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지렁이 키우지렁 外
[숏평 - 새로운 서평] 지렁이 키우지렁 外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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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연대]김상화·배희주·김수연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 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지렁이 키우지렁 (김지원 지음, 주니어RHK, 2026)

지렁이 키우지렁(김지원 지음, 주니어RHK, 2026)

이만큼 위트 있는 지렁이 키우기 안내서가 또 있을까? ‘지식 그림책’으로서의 정보도, ‘반려 일기’ 특유의 애정도 모두 녹아 있으면서 작가의 유머까지 대단한 지렁이 키우기 책이 출간됐다. 늘 반려동물을 갈망했지만 여건상 어떤 동물도 키우기 어려웠던 저자는 어느 날 “지렁이 분변토 워크숍”에 참석한다. 지렁이 분변토는 화분에 넣어 주면 식물이 튼튼해지는 친환경 비료였기 때문. 분변토가 더 필요하면 지렁이를 직접 키우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저자는 스무 마리 반려 지렁이와의 첫 동거를 시작하고… 그렇게 어느새 1,000마리 지렁이의 집사가 된다.

책은 지렁이와 함께하는 삶을 ‘안내’하는 동시에 ‘영업’한다. ‘안내’는 논픽션이다. 지렁이 몸체의 생물학적 구조를 알리고, 지렁이가 살 수 있는 환경과 지렁이 집 관리법을 그린다. 지렁이의 다양한 먹을거리는 4단 대문 접지로 널찍하게 그리고, 지렁이와 함께 사는 벌레들과 지렁이 똥 활용법도 짚어 낸다. 집에서 처음 지렁이를 키울 때 필요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부족함 없이 그려진다.

그 사이사이에 쉬어가기 코너처럼 ‘영업’ 면이 등장한다. “통속 지렁이 인터뷰”와 같이 의인화된 지렁이로 픽션이 그려지거나, “렁생 최고 위기 1 무더위”처럼 저자가 지렁이와 겪은 특별한 일화들이 한 페이지 카툰으로 등장한다. 개체 구분이 어려운 각각의 지렁이들에게 저자가 이름(지영이, 지민이, 지용이…)을 붙여 보려 노력한 대목도 있다. 덕분에 책장을 넘기다 보면 징그럽던 지렁이가 점점 친근하게 느껴지고, 급기야는 사랑스럽게 보일 때도 있다.

오늘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비인간 존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감각’ 같다. 분열이 치닫는 시기. 생김새가 전혀 다른 낯선 생물종과 나 사이에 꽤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다 보면, 또한 그보다 많은 차이점에도 우리가 결국 함께 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다 보면, 오늘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하여 대혐오의 시대. 지렁이마저 “징그럽다”며 혐오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우리가 혐오하는 이유는 그저 상대를 잘 몰라서일 수 있다고.(김상화 / 출판편집자·비평연대)

김상화<br>
김상화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맥파이앤타이거 지음, 자기만의 방, 2022)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맥파이앤타이거 지음, 자기만의 방, 2022)

매일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한 겹 한 겹 쌓아가다 보면 조금은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리추얼이 많다고 한다. 어쩌면 하루를 새롭게 만드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다도는 왠지 제대로 배워야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함이 있다.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은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를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한다. 나에게 맞는 차를 찾는 법부터 찻잎을 우리는 방법과 도구까지 차를 일상에 들이는 과정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너무 정신없는 날이 이어질 때면 나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짧게라도 필요하다. 이 책은 차를 즐기는 모든 시간이 결국 나를 알아차리는 일과 닿아 있다고 말한다.

찻잔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은은한 향을 느끼고 오늘의 날씨와 오늘의 나를 살펴보는 일. 꼭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도 차 한 잔이면 충분하다. 차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도 괜찮다. 책을 읽는 동안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 들 테니까 말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차 한 잔이 오늘을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게 해줄지도 모른다.(배희주 / 출판 마케터·비평연대)

배희주<br>
배희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숨이 차지만(김연수 외 6명, 판미동, 2026)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숨이 차지만(김연수 외 6명, 판미동, 2026)

어릴 때는 달리기가 참 싫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잘하면 4등, 보통은 5등 도장이 쾅 찍혔으니까. 어느 날은 옆 친구를 꼬드겨 나와 비슷한 속도로 달려주라고 했었다. 달리기란 누군가에겐 매번 뒤쫓는 일, 부리나케 달려도 변하지 않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달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앤솔러지다. 고민거리를 안고, 어릴 적으로 되돌아가고, 맥주 한 잔의 여운을 안고… 그렇게 도달하는 곳은 같다. 달리며 온몸으로 느껴지는 살아있음과 점차 맑아지는 머리로 완주하는 순간이다. 달리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달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서문을 연 김연수 작가는 원하는 만큼 써지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다. 좋아했던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마음만큼 달려지지 않았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던 그는 문득 깨닫는다. 이건 날씨 같은 거라고. 잘하고 못하는 날들이 얼마나 지나가든 나는 그대로 있다고.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을 매일 하다 보면, 어느새 한계를 넘어 15분에서 30분을 달리고 있다.

달리기가 자주 삶과 치환되는 이유도 이런 의미에서다. 인간은 한 명분의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긴 경주를 한다. 최근 직장에서의 성과를 곧 나의 성공과 실패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바라는 만큼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은 그만큼 잘하고 싶고 이 일을 아낀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매일 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추월하는 사람들에 기운이 빠지고 지금의 내가 불만족스럽더라도, 그런 달리기를 조금은 좋아한다고, 숨이 차지만 즐겁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김수연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김수연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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