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70-80년대 청춘, 청년문화의 우상 영화감독 이장호 ②
[인터뷰] 1970-80년대 청춘, 청년문화의 우상 영화감독 이장호 ②
  • 김시무
  • 승인 201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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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으로 초청
5일 부산 노보텔 엠배서더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2018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에 주인공으로 초청된 이장호 감독./사진=박상훈 기자

[인터뷰365 편집자주]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뜨거운 청년기로 맞이한 젊은이들에게 영화감독 이장호(1945∼)는 청춘, 청년문화의 우상이었다. 그의 영화는 고루한 사회의 껍질을 벗겨 달라진 시대의 속살을 보여주고 새로운 몸짓과 언어를 만들어 내며 시끄러운 관객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다. 

1974년 <별들의 고향>이 단일극장 개봉시대에 46만명이 관람한 기록은 이 시대의 천만 명 관람 기록에 비견되는 놀라운 흥행 성과였다. 신상옥 영화연출팀의 막둥이로 잔심부름을 하다가 뛰쳐나와 첫 작품으로 새로운 신상옥시대의 깃발을 올린 후 <바람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 <어우동> <바보선언> <이장호의 외인구단> 등의 흥행 영화를 쏟아내며 화려한 인기 감독의 이름을 떨쳐왔다.

2014년에 <시선>이라는 영화를 내놓기도 했지만 연출현장을 떠난 뒤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지자체 영상위원회 설립에 참여하는 등 사회활동을 하는 한편 중부대학, 전주대학을 거쳐 지금도 동양대의 영화영상학 석좌교수로 후진 양성에서 열정을 쏟고 있다.

2018년 10월 4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으로 초청된 이장호 감독을 영화학 교수로 한국영화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시무 영화평론가가 인터뷰 형식의 대담으로 정리한 내용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초청받은 이장호 감독 ① 이어서 

김시무= <과부춤>은 현실 기독교의 폐단(弊端)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기독교 정신(예컨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감독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고 있다. 종교에의 입문과정을 설명해주시고 오늘날 다시 <과부춤>과 같은 영화를 만든다면 당시 비판적 견해를 그대로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수정이 필요한 것인지 말해 달라.

이장호= <과부춤>이란 영화도 역시 <오과부>(Five Widows)라는 원래의 제목이 너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밝은 느낌을 주는 제목으로 바뀐 경우이다.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과부춤>은 나에게 한(恨)을 남겨준 영화이기도 하다. <바보선언>보다 먼저 개봉되었지만 평론가들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말하자면 한국의 리얼리즘 전통이란 것이 허약했을 때였다. 사회적인 시각으로 종교도 비판적으로 보고 그랬지만 지금은 사회적 시각보다 나의 시선이 더 큰 문제다. 변화가 그렇게 왔다. 그때 <과부춤>을 만들면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옴니버스 형식을 분명하게 취해 1부, 2부, 3부를 구분하여 중간 중간에 자막을 넣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1부는 ‘위장 결혼이야기’이고, 2부는 ‘어느 청소부의 이야기’고, 3부는 다시 만난 결혼상담소 이야기 등으로 해서 타이틀을 딱딱 박아놨으면 좀 정리가 됐을텐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때는 그것을 무시하고 이야기 시퀀스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했으니까 형식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옴니버스가 아니라 그냥 막 얽히고설킨 영화를 보는 듯 했을 거다. 그래도 매번 손의 클로즈업으로 시작을 해서 세 가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타이틀을 직접적으로 삽입해주는 것보다는 옴니버스 효과가 약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진가(眞價)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5일 부산 노보텔 엠배서더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2018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에 초청된 이장호 감독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영화인들. (왼쪽부터) 배우 나영희, 이보희, 신성일, 이장호 감독, 배우 김희라, 안성기, 오광록

김시무= 감독님의 영화들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나타난다. <천재선언>이 특히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천재선언>에 대하여 비판적인 평문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지나치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것이었다. <과부춤>에서는 종교에 대한 비판과 종교의 장점들이 균형 있게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천재선언>을 봤을 땐 기독교적 색채를 너무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요컨대 <과부춤>에서는 비판과 옹호의 균형 감각이 무척 돋보였는데, <천재선언>에서는 다소 치우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바보선언>은 감독님이 인정하신 것처럼 아무렇게나 막 찍은 것 같지만 대단히 파격적인 것들이 있었는데, <천재선언>에서는 <바보선언>에서 보여주었던 가치전복적인 성격이 결여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들었다.

이장호= <천재선언>도 실패작이지만 또 종교적인 영화다. 그때는 개인적으로 회개(悔改)의 시작이었다. 종교에 대해 말하자면, 그전까진 교회를 다녔지만 나 자신에 대해 회개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1992년도에 다시 교회에 적극적으로 다니면서 나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80년대 중반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외인구단> 세 편이 연속 흥행에 성공하면서 큰돈을 벌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타락한 시기가 왔었는데, 90년대 들어 회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심경의 변화가 나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나 자신 영화감독으로써의 정체성의 문제, 극심한 검열의 횡포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종의 저항의 에너지가 <바보선언>을 만들었다면, <천재선언>을 만들 때는 그러한 것이 없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외적 억압이 사라지니까 나 자신에게 침잠(沈潛)하게 된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바보선언>을 의식하면서 <천재선언>을 만들다보니 자기 표절(剽竊)이 될 수밖에 없었고, 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바보선언>을 만들 때는 우리를 억누르는 통제라던가 그것에 대한 저항이 생겨나 이를 악물고 싸울 수 있었는데, <천재선언>을 만들 때는 외부의 적도 없었고 압력도 없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의 평화시대였다고 할까. 표현의 부자유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공격해야 할 타깃이 애매했다. 분명한 적이 있어야 영화를 만드는 에너지가 되는데 그것이 없으니까 나도 역시 굉장히 당황했던 것이다. 어쩔 수없이 타깃을 찾아야했는데, 결국 그것이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마침 회개도 해야 하고 그럴 때라, 속물적인 영화감독이란 인물을 등장시켜 정치에 빌붙어 사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한번 그려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의 개념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봤을 때 그 같은 시각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가장 사탄에 가까운 것이 정치(政治)였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때 감수성으로 본 성경이었지만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역할모델로 떠올랐다. 엘리야는 권력에 의해서 무려 백여 차례나 죽음의 위협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어떤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소연하고 그러다가 어떤 때는 선지자로서 예언도 하지 못하고 도망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런 것을 우리 정치현실에 대입하여 그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했고, 결국 내적인 제약으로 실패작이 나왔다.

어우동 1985
영화 '어우동'(1985)/사진출처=네이버

김시무= 에로티시즘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별들의 고향>을 재차 감상하면서 데뷔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거침없는, 그러면서도 절제된 섹스장면을 볼 수 있어 새삼 놀랐다. 그런데 <무릎과 무릎사이>와 <어우동>에서는 그 표현이 대단히 파격적이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느낌을 받았다. 나 개인적으로 성애 표현에 관한 한 직접적이면 직접적일수록 좋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두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이보희의 몸을 사리지 않는 혼신(渾身)의 연기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에로틱한 장면의 연출을 할 때 감독님의 과감함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감독님은 종교적 세계관과 세속적인 성적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듯한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래서 타락(墮落)이라는 용어를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비판의식을 추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섹슈얼리티 같은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로티시즘의 표현에서는 대담한 연출시도를 보여준다.

이장호= 나에게 있어서는 섹스의 문제에 집착하는 성적인 것과 그것과 전혀 별개로 종교문제에 몰두하는 영적인 것이라는 두 개의 성향이 중요한데, 종교적인 것에 이끌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영화의 테마로 여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성적인 문제다.

1980년 중반 한창 에로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종교적 시각으로 성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성적(性的)인 것과 종교적인 것은 외관상 두 개로 양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나는 “둘 다 뿌리가 같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풀어야 할 나의 숙제인데 성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한 것은 특수한 기억 때문 일거라 생각한다. <무릎과 무릎사이>에서는 여성의 성욕을 통해 나타나지만, 나 스스로 어렸을 때 전쟁을 겪으면서 잘은 모르지만 그 악몽과 함께 섞여 섹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였고 그런 억압 속에서도 나의 의식과는 다르게 나의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성적 충동이 강하게 나타나고는 했던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당시 미군들이 어린 꼬마들에게 초콜렛을 주면서 자기의 성기(性器)를 보거나 만지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혹여 그 광경이 부모한테 발각되면 오히려 두들겨 맞는 쪽은 아이들이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나에게 섹스는 강하게 솟아오르는 충동인데 나는 그것을 범죄시하는 경향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그러한 성향은 내 유년시절에도, 청년시절에도 지속되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해소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을 해소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내가 지금에야 깨닫게 된 영혼의 문제로 섹스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최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돈과 권력과 섹스‘라는 책인데 기독교 관련 서적이다. 그것을 보면서 섹스에 관한 것을 나는 아직 테마로써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점에 관한 한 무언가 결론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 <무릎과 무릎사이>를 만들 때는 제목에서 먼저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것에 맞춰 시나리오를 썼었다. 그러다보니 나를 여성화시켰고, 말하자면, 나를 여성의 입장에 놓고 문화에 의해 강간당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흥행성까지 고려해야하는 상업적 마인드와 겹쳐 마치 사생아처럼 태어난 것이었다.

과부춤 1983
영화 '과부춤'(1983)/사진출처=네이버

김시무= <과부춤>에서도 인상적인 정사씬이 있다. 대학교 다닐 때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단칸방에서 가난한 청소부 부부의 이불속 정사장면이 그렇다. 하나도 야한 장면이 아닌데 두 사람의 은밀한 몸짓들과 표정이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대단히 리얼한 정사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장면에 부여하고 싶은 의미가 있다면?

이장호= 슬픈 방사(房事)다. 가난한 부부들의 일상이다. 거기서는 다음날 청소부가 죽는다. 마치 죽음을 예견한 듯 사랑하는 아내와 최후의 합궁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굉장히 처절하고 아름다운 정사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김시무= 실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당시 다른 에로 영화들에선 남녀가 거의 누드상태로 좋은 침대에서 야한 조명 아래서 온갖 체위를 하면서 야한 포즈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인 표현방식이었는데, 리얼리티는 떨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선 정말 리얼함이 느껴졌다. 또 섹스장면은 아니지만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안성기와 유지인이 데이트 중에 그녀가 나무에 올라가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제목의 의미를 영상 이미지만으로 풀어낸 명장면중 하나라고 본다. 어떻게 구상했는가?

이장호= 나를 평가할 때 필요한 것은 내가 즉흥연출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현장에서 그 분위기에 맞게 콘티를 짜는 편이다. 미리 짜인 계획성에 따라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촬영 장소에 가서 헌팅을 한 뒤에야 비로소 자세하게 콘티를 작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리 계획하게 되면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현장용이 아니라 책상용이 되기 때문이다. 신상옥 감독님이 현장연출 스타일이다. 나도 십여 년 동안 현장을 쫒아 다니면서 그러한 연출방식이 몸에 배어 직접 현장에 가서 그곳 분위기를 봐야 그 다음에 연출을 할 수 있는 그런 기질을 갖게 되었다.

나 자신은 이런 표현을 쓰길 좋아하는데, 천수답(天水沓)이라고 전적으로 하늘에 의존해서 짓는 농사가 있는데, 나의 연출이 바로 그렇다. 천수(天水) 농경 방식이랄까? 여건이 잘 맞아 떨어지면 내가 원하는 좋은 장면들을 찍을 수 있고 연출도 술술 풀린다. 물론 현장 상황이 안 좋으면 그에 따른 데미지도 크다.

어쨌든 요즘은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연출가는 거의 없다. ‘괴물’을 만들어도 그렇고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반드시 그에 따라서 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내가 가장 아꼈던 배창호 감독도 철저하게 계획에 따라서 연출을 한다. 그런데 나는 상상력이 빈곤해서 그런지 책상머리에 앉아서 계획을 짜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아예 그런 방식을 포기해버렸다.

바람불어좋은날 네이버1980
영화 '바람불어좋은날'(1980)/사진출처=네이버

그런데 현장에만 가면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찍을 때도 운이 좋았다. 덕배(안성기)와 명희(유지인)가 경치 좋은 강변 나무그늘 아래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찍을 때인데, 그날따라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었다. 두 사람의 머리칼이 흩날리고 여자의 치마가 나풀거리면서 묘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이거다” 하면서 정신없이 레디고(Ready Action!)를 외쳐댔다. 바람이 제 때에 잘 불어 주어서 대형 선풍기 차가 따로 필요 없었다. 애초 제목에서 의미하고자 했던 것과 그 장면이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내 기질 중에 종교적인 것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런데 있지 않나 싶다. 나는 “나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게 누구겠는가? 나는 숱한 영화를 찍으면서 그러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그 예로 좋은 것이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촬영할 때인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강 전체에 걸쳐 물안개가 떠오르는데, 그 안개 속을 헤치고 조그만 배 한척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굿을 하는 배였다. 물안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장관(壯觀)이었다. 만약 그것을 미리 예측하고 기다렸다가 영화를 찍었으면 아마 그렇게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면서 그날 촬영할 것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강 전체에 물안개가 잔뜩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너무나도 신비한 광경이었다. 화면에서 보아도 신기하지만, 직접 봤을 때 그 느낌은 또 다른 것이었다. 나는 얼른 숙소로 가서 자고 있는 스태프들을 불러다가 촬영을 시작했다. 아마 그 날은 그 장면을 촬영할 순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침 현장에 가니까 무당을 태운 배가 실제로 굿을 하면서 물안개 핀 강 위로 떠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현장에서 모든 게 해결이 된 셈이다. 애초 계획은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천수답(天水沓) 형의 연출을 하다 보니 잘 맞아떨어지면 영화가 좋게 풀리고,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실패하는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나와 함께 작업을 하면 특히 촬영감독들이 당황하기 쉽다. 갑자기 현장에서 조건이 바뀌고 콘티가 바뀌니까 촬영감독으로서는 제대로 앵글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정일성씨 같은 경우에는 중간에 관두기도 했다. 내가 상황에 따라 변덕을 부리니까 같이 일하기가 힘들게 된 것이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대단히 꼼꼼하고 자신만의 영상미를 추구하는 베테랑인데, 즉흥연출을 고수하는 나와는 상극(相剋)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러웠던 것은 장석준, 서정민 등과 같은 촬영감독들은 나의 그 같은 성격을 잘 이해해주고 묵묵히 도와주어서 마찰 없이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시무= 나도 <바람 불어 좋은 날>을 보면서 나무그늘 아래서의 데이트 장면이 영화의 제목과 굉장히 잘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의 라스트 씬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놀라운 장면이었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80년대 후기작품 중 <나그네>를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본다. 분단의식과 샤머니즘을 융합시키려 한 매우 이색적인 시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라스트씬에서 산을 배경으로 거대한 손이 펼쳐지면서 끝을 맺고 있는데, 나는 그 장면을 무당이 될 팔자의 손금을 클로즈업시킨 것으로 받아들였다. 영화 중간에 최간호원(이보희)이 남자(김명곤)에게 자신의 손금이 특이하다면서 한번 보라고 한 장면이 문득 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발 나아가 나는 그 손금의 선(線)이 분단의 경계선을 은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제하의 동명소설을 연출하게 된 계기와 의도는 무엇인가? 분단과 무속(巫俗)은 모두 운명적인 것이 아닌가. 양자 모두 우리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고, 그런 연관성을 영화 속에 잘 풀어간 것 같다.

이장호= <나그네>의 원작을 읽다 쇼크를 받았다. 산 너머로 거대한 운명의 손이 딱 가로막는 그런 묘사가 소설에도 있는데, 그 장면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큰 쇼크를 받았다. 원래 미술학도였던 이제하의 소설은 지극히 추상적인 문체로 가득한 내용이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줄거리를 쫓다보면 사실 줄거리 자체에서 오는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읽는 사람의 감수성과 맞아 떨어지면 영상적으로 크게 충격을 준다.

배를 타려던 최간호원이 굿판을 구경하다가 신이 내려 무녀로 돌변했을 때 저 산 너머로 거대한 손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지금처럼 CG가 발달된 시절이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좀 더 그럴듯하게 거대한 운명의 손을 표현했을 텐데, 그때는 특수효과 기술이 조야하던 시절이니까 다소 투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화면상에 거대한 손의 모양이 나타났다는 것은 상반된 두 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손을 들어 환영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또 이와는 반대로 오지 말라고 제지하는 거절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환영과 거절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의미가 공존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분단 상황에서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연출하면서 가능한 한 그러한 의미가 드러나도록 했지만, 아마도 원작자인 이제하의 경우도 그러한 의도를 갖고 있었을 터이다. 이제하는 소설을 쓸 때 자동기술법(automatism)에 의존한다고 하는데, 이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마치 탐정소설을 쓰듯이 미리 플롯구성을 해놓고 쓰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소설을 쓸 때 자신에게 떠오른 이미지에 맞춰서 붓 가는 대로 써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자체가 독서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의미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도 영화를 만들면서 이제하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원작의 의도)에다 샤머니즘적인 감수성이 그대로 원시적으로 드러나길 바랐다. 내가 샤머니즘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주변에서 샤머니즘을 접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민족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의식화된 샤머니즘의 역사적인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배 권력은 늘 특정 종교를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 이용했는데, 고려시대 때 불교의 장려는 그 대표적인 예다.

처음 고조선 때부터 토속적 혹은 민속적 신앙이 있었겠지만, 고려시대에 불교가 장려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숭유(崇儒) 억불(抑佛)이 실행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유교가 국가통치이념으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던 조선 말기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판도변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나 주변으로 밀려난 것은 우리 민속적 신앙인 무속이었다. 이것이 권력과 손을 잡아 종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면 민속 신앙이 메이저급 종교가 됐을 텐데 항상 배척을 당했던 것이다. 민속 신앙이 국가적 종교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 샤머니즘인데, 이는 그러나 우리 정서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분단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강대국들의 헤게모니라는 틀에서 이뤄졌고, 통일이란 것도 같은 틀 속에서 가능한 일이라 할 때, 분단과 통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마치 거절과 환영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거대한 손의 운명처럼 그렇게 분단이 주어졌고, 그리하여 통일을 염원하게 된 것이다. 주류 종교로부터 소외당하고 밀려난 민속 신앙인 샤머니즘적 운명 속에서 분단과 통일의 변증법적 융합을 꾀하고 있다고 할까? 그러나 이는 논리의 문제도 아니고 개연성 있는 스토리의 문제도 아니다. 이제하의 원작도 그렇고 나 자신의 연출의도도 그렇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그네>이라는 추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분단의식과 샤머니즘의 운명적인 만남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5일 부산 노보텔 엠배서더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2018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에 초청된 이장호 감독(사진 왼쪽부터 네번째)과 이용관 이사장(사진 왼쪽)과 강우석 감독(왼쪽에서 다섯번째), 이준익 감독(맨 오른쪽) 등의 영화인들./사진=박상훈 기자 

김시무= 나는 소설은 나중에야 읽었는데, 나도 영화를 보면서 물안개의 장관(壯觀)에 압도되었다가 그 다음 순간 산을 배경으로 커다란 손의 클로즈업이 불쑥 나왔을 때 전혀 예측을 못한 결말처리라서 대단한 영상적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샤머니즘은 사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배척(排斥)의 대상이 아닌가. 일종의 미신으로 치부되니까 말이다. 감독님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상충되는 듯한 그 샤머니즘을 오히려 포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특히 <과부춤>에서 무당 금선의 진혼굿과 나중에 그녀의 해산을 돕는 장면은 화해를 나타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영화 속에선 감독님이 잘 조화를 시키고 있지만,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양자 간의 괴리감은 없었나? 토속신앙과 기독교 정신과의 화해를 추구하고 있는 것인가?

이장호=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보면 샤머니즘이란 것은 종교적인 것의 가장 기초적인 바탕이 된다. 그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말이다. 거기서부터 조금씩 종교로 발전해간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불교를 신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애초에 샤머니즘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불교라는 철학이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이나 불교나 다 종교적 성향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내 인생에서 마지막 단계의 종교이다. 내가 받아들인 기독교는 말하자면 인간을 구원하는 종교인데, 여기에는 인간은 죄로부터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 전제된다. 그리하여 우리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이 나타나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한다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다. 바로 이 기독교가 나에게는 제일 마지막 단계의 종교인데, 그러나 그 토대는 결국 다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지적했듯이 샤머니즘이 그 근저에 깔려있고, 나의 경우 그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불교를 거쳐 마침내 기독교로 차례차례 종교적 성향을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불교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반야심경에 심취했었고 대마초 사건으로 4년간 간 쉴 때 반야심경에 빠져있었다. 1980년대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찍을 때, 나는 기독교로 귀의를 했고 그때부터는 나름대로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열성적인 신자는 아직 못되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10여 년이 지나고 1992년에 다시 교회에 나가면서 회개를 하고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 있어 샤머니즘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적인 뿌리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주인공 이장호 감독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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