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 이장호 감독 ③
[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 이장호 감독 ③
  • 김시무
  • 승인 201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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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부산 노보텔 엠배서더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2018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에 주인공으로 초청된 이장호 감독이 증정받은 '디렉터스 체어'에 앉았다. 이용관 이사장(사진 왼쪽)과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이 감독의 손을 꼭잡으며 그의 회고전을 축하했다./사진=박상훈 기자 

[인터뷰365 편집자주]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뜨거운 청년기로 맞이한 젊은이들에게 영화감독 이장호(1945∼)는 청춘, 청년문화의 우상이었다. 그의 영화는 고루한 사회의 껍질을 벗겨 달라진 시대의 속살을 보여주고 새로운 몸짓과 언어를 만들어 내며 시끄러운 관객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다.

1974년 <별들의 고향>이 단일극장 개봉시대에 46만명이 관람한 기록은 이 시대의 천만 명 관람 기록에 비견되는 놀라운 흥행 성과였다. 신상옥 영화연출팀의 막둥이로 잔심부름을 하다가 뛰쳐나와 첫 작품으로 새로운 신상옥시대의 깃발을 올린 후 <바람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어우동> <바보선언> <이장호의 외인구단> 등의 흥행영화를 쏟아내며 화려한 인기 감독의 이름을 떨쳐왔다.

2014년에 <시선>이라는 영화를 내놓기도 했지만 연출현장을 떠난 뒤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지자체 영상위원회 설립에 참여하는 등 사회활동을 하는 한편 중부대학, 전주대학을 거쳐 지금도 동양대의 영화영상학 석좌교수로 후진 양성에서 열정을 쏟고 있다.

2018년 10월 4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으로 초청된 이장호 감독을 영화학 교수로 한국영화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시무 영화평론가가 인터뷰 형식의 대담으로 정리한 내용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①[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초청받은 이장호 감독  

▶②[인터뷰] 1970-80년대 청춘, 청년문화의 우상 영화감독 이장호  이어서

김시무= 감독님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이 있다면, 유독 눈의 이미지가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별들의 고향>의 도입부와 라스트시퀀스에서도 그랬고, 특히 주인공 경아가 설원(雪原)에서 수면제를 먹고 눈을 떠먹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다. <과부춤>에서도 아주 인상적인 눈 쌓인 장면이 있었다. <나그네>에서도 촬영시기가 겨울이었으니까 눈이 많이 나온다. 그런 경치를 잘 잡아낸 것 같다. 장면, 장면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장호= 영화감독들은 대개 눈을 좋아한다. 감각적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 탓에 눈이 오는 장면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특히 멜로드라마의 정서에는 눈이 효과적이다. <나그네>를 찍을 때도 눈 오는 장면을 잘 활용한 것 같다. 천수(天水) 농경 방식의 연출이 만들어낸 산물이랄까.

김시무= 감독님이 애착을 갖는 작품 몇 편에 대한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이유를 듣고 싶다.

이장호= 내 영화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왜 그럴까 생각했더니 지난날 정리 안 된 상태의 인생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개 우리나라 사회가 매우 급속도록 변화하고 있으니까 내가 찍은 영화에서 고전이라는 향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찍을 때는 못 느꼈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 보면 그때의 모습들이 왜 그렇게 촌스럽게 느껴지는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상류사회의 변화가 가장 심하다. 예컨대 1970년대 상류사회의 습관 및 생활방식과 오늘날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당시 부유층이 즐겨 사용하던 이른바 첨단 고가 제품들과 오늘날의 그것을 비교해 볼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첨단이란 이유 탓에 오늘날에는 낡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달동네 빈민가를 산책하다가 무척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달동네의 모습과 풍속(風俗)은 30년 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이 “아! 가난한 사람들을 다룬 영화는 고전이 될 수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고전이란 언제 봐도 새로움을 주는 것이라 할 때 내가 찍은 영화들 중 빈자들의 애환(哀歡)을 다룬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과부춤> 등이 바로 고전에 해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감히 했던 것이다. 그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던 그 영화들에 담긴 모습과 풍속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외양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도 그렇지 않은가? 상류사회의 모습을 그린 내 영화들은 별로 애정이 가지 않는다. 이를테면 <Y 스토리>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비록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독재정권에 반항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과부춤> 등은 정신을 차리고 연출에 임한 작품들이라서 남다른 애착이 간다.

특히 농촌에서 상경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찍을 때 나 개인적으로 부러웠던 것은 극중 주인공들의 삶과 정서였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고 또 성장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과 정서를 체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비록 가난하지만, 억척스런 삶을 살며,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이 몹시 부러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덕배, 춘식, 길남이라는 캐릭터에게 애정을 쏟아 붓지 않을 수 없었다.

김시무= 화제를 좀 바꾸어서 연출과 비평 간의 관계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이장호= 나는 예전부터 평론하는 분들에게 많이 말하는데 영화 내적인 평론보다 영화를 통해서 작가의 정신 상태라든가 심리상태, 나아가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풍속의 의미 또는 사회적인 문제 등을 짚어주는 평론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단순한 작품평가가 아닌 작품속의 시대상(時代相)과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정신세계, 즉 작가정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러한 진지한 평론을 기대한다.

김시무= 해당 영화가 진정한 작품일수록 그 속에서 작가의 정신세계 등을 우리가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비평적 관점이다. 작품의 텍스트를 꼼꼼히 천착하면서 감독님이 생각하는 세계관 등을 캐치할 수 있다고 본다.

이장호= 내 영화를 보게 되면 이중적인 구조가 자주 나타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본성을 이루는 섹슈얼리티의 문제와 초월적인 것(즉 종교적인 것)을 지향하는 영혼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요컨대 나의 영화들에는 성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혼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외관상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이장호 감독은 10월 5일 부산 노보텔 엠배서더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2018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에 주인공으로 초청됐다./사진=박상훈 기자  

김시무= 나는 <어우동>에서 표현되고 있는 섹슈얼리티에 깊이 공감한다. 나는 감독님의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바보선언>을 한데 묶어 이른바 ‘섹슈얼리티 3부작’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비록 장르는 각각 다르지만 말이다. 또한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그리고 <과부춤>을 한데 묶어 사회비판 3부작으로 하면 어떨까도 고려해 봤다. 애초 감독의 의도대로 하면 <어둠의 자식들> <바보선언> <과부춤>이 ‘비판적 리얼리즘 3부작’에 해당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세 작품 간의 연계성은 매우 두드러진다고 하겠다.

이장호= 아주 상식적이긴 하지만 <어우동>에서도 보면 그렇게 많은 양반네들을 성적으로 농락하고 그랬던 여자가 갈매(안성기)라는 성 불능의 남자와 함께 동반 자살을 한다. 그런 것 자체가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상태라든가 성향에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내 작품을 다시 되새기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실패한 작품, 잊혀 진 작품,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면 그만인데 그런 일을 기억해내는 것도 좋은 것이다.

사실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영화가 <어우동>이다. 난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자랑하고 싶다. 일부 평론가들에 의한 포르노라는 평가는 너무 억울하다. 난 이 영화 속에 담긴 시대적 의미들을 제대로 평가해 주기를 바랐지만 평론가들은 무시해버렸다. 오히려 공연윤리위원회(공륜)에서만 극장 상영 중인 영화를 재심의를 하여 왕을 성적으로 모독하는 장면을 자르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조선시대 사극은 처음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극의 양식미를 만들고 싶었다. 의상과 소도구, 분장법 등 제한된 우리 사극의 정형화된 틀을 깨버리고 싶었다. 구로사와 아끼라(Akira Kurosawa) 감독이 얼마나 소품에 대해 애정을 기울이는지 보라. 사실 <어우동> 이전의 사극영화들은 대부분 신상옥 감독이 시도한 의상에 기초하고 있었다. 신상옥 이전에는 고증에 충실했으나 신감독이 영화적으로 약간 변형시킨 것인데 나는 이것들을 더 영화적으로 바꾸되 염색법(染色法) 등의 고증에도 충실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가치는 묻혀 버리고 ‘어우동’이 경멸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내게는 가장 큰 한을 남긴 영화이다. 앞에서 나는 내 영화들 가운데 고전이라 할 만한 것을 꼽으면서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바보선언> <과부춤>을 거론했는데, 이중 후자 3편은 <어둠의 자식들> 삼부작으로 기획된 것이었지만, <바보선언>의 경우 소재는 같은 원작에서 따 왔지만, 형식과 스타일에서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시무= 1980년대 한국영화사를 수놓았던 감독님은 90년대 들어 두 편의 작품을 더 연출했다. 대하사극 <명자 아끼꼬 쏘냐>와 자전적 성격의 <천재선언>이 그것이다. 감독이 야심을 갖고 추진한 프로젝트였지만 안타깝게도 별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장호= <명자 아끼꼬 쏘냐>를 시작할 당시엔 김지미라는 배우와 일하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달았지만, 난 그때 임권택 감독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할린의 비극을 롱테이크로 담아내겠다는 식이었다. 물론 나와 똑같이 해방둥이인 후 샤오시엔(Hou Hsiao Hsien)이나 오구리 고헤이(Kôhei Oguri)의 작품들에 공감하는 바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일시적인 것은 아니었다. 후 샤오시엔은 항상 자기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이장호 식’으로 접근할 생각을 못했는지 안타깝다. 소재의 무게에 눌려버린 까닭도 있겠지만 그 엄청난 역사의 현장에다 내 자신을 투영(投影)시키면 죄가 될 것 같은 강박관념도 있었다. 이 작품 이후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나에게 ‘영화세상’의 안동규 대표가 <바보선언>의 속편격인 <천재선언>의 연출을 제의해왔다. 그야말로 ‘재기선언’을 하는 셈인데, 난 몇 년의 휴지기 동안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그래서 얻은 해답은 나에게 가장 솔직하고,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보선언>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80년대에 그 영화가 했던 역할을 이제 90년대의 새로운 영화로 해보자는 의미에서 타이틀도 <천재선언>으로 정했다. 반대개념이라기보다는 뒤집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90년대의 핵심은 무엇일까? 상투적인 사고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나는 성급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내가 능력이 안 되는 부분을 인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자 사회 속에 구체적인 적대세력이 있었던 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의 적(敵)은 복합적인 모습으로 내 자신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이상한 빛’의 구원으로, 때로는 ‘수상한 소리’의 속물근성으로, 때로는 신세대처럼 ‘알 수 없는 눈물’로 나를 엄습하는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천재선언>은 20여년이 넘는 나의 영화이력을 총체적으로 점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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