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6) 사람을 아끼는 시선을 만나는 역세권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6) 사람을 아끼는 시선을 만나는 역세권
  • 천지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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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여섯 번째 책은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박은주 지음/미디어샘)이다.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박은주 지음, 미디어샘)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아름‘의 어원 중 하나가 “팔을 둥글게 모아 만든 둘레”이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를 찾아 오늘을 지탱할 힘을 찾는 삶이지 않을까.‘

박은주 PD의 에세이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에는 17개의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역사가 깃든 공간의 숨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한 그가 건축과 책, 교육과 역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직접 취재하고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증언과 기록들이 담겨있다.

“PD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라는 문장을 머릿속에 새기며 방송사에 입사했었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美術)을 하는 화가로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가 재편집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팔을 둥글게 모아 만든 둘레’가 아름다움의 어원 중의 하나라는 저자의 설명처럼, 나는 그 둥근 둘레의 외양을 보는 아름다움보다, 둥글게 만드는‘마음’에 주목한다. 역사를 품은 역을 따라가며 박은주 PD의 시선을 좇아가다 보니, ‘나다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처럼 ‘나다움’의 모습을 여러 번의 감동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는 앳되고 젊은 남녀들이 많다. 나 또한 20대 때에 자주 놀러 다니던 곳이다. 신촌역에서 나와 10여 분을 걸으면 연세대학교 정문 바닥에 동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당신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곳, 유월민주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대학생 이한열은 그 사고로 27일간 사경을 헤매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스무 살 이한열의 시 '한 알의 씨앗이 광야를 불사르다'를 읊어보니, 나도 모르게 감격이 복받치고 눈시울이 적셔진다.

‘미치도록 이 세상을 살고 싶소.

조각조각 내 몸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이 눈물은 연민이나 슬픔 때문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팔을 둥글게 모아 만든 둘레처럼 살고 싶었던 젊은 청년의 ’아름다운 시선과 정신‘에서 전해지는 감동의 눈물이자, ’나 다움‘의 발견인 것이다.

맞잡은 시선의 기억, 72.7x60.6cm, Mixed media, 2025 ⓒ천지수

그림 이미지를 시각적으로만 표현한다면, 교차하고, 엮이고, 묶이고, 흩뿌리고, 젖어있고 번져있다. 하지만, 작업하는 동안 나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소망과 염원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맞잡은 손과 어깨, 아름다운 시선과 마음들이 역사적 시공간을 관통하여 전이된다.

내가 지금 누리는 자유와 행복은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시선을 가진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 만들어졌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마치 불꽃이 옮겨져 영원히 꺼지지 않듯이,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연결고리처럼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박은주 작가가 PD인 것이 참 고맙다. 그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갖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끊임없는 질문과 통찰력은 삶의 가치와 방향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그가 연출한 1980년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두 사진기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오일팔 증명사진관'은 제 56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은상을, 다음 해에는 '마흔세 살, 오일팔'작품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박은주 PD의 진정성이 해외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과 외침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기를 바라본다. 

천지수 칼럼니스트

화가이자 서평가. 대학에서 회화과를 졸업한 후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 '지오반니 뻬리꼬네' 이탈리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건너가 세랭게티 국립공원 내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주이탈리아 로마 한인성당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책읽는 아틀리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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