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배우 등 최고의 스태프가 만든 명품 무대
- VIP 초청공연에 스타들 참석해 손숙 배우 성원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2023년 8월 20일 오후 2시. 마곡나루역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는 80 인생 중 60년을 무대에 서온 손숙 배우를 축하해주기 위해 기라성 같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운집했다. 이순재, 신구, 오현경, 전무송, 정동환, 백수련, 강부자, 김동호, 안성기, 노경식, 구자홍, 윤호진, 김영철, 유동근, 송승환, 정경순, 김혜수, 현숙, 정몽준, 정병국, 나경원, 김용원, 안호상 등...
80세 배우가 주인공인 기념공연은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가 제작했다. 최고의 배우를 위해 최고의 극장에서 최상의 스태프들이 힘을 합쳐 헌정했기에, 여기에 초대받은 관객도 최고의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무엇보다 첨단시설을 갖춘 소극장에서 마이크 없이 피아노의 라이브 선율과 배우들의 육성으로 진행되어 연극 고유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
작품 '토카타'는 손숙 연극 인생 60년을 위해 배삼식 작가가 쓰고, 콤비 손진책이 연출했다.
손숙과 공연할 최고의 배우로 정상의 남자 배우 김수현을, 여백에 몸으로 시를 쓸 무용가로 정영두를 선택했다. 철판과 특수재질로 관객을 압도한 무대는 이태섭, 조명은 김창기, 의상은 진태옥 임경미였으니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최상의 조합이라도 콘셉트가 맞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나게 마련인데 이 팀은 일사불란했다. 필자는 그 중심에 흐르는 주제를 우아하게 미니멀리즘(단순함), 통속적으로 ‘힘 빼기’로 읽었다. 골프도, 악기도, 인생도 힘 빼기가 얼마나 힘든가. 빼기만 하면 얼마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가. 내용도 줄거리가 있고 구조가 있는 게 아니라 무형식이라고 해야 할까.
시 낭송을 듣는 듯 나직한 손숙의 독백에 지나온 시간의 자취들과 희로애락과 늙음의 여유와 회한이 객석에 휘돌아쳐 관객의 마음을 잔잔하게 흔들어 놓으며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은 긴장했다. 배우가 등장하기 전, 찻잔 속의 고요와 기대, 아마 연극 보는 최고의 순간이 아닐 듯싶다.
무대 뒷벽은 철제로 막혀있고, 그 앞은 갈색의 풀잎이 한들거리는 동산, 산책로 같은 오솔길이 보였다.
피아노가 연주(최우정)되자 진태옥의 무채색 원피스를 입고 손숙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나이는 보이지 않았고 자태가 이뻤다. 배우가 팔순에도 무대에 서는 게 이토록 당당한 것은 피나는 노력의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무대 오른쪽에 키 큰 나무 두 그루가 솟아있고, 그 아래 한 남자(김수현)가 로댕의 조각처럼 정지된 자세로 앉아있었다.
배우 김수현. 배우 김인태(작고)와 백수련(2024년 1월 늘푸른연극제에 '비목' 공연)의 아들. 필자는 그를 초등학생 때부터 보아왔는데, 지금은 대작의 주인공은 물론 최근 막을 내린 '아이히만' 등 최고의 연기력을 보이는 작품에서 탁월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음양(陰陽)으로 대비되는 구도 속에 천천히 극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개를 키우지 않지만 반려견을 키우다 하늘로 보낸 분들의 슬픔을 여럿 보았다. 원피스의 여자(손숙)는 뜬금없이 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강아지를 데려와 할 수 없이 키웠는데 이게 사람 속을 꿰뚫듯 밀당하며 어느새 반려가 됐노라고... 그런데 그마저 늙어 떠나보내고 마음 둘 곳이 없어 하염없이 걷는다고 했다.
사경을 헤매다 아직도 죽음 문턱에 있는 한 남자(김수현)는 누가 봐도 외롭다. 그 고독 속에서 남자는 자신이 어루만졌던 여인의 머릿결과 손길을, 사랑하는 사람의 미세한 기억들을 애잔한 독백으로 꿰어나간다.
그 여자와 남자가 퇴장하면 춤추는 사람(정영두)이 들어와 몸으로 뭔가를 말하고 공간에 또 다른 기류를 만들어낸다.
'토카타'에서 배삼식은 희곡작가라기 보다 시인, 철학과 인생을 논하는 에세이스트 같다. 작가는 60년동안 무대인생을 산 여자를 누에고치에 비유했다. 고치를 짓고 입을 닫아버려 날 수도 없는 나방이 신세처럼 고독하다고 했다. 작품의 말미에서 노배우는 자신은 중력도 없이 가볍게 날아오르겠다고 다짐한다.
손진책 연출은 배삼식의 시어들을 배우의 화술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작품을 통해 고독한 존재끼리 서로 어루만지고 고단한 행로에서 생명수를 나눠마시며 노배우를 위로해주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무대의 주인공 손숙은 누구일까. 필자가 손숙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것은 1970년대 세실극장에서 임영웅 연출로 공연된 '홍당무'였다. 그때 성인인 손 배우는 10대 소녀 역을 맡아 호연했다.
80년대 극단 실험극장의 김동훈 대표가 압구정동으로 극장을 옮긴 후 야심작으로 준비한 번역극을 보도해 달라며 준 수영복 차림의 손숙 사진을 조간 신문에 실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날 기념공연에서 손숙은 상반신을 노출했다. 조명이 곧 가려주기는 했지만 수영복보다 더 한 젖가슴 노출이었음에도 노배우의 몸은 조각처럼 빛이 났다.
이는 손숙의 연기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신구와, '3월의 눈'에서 오현경과, '키 큰 세여자'에서 박정자와 공연, 그리고 박완서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어머니' 등에서 보여준 어머니 상(像) 등 기억될만한 무대가 적지 않지만, 연극 외적으로 비바람을 맞기도 했던 배우가 손숙이기도 하다.
이번 손숙 연기인생 60년 '토카타'는 기념공연이라는 의미가 크기도 했지만 오래만에 연극계에 격조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매우 좋았다.
이 글을 쓰면서 앞쪽에 내빈을 소개했는데 눈치 빠른 독자들은 왜 ‘박정자’ 이름이 없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필자도 그 점이 궁금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 굳건한 철벽의 한 면이 열리고 무대 너머로 무한 풍경이 보였는데 나무 밑 벤치에 누군가 고독히 앉아 있는 멋진 미장셴을 연출했다. 그가 박정자 배우였다. 우정 출연한 것이다.
커튼콜에서 두 배우는 얼싸 안았고, 박정자는 한마디 했다.
“80년 동안 살면서 60년을 무대에 서왔다. '토카타'는 배우로서의 외로움, 슬픔,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만들었다. 이 시대 손숙 같은 소중한 배우를 만나 고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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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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