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여섯 번째 책은 '해적 계몽주의'(데이비드 그레이버지음, 고병권·한디디 옮김, 천년의 상상)이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궁극적인 자유는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다시 질문하고“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집단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결정하는 자유”이다.
인류학자이고 아나키스트이며 활동가인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마지막 단독 저서 '해적 계몽주의'는 해적 왕국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류학적 관점을 반영한 역사서다. ’해적‘은 풀이하자면 ’바다의 도적‘이다. 그런데 상상의 세계에서 악당의 역할을 맡을법한 그들로부터 어떤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인류학자인 그레이버가 왜 해적에게 주목했는지, 볼테르나 애덤스미스가 거론될 만한 유럽의 계몽주의와 해적과는 어떤 관계를 갖는지 매우 궁금했다.
저자 그레이버가 2020년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그의 수업을 청강했었던 이 책의 공동 번역자 한디디는 그레이버가 종횡무진하며 새롭게 지평을 여는 다양한 연구들의 또렷한 주제는 ’자유‘의 문제로 향했다고 한다. 그레이버는 인간 사회를 만드는 것은 왕도, 엘리트도, 환경도, 언어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정치적 행동이며,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다시 질문하고,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자유야말로 궁극적인 자유라고 한다.
나는 궁극적 자유를 향한 여정을 떠나기 위해서는 그레이버가 지목한 해적선에 승선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마치 마법처럼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보물 지도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작은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그레이버는 마다가스카르 해안의 많은 해적 정착지에서 벌어진 급진적 정치실험을 ‘원형적-계몽주의’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18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계몽주의는 마다가스카르섬 해적들이 이끌었던 원형적-계몽주의적 실험들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훨씬 덜떨어진 버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의 이야기들을 매우 치밀하게 연구한 그의 실험적 역사 서술들은 나를 17세기 해적 공화국 ‘리베르탈리아’로 데려간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의 원조는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의 해적선의 갑판 위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나에게 깊게 자리 잡고 있던 기존 인식은 지각변동이 일어나며 바다의 파도에 흔들리는 해적선처럼 신비함과 놀라움이 혼재되며 넘실거린다.
해적단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임시변통적 평등주의에 헌신했으며, 해적 선장들은 외부인들에게는 무섭고 권위적인 악당으로서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들의 배 위에서는 다수결로 선출되었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언제든 해임이 되었다고 한다. 전투 중에만 명령을 내릴 뿐, 서열도 없었단다. 이러한 조직 형태가 말라가시 본토로 옮겨가서 대화의 기술이 뛰어나고 야심 찬 말라가시 여성들과 동맹했던 시도들은 해적 유토피아가 환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고 믿게 한다.
그레이버는 ‘그들의 대화가 세상을 바꾸었다’고 한다. 절도, 폭력 잔인함 등으로 뭉쳐진 공포스러운 해적들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은 대화와 숙의, 토론을 통해 일을 처리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계몽주의는 ‘대화’라는 형식과 연결된 지적 운동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캔버스를 펴고 정글의 도서관에 모여든 동물들을 그린다. 이번엔 질문과 대화를 하기 위해 모여든 동물들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지역과 부족 단위로 공동체의 문제들에 대한 결정은 ‘카바리kabary’라고 불리는 회합에서 이루어졌다는데, 이들은 카바리에 참여한 것일 수도 있겠다.
‘자유’는 질문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평등하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듣고 대화하는 과정을 그 무엇으로든 표현할 수 있다면 이미 보물섬에 도착해있는 것이다. 나는 캔버스라는 보물섬에서 붓으로 열띤 수다를 떨며 정치적 행위자가 된다.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자유를 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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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 칼럼니스트
화가이자 서평가. 대학에서 회화과를 졸업한 후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 '지오반니 뻬리꼬네' 이탈리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건너가 세랭게티 국립공원 내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주이탈리아 로마 한인성당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책읽는 아틀리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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