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부드러운 시간 / 도종환
새로운 것은 유연하다
우듬지 제일 높은 곳에서
한 뼘 더 올라가는 잎은
강한 잎이 아니라
몸이 부드러워진 잎이다
내가 좋아하는 겨울 백양나무도
부드러운 이면을 지니고 있다
사나운 짐승들도 부드러운 시간에
서로 사랑한다
외피가 돌처럼 딱딱한 벚나무도
연분홍 꽃을 피울 때는 제 안에서
연한 마음을 꺼낸다
그대가 가만히 열리는 시간도
부드러운 시간이지 않는가
- '고요로 가야겠다' (열림원, 2025)
세상은 생각한 대로,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한 소년은 멀리 떨어져 지내던 부모님께 안부를 여쭈고자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마음이 잘 전해질지 궁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과 가까워졌고, 그 글은 훗날 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종환 시인의 시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이 오래 머뭅니다. 날씨와 나무, 별과 계절의 변화에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시대의 아픔, 그리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삶까지. 그는 특별한 이야기를 찾기보다 우리 곁의 평범한 삶을 오래 바라보며 그 안에 깃든 이야기를 시로 옮겨왔습니다.
도종환 시인은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 등 5편을 발표하고, 1985년 ‘실천문학’에 ‘마늘밭에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습니다. 이후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교육 운동으로 해직과 투옥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뒤에도 시인의 길을 놓지 않았습니다.
1986년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접시꽃 당신’은 세상을 떠난 아내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많은 독자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등을 펴내며 사랑과 상실, 자연과 시대, 인간의 삶을 꾸준히 노래했습니다.
신동엽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쌓아왔습니다. 2025년에는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를 펴냈고, 이 시집으로 2026년 제36회 편운문학상을 받았습니다. 2026년 6월에는 산문집 ‘상처와 결별하기’를 펴내며 상처와 회복, 관계와 삶에 관한 생각을 독자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도종환 시인의 시에는 흔들리는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습니다. 상실 속에서도 사랑을 기억하고, 아픔을 지나 다시 살아갈 힘을 건네는 시입니다. 어쩌면 그가 오래 바라본 것은 거대한 시대보다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우리 곁에 조용히 다가와,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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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칼럼니스트
시인, 교수, 연기지도. 2023년 ‘월간 시’ 34회 추천 신인상으로 등단, 시담작가회 회장, [감성지수 시낭독회] 진행. 저서로는 시집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된다』, 동인시집 『공감과 치유』, 『지구의 솜털을 숏커트로 잘랐다』, 『나 때와 라떼』, 『축봄합니다』 가 있으며,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 소개 됨. 상명대 영화과, 백제예대 연예매니지먼트과, 국제대 모델과의 겸임교수와 김지수 연기 아카데미 학원장을 역임했으며, 배우 권상우, 송혜교, 김선아, 남궁민, 아이유, 김다미 등 연기 지도. 저서 『대한민국에서 연예인 되는 법』이 있음. 현재 단국대 공연예술학부 연극과 초빙교수,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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