜨거워지고 빨리 식는 '냄비스타일'같은 면모도 있고, 의리가 있다. 외롭다고 느껴질 타이밍엔 결혼을 했고 애들도 태어났다. 피곤하고 힘들 때 나를 지켜주는 가족들이 있다는게 내겐 큰 버팀목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핸드폰을 꺼내어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내겐 가족이 재산"이라고 껄껄 웃었다.)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나.

아내와 딸, 아들이 있다. 딸(28)은 스페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아들(23)은 연세대 국제학부에 재학중이다. 조금 전 내 얼굴 잠깐이라도 보겠다며 이곳 행사장까지 왔다 갔다. 시차 때문에 피곤해도 아들이 와서 "아빠"라고 껴안아주는 순간 피곤함이 눈녹듯이 사라진다. 그게 가족 같다.

아내는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아내는 한국에 살고 있던 누나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됐다. 나의 누나와 현재 처형(아내의 언니)이 당시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 친하게 지내던 중 미혼인 동생들을 소개시켜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나보더라.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날라가 아내를 소개 받게 됐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해외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면서 부부 싸움 한 적이 없다.

고광희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사진=인터뷰365

-16년간 활동해온 태권도 사범에서 사업가로 전향했는데.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

1990년대 중반에 한국에 있는 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스페인에서 제조한 팔찌가 '건강팔찌', '효도팔찌'라 불리며 한국 백화점에서 팔고 있는데 내놓는 족족 완판이라며 그 제품을 직접 구매하고 싶다고 알아봐 달라는 거였다.

그 제품을 봤더니 수업 중 제자가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가 떠올랐다. 운동 중에는 학생들에게 치장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그 학생이 팔찌를 차고 왔길래 한 마디 한 적이 있었다. 그 제품이었다.

그래서 그 제자에게 어디서 구입했냐고 물어봤더니 아버지가 그 제품의 공장 사장이라는 거다. 그 소식을 듣고 친구가 한국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라왔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사업에 발을 들여놓게 된거다.

친구의 권유로 난 스페인에서 물건을 구매해서 한국에 수출을 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도 어마어마하게 사갔다. 3년간 팔찌 붐이 일었는데, 내가 그동안 체육관을 하면서 16여년간 벌었던 수입과 그 때 당시 1년치 수입이 맞먹었다. 소위 중이 고기 맛을 본거다.(웃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운동을 접고 사업가로 전향했고, 오늘날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까지 맡게 됐다. 지금은 태권도 지도자로서는 은퇴 했지만, 아직도 중요한 태권도 행사에 참여하고 후원도 한다.

-이후 20여년간 사업가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은.

마드리드에 대형 종합스포츠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 LED제품을 한국서 수입해서 유럽에서 판매하고, 설치까지 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고와트 LED 설치를 스페인 마드리드 주요 축구장에 설치하는 것을 구단들과 협의 중이다.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요식업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이끌고 있는 업체 명이 '코리아LED'인데, 사업체명에 '코리아'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한국의 좋은 제품을 유럽에 소개하고픈 마음에서다. 36년을 스페인에 살고 있어도 난 아직도 한국 여권을 유지하고 있다. 국적은 그대로다.

고광희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 고 회장은 36년전 태권도 사범으로 스페인으로 건너간 후 현재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럽 대표 한상(韓商)인이다. /사진=재외동포재단
고광희 유럽한인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 고 회장은 36년전 태권도 지도자로 스페인으로 건너간 후 현재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럽 대표 한상(韓商)인이다. /사진=재외동포재단

-자신의 사업을 하면서 단체장 활동을 병행 하는게 쉬운 일을 아닐텐데.

유럽경제인회장을 맡기 전 스페인 한인 총연합회장을 6년을 했다. 이 곳에 뿌리를 내린 교민으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인회를 만들고 싶었다. 젊은이들에게도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왔다. 사실 단체장으로 활동을 하면 재정적 지출을 떠나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뺏긴다. 때론 오해와 마찰로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내가 당장 그만두라고 말린다.(웃음) 그러나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다면 그 만큼 뿌듯한게 어디있겠나.

-유럽한인경제인단체 총연합회 회장으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국의 각 지자체를 방문했는데, 경기도에는 국내 중소 중견 기업이 많더라. 안타깝게도 너무나 좋은 가격에 훌륭한 상품들이 잠자고 있었다. 우리 단체(유럽한인경제인단체)가 한국에 있는 중소기업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 단체에 소속된 각국의 지회장들은 30~40년 이상 그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그 나라에 폭넓은 인맥들이 형성되어 있는 분들이다. 정부의 지원으로 '유럽수출박람회'를 추진할 수 있게 된다면 전국 지자체에서 아이템을 선별해 유럽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활성화 될 것이고, 우리나라 청년들도 유럽에 진출 할 수 있는 기회도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도전을 망설이는 한국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럽 시장이 배타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청년들이 전문성과 성실성으로 유럽 시장에 도전한다면 분명히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100%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시도할 수 있는 젊음이 있지 않나. 젊었을 때 두려워말고 해외에 문을 두드렸으면 한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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