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죽음과 고통을 둘러싼 수수께끼...연극 '라스트 세션'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죽음과 고통을 둘러싼 수수께끼...연극 '라스트 세션'
  • 주하영
  • 승인 2022.02.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의 가상 만남,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 작품
'라스트 세션' 포스터 컷. '라스트 세션'의 원제는 'Freud's Last Session'(프로이트의 마지막 세션)이다. 저메인은 대사의 분량을 루이스에게 더 많이 분배한 경향이 있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동인으로 '프로이트'의 감정 변화와 건강 상태를 위치시킨다.
'라스트 세션' 포스터 컷. '라스트 세션'의 원제는 'Freud's Last Session'(프로이트의 마지막 세션)이다. 저메인은 대사의 분량을 루이스에게 더 많이 분배한 경향이 있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동인으로 '프로이트'의 감정 변화와 건강 상태를 위치시킨다.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창조론과 진화론, 유신론과 무신론의 논쟁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아왔다.

2006년 무신론을 대표하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을 출간함으로써 신의 존재를 둘러싼 전 세계의 논쟁을 촉발했다.

도킨스는 무신론자들은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권위에 순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반면 유신론자들은 “잘못된 믿음을 고집하는 정신 장애의 한 증상”을 겪고 있다면서, 로버트 퍼시그의 견해를 인용해 종교는 “망상(delusion)”이라고 주장했다.

도킨스의 책은 엄청난 논란을 촉발했고 2007년 10월과 2008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유신론을 대표하는 수학자 존 레녹스와 도킨스의 공개 토론이 펼쳐졌다. 논쟁은 2008년 10월 옥스퍼드대학교 자연사박물관에서 또 다시 도킨스와 레녹스의 “과학이 신을 매장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둘러싼 토론으로 이어졌다.

21세기에 펼쳐진 도킨스와 레녹스의 논쟁을 20세기로 옮겨놓는다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무신론의 시금석이라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문학가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의 논쟁이 되지 않을까?

2002년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아맨드 M. 니콜라이는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하버드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강좌”로 유명했던 자신의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 '루이스 VS 프로이트'를 출간했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프로이트(오영수)'는 다른 예술작품들과 달리 감동을 받는 이유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기피한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가사와 내용이 있는 오페라 이외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사진=파크컴퍼니

프로이트가 남긴 지적 유산 중 “과학적 세계관에 기반한 무신론적 인생철학”을 가르치던 니콜라이는 프로이트의 주장마다 반대 의견으로 대립하며 영적 세계관을 옹호했던 루이스를 수업에 더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논쟁은 격렬해졌다.

30세까지 무신론의 세계관을 지속했고 프로이트의 논법을 사용해 무신론을 방어했던 루이스가 31세에 갑자기 기독교로 전향한 뒤 지속적인 저술을 통해 프로이트의 주장들을 반박했다는 점은 두 세계관의 효과적인 비교를 가능하게 했다.

니콜라이는 에필로그에서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서로 만난 적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프로이트가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것은 1938년 3월이었고, 루이스는 당시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런던 햄스테드에 살고 있었을 때 젊은 옥스퍼드 교수가 방문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루이스와 친분이 있는 ‘질’이라는 여성이 프로이트의 손자인 클레멘트와 결혼했다는 사실로부터 니콜라이는 두 학자 사이의 연관관계를 탐색하지만 두 사람이 만났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1939년 9월 23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한 프로이트와 당시 41세였던 루이스가 만나게 되었다면 과연 ‘어떤 토론을 했을까’라는 니콜라이의 상상은 2009년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의 연극 '라스트 세션'을 통해 무대 위에 형상화된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루이스(전박찬)'와 '프로이트(신구)'는 신의 존재 여부, 양심과 도덕률, 행복과 기쁨, 고통과 죽음, 성과 억압을 둘러싼 여러 주제에 관해 열띤 논쟁을 벌인다./사진=파크컴퍼니

니콜라이의 책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연극 '라스트 세션'은 2009년 초연 이후 2010년 뉴욕 공연을 통해 호평을 받으며 2011년 오프브로드웨이 연맹으로부터 베스트 희곡상을 수상한다.

2013년 시카고 공연 당시 200회가 넘는 공연을 이어가며 관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를 묻는 인터뷰 질문에 저메인은 “자주 언급되지 않는 큰 질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관객들의 80%가 이미 공연을 관람한 다른 관객들로부터 추천을 받고 '라스트 세션'을 찾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역사적인 인물들을 무대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공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물들의 전기에 관심이 많은 저메인은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의 만남이나 닥터 루스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다루는 등 역사적 허구를 통해 관객들이 실제 인물들을 무대 위에서 만나게 되는 환상을 창조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가상의 만남을 다루는 '라스트 세션'을 위해 저메인은 상당히 오랜 기간의 리서치 과정이 필요했음을 언급하는데, “관객들은 주로 두 인물 간의 논쟁에 관심을 가지겠지만 작가로서 주목한 점은 ‘유머’였으며 의도적으로 웃을 수 있는 지점들을 많이 집어넣었다”고 강조한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프로이트(신구)'의 서재는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딸 안나에 의해 비엔나의 자택과 가능한 유사하게 장식된다. 무대는 프로이트가 실제 사용했던 정신분석 소파를 비롯해 그림과 액자, 그리스 로마, 이집트 문명의 조각상들까지 실제 프로이트의 서재를 그대로 구현한다./사진=파크컴퍼니

실제로 연극 '라스트 세션'은 신의 존재 여부, 양심과 도덕률, 행복과 기쁨, 고통과 죽음, 성(性)과 억압을 둘러싼 두 지성인의 열띤 논쟁이 80분간 지속되는 가운데에도 웃음을 낳는 포인트가 꽤 많이 등장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엄격한 도덕주의자이자 원칙주의자, 독선가, 자기중심적이고 웃음이 없는 불행한 남자”로 묘사되던 프로이트가 “역설적인 유머 감각”을 갖고 있었음을 반영한 때문이기도 하다.

제임스 스트레이치는 '프로이트의 삶과 사상'이라는 글에서 프로이트가 사적인 공간에서는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었음을 밝히는데, 1922년 구강암 진단을 받고 사망할 때까지 33번의 수술을 거쳐야 했던 육체적 고통이 프로이트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어니스트 존스가 쓴 프로이트의 전기문에 잘 드러나듯 프로이트는 이미 40세 무렵이던 1896년부터 늘 자신의 죽음을 예측했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으며, 죽음을 언급했던 “죽음에 밀착된 인간”이었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루이스는 '프로이트(오영수)'가 수집해온 2천 점이 넘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 문명의 조각상들이 모두 사후 세계와 신의 존재를 상징화한 것들임에 주목한다. 무의식적으로 신의 존재를 향한 열망을 품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루이스에게 프로이트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은 것들을 더 선호한다"라며 반박한다./사진=파크컴퍼니

'프로이트 심리학 비판'에서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마지막 위대한 발견은 삶과 죽음의 본능에 대한 이론”이라고 평가하는데, 1920년 무렵부터 프로이트의 본능이론에 수정이 가해졌으며 1923년 '에고와 이드'로부터 삶의 본능인 에로스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의 이분법이 확고해졌음을 주장한다.

프롬은 프로이트가 죽음의 본능을 가정한 이유를 “1차 세계대전의 증오와 파괴, 광란을 직면한 충격”과 스페인 독감으로 27세의 젊은 딸 소피를 갑작스럽게 잃고, 손자인 하이넬레까지 폐결핵으로 잃게 되는 등 잇따른 죽음을 경험한 탓으로 본다.

한편 니콜라이는 프로이트에게 죽음은 “고통스러운 수수께끼”이자 “모든 철학의 출발점”이었음을 강조하는데, 프로이트가 죽음을 의식하게 된 것은 두 살쯤 되었을 때 동생 율리우스가 사망한 데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부터였다고 설명한다.

죽음에 대한 문제는 ‘초월적 지성’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신앙과 종교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우주 밖에서 초월적인 힘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창조한 것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는 ‘신’이라는 존재를 가정하게 된 것은 “죽음 이후에 인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와 관련이 깊다.

리처드 할러웨이 주교는 '세계 종교의 역사'에서 종교의 시작은 “인간이 죽은 뒤 발생하게 될 일에 대한 의문”이며 “기원전 13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매장과 애도의 흔적에서 종교적 믿음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피력한다.

이런 관점에서 연극 '라스트 세션'의 배경이 영국이 2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선포하고 세계가 또 다시 전쟁이라는 죽음 속으로 치닫기 직전인 ‘1939년 9월 3일 아침’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루이스(이상윤)'는 프로이트의 초대가 자신이 쓴 '순례자의 귀향'에 등장하는 "오만하고 허영심 많으며 무식한 늙은이"라고 묘사된 계몽 선생 '지기스문데'라는 캐릭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프로이트는 책을 읽지 못했다고 말한다./사진=파크컴퍼니

'라스트 세션'은 프로이트가 약속 시간에 늦은 루이스 교수를 기다리며 네빌 체임벌린 총리의 대국민 담화를 예고하는 라디오 뉴스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협정을 깨고 폴란드를 침공한 일은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는 히틀러를 신뢰했던 체임벌린 수상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드러낸다. 이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손에 넣은 것에 만족할 것이라고 분석했던 프로이트의 판단 실수와 연결되며 ‘인간의 예측과 해독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암시하게 된다.

루이스 교수는 공습 폭격에 대비해 학교와 병원, 교도소에 이르기까지 폭격 가능한 건물들이 모두 비워지고 다른 곳으로 대피하는 혼란을 뚫고 햄스테드로 프로이트 박사를 만나러 온다.

런던을 떠나는 기차만 있을 뿐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는 없는 탓에 늦었다고 사과하는 루이스에게 프로이트가 말한다.

“내가 여든 셋만 아니었으면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을 거요!”

관객들은 그의 농담에 웃음을 머금는다. 주치의가 곧 오기로 해서 시간이 많지 않다는 프로이트를 향해 루이스가 “다음 기회에 만날 것”을 언급한다. 프로이트가 묻는다.

“내일을 기약할 수 있어요? 나는 안 그래요!”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프로이트(오영수)'는 자신의 이론을 통해 무신론을 방어했던 분석과 추론이 뛰어난 루이스가 어떻게 기독교로 갑자기 개종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 '지적 호기심'을 드러낸다./사진=파크컴퍼니

관객들은 두 사람의 만남이 프로이트가 사망하기 3주 전에 이루어진 것임을 상기한다. 전쟁과 죽음, 시간의 촉박함과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는 ‘농담과 웃음’ 속에 숨겨진 채 관객들에게 그 의미를 노출한다.

루이스는 자신의 책 '순례자의 귀향'에 프로이트를 빗대어 풍자한 계몽 선생 ‘지기스문데’라는 인물의 불쾌함이 프로이트가 자신을 초대한 이유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프로이트는 그 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루이스는 “신을 믿는 것은 정신적으로 미약한 바보들의 강박 신경증”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반대하는 반응이었을 뿐 인신공격을 할 목적은 아니었다고 양해를 구한다.

프로이트는 온갖 비판과 비난을 평생 받으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초대의 목적은 “창조적 개념이 유아적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지성인이 어떻게 갑자기 기독교로 전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지적 호기심 때문이라고 밝힌다.

루이스는 사도 바울을 종종 언급했던 프로이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성령의 빛을 본 것과의 유사성을 탐색하려는 시도를 인식하고 자신은 형이 운전하는 오토바이의 사이드카에 앉아 동물원에 가는 길에 이성적인 사고의 결론으로 깨달음에 이른 것임을 강조한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프로이트(오영수)'는 인간의 양심은 "신이 내려준 내재된 것"이라는 '루이스(이상윤)'의 주장에 "부모가 자식에게 주입시킨 행동양식이자 억압"이 될 뿐이라고 맞선다./사진=파크컴퍼니

저메인은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토론을 유용하게 이끌기 위해 연대기적 사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프로이트가 읽지 못했다고 한 '순례자의 귀향'은 1933년에 출간된 반면 “독창적인 관찰력”을 칭찬한 '실낙원 서문'은 프로이트 사후인 1942년에 출간되었다.

프로이트가 “사탄에게 최고의 멋진 시를 선사했다”고 평가하는 존 밀턴의 '실낙원'에 대해 루이스는 '실낙원 서문'을 통해 사탄을 밀턴의 영웅으로 보는 시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서사시의 형식을 강조하며 설명한다.

프로이트에게 ‘사탄’은 신이 인간의 삶에 숨 쉬고 있는 고통과 불행을 책임질 대상이 필요해 만들어낸 존재이다. 반면 루이스는 사탄이 신의 피조물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신은 ‘자유의지’를 부여했을 뿐 선과 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지’에 따른 것임을 강조한다.

“자유의지로 선택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기계들의 세상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는 루이스는 “감옥, 노예제도, 폭탄과 같은 것들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루시퍼도 아니며,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고통은 전부 인간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고 선언하는 루이스를 향해 프로이트가 발끈하며 외친다.

“그것이 고통과 괴물에 대한 선생의 변론이요? 그럼 암을 내가 일으켰나? 하나님이 복수를 하기 위해 나를 죽이려고 하는가?”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루이스(전박찬)'는 "생명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만이 거둘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프로이트의 비겁한 행동을 비난한다./사진=파크컴퍼니

저메인은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저서에 등장하는 문장들을 인용해 토론의 쟁점이 되는 대사들을 대립하도록 구성하는데, 한 분야를 깊이 들어가는 대신 다른 주제로 빠르게 전환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이는 BBC 라디오 뉴스와 전화벨 소리, 공습 폭격을 알리는 사이렌, 굉음을 내며 상공을 가로지르는 화물수송기 소리 등으로 두 사람의 논쟁이 방해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향하도록 만든다. 그 때문에 프로이트와 루이스에 대한 지식을 갖춘 관객들에게는 극이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단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논쟁 분야를 잘 축약한 느낌도 분명 갖고 있다.

'라스트 세션'은 1938년에 출간되어 상당한 논란을 낳았으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유대인의 믿음을 절망에 빠뜨렸던 프로이트의 책 '모세와 일신교'에 대한 언급부터 옥스퍼드 대학 문학 토론모임인 ‘잉클링스’에 소속된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R. 톨킨과 가장 전투적인 무신론자였던 T.D. 웰던, 20세기 초 진화론과 유물론을 비판한 G. K. 체스터튼의 '영원한 사람', 신학 이론을 체계화한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프로이트의 초기 저서인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의 기본 지식들을 필요로 한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프로이트(오영수)'는 자신이 정신분석을 할 때 환자들이 기댈 수 있도록 했던 '소파'가 아닌 분석자의 의자에 자리를 잡지만 입안에 딱 맞지 않는 보철판이 어긋나면서 피를 쏟아내는 장면에서는 결국 '소파'에 몸을 기대게 된다./사진=파크컴퍼니

하지만 저메인이 핵심을 가로지르는 대사들을 인용함에 있어 빗대어 표현하거나 설명을 덧붙이고 시니컬한 농담을 곁들여 극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지식을 갖추지 않은 관객들의 경우에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장점을 지닌다.

저메인이 도발적이고 지적인 위트를 선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정신을 통해 무언가를 믿는 인간의 ‘신념 체계’와 고통과 아픔, 슬픔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적 영역’ 사이에 발생하는 ‘모순’에 대한 인식이다.

구강암으로 인해 입천장을 다 제거하고 보철판에 의지한 채 피를 흘리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도발적 토론”을 즐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이성, 이 세상에서 충족되지 않는 갈망은 다른 세상을 위해 만들어진 욕구이므로 하나님의 세상에서 충족될 것임을 확신함에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능, “죽음이 오히려 위안”이라면서 자살의 의도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구강기로 퇴화한 성적 쾌감을 만족시키고자 시가를 피우는 인간의 멈추지 않는 욕망...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프로이트(오영수)'는 자신의 나이 절반에 이른 루이스와의 논쟁 과정에서 이성을 잃고 감정적으로 흥분한다. 저메인은 아버지에 해당하는 권위와 억압을 상징하는 프로이트와 그에 반발하는 아들로서 루이스를 배치시킴으로써 프로이트가 주장해 온 '부친 살해의 욕망' 논리를 극에 적용한다./사진=파크컴퍼니

무엇보다 저메인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든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에 관해서는 말하기를 꺼려하는 인간의 특성을 강조한다. 루이스는 전쟁터에서 죽은 친구의 어머니인 무어 부인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낸다.

프로이트 역시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보철판을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막내딸 안나와의 관계에 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음을 피력한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정신분석학적 명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적용된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장면. '프로이트(오영수)'는 루이스가 떠나고 난 뒤 조지 6세 국왕의 연설이 끝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저메인은 두 사람의 만남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마지막 장면을 통해 암시한다./사진=파크컴퍼니

연극 '라스트 세션'의 국내 공연은 마지막 장면에 프로이트가 어떤 종교 의식도 청하지 않은 채 주치의인 막스 슈어와 약속한 대로 모르핀 투여로 죽음을 ‘선택’했음에 관한 자막을 부여한다.

이유를 모르면서 감동에 이르게 되는 음악의 정서적 영향력을 거부해 온 프로이트가 조지 6세 국왕의 전쟁의 승리와 신의 은총을 기원하는 연설을 들은 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은 죽음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감정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확인을 제공한다.

슈베르트가 고통 속에서 다음 날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며 슬픔을 표현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선율로 시작된 연극은 마지막 장면에서 프로이트가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의 선율과 마주하도록 만든다.

곡이 담고 있는 ‘어두운 이미지’를 미지의 것으로 남겨 둔 엘가의 수수께끼를 해석하려는 듯 음악의 볼륨을 키우며 집중하는 프로이트가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죽음이었을까,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이었을까? 아니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신’과 ‘인간’을 둘러싼 수수께끼였을까? 3월6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1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하영
주하영
jhy0219@hanmail.net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