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1) 창덕궁 흥복헌서 경술국치를 새김질하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1) 창덕궁 흥복헌서 경술국치를 새김질하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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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흥복헌에서
창덕궁 흥복헌에서.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8월 22일부터 29일 사이, 창덕궁(昌德宮)의 흥복헌(興福軒)에 간다. 흥복헌은 왕의 침전(寢殿)인 대조전(大造殿) 동쪽에 딸린 익각(翼閣)이다.

이곳은 1910년 8월22일 어전회의가 열려 이완용 윤덕영 민병석 고영희 박제순 조중응 이병무 조민희 등 경술8적이 왜놈의 앞잡이가 되어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을 강탈당한 곳이다. 이 ‘강도조약’으로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하고, 대한제국 백성들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백성을 배반하고 나라 팔아먹은 윤덕영을 기억하라

창덕궁 대조전과 흥복헌
창덕궁 대조전(大造殿)과 흥복헌(興福軒)./사진=홍찬선

당시 어전회의 때 경술8적이 순종(純宗, 1874~1926)에게 한일병합조약에 서명날인할 것을 강요하자,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었다. 그 누구도 황후의 몸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자, 황후의 큰아버지인 윤덕영(尹德榮, 1873~1940)이 나서 강제로 옥새를 빼앗아 조약서에 찍었다. 순종은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 옥새를 도둑질해 강제로 찍었지만, 서명까지 강요할 수는 없었다. 순종의 서명이 없는 한일병합조약은 원천무효다. 강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은 원천무효다.

창덕궁 흥복헌
창덕궁 흥복헌(興福軒)/사진=홍찬선

흥복헌은 순종이 1926년 붕어(崩御)한 곳이기도 하다. 고종(高宗, 1852~1919)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순종의 휘(諱)는 척(坧)이다. 고종이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으로 구성된 특사를 파견해 일제의 강압적 국권침탈을 폭로하자,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하지만 실권 없는 황제로 3년 가량을 재위하다,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마저 빼앗겨 창덕궁 이왕으로 격하됐다. 8월 29일 새벽에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다. 마침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이어서 그랬을까…

하늘도 아파하는 것이다
불볕 여름이 꽉 찬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총칼을 견디지 못하고 
나라 빼앗긴 것을
 
하늘도 슬퍼하는 것이다
파란 하늘 지우고 
새벽부터 소슬하게 
가을 재촉하며 비 내리시는 것은

하늘이 새로운 준비하는 것이다
백이십 이년의 아픔과 슬픔을 
한바탕 눈물로 
창덕궁 흥복헌을 적시는 것은

하늘이 심판 내리는 것이다
나라와 겨레에 칼을 꽂고
온갖 감언이설로 역사 왜곡하는
반민족친일역적들을 단죄하는 것이다

- 홍찬선, '경술국치' 전문.

윤덕영은 나라를 팔아먹은 경술8적의 불명예를 안은 대가로 일제로부터 자작(子爵)의 작위를 받고 인왕산 자락에 으리으리한 ‘벽수산장(碧水山莊)’을 지었다. 1910년부터 1935년까지 25년 동안 지은 벽수산장은 근대식 건물 4동으로 이루어져, 당시 사람들은 아방궁이라 불렀다. 동아일보 1921년 6월 23일 자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세상 사람이 아방궁이라 부르는 그 집, 세상 사람들이 아방궁보다도 아방궁을 짓는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까닭을 더 이상하게 생각한다. 바로 이 벽수산장이다.”

윤덕영이 황제와 백성을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일제로부터 받은 ‘은사금(恩賜金)’으로 벽수산장을 지었다는 것을 풍자한 글이다. 벽수산장은 1966년 전기보수공사 중에 발생한 화재로 불탄 채로 방치되다가 1973년에 철거돼 옥인아파트가 세워졌다. 그중 막내딸에게 준 한 채만 남았는데, 지금의 박노수미술관이 그 건물이다. 이상(李箱, 1910~1937)의 시 '오감도(烏瞰圖)'에 나오는 “막다른 골목”이 바로 인왕산으로 가는 길을 막은 벽수산장의 거대한 철문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사도세자와 효명세자의 아픔이 서린 창덕궁

창경궁 홍화문
창경궁 홍화문/사진=홍찬선

창덕궁은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비극이 일어난 곳이다. 사도세자는 휘가 훤(煊)이며,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의 소생으로 부인은 혜경궁 홍씨이며 정조(正祖, 1752~1800)의 부친이다. 장남 효장세자를 잃고 42세의 늦은 나이에 ‘훤’을 낳자 첫돌이 지나자마자 세자로 책봉했다. 훤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해 영조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하지만 영조는 세자를 대리청정시킨 15세부터 지나치게 학대했다. 세자는 점점 영조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오해가 쌓이면서 결국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들었다. 세자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창경궁 사도세자나무
창경궁 사도세자나무/사진=홍찬선

창덕궁과 붙어있는 창경궁(昌慶宮)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으로 들어가 금천교 앞에서 왼쪽으로 가서 문을 하나 지나면 ‘사도세자나무’로 불리는 회화나무가 한 그루가 있다. 사도세자의 시신이 이 나무가 있는 문으로 나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나무가 1m 정도 높이에서 더 이상 위로 크지 못하고 옆으로 땅과 수평을 이룬다.

그대는 사도세자의 절규를
그해 여름 뒤주에 갇혀 내지른 비명을 
온몸으로 증거 하려고 
줄기 속을 텅텅 비우고
옆으로 옆으로만 기듯 땅과 벗하며 자라고 있는 

그대의 천성은
은행 느티 팽처럼 하늘 향해 
쭉쭉 빵빵하게 크는 것인데
서산 해미읍성과 인천 신현동과
창덕궁 돈화문 근처의 그것과 달리
학자다운 기상이 온데간데없어진 채

창경궁 홍화(弘化)문 옆 선인(宣仁)문 안뜰에서 
이백육십삼 년 전 그날의 일을
을씨년스러운 차가움으로 뿜어내며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만 믿고 설치는 무품격을 경계하고    
멈춤의 미학을 안타깝게 가르치는
눈물조차 얼어붙은 그대여

- 홍찬선, '사도세자 회화나무' 전문

창덕궁에는 비극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순조의 하나뿐인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의 갑작스러운 죽음, 급서(急逝)다. 효명세자는 휘가 영(旲)이며 헌종(憲宗, 1827~1849)의 아버지다. 효명세자는 열아홉 살에 대리청정을 맡아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박규수(朴珪壽, 1807~1877) 등을 등용해 개혁정책을 폈다. 순조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대리청정을 잘 하던 효명세자는 갑자기 병에 걸렸고,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역사에서 ‘만약’을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긴 하나, 효명세자가 요절하지 않고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오랫동안 왕정을 폈다면 조선 후기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효명세자가 죽은 지 2년 후에 순조마저 붕어하고, 효명세자의 아들 헌종마저 스물셋에 요절하자 정조 이후의 적통이 끊어지고 세도정치가 극심해 민란이 빈발하고 결국 나라까지 빼앗기는 아픈 역사를 만들었다.

창덕궁 후원 의두헌
창덕궁 후원 의두헌(倚斗軒)/사진=홍찬선

창덕궁 후원에 가면 효명세자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부용지와 연화당을 지나 금마문(金馬門)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소박한 기와집 두 채가 있다. 효명세자가 책을 읽고 생각에 잠겼던 의두헌(倚斗軒)이다. 북두칠성에 기대는 집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의두헌을 돌아나오면 불로문(不老門)이라 쓰여진 돌문이 있다. 이 글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의두헌 앞에 애련지(愛蓮池)라는 연못과 애련정(愛蓮亭)이란 정자가 있고 그 옆으로 조금 올라가면 연경당(演慶堂)이 나온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해 잔치를 베풀고자 지은 집이다. 궁궐건축 고유의 품격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한국주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어 2012년에 보물 제1770호 지정됐다.

의두헌에서 효명세자를 생각한다
북두칠성에 기대 
자꾸 기울어가는 조선을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효명세자를 그리워한다
옛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느라
고치기 힘든 병이 느닷없이 찾아와

스물두 살에 요절한 효명세자를 아쉬워한다
그렇게 허망하게 급서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총명한 정신으로 개혁정책을 폈더라면
그렇게 조선은 망하지 않고 백성들도 고통스럽지 않았을 텐데…
효명세자를 생각하며 김정희를 아파한다

- 홍찬선, '의두헌' 전문.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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