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 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 느낌의 공동체(신형철 지음, 문학동네, 2011)
사계가 나름 나름으로 독서의 계절이지만 6월은 특히나 도서전의 계절이다. 도서전이란 높은 확률로 내향인일 출판사 직원들이 심연 속 외향성을 끌어올려 대면한 독자들에게 책을 영업하는 자리다. 이 책이 참 좋은 책인데... 그 ‘좋음’을 어떻게든 와닿게 하고픈, 발을 동동 구르는 원념이 원기옥처럼 집약된 행사인 것이다. 이 거사를 앞둔 나, 출판 마케터. 사고 싶어지는 책 설명을 위해서는 정확한 찬탄의 어휘를 채집해야 하므로 책장의 ‘신형철 전집 존’으로 향한다.
신형철은 별로인 게 왜 별로인지 보다 아름다운 게 왜 아름다운지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문학평론가다. 이에 비판하는 이들도 있으나... 아름다운 걸 어쩌라고. 내가 소개하려는 '느낌의 공동체'는 평론집이 아니라 산문집이기는 하지만. 여튼 문학에 대해 쟤는 어떻고 너는 어떤지 삿대질로 품평하는 쿨(하고 싶은)남이 되는 대신 너를 읽고 내 세상은 영영 달라졌다며 마침표의 바짓가랑이에 절절하게 매달리는 그가 좋다.
'느낌의 공동체'에서는 지금보다 약 20년 젊은 신형철이 기형도의 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뿐 아니라 유재하며 언니네 이발관의 가사, 이창동의 영화 등에 대고 다채롭게 사랑을 고백한다. 적확한 어휘로 고백하는 그 날카로움으로 사회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희미하게 부유하는 느낌을 명확한 단어로 포착하고 싶은 이들, 나를 통과한 느낌과 가깝고 근사하게, 또 멋지고 근사하게 칭찬하거나 비판하고 싶은 이들을 '느낌의 공동체'로 불러오고 싶다.(유희선 / 출판마케터)
■ 중동태의 세계(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동아시아, 2019)
"인간이 애초에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이라는 김재인 교수의 추천사를 보자마자 이 책을 사고 싶었다. '중동태'라는 낯선 말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이 책이 던지는 다음의 질문이었다.
'인간은 정말 자기 행위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존재인가?'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판단할 때 "네가 선택했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선택과 의지는 같은 말이 아니다. 어떤 행위는 오롯이 내가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과거의 조건, 몸의 반응, 관계,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생겨난 결과일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최근에 편집한 '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저자 니클라스 브렌보르 역시 '중독'이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고쿠분 고이치로는 인간의 행위를 능동과 수동이라는 이분법적 언어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는 브뤼노 라투르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라투르가 행위자를 인간 주체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물로까지 그 관계망을 확장했다면, 고쿠분은 행위의 문법 자체를 의심한다. 요컨대 두 사람 모두 "이건 대체 누가 한 일인가?"라는 익숙한 질문에 대한 성급한 확답을 유보하게 만든다. 물론 고쿠분이 책임을 회피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애초에 그런 결론을 내리는 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 판단의 지연 속에서 책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질문된다.(맹준혁 / 출판편집자·콘텐츠기획자)
■ 작가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버리는가(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최민우 옮김, 휴머니스트, 2026)
작가들은 작품으로 말하지만, 때로는 작품보다 더 솔직하게 창작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작가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버리는가'는 헤밍웨이, 잭 런던, 헨리 제임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마크 트웨인, 에드거 앨런 포 등 세계 문학사의 거장들이 직접 쓴 창작론과 문학론을 한데 모은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서로에게 동의하기보다 자주 반박하고 논쟁한다는 데 있다. 소설은 삶을 재현해야 하는가,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작가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 정답은 없지만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 속에서 독자는 작품 뒤에 숨은 작가의 정신세계를 만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는 훌륭한 교과서이고, 독자에게는 문학을 더 깊이 읽게 만드는 책이다. 작가의 영혼이 머무는 밀실에 잠시 초대받는 기분을 선사한다.(김미향 /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 이 일기는 읽지 마세요, 선생님(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정미영 옮김, 우리교육, 2007)
최근 다시 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불현듯 떠오른 책이 있었다. 어릴 적 학교 도서관에서 홀린 듯 집어 들었던 '이 일기는 읽지 마세요, 선생님'이다. 학기 중과 여름 방학마다 정해진 분량의 일기를 써서 제출해야 했던 기억은 내게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진솔한 일상을 담되, 나와 매일 마주치는 타인에게 반드시 그 내용을 보여야만 한다는 전제 속에서 지어내기, 감추기, 드러내기를 선택적으로 수행하던 기억들. 당시에는 일기가 감정의 창구라기보단 무엇을 드러내야 하며 또 드러내지 말아야 할지를 정교하게 분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연습 같았다.
하지만 소설 속의 던프리 선생님은 학생이 쓴 일기를 읽어도 될지, 읽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선택권을 일기의 주인에게 넘겨준다. 그래서 티시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속 응어리를 일기로 풀어내며 숨 막히는 현실을 조금씩 헤쳐 나간다. 티시가 그 고통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매주 쓰는 일기의 상단에 남길 수 있는 “읽지 마세요, 던프리 선생님”이라는 문구 한 줄과,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는 어른의 존재다.
아프지 않은 성장 같은 것은 없다지만 적어도 그 시간 속에서 잠시 몸을 피할 안전지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리고 던프리 선생님이 지킨 그 사소한 약속은 “나는 네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메시지가 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이 책에서 새롭게 눈길이 간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는 일은 쉽지만, 정작 스스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책은 던프리 선생님이 제안한 특별한 “일기 쓰기의 규칙”을 통해, 아이에게 정말로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따뜻하고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김도경 / 출판편집자·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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