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 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 괴물, 용혜(김진영 지음, 안전가옥, 2025)
'괴물, 용혜'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비슷한 결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프랑켄슈타인' 속 인물들은 모두 창조된 무언가를 괴물이라 칭한다. 하지만 책을 읽은 우리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진짜 괴물임을 안다. 인간성은 무엇인가. 괴물성은 또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하게 된다.
주인공 용혜는 특이한, 혹은 징그럽다고 느낄만한 식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식성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숨어있다. 등장인물 재현은 이를 밝히고 과거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려 한다.
책에서는 이런 특이한 식성을 가진 이들을 괴물이라 칭했다. 재현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을 아는 이들은 대부분 괴물이라 여겼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괴물이라고 불리는 특성을 가진 용혜는 괴물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괴물로 보일 지경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이는 사람으로 지칭된다. 폭력을 당하는 사람은 괴물로 지칭된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과 괴물을 가르는 것일까? 단순히 식성 때문이라기엔 용혜는 누구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잘 살아가고 있지 않던가?
멀쩡한 사람들은 되려 윤리적으로 결여된 모습을 보이고, 특이한 식성을 가진 용혜는 누구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인간과 괴물의 경계를 가르는 것은 윤리의 선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살펴보길 바란다.(황수현 / 칼럼니스트·비평연대)
■ 조선무속고(이능화 지음, 서영대 옮김, 창비, 2025)
우스개로 목사도 점을 본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점사와 사주풀이, 관상이 만연해 있다. 이제는 지상파나 유튜브에서도 무당이나 복사(卜師)가 나오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상전벽해라 해도 못 믿을 일이다.
사학계에선 단군이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을 겸했다고 해석하며, 이능화 역시 한국 무속의 시초를 단군에게 둔다. 우리 역사의 시작부터 샤머니즘(shamanism, 巫)과 함께했다. 그렇게 이어진 무속 신앙은 불교와 유가 같은 체계적인 종교·사상에 자리를 넘겼다.
토착이자 오래 살아남은 신앙답게 불교와 유학의 핵심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사찰의 산신각처럼 영향을 주기도 했다. 융통성과 확장성, 생존 의지가 결합한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무속은 전통예술 가운데 민속음악과 예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는 우리 역사 속에 남겨진 무속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비록 실록이나 문집, 관찬 문헌을 인용한 데에 그치고, 이능화의 견해도 회의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책에 실려있듯이 한 왕조 내내 멸시받고 차별받았던 역사의 한 면을 살펴보았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아무리 ‘이능화’여도 말이다.
서울 각지에서도 울리던 북과 징 소리, 무녀의 주문과 같은 노래는 개발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부서졌다. 지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배움이 짧은 촌로의 걱정과 시집살이에 한숨 쉬는 노모를 위로하던 통로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것은 공동체를 엮고 병을 치료하며, 삶을 축복하고 죽음을 애도하던 그 역사의 한 면이었다.
그렇기에 '조선무속고'는 단순히 무당과 굿, 무속과 무풍(巫風)을 모아 놓은 기록을 넘어선다. 행간과 맥락에 숨어있는, 글을 알고 지배하던 이들의 기록이 말하지 않는 사실을 깨달으면, 기댈 곳이 없는 부녀자와 민중이 기대고 살았던 존재들이 보일 것이다. 위로와 공감의 존재들 말이다.(윤인혁 / 문화예술평론가·문화기획자·비평연대)
■ 백의 그림자(황정은 지음, 창비, 2022)
도시의 화려한 표피 이면에는 틈새가 있다. 그 사이, 바위 틈새 자라난 초록과도 같은 삶들이 있다. 애쓰지 않는다면 그 삶들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통의 작고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것들은 어딘가 깊은 곳에서부터 뿌리내려 나와 당신의 세계를 구성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세계를 풍부히 채워나가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틈새의 삶을 발견해야 한다. 거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는 그 틈새에 관한 이야기다. 슬럼이라 불리는 무수한 틈새 사이에서 오래된 전구가게 오무사 노인은 느리게 움직인다. 은교와 무재의 풋풋함은 살아 숨쉰다. 그 오래된 전자상가의 한 동이 철거된 빈자리에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곳의 이야기는 서울의 세운상가와 닮아있다. 사회가 그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재단하는 동안, 그 속의 무수한 틈새들은 좀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세운을 이루는 한 동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녹지가 조성되었다. 수차례 모습을 바꾼 녹지는, 그것이 본래 담고 있던 빛과 그림자, 쇳소리와 기름 냄새보다는 작았다.
이 책이 도시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새로운 지도가 되어줬으면 한다. 당신이 당신의 바깥 세계에서 당신에게 없던 것들을 보았으면 한다. 틈새를 발견했으면 한다. 거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네요. 라고 멍하게 말했다. (중략)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며 잔디밭 너머를 바라보았다.” (123쪽)
(설명문 / 건축가·문화평론가·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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