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아홉 번째 책은 '나는 왼손 피아니스트입니다'(이 훈 지음/오늘산책)이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내겐 아직 왼손이 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남아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으로 오른팔을 절단한 오스트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이 되뇐 말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줄기 빛과 희망을 발견하는 인간의 모습은 더욱 숭고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인함과 가능성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음악이 우리들에게 즐거움 과 감동 그리고 치유를 선사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면 '나는 왼손 피아니스트입니다'의 저자이자 피아니스트 이 훈은 가장 이상적인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다.
그는 2012년 미국 유학시절 뇌졸중으로 왼쪽 뇌의 60퍼센트를 상실하고, 신체 오른쪽 부분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일상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활동에도 제약을 받게 될 신체가 된 것이다. 열 개의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여서 풍성한 음악을 구사하던 피아니스트가 음악가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까? 그는 현재 ’왼손 피아니스트‘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고 있다.
그가 쓰러진 이후 ’피아노‘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될 정도로 큰 고통 속에 있었지만, 미국의 교수님의 제안으로 피아노 앞에 다시 앉게 되었다. 그리고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중학교 때부터의 은사님으로부터 왼손을 위한 연주곡이 1천 개가 넘으니,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쳐보라는 응원들이 그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왔다.
이 훈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어본다. 한 손으로만 치는 연주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한다. 양손으로 연주할 때보다 풍부함이나 현란한 기교는 없을 수 있다고 하지만, 삶을 위한 ’숨‘과 음악을 사랑하는 ’기쁨‘의 목소리처럼 건반을 터치하는 한음 한음 진정성이 울려 퍼진다. 열정적인 연주로 우리가 왜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스란히 알려준다. 그의 연주는 왼손만 사용하는 연주가 아니다.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사랑과 용기를 준 주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같이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하는 손을 보면 건반 위에서 춤을 춘다고 생각했었다. 춤은 음악에 맞춰 흥에 겨워 추는 것으로 그야말로 ’자유로움의 상징‘이다. 어둠을 뚫고 나온 이 훈 피아니스트의 왼손 춤은 더 없이 빛을 발한다.
나는 다양한 빛의 모양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피아노 악보를 보면 음표들의 흐름들이 춤을 추는 율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축제 때 쏘는 밤의 불꽃놀이처럼 캔버스를 덮은 어두운 배경의 색은 음악을 타는 다양한 빛의 모양을 더욱 화려하게 만든다. 장애가 생긴 그의 삶은 모든 빛을 흡수한다는 반타 블랙(Vanta Black)을 칠해놓은 것 같았다고 했지만, 긍적적인 마음으로 장애를 이겨낸 연주는 오히려 어두움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로운 빛의 무늬를 그린다.
“음악은 꼭 두 손으로 해야 하는 연주가 아니라 그냥 음악 그 자체라는 걸 깨달았다.”
이 훈 피아니스트가 가장 존경하는 미국의 거장 왼손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가 한 말이다.
예술은 무엇을 꼭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없다. 독창성과 감동은 오히려 의외의 상황에서 더 쉽게 다가온다. 그의 왼손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무엇보다 장애가 있는 이들을 응원하고 예술로 연대하기 위해 매일 꾸준히 담금질한다. 그는 또한 오른손 기능을 회복해서 두 손으로 피아노 치는 날을 위해 노력한다.
나는 왼손잡이다. 붓을 잡은 나의 왼손은 그의 오른손도 함께 춤추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자유로운 빛의 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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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 칼럼니스트
화가이자 서평가. 대학에서 회화과를 졸업한 후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 '지오반니 뻬리꼬네' 이탈리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건너가 세랭게티 국립공원 내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주이탈리아 로마 한인성당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책읽는 아틀리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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