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반전(反轉)' 내건 서울시극단의 '키스'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반전(反轉)' 내건 서울시극단의 '키스'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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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장드라마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생존의 외침이 되는 전율 체감
- 구성과 형식에 새로운 시도 보인 신선한 연극
‘키스’ 공연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서울시극단(단장 고선웅)이 4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키스’는 칠레 작가 기예르모 칼데룬이 내전 중인 시리아를 배경으로 쓴 희곡을 차세대 우종희가 연출한 이색적인 퍼포밍 아트였다.

입장할 때 커튼콜 사진도 찍지 말라고 당부했다. 공연을 보면서 그 이유를 알만했다. 1, 2, 3장이 각기 다른 구성으로 진행되었고, 내용을 미리 알면 극적 긴장과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었다.

스포일러가 됨에도 리뷰하는 이유는 공연의 형식과 내용이 파격이고, 주제와 메시지의 강렬함에 이끌려서이다.

‘젊고 신선하고 흥미로우면서도 무서운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연극’ ‘기존 문법을 벗어난 파격 구성이 신선했으나 시민들이 소화하기에는 난해한 작품’

이 작품의 예술감독을 맡은 고선웅 단장이 ‘반전’을 강조하며 관람을 권할 때만 해도 반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연극에서 반전은 자주 보아왔고 그 자체가 매력 아닌가. 그런데 ‘키스’는 기존의 문법과는 비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허를 찔렸다.

[아래 내용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막 막장드라마

‘키스’ 공연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키스’ 공연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무대는 전쟁에 지진까지 덮친 중동의 시리아.

두 쌍의 남녀가 중산층 저택에 모여 뜻밖의 사랑 고백과 뜬금없는 청혼, 여기에 한 번의 키스가 곁들여지며 통속극(소프오페라)을 펼친다. 4명의 관계가 서로 뒤엉킨 막장 스토리에 배우들의 연기도 과장되어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았다. “이건 뭔 상황이지?” 비바람 뚫고 불륜 드라마나 보러 온 것 같아 속이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생소한 중동 배경 연극이고 아라비아 문양의 무대디자인(박동기), 음악과 음향(이원빈)에 만족하며 참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딜(김유림)이란 여인이 죽고 30분 만에 극이 끝나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고 관객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2막 라이브 인터뷰

그때 배우처럼 멋진 외모의 우종희 연출이 노트북을 들고 등장했다. 무대 천정에서 영상 스크린이 내려오고 출연 배우들이 착석하자 우종희 사회로 다마스커스 현지를 연결한 듯이 보이는 작가와의 영상인터뷰가 시작됐다. 히잡을 쓴 아랍 여인으로 분장한 작가 역 두마노브스키 순치짜(어느 나라 배우인지 알 수 없었다)의 연기도 그럴듯했지만 적십자사 유니폼을 입은 통역사 역 이승우의 연기는 관객이 속을 만큼 리얼했다. 스크린의 여인은 횡설수설하면서도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를 날카롭게 내비쳤다. 똑 부러진 대답을 하던 중동 여인이 "작가인 언니는 지난해 죽었다"고 횡설수설하는 통에 사기 인터뷰는 들통이 났다.

하지만 우종희 연출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자신이 연출한 ‘키스’의 1막이 현지 사정이나 작가의 의도를 모르고 대본(희곡)만 보고 연출해 얼마나 엉터리였나를 자성하는 장면은 우리 연극에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창작극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고전을 포함한 번역극을 우리 연출가나 배우들이 제대로 해석하고 공연하느냐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는데, 우종희 연출은 그 전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연극 같지 않은 2막은 최신 장비를 활용해 동시성과 현장감을 살려냈고, 특히 연출가와 배우들이 라이브처럼 연기해 관객들은 속아 넘어갈 뻔했다.

‘키스’ 공연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키스’ 공연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3막 전쟁과 사랑

진짜 반전은 인터뷰가 끝나 퇴장했던 우종희 연출이 다시 뛰쳐나와 “이 연극의 뒷부분을 보여주겠다”면서 상상불허의 미지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 것이다. 호화 세트와 소품들은 뒤집힌 채 무대 바닥에 내던져지고 폭격으로 폐허가 된 콘크리트 세트가 새로 등장했다.

1막에서 막장드라마를 펼친 배우들은 같은 내용을 전쟁 버전으로 연기했다. 치정과 불륜 주제에 과장 연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4명의 배우 정원조(아메드), 김유림(하딜), 김세환(유세프), 이다해(바나)는 평상시 멜로드라마가 전쟁 상황에서는 처절한 생존드라마가 된다는 것을 정극으로 다시 보여주었다.

필자는 이 지점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이자 대반전이라고 이해했다. 여기에 두마노브스키와 이승우 배우가 가세해 전쟁의 참혹성을 노래와 연기로 전하는데 그 메시지가 아프게 폐부를 찔렀다.

에필로그

‘키스’ 공연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키스’ 공연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우리는 분단 상황에서도 막장 연속극을 편히 누워 소비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처럼 전쟁 상황에서도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을까. 이 작품이 2014년 독일에서 초연된 후 세계로 번지면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이유도 이 같은 작가의 통찰력과 강렬한 은유를 담고 있기 때문 아닐까. 특히 우리가 처한 현실과 요즘의 세태에 시사하는 점이 컸다.

우종희 연출은 한 인터뷰에서 “극단적인 상황 속 삶의 소중함, 다른 문화권에 대한 시선, 더 나아가 예술을 창작하고 공유하는 방식들에 대하여 흥미롭게 얘기해보고자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키스’는 주제와 접근 방식의 새로움과 함께 작가의 숨은 의도를 형상화하려고 노력한 연출의 열정과 의식이 돋보였다.

배우들도 2중 연기에 쇼까지 해내기가 버거웠을 텐데 개인기보다 앙상블에 비중을 두어 작품의 주제를 잘 구현해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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