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47) 백악미술관의 두 서예 개인전서 두보와 이백을 느끼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47) 백악미술관의 두 서예 개인전서 두보와 이백을 느끼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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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개인전에서
혜원(蕙元) 김희정 작가의 개인전에서.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1,2층과 3층의 느낌이 다르다. 진한 묵향(墨香)이 전하는 맛은 같은데 묵향 속에 담긴 글씨의 멋이 다르다. 한쪽은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진지함이 있고, 다른 쪽은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발랄함이 풍긴다.

그런 멋진 작품을 보는 것은 눈이 누리는 안복(眼福)이다. 전시회장을 꽉 채운 붓글씨에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가슴은 뛴다.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 검은 것은 글씨고 하얀 것은 종이라는 것만 알지만, 코끝으로 전해지는 깊은 묵향(墨香)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인사동 백악미술관 1,2층에서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혜원(蕙元) 김희정(金熙正) 작가의 개인전 ‘회귀(回歸)’와 3층에서 볼 수 있는 홍우당(紅雨堂) 이윤희(李侖禧) 작가의 개인전 ‘행인(行人)’에에서 다름의 어울림을 즐긴다. 을사년(乙巳年) 세모를 따뜻하게 보내며 병오년(丙午年)의 큰복을 예약하는 것은 덤이다.

같음과 같음이 함께 하고
다름과 다름이 어울리는 한마당이다

글씨는 거울이라는데
하얀 종이에 까맣게 써 내려간 
글씨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명경지수라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이
1만시간이라는 땀이

진한 먹내음으로 풍긴다
길을 가는 사람의 돌아옴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길을 얻는다

- 홍찬선, '어울림' 전문.

회귀(回歸): 길고 어두웠던 숲을 지나 마침내 너를 만났어!

김희정 곽점초묘죽간
김희정 작가의 '곽점초묘죽간(郭店楚墓竹簡)'./사진=홍찬선

백악미술관 1층에 들어서면 3개면을 꽉 채운 작품이 두 눈을 휘어잡는다. 약1만3000여 자에 이르는 '곽점초묘죽간(郭店楚墓竹簡)' 중 ‘치의(緇衣)’ 편이 늠름하게 펼쳐진다. 곽점초묘죽간은 1993년 형문시박물관이 중국 호북성 곽점촌에서 발굴한 전국시대(BC475~BC221)의 초죽서(楚竹書)를 가리킨다.

이 죽간에 쓰인 ‘부드럽고 전아하며 수려한 풍격’의 글씨가 김희정 작가의 붓으로 재현됐다. 그 뒤에 발견된 '상해박물관장전국초죽서'의 ‘치의’도 함께다. 초죽간 서체의 특징과 다른 자를 다르게 쓰는 이체자(異體字), 소리가 서로 같거나 비슷해 빌려 쓰는 통가자(通假字) 등의 현상을 고찰하고, '예기(禮記)' 중 ‘치의’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김희정 이윤희 포스터
김희정·이윤희 서예 개인전 포스터 

이런 설명이 필요없다. 그냥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할 말을 잃는다. 글씨 한 자 한 자의 힘과 2200여 자가 내뿜는 열정이 말을 잊게 한다.

그저 ‘어떻게 이럴 수가~’를 되풀이할 뿐. 관객은 그저 보고 느끼지만, 작가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고 잠 못 이루는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까. ‘안록산의 난’으로 피난 간 황제를 뒤늦게 찾아가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시로 기록한 두보의 시사(詩史)를 느끼게 한다. 

김희정 회귀1
김희정 작가의 ‘회귀1’./사진=홍찬선

김희정 작가의 이번 개인전 주제는 ‘회귀(回歸)’다.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말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줄임말이란다.

김정환 서예평론가는 ‘김희정의 회귀’를 “붓놀림의 긍정을 뜻하는 행위의 영원회귀, 흔들림 없는 집중, 글자의 실존적 가치로 드러나는 작품의 영원회귀”로 해석한다.

“서예는 오랫동안 묵은 시간의 무게를 짊어온 장르이며, 오늘날 그 무게를 견디면서도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용기 있는 예술가의 몫”인데 “김희정의 작품은 ‘전통의 무게’와 ‘현대의 자유’ 사이를 아슬아슬하고도 아름다운 균형을 탁월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회귀(回歸)는 그냥 돌아오는 게 아니다
돌아옴은 처음 떠난 곳을 되찾아
첫마음으로 발걸음을 새롭게 내딛는 일이다

가는 동안 겪었던 아픔과
그 끝에서 맛보았던 눈물과
돌아오며 새김질한 회한을
바가지에 넣어 멋있게 빚는 비빔밥이다

회귀는 거저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돌아옴은 다시 나아가는 새 발걸음이기에
돌아오는 회귀가 맛난 비빔밥이기에

먹 가는 손에 힘이 붙고
붓 흐르는 글결에 멋이 피어난다
깊고 어두웠던 숲을 지나 마침내 너를 만나고*
짙은 묵향에 나그네가 걸음을 멈춘다 

* 김희정 작가의 서예개인전 '회귀(回歸)'에 전시된 작품 '회귀1'의 구절을 인용

- 홍찬선, '회귀, 돌아옴' 전문.

그랬다. ‘두보의 품격’을 물씬 풍기는 큰 작품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자유롭게 주장하는 ‘회귀1’부터 ‘회귀13’까지의 작은 작품이 ‘작지만 큰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했던 전시회와 방문했던 전시회에 대한 감상을 짧은 문장과 시로 쓴 ‘소품(小品)’이다. ‘회귀’가 그냥 돌아옴이 아니라 돌아와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보여 준다.

길고 어두웠던 숲을 지나 마침내 너를 만났어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기가 지났어
비로소 만난 너는 나를 위로하고 희망을 가져다주겠지…
그러나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네!!! (회귀1)

이제 가고 없는 그 옛날 그 시절 늙으신 어머니 내게
이 노래 가르쳐주실 때 두 눈에 눈물이 곱게 맻혔었네
이제 내 어린 딸에게 이 노래 들려주려니 내 그을린 두 빰 위로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소중한 추억에 눈물이 흘러 내리네 (회귀3)

행인(行人): 승당입실의 겸손을 만나다

이윤희 눈
홍우당 이윤희 작가의 '눈'./사진=홍찬선

1,2층을 지나 3층에 들어서면 다른 붓글씨의 세계가 펼쳐진다. 홍우당 이윤희 작가의 개인전 ‘행인345’는 재밌다. 붓글씨하면 떠오르는 딱딱함이 없다. 붓으로 즐겁게 노는 재치가 보인다. 아무런 제약 없이 있는 그대로 자유로움을 노래한 시선(詩仙) ‘이백의 품격’이 풍긴다.

“모란이 말을 건넨다. 그 꽃은 살아있는 것도 그려진 것도 아니다. 나만 들리도록 쿵하고 내려앉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적당히 어두운 실내를 느리게 걷는다. 글씨는 그런 것이다. 느낀다면 다가가고 또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납득하도록 노력하면서 익히다 보면 언젠가는 말이다”는 작가의 말처럼 “느껴 다가가 닿는” 작품이다.

이윤희 승당입실
이윤희 작가의 '승당입실'./사진=홍찬선

마루에 올라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매우 겸손하다

어깨를 펴고 성큼성큼 걷는 게 아니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조심조심 걷는다
 
셋 넷 다섯 사람이 함께
걸음을 맞춰 걸어가는 것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비는 윤동주 시인처럼

그래도 어쨌든 가기에
우기지 않고

꽝을 뻥으로 날려보내며
정신 차려 나간 글씨를 데려온다

- 홍찬선, '행인의 승당입실' 전문.

이윤희 물음표와 느낌표
이윤희 작가의 '?는 늘 필요해'와 '!느낌표'./사진=홍찬선
이윤희 점프와 패스
이윤희 작가가 쓴 jump(점프)와 Pass(패스)./사진=홍찬선

이윤희 작가는 붓글씨의 길을 얻었다. 한자를 쓰면서 터득한 필법(筆法)으로 한글과 영어 알파벳으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든다. 먹과 종이의 성질을 파악해 번짐의 미학을 실천하고, 느낌표와 물음표만으로 진한 감동을 물결치게 한다.

“이번 전시는 제가 승당(昇堂)하여 입실(入室)할 준비가 되었는지 보고하는 자리입니다. 둘러보시고 무슨 말씀이든 들려주신다면 앞으로 제가 스스로 팔을 흔들며 나아가는 데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 쌍큐!!”라는 말처럼, 한단계 뛰어오르기 위한 준비를 마쳤으니 더 높게 뛸 수 있도록 좋은 말을 건네도록 이끄는 겸손의 힘을 발휘한다.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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