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2)큘테페 가는 길과 카니쉬 왕국
[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2)큘테페 가는 길과 카니쉬 왕국
  • 정진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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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2000년도에 처음 큘테페에 갔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4천 년 된 유적지라고 이야기했다. 2022년에 가니 발굴 조사 결과 7천 년 된 유물이 나와 3천 살을 더 먹은 유적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신석기 시대를 돌도끼 들고 수렵이나 채취로 동굴 속에서 생활할 것이라고 배웠다. 큘테페를 가보면 그동안 우리의 조상들을 얼마나 얕보았던 것인지 깊은 반성이 생긴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몸과 마음이 크디 컸던 그야말로 초인들의 시대를 살았음을 유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핸드폰같은 손바닥만한 기계 나부랭이에 스물네 시간 덜미 잡혀 사는 21세기 현대인들, 심신이 종잇장처럼 허약해진 우울한 후손들을 보면 그들은 과연 뭐라고 할까. 이육사의 시처럼 광야의 초인들이 살았던 시절, 튀르키예 카이세리 근교 큘테페로 신석기 초인들을 만나러 떠나 보자. 

(1)튀르키예,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에 이어서

드디어 큘테페, 카니쉬 왕궁 언덕과 카룸 무역센터 

조금 걷다 보니 터키 특유의 중부 고원지대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기 시작한다. ‘큘테페 카니쉬’라는 이정표와 ‘큘테페입구 오솔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상전벽해. 20년 전에는 메마른 흙과 가시덤불 같은 잡초에 스포츠 샌들을 신고 발을 찔려가면서 고생했는데 지금 이곳은 들꽃 천지의 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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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언덕의 큘테페 ⓒ정진원(2022.07)

드디어 큘테페 유적지. 이곳의 역사와 가치를 잠깐 살펴보자.

큘테페(Kültepe)는 히타이트 제국의 문화적 모태가 되는 ‘카니쉬 소왕국’이 있던 곳이다. 유적은 왕 등 지배층이 살던 궁성이 자리한 언덕이 있는 상부 도시 ‘카니쉬 사라이’와 일반인이 살던 평지 하부도시 ‘카룸’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룸에는 특히 멀리 앗시리아에서 온 상인들이 살던 무역센터가 있는데 이는 당시 국제 교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예전에 왔을 때는 상부와 하부가 나뉘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하부 상인의 마을은 아무래도 나중에 발견되었거나 우리가 무지해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쐐기문자 점토판&nbsp;ⓒ정진원(2022.07)
쐐기문자 점토판 ⓒ정진원(2022.07)

여기서 수집된 쐐기문자 점토판은 무려 2만 3,500점이나 되는데 ‘고대 앗시리아 상인 기록물’이다. 4천 년 전에 약 900명의 상인과 그 가족들로 이루어진 한 공동체가 오늘날 이라크에 해당하는 아수르(Assur)라는 도시 국가에서부터 카네쉬(Kanesh) 왕국의 아나톨리아 도시 한 복판에 정착해 살았다는 기록으로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귀중한 유물들이다.

약 60여 차례에 걸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앗시리아 상인 마을의 가옥들을 포함하여 대화재로 파괴되기 전에 조밀하게 형성되어 있는 도시 중심지 유적을 일부 복원해 놓았다. 이 점토판에는 교역 내용과 상인 가족의 일상사, 현지 주민들과의 교역 및 개인적 교류에 관한 정보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마디로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을 인정받아 2015년 세계유산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카니쉬 사라이

큘테페 언덕의 상부 도시 카니쉬 사라이 ⓒ정진원(2022.07)
큘테페 언덕의 상부 도시 카니쉬 사라이 ⓒ정진원(2022.07)

먼저 정겨운 이정표 ‘큘테페 카니쉬’ 나의 옛 친구 같은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 보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같은 추억의 동산에는 ‘쿠툴루 엠레의 오솔길’ 표지판이 가리키는 길로 들어가야 한다. 예전에 없던 이정표이다. 아마도 큘테페 발굴에 인생은 바친 학자이겠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이러한 학자들의 인생을 바친 노고가 있었기에 우리는 초인들의 역사를 알고 그 노력에 경외감을 품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나도 ‘정진원 Sokak작은길’을 카이세리에 남길 수 있을까. 그런 결심을 22년 전에 했고 지금도 터키를 사랑하는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오솔길은 잘 정리되어 있고 거니는 길 양옆의 야생화 들꽃들이 지천으로 이쁘다.

들꽃 언덕의 카니쉬 사라이 ⓒ정진원(2022.07)

유적지가 보이는 곳 멀리 유물을 담던 카트와 레일이 녹슬고 그 안에 들꽃이 피고 있었다. 그저 좋았다. 야트막한 언덕 너른 들판에 광활한 유적이 돌이 되고 흙이 되어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녹슨 카트와 들꽃 ⓒ정진원(2022.07)

그 옆에 카니쉬 왕국의 궁궐이 돌무더기가 되어 의연하게 남아있다. 7천 년 전 유적이다. 7천 년... 100살도 못 사는 우리가 7천 살 된 선조의 옛 터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무심한 돌과 흙더미가 한때는 궁궐이 되고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사랑을 하고 우리 같은 후손을 낳고 희로애락 속에 7천 년을 살았다는 사실. 7천 년이라는 시간과 역사 앞에 우리는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이지만 초인의 유적은 이렇게 유구하고 위대함을 웅변하고 있다.

카니쉬 왕국의 궁궐인 사라이 집 구조는 아랫마을 상인의 집 구조와 다르다. 아랫마을 평민의 집은 1만 년 전 신석기 유적인 ‘차탈회익’의 집 구조와 비슷하다면 왕국의 집은 마치 신전처럼 보인다.

카니쉬 사라이의 유적&nbsp;ⓒ정진원(2022.07)
카니쉬 사라이의 유적 ⓒ정진원(2022.07)

표지판 뒤로 멀리 에르지예스산이 보이고 인근에 있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 미나레가 뾰죽이 보인다. 큘테페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튀르키예의 현재 모습이다. 카이세리 인근 20㎞ 지점 어디에서나 보이는 해발 4천m 에르지예스산의 위용이요 20년 전보다 10배쯤 이슬람 사원이 늘어난 터키의 흔한 풍광이자 현주소이다. 

표지판 뒤로 보이는 에르지예스산
표지판 뒤로 보이는 에르지예스산 ⓒ정진원(2022.07)
유적 뒤로 보이는 이슬람 사원 첨탑 미나레 ⓒ정진원(2022.07)  

카니쉬 사라이 발굴 현장

카니쉬 왕궁의 유적 내표지판&nbsp;ⓒ정진원(2022.07)
카니쉬 왕궁의 유적 내 표지판 ⓒ정진원(2022.07)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둘러쳐진 유적 근처에 발굴팀의 휴식 장소가 보인다. 단출한 나무 지붕과 의자 그리고 휴지통. 이 또한 큘테페와 조화로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 사람이 없어도 그 자체로 꽉 찬 고즈넉하고 풍성한 햇빛과 하늘, 구름, 바람, 들꽃. 그리고 돌과 흙으로 돌아가는 중인 사라이.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휴식 공간에서 나는 한참을 앉아 큘테페를 만나고 회포를 풀고 마음속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다.

큘테페 발굴 현장에 있는 쉼터 ⓒ정진원(2022.07)

다음 회에서는 7천 년이 살아 숨 쉬는 앗시리아 무역 상인들의 교역센터 아랫마을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그들의 일상과 당시의 상업에 사용되던 화폐 금, 은, 동의 가치, 결혼과 이혼에 관한 이야기까지 점토판에 쓰인 쐐기문자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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