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사랑, 혼자 품은 사랑의 고통…연극 '라빠르트망'
흐르는 사랑, 혼자 품은 사랑의 고통…연극 '라빠르트망'
  • 주하영
  • 승인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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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연극 '라빠르트망' 공연 사진/사진=JD Woo, LG아트센터
연극 '라빠르트망' 공연 사진/사진=JD Woo, 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사랑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기도 하고, 집착과 소유욕을 불태우기도 하며, 평생을 말 한 번 못해보고 마음 속에 품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매번 다른 상대와 사랑에 빠지며 움직이는 사랑도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바그너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통해 사랑이라는 폭발적 감정의 고통과 아픔을 노래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리니." 하루를 못 만나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숨을 거둔다는 '사랑의 묘약'을 마신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불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은 본질적으로 욕망이다.

약에 취한 듯, 환상 속에 잠긴 듯,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정지한 곳에 상대와 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세상의 감정이다.

'나 없이 그대 없고, 그대 없이 나 또한 있을 수 없는' 그들의 절절한 사랑은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고 나마저 휩쓸어 어디론가 전혀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는 엄청난 강도의 소용돌이다.

취른트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고통이고 포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격정과 그로인한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가?

연극 '라빠르트망'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멀리할 수 없는 상대를 향해 끝없이 질주하는 한 여인과 그로 인해 황폐해진 다섯 사람의 사랑이 있다.

'라빠르트망'은 연출가 고선웅이 1996년 질 미무니 감독의 프랑스 영화 '라빠르망'에 새로운 해석을 더해 각색한 작품이다.

뱅상 카셀, 모니카 벨루치의 출연, 예상치 못한 결말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2004년 조쉬 하트넷 주연의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로 리메이크 되고 또 다시 2016년에 재개봉되어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 '라빠르망'은 2017년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새로운 사유와 소통의 기회를 찾았다.

연극 '라빠르트망'에는 세 남녀가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을 향해 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그 한 가운데 알리스와 막스가 있다.

알리스는 첫눈에 반한 사랑인 막스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멀리서만 지켜보던 어느 날, 막스는 알리스의 유일한 친구인 리자에게 한 눈에 반한다. 막스와 리자의 사랑 앞에서 알리스는 침묵을 지킨 채 고통 속에 지켜보는 일만을 계속한다. 혼자 품은 사랑은 점점 자라나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질투심은 모든 이성을 마비시킨 채 막스와 리자를 갈라놓고 리자 대신 자신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간절한 시도들로 채워진다.

연극 '라빠르트망' 공연 사진/사진=JD Woo, LG아트센터
연극 '라빠르트망' 공연 사진/사진=JD Woo, LG아트센터

이야기는 흔하고 진부하다. 그러나 흔하기 때문에 누구의 삶에나 한번쯤은 있을 법한 개연성을 품게 되고, 진부하기 때문에 알리스에게 무조건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질투심에 눈 먼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수많은 어리석은 일탈들에 이미 우리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신문에서, 문학작품 속에서, 역사 속에서 사랑에 눈멀고 귀먹은 사람들이 저지른 비이성적인 어리석은 행위들은 넘쳐난다. 선사시대 이래 인간은 언제나 사랑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였고, 그럼에도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존재이기에 위대하다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사랑의 열병으로 인한 고통과 환희, 두려움과 상처는 예술의 가장 흔한 소재가 되어왔다.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고, 나를 이해시키고 싶고, 나를 알리고 싶고, 포옹 받게 하고 싶고, 누군가가 와서 나를 데려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알리스가 그러했다. 자신을 이해하고 싶었고, 막스에게 이해받고 싶었고, 막스의 품에 안기고 싶었고, 막스가 자신에게 다가와주기를 바랬다.

'사랑한다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만을 꿈꾸며 욕망하며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는 것'을 의미하기에 알리스는 말한다. "사랑에 너무 빠지면 상처를 준다는 생각을 못해요. 할 수 없어요."

알리스는 자신의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는 혼자 품은 사랑 그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거짓된 주체를 만들어 간다. '리자'가 되어서라도, 구박당하고 매질당하는 '개'가 되어서라도 사랑을 놓칠 수 없기에.

연극 '라빠르트망' 공연 사진/사진=JD Woo, LG아트센터
연극 '라빠르트망' 공연 사진/사진=LG아트센터

각색에는 위험이 따른다. 원작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실망을,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몰이해를, 원작을 싫어했던 사람이라면 아예 극장을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각인된 인지구조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연극 '라빠르트망' 역시 1996년 영화의 여운이 진한 사람에게는 실망으로, 영화를 전혀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의 어려움으로 다가올 위험이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단 하나의 관점으로만 해석될 수 없듯이 누군가의 작품 역시 다른 관점과 해석을 더할 수 있다.

영화 '라빠르망'이 사랑의 욕망과 사건의 전후사정을 꿰는 재미가 있다면, 연극 '라빠르트망'은 자신을 상실한 사랑의 고통과 상처에 좀 더 주목한다.

생텍쥐페리는 말한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면 그 사랑은 오히려 더 가난해진다. 반대로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해야 한다. 다만, 나의 모든 것을 주고도 언제나 잃기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연극의 매력은 사유에 있다. 무대 위의 삶의 상황이 던지는 질문에 함께 고민하고 해석하며 판단해 나가는 관객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 연극이다. 영화가 지닌 흥미진진함은 덜할지 모르지만 연극 '라빠르트망'은 분명 시간과 강물처럼 흐르는 사랑의 고통과 그럼에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내가 하는 사랑이 이해받고 있는지, 나를 사랑한다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면, 연극 '라빠르트망'을 통해 스스로 질문에 답해보길 권한다. '당신의 사랑은 안녕한지'. 11월 5일까지 LG아트센터.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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