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세 번째 책은 '꿈꾸는 도서관'(나카시마 교코 지음, 안은미 옮김, 정은문고)이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밤의 도서관에는 온갖 동물이 찾아옵니다. 곰도 있습니다. 검은 표범도 있습니다. 기린도 얼룩말도 원숭이도 있습니다. 모두 옆 동물원에서 책을 읽으러 옵니다.’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이 문장은 나카시마 고쿄의 ‘꿈꾸는 도서관’에 나오는 어린이 그림책 ‘도서관의 고아’에 나온다. 이 문장은 책 속의 책에 있는 내용이라서 더욱 몽환적이고도 깊은 환상으로 나를 이끈다.
나카시마 고쿄의 ‘꿈꾸는 도서관’은 프리랜서 잡지기자로 활동하는 소설가 지망생인 ‘나’가 우에노 공원에서 ‘기와코’라는 행색이 독특한 노부인을 우연히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와코는 처음 만난 ‘나’에게 우에노 도서관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기와코는 도서관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고 제목은 ‘꿈꾸는 제국도서관’으로 정해놓기까지 했다. 우에노 도서관이 혹시, 자신의 역사와 마음을 ‘꿈꾸는 제국도서관’이라는 소설로써 세상에 알리기 위한 강력한 마법으로 그 둘을 만나게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기와코와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기와코의 수수께끼 같은 인생사의 자취를 찾아가며 기와코에게‘도서관’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책 표지를 열 때마다, 어떤 세계로 가는 ‘문’을 연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책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이다. 도서관의 문도 그렇다. 책을 열 듯이 도서관 문을 열면 그 세계를 받아들이는 존재는 모두 평등해진다. 전쟁 직후 판자촌에 살던 어린 기와코는 배낭에 넣어져 오빠의 등에 업혀 도서관을 다니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기와코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나는 고아입니다. 그런데도 왜 쓸쓸하곤 할까요’라고 문장이 시작되는 동화책 ‘도서관의 고아’를 기와코는 평생을 찾아다녔다. 도서관은 가난하고 쓸쓸했던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 환상과 편안함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열린 문이었을 것이다. 도서관을 주인공으로 책을 써달라는 부탁은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도서관에서 보살핌과 위로를 받았던 기와코는 도서관은 그저 책이 많은 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엄마’와도 같은 느낌으로 감각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우류 헤이기치’의 제목 없는 시의 구절이 인상적이면서도 아련하다.
문은 열릴지니/ 부모없는 아이에게/ 다리 잃은 병사에게/ 갈 데 없는 노파에게/ 명랑한 남녀추니에게/ 분노에 찬 야생 곰에게/ 슬픈 눈을 가진 남양 코끼리에게/ 저것은 /화성으로 향하는 로켓에 올라타는 비행사들/ 불을 피우고 둘러앉는 법을 터득한 고대인들/ 그것은/ 꿈꾸는 자들의 낙원/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곳
나는 책을 읽을 때 나에게 영감을 주는 문장을 발견하면 이미지를 상상한다. 동물에게 책은 먹이같이 유용한 것은 아니지만, 문이 열린 밤의 도서관은 동물들에게 책으로 이루어진 정글이 되어, 상상과 자유의 먹이를 마음껏 누리게 할 것이다.
또한, 나는 책을 열고 문장이 주는 환상적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먹이(?)를 얻는다. 그리고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하는 자유의 문을 연다. 꿈을 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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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 칼럼니스트
화가이자 서평가. 대학에서 회화과를 졸업한 후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 '지오반니 뻬리꼬네' 이탈리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건너가 세랭게티 국립공원 내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주이탈리아 로마 한인성당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책읽는 아틀리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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