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外
[숏평 - 새로운 서평]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外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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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연대] 서민서·노신회·김성신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 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하미나 지음 / 물결점 / 2025)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하미나 지음 / 물결점 / 2025)

난 오랫동안 말의 신봉자였다. ‘명징하게 직조’된 문장을 말쑥하게 걸쳐 입고 다니고 싶었다. 스스로 말을 못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소통하고 연결되는 유일한 수단이 말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은 그런 의지가 없는, 대화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로 여겼다.

그런데 내 옆에는 항상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가 “아파”라고 하면 “어디가, 어떻게, 왜, 병원을 가”라고 했다. “그거 있잖아, 그거”라고 하면 “그게 뭔데, 말로 해! 말을 해!”라고 응수했다. 말을 못 하는 사람에게 말을 하라고 윽박지르기. 명백한 폭력이었다. 나는 내심 알고 있었다. 그가 왜 아픈지, ‘그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무엇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나는 왜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을 아는가. 그것을 안다고 시인하면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만 같았다. 예를 들어 연결이나, 사랑 같은 것.

“머리-글은 취약성을 내보이기를 극도로 꺼립니다. 머리-글은 울고 있는 여자, 우느라 제대로 말 못 하는 여자에게 윽박지르는 목소리, “제발 똑바로 알아듣게 좀 얘기해!” 할 때의 그 목소리입니다. “

이 책에서 하미나는 ‘머리-글‘과 ‘몸-글‘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몸의 언어를 머리-언어로 설명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영원히 이해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좀 말해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머리-언어로 몸을 설명하기. 이를 해내는 하미나는 나에게 있어 번역가이자 과학자이자 무당이다. 그는 어떤 삶을 지나온 것이기에 이런 사유가 가능한지 헤아리려 하면 아득해진다. 이 책을 감히 ’비평’하는 글을 쓰는 게 두려웠다. 그래도 용기를 낸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한다. 더듬거리며 해야만 하는 고백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아주 좋아한다.(서민서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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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서 

■ 모던 로맨스 (아지즈 안사리 지음 / 노정태 옮김 / 부키 / 2019)

모던 로맨스(아지즈 안사리 지음 / 노정태 옮김 / 부키 / 2019)

내 사무실은 대학교 부속 건물 안에 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옆 테이블에 앉은 대학생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려오는데,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 역시 ‘연애’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끊임없이 연애를 이야기하는 걸까. 그런 질문 끝에서 발견한 것이 '모던 로맨스'였다.

이 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아지즈 안사리와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함께 쓴 책이다. 저자들은 도쿄, 부에노스아이레스, 뉴욕 등 여러 도시에서 수백 건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사람들의 연애와 결혼관을 기록한다. 은퇴자 마을에서는 노인들에게 왜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했는지 묻고, 학생들에게는 연애 애플리케이션으로 상대와 나눈 대화를 여과 없이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주변 사람 중 괜찮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앱 하나만으로 전 세계의 예비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즉,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연애에 관해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훨씬 고민하고 따질 게 많게 된 것이다.

목차를 하나씩 넘겨 가며 우리는 연애를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바라보게 보게 된다. 또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저자의 특성 덕에, ‘사랑’, ‘연애’, ‘결혼’이라는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접근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노신회 / 스피치 앱 '또박또박' 대표·문화평론가·비평연대)

노신회

■ 기억의 선을 따라 걷다 (신지혜 지음 / 심화북스 / 2026)

기억의 선을 따라 걷다(신지혜 지음 / 심화북스 / 2026)

신지혜의 여행은 장소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의 문장은 목적지를 무심히 비껴간다. 대신 섬유처럼 가느다란 감정의 순간들을 집요하게 쓰다듬고 붙든다. 그가 여행지에서 건져 올린 기억은 어떤 거창함도, 수선스러움도 없다. 소소한 일상과 맞닿아 있는 작고 조용한 장면들이다. 문득 멈춰 선 발걸음, 손에 닿는 사물의 감촉,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미묘한 긴장과 설렘. 그 순간들은 읽는 이들 각자의 기억과 만나 다시 살아난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자신의 시간 속 어딘가에 놓여 있던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지혜는 여행을 설명하지 않는다. 여행 속에서 지나온 시간을 하나씩 건네고, 그 시간 속의 온기를 전한다. 아련하도록 아름다운 이 에세이는 이미 지나온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여행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이 끝없이 이어지고, 수만 가지의 답들이 독자의 내부에서 아주 천천히 완성된다.(김성신 / 출판평론가·비평연대)

김성신<br>
김성신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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