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예술과 삶, 규칙, 그리고 도용...연극 '마우스피스'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예술과 삶, 규칙, 그리고 도용...연극 '마우스피스'
  • 주하영
  • 승인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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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 극작가 키이란 헐리의 2018년 초연 작품, 2019 에든버러 페스티벌 호평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삶의 끝을 향하고자 했던 '리비(김신록)'는 에든버러 하늘을 배경으로 까치발을 들고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그림 속 어린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픈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사진=연극열전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예술은 삶을 반영한다. 창조된 세상은 때로 실제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허구 속 인물을 창조할 때 인물은 ‘살아 숨 쉬는 삶’을 얻는다. 하지만 작가가 실제 사람의 이야기를, 그의 삶을, 그의 목소리를 작품 속에 담는다면 허구와 실제의 경계는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작품의 소재가 된 사람의 이야기와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미국 주간잡지 ‘뉴요커’의 전속 작가인 케이티 월드먼은 허구로 만들어진 이야기의 실제 소유자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작가가 실제 사람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게 될 때 그 사람은 일종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한 인간에서 인물로 존재의 범위를 옮기는 것은 일종의 살인과 같지 않을까? 아니면 예술로 존재의 범위를 상승시켰다고 말해야 할까?”

월드먼은 누군가의 삶이 예술의 소재가 되고, 허구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변경되고 특정한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도구화”하고 “위조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월드먼에 따르면, 삶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사건을 작품에 담는다는 것은 곧 사건을 체험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생각을 소유한 것과 같다.

문제는 허락받지 않은 삶을 소재로 삼았을 경우 작가가 “실제 사람들에게 속해있던 무언가를 훔쳤다”고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도용하고 착취했을 가능성,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축소하거나 확대했을 가능성,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망치면서 세상을 위해 한 일이라고 자신을 속였을 가능성...

월드먼은 작가로서 수년 동안 가족들을 소재로 삼아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질문한다. “예술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 작가들은 흔히 작품에 ‘내 영혼을 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독자들에게 내준 것은 소재가 된 사람들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포스터 컷./사진=연극열전

2020년 ‘연극열전 8’의 두 번째 작품으로 한국 초연을 선보였던 연극 ‘마우스피스’의 레퍼토리 공연이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진행 중이다.

2018년 12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트래버스 극장에서 초연된 키이란 헐리의 연극 ‘마우스피스’는 계급적 불평등과 예술의 책임, 도용과 착취, 배제의 문제를 날카롭고 도발적으로 지적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이듬해 4월 런던의 소호 극장에서 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연극이 연극에 대해 말하는 ‘메타드라마’적 특성을 강하게 품고 있는 작품 ‘마우스피스’는 극작가가 삶을 무대에 옮기고 관객들이 연극 공연을 체험하는 상황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극계의 창작 관행과 소재 및 주제의 착취, 도용, 그리고 계급적 배제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초연 당시 ‘마우스피스’에 대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 우리 시대를 위한 진실한 연극”이라고 평가한 데이비드 폴록은 2019년 ‘더 스테이지’를 통해 ‘마우스피스’는 “연극 스타일의 금기를 깬 작품일 뿐 아니라 연극계에서 계급을 다루는 문제에 도전을 한 작품”이라고 지적했다.

연극 2021 '마우스피스'에서 목표를 상실하고 삶에 지쳐 25년 만에 에든버러로 되돌아온 46세의 극작가  '리비' 역을 맡은 배우 김여진, 유선, 김신록.

헐리는 자신을 교사인 어머니와 NGO 단체에서 근무하는 아버지를 둔 중산층 계급에 속한 사람이라고 지칭하지만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졸업했고,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어울린 적이 없기 때문에 “중산층의 방식으로 살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한 헐리는 런던의 극장에 갈 때마다 무대가 다루는 삶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있다는 생각과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덧붙인다.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 개인적으로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는 헐리는 상당히 오래 전에 “문화 안에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배제되는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탐구”하는 초안을 완성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완전히 폐기한 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같은 주제를 전혀 다른 이야기와 형식으로 새롭게 쓰는 일은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지만 도약의 계기가 되었고, “연극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누구를 위해 작품을 만들고, 왜 만드는 것인지, 가치 있는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한다.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무대 뒤 배경에 투사되는 지시문에 따라 '리비(유선)'와 '데클란(이휘종)'은 90년대 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나이와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느끼고 서로를 향해 도움을 주고자 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는 관객들이 눈으로 희곡을 읽어가며 구현된 무대를 상상하듯 시작부터 무대 뒤 화면에 극 제목이 대문자로 크게 지나가고, 인물이 무대 앞으로 나와 관객들을 향해 “오프닝 이미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스토리의 시작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여자는 관객들을 향해 첫 장면에서 이야기의 설정과 세계를 제시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녀는 덧붙인다.

“위기에 놓여있는 인물과 만나게 되는 것도 좋다. 이야기는 이미 진행 중이라는 감각을 주는 것이다. 주제와 톤을 확립하고, 인물이 지닌 갈등의 단면이 제시되어야 한다. ...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규칙들이 있다.”

규칙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여자 뒤로 화면에 “솔즈베리 언덕, 에든버러, 황혼 무렵”이라는 배경이 제시된다. “여자”라는 지시문이 화면에 떠오르면 오프닝 이미지를 설명하던 여자는 ‘리비’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솔즈베리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휴대용 술병에 든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연극이 연극에 대해 말하는 '메타드라마'적 속성을 강하게 품고 있는 작품인 '마우스피스'는 극작가인 '리비(김여진)'가 써내려가는 데클란의 말들이 무대 뒤 화면에 희곡 대본처럼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관객들은 실제 삶이 허구로 변환되는 과정과 희곡이 공연으로 무대에 구현되는 방식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게 된다./사진=연극열전

잠시 뒤 “소년”이라는 지시문과 함께 좀 떨어진 곳에 ‘데클란’이라는 이름의 주인공 소년이 등장한다. 언덕을 내려다보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년은 “사람 몸이 얼마나 빨리 떨어질 수 있는지”를 실험이라도 하듯 비틀거리며 언덕 아래로 발을 내딛으려는 리비를 재빠르게 뒤에서 안아 끌어당긴다.

비명을 지르는 여자와 다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소년, 구급차를 부를 테니 빨리 휴대폰을 달라고 외치는 소년을 향해 리비가 말한다.

“그냥 미끄러진 거예요. 사람을 그렇게 놀라게 하면 어떻게 해요? 난 그냥 태극권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어이가 없다는 듯 리비를 바라보던 데클란이 말한다.

“정말 이기적인 짓인 거 알아요? 아줌마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 없어요? 책임져야 될 사람 없냐고?”

연극 2021 '마우스피스'에서 불안정한 가정의 학대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그림을 통해 표출하며 분투하는 17세 소년 '데클란' 역을 맡은 배우 전성우, 장률, 이휘종.

욕설을 가득 담은 말투로 산만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버스카드를 찾던 소년은 “늦으면 게리한테 맞아 죽을지 모른다”면서 급하게 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그림을 달라면서 손을 뻗은 소년을 향해 리비가 말한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당황한 데클란은 ‘쓰레기’나 다름없는 그림이니 가지라면서 부탁을 남긴다.

“여기는 나만의 장소예요. 나한테는 중요한 곳이라고!”

다음부터는 자신의 공간을 침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데클란은 언덕 아래 멀리 보이는 공동주택 단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한 순간 스위치를 끄면 모든 불빛이 사라지듯 삶의 ‘끝’을 향하고자 했던 리비는 에든버러의 하늘을 배경으로 까치발을 들고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그린 그림 앞에서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솔즈베리 언덕 위에 서 있는 '리비(김여진)'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물체가 바닥에 닿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궁금해한다. 중요한 것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리비는 언덕 끝에서 허공으로 팔을 뻗는다./사진=연극열전

떠오르는 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도시 뒤로 드리워진 거대한 핏빛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그림, 마치 모든 것을 먹어치우기라도 하려는 듯, 혹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입’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욕실 벽에 붙여놓고 바닥에 앉아 바라보던 리비는 그것이 “그 애 나이 때의 자신이 만들었을법한 그런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펜을 꺼낸 리비는 종이 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소년, 언덕, 도시,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를 그린 그림 하나!

2인극으로 펼쳐지는 ‘마우스피스’는 한 때 “차세대 극작가”로 불렸으나 목표를 상실하고 삶에 지쳐 25년 만에 알콜중독자인 엄마의 집으로 돌아온 중년의 극작가 리비와 불안정한 가정의 학대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홀로 그림을 통해 표출하며 분투하는 17세 소년 데클란의 “전혀 예상치 못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솔즈베리 언덕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상대의 손을 잡아 구원을 향한 길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재능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클란에게 리비는 색연필 세트를 선물하고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데려가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여준다.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에든버러 뉴타운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난 '리비(김신록)'와 '데클란(장률)'은 공공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클란은 한 때 극작가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는 리비가 일을 그만두게 된 배경을 궁금해한다./사진=연극열전

소외 계층을 위한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고 문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세워진 공공미술관의 존재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혀 닿지 못한 채 ‘데클란’과 같은 현실을 방치하고 있다.

7살 때 알콜중독자였던 아버지가 목을 매 자살한 충격과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계부의 폭력은 데클란을 ‘불안 장애’로 이끌고, 그림 치료를 권했던 지역복지센터는 예산감축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

공원을 배회하던 데클란은 경찰의 시선을 피해 솔즈베리 언덕 위에 앉아 홀로 그림을 그리며 내면의 모든 감정들을 표출한다. “신이 주신 선물”이란 뜻의 ‘시안’이란 이름을 가진 6살 여동생을 계부에게서 보호하고 어설픈 ‘가라데’ 동작을 보여주며 웃음을 선물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기쁨이었던 데클란에게 미술관의 그림들은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준다.

인간이 지닌 고독과 공포, 고통과 불안을 강렬하게 드러낸 기괴한 입과 치아를 그린 베이컨의 그림들은 데클란의 그림과 닮아있다.

고통과 분노, 두려움과 공포를 절규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 소리는 들리지 않는 ‘입’의 그림, 하지만 그 어떤 소리보다 더 강렬한 절규를 듣고 있는 듯 느껴지는 거대한 ‘입’의 모습!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데클란(장률)'이 그린 핏빛의 거대한 '입'은 고통과 불안, 고독과 두려움, 광기와 폭력, 혼란의 감정들을 쏟아낸다. 미술관을 다녀온 뒤 '희망'을 엿본 데클란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 뒤로 에든버러의 혼재된 삶을 모두 쏟아내는 거대한 '입'을 그려넣고 '마우스피스'라는 제목을 붙인다./사진=연극열전

데클란이 ‘마우스피스’라고 제목을 붙인 그림은 삶에 혼재되어 있는 “혼란과 광기와 폭력”을 모두 쏟아낸다. 심지어 미술관 너머에 걸려있는 표지판 글귀에서 본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문장까지 담겨 있는 데클란의 그림에는 현재 그가 느끼는 폭발적인 감정들이 모두 내재한다.

리비는 데클란의 ‘목소리’를 담아내고픈 충동을 느낀다. 소외되고 박탈된 가운데 빈곤과 결핍, 폭력과 무관심 속에 점점 더 절벽을 향해 내몰리는 사람들,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데클란으로 상징되는 계층을 대변하고픈 작가로서의 열망, 젊은 시절 연극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급진적인 목소리”가 다시 되고픈 희망은 리비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든다.

“불안정성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리비에게 데클란이 말한다.

“나 이런 얘기 많아요. 혹시 듣고 싶어요?”

프랑스 태생의 미국 소설가 아나이스 닌은 작가들은 “삶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유혹하고 매료시키며 위로하기 위해, ... 삶을 두 번 맛보도록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또, “삶을 초월해 그 너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 세상을 보다 확장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이 연극이라는 “거대한 공감 기계” 안에 들어갈 ‘목소리’로 선택되어 작품으로 변화하게 될 때, 누군가의 이야기가 더 많은 관객들의 심장 박동을 같은 순간에 맞추도록 하기 위해 ‘극단’을 가정한 결말을 맺게 될 때, 목소리를 제공한 사람의 남아있는 ‘삶’은,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데클란(이휘종)'은 자신의 삶에 드리워져 있는 '불안정성'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리비에게 들려준다./사진=연극열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리비의 연극 작품은 그녀를 죽음의 순간에서 구해주었을 뿐 아니라 절망에서 다시 솟아오를 수 있도록 영감을 되찾아 준 데클란의 ‘삶’을 위해 정말로 “옳은 선택”이었을까?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싶은 욕망과 가능성이 충만했던 삶을 되돌려 받고 싶은 욕심으로 인해 데클란의 삶을, 그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착취하고, 도용하고,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로서 시대의 위기를 드러내야 할 필요성, 논의를 이끌어내고 문제를 드러내야할 의무를 위한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데클란이라는 한 소년을 향한 어른으로서 리비의 ‘책임’은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한 사람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본질을 빌려와 자신을 되찾게 되는 일이 “우리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면, 리비가 데클란을 통해 극작가로의 자신을 되찾았듯 데클란 역시 리비를 통해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헐리는 리비가 말하는 대변자의 역할이 얼마나 허상과 같은 것인지, 극장에 앉아 공감한다고 말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세상이 진짜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극작가의 말과 현실이 얼마나 괴리된 것인지를 관객들 눈앞에 그대로 노출한다.

7파운드 20펜스가 가진 돈의 전부인 데클란이 자신의 삶을 그려낸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돈은 15파운드이다.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극작가 '리비(유선)'는 소외되고 박탈된 가운데 빈곤과 결핍, 폭력과 무관심 속에 점점 더 절벽을 향해 내몰리는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어주고픈 충동을 느낀다./사진=연극열전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관객들은 이미 데클란과는 계층이 다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의 사람들이고, “거대한 공감 기계”와 같다는 극장 안에서 데클란의 이야기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작가와 연출가, 배우가 한 자리에 모여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진짜라고 믿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가짜를 진짜로 여기는” 현실과 괴리된 상태에 놓여있다.

무대 위에서 질문에 답하는 리비를 향해 객석에서 일어선 데클란은 사회가 그어놓은 분리된 세상, 섞일 수 없는 공간, 변하지 않는 현실을 깨닫는다.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어주고 싶다”는 그들의 목적은 실제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진짜 자신들의 목소리로 의견을 말하기 전까지만 수용되는 한계를 품고 있다.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결말, 스토리텔링의 법칙을 주장하며 현실을 ‘허구’로 만드는 리비의 작업은 관객들과 리비를 향해 서 있는 실제 데클란의 모습과 리비가 희곡 대본으로 그려내는 데클란의 행보가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폭로되기 시작한다. 리비가 그려낸 데클란은 칼로 스스로의 목을 찌르고 자해를 하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현실 속의 데클란은 극장을 벗어나 솔즈베리 언덕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죽음은 반드시 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현실에는 오로지 지속되어야 하는 삶이 있을 뿐 누군가의 인식을 바꿔놓기 위한 결말이 포함된 이야기 같은 것은 없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선 뒤 환상을 떠나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간 후에도 무대 위의 소재가 된 이들의 삶에는 다음 행보를 위한 ‘선택’이 남아있다.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사진=연극열전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장면. '데클란(전성우)'은 자신의 삶을 그려낸 극장 안에서 사회가 그어놓은 분리된 세상, 섞일 수 없는 공간, 변하지 않는 현실을 깨닫는다./사진=연극열전

헐리는 연극 ‘마우스피스’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요구에 이렇게 답한다. “규칙은 깨져야만 한다.”

누군가의 삶을 소재로 삼는 일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에, 누군가의 삶의 결말을 창작하는 일에 효과적인 예술적 성취를 위한 규칙 같은 것은 그 자체로 ‘살인’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극 ‘마우스피스’가 관객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남기는 것은 예술을 통해 바라보는 삶의 착취, 고려되어야 할 목소리와 배제되어야할 목소리를 구분하는 권한,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위치에 ‘관객’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극과 실재하는 삶 사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암전’ 아닐까?

연극이라는 환상의 ‘끝’을 의미하는 ‘암전’, 현실 속에서 다음을 가늠할 수 없는 ‘암전’, 존재의 지속여부와 상관없이 끝없이 흐르며 계속되는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암전’ 뿐인지도 모른다.

다음 순간 빛이 밝아지면서 눈을 뜨고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데클란의 말처럼, 마지막 같은 것은 없다. 세상은 계속되고, 삶은 선택을 요구하며, 선택은 환상이 아닌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변화는 규칙을 깨는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1월 30일까지 아트원씨어터 2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하영
주하영
jhy0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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