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교수들...명 배우들의 무대 '누란누란'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교수들...명 배우들의 무대 '누란누란'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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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공연협동조합의 공연 '누란누란(累卵累卵)'...'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
- 구조조정 둘러싼 교수 사회 동요와 갈등 실감나게 담아내
- 배우 정아미, 최담, 김윤태, 권기대, 박현미 등 출연
연극 '누란누란(累卵累卵)' 콘셉트 컷/사진=지공연협동조합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배우들은 대단하다. 대학교수가 아닌데도 대학교수 역을 더 실감 나게 해내기 때문이다.

씨어터 쿰에서 7월 2일까지 공연하는 지공연협동조합(이사장 권남희)의 여섯 번째 공연 '누란누란(累卵累卵)'은 개인적으로 너무 잘 아는 사학의 교수 세계를 무대에서 연극으로 펼쳐내 친숙하기도 하고 치부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솔직히 부끄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필자에게 현실처럼 다가오는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대학 세계를 막연히 동경해왔거나 체험해 보지 않은 일반 관객들에게 어느 만큼 흥미가 있을지, 객석을 둘러보며 소재의 보편성에 대한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예술대학 부총장을 3년이나 한 필자에게 현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미디어문예창작전공 교수(이 긴 타이틀이 요즘 대학의 위기를 잘 보여준다)인 홍창수 작가의 희곡은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등록금은 동결되고 입학생은 줄어드는 현실에서 대학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현안이지만, 문제는 이를 시행하는 재단이나 대학본부, 이를 수용하는 교수 사회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에 음모와 술수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홍창수 작가는 대학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구조조정을 둘러싼 보편적인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실상을 현장 언어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는 한편의 보고서 같은 희곡 '누란누란'으로 2020년 문화예술위원회 주관의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되었다.

연극 '누란누란(累卵累卵)' 콘셉트 컷/사진=지공연협동조합

현직 교수의 희곡인 만큼 허구의 비중보다 팩트의 성격이 강하다. 캠퍼스는 아름답지만 교수들은 그 정경을 느낄 여유보다는 구조조정의 향방에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컨설팅 회사에 큰돈을 주고 용역을 맡긴 결과는 기구의 축소로 조직을 슬림화하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처럼 인문학을 교육하는 문과대학이면 학과의 존폐나 교수들의 생사는 첨예한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홍창수 작가는 대학 이사회와 본부의 행태, 이해에 따라 표변하는 교수들의 자화상을 적라하게 묘사했다.

희곡을 읽지는 못했으나 대학 안의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리포트하듯 그려내 실감을 더 했다. 하지만 소재 자체가 연극적으로 재미가 있거나 관객의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60대 이하의 배우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한 지공연은 5년 만에 외부에서 문삼화 연출가를 초빙, 보편성이 부족한 소재를 배우들의 올코트 프레싱과 연출의 미학을 가미해 대학로 화제의 연극으로 끌어올렸다.

연극 '누란누란(累卵累卵)' /사진=정중헌
연극 '누란누란(累卵累卵)'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흰색 톤의 미니멀한 무대에 소품도 심플했다. 따라서 배우들이 무대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문삼화 연출은 대화 형식의 희곡을 배우들의 동작이나 소품 이동으로 변화를 주면서, 배우들이 대사와 감정 표현에 충실하도록 연극을 이끌었다.

교수 사회의 단면만으로는 단조로울 수 있는데, 패션쇼의 런웨이 같은 동작이나 커플 형식의 연기 앙상블로 변화를 살려냈다. 김건표 평론가는 "문삼화 연출의 공간배치와 장면을 지속시키는 설정,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연출이 보이니 배우도 보이고, 작품이 선명해졌다"고 평했다.

9명의 배역을 더블캐스트로 운영하는데 이날 무대에는 심리학과 선 교수에 정아미(이종승), 역사학과장 교수에 최담(오정민), 영문학과 유 교수에 김윤태(전소현), 국문학과 한 교수에 권기대(권남희), 불문학과 지 교수에 박현미(조주경), 역사학과 민 교수에 이서이(조하연), 문과대학장에 노윤정(김루시아), 교학처장에 박원진(김현주), 국문과 심 강사에 박신운(우연호) 배우가 출연했다.

결국 희곡은 배우들에 의해 무대 위에 구현되는데 서두에 말한 대로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도 리얼해 공연 내내 현실감을 안겨주었다. 대학 패컬티의 경험이 별로 없을 텐데 교수처럼 구조조정을 둘러싼 교수 사회의 동요와 갈등을 연기로 표출해 실감을 더 했다.

연극 '누란누란(累卵累卵)' /사진=정중헌
연극 '누란누란(累卵累卵)' 커튼콜 무대에 오른 정아미  배우/사진=정중헌
연극 '누란누란(累卵累卵)' /사진=정중헌
연극 '누란누란(累卵累卵)' 커튼콜 무대 현장./사진=정중헌

정아미 배우는 구조조정 반대에 앞장섰다가 스스로 교단을 떠나는 선 교수 캐릭터를 사투리 버전으로 구현하면서 열정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노교수 역을 맡은 최담 배우는 나이를 극복하며 권위를 살려냈고, 유 교수 역 김윤태 배우는 실제 교수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권기대 배우는 재단 편에서 논리를 펴는 캐릭터와 자신의 문제로 후배를 챙기지 못하는 복합 연기를 예민하게 해냈다. 불문과 교수 역의 박현미 배우는 활달한 캐릭터 연기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문과대학장 역의 노윤정 배우는 총장의 야심을 품고 교수들의 반대를 무력화시키며 일전도 불사하는 파워있는 개성 연기를 해냈다. 젊은 교수 역 이서희 배우는 신참으로서의 캐릭터를 산뜻하게 해냈다. 개인적으로는 강사 역을 맡아 교수들 수발을 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개성 있게 연기한 박신운 배우, 오버하면서도 교무처장의 양면성을 복합적으로 보여준 박원진 배우가 눈에 잡혔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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