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배 딛고 세계 챔피언이 되기까지
【삶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힘들고, 지치고, 우울하고,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살'을 거꾸로 뒤집으면 '살자'란 말이 됩니다. '살자TV'는 위기와 고통의 순간을 딛고 희망찬 인생을 위한 '인생반전 Story'를 담고자합니다. '살자TV'는 인터뷰365가 전개하는 자살예방운동 '365생명사랑'의 영상캠페인입니다.】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인터뷰365 발행인) = 장정구 전 WBC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은 15차 방어까지 성공해 전설적인 복서로서 이름을 날린 분이죠.
60~70년대, 80년대만 해도 스포츠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종목 중 하나가 복싱이었습니다. 복싱 챔피언들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왔는데, WBC 라이트 플라이급의 대표적인 인물은 장정구 선수였습니다. 매우 유명하고 인기를 누린 복서였죠.
장 선수는 WBC선정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됐으며, 2010년 우리나라 선수로는 최초이자 아시아 선수로는 세 번째로 세계복싱 명예의전당에 헌액됐습니다.
'살자TV'에서는 세계적인 복서로 이름을 떨친 장정구 전 WBC세계 챔피언의 스토리를 들어봤습니다.
골목 대장이었던 어린시절, 만 열곱 나이에 프로로 활약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장정구 전 챔피언은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막내가 뭐 하자는데 안 해주는 게 없었어요. 부유하진 않았지만 어려움을 못 느끼면서 살아왔죠."
고향은 부산 서구 아미동.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부산에서 제일 별난 동네"라고 말했습니다.
"힘없으면 두들겨 맞는 데가 그 동네예요. 저도 자연스럽게 안 맞으려면 힘을 길러야 했습니다.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그런 성격이 몸에 배어서, 나만 보면 다 도망가 버렸어요."
어린시절 일찌감치 아마추어 복서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학생 신분이 아니었던 그는 고등부로 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80년, 만 열곱 나이에 프로 무대로 옮겨 선수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에 있다보니 시합이 빨리 빨리 잡히고 또 좋은 성과를 거두다 보니 또 빨리 타이틀 매치를 하게 되었어요. 그 때 실패를 하고 6개월 있다가 재도전해서 챔피언이 되고, 또 열심히 하다 보니 타이틀 15차 방어전까지 오게 된 거죠."
18전 18승, 그리고 찾아온 패배..."내겐 너무 중요한 패였다"
프로에서 뛰면서 장정구 전 챔피언이 거둔 실적은 18전 18승. 그야말로 거침 없는 승리였습니다. 승승장구의 길을 걷던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19전에서 패배의 쓴맛을 맛봐야 했죠.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패배는 그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실패하고 난 후에 그때 깨우쳤어요. 왜 이 시합에 지게됐는지. 그 1패가 제가 챔피언이 되고 15차 방어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준 거예요. 1패가 없었으면 저는 챔피언이 못 됐습니다. 제겐 너무 중요한 패였어요. 그 1패가."
그는 패배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찾았고, 상대방에 대한 분석이 미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요. 시련이 오히려 기회가 되었던 셈입니다.
"실패의 원인을 찾고, 상대방에 대한 분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1패 이후 상대의 장점과 단점을 연습 했습니다. 아, 저 사람 단점은 공격해야 되고, 장점은 피해야 하는 거라는 거예요. 그걸 제가 깨우쳤죠. 이 장정구란 선수가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 그 1패입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그 1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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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편집 도움 = 김강진 영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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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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