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박경리 원작 대하극 '토지'...대형 무대에 향토색 짙게 살려내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박경리 원작 대하극 '토지'...대형 무대에 향토색 짙게 살려내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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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색, 연출, 무대, 연기의 조화...역동적인 볼거리로 재미도 갖춰
- 대하소설 무대화에 새로운 장 개척
경남도립극단의 대형 연극 '토지I' 공연 장면. 박경리 대하소설이 원작이다./사진=예술의전당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국내 최초로 연극으로 제작되어 창원, 부산을 거쳐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7월 30~8월 5일)무대에 올랐다. 통영 태생의 작가는 경남 일대를 무대로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대에 걸쳐 풀어내 생명의 소멸과 삶의 소중함을 빛나는 문체로 설파했다.

'토지'는 영화와 TV 드라마로 영상화 되었으나 장대한 서사를 무대에 옮기지 못했다. 이를 2년전 창단된 경남도립극단의 박장렬 초대 예술감독이 대극장 연극으로 제작, 코로나 와중에 어렵게 초연하고 순회 공연에 나선 것이다.

박 감독은 장대한 서사를 한번에 담기 어렵다고 판단, 평사리의 최참판댁 일가가 조준구의 계략으로 밀려나 만주로 떠나기까지를 1부에 담고 '토지 I'이라는 제명을 붙였다.

다음은 1부를 관람한 필자의 리뷰다. 

땅과 생명의 서사극 '토지I'

경남도립극단의 대형 연극 '토지I' 공연 장면./사진=경남도립극단  

경남도립극단의 대형 연극 '토지'는 평사리 너른 땅을 딛고 사는 민초들의 삶을 맡은 배역에 충실한 배우들과, 향토색 짙게 신명을 살려낸 연출의 변화, 대형 무대를 일체감 있게 빚어낸 스탭들의 협업으로 대하소설의 무대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사실 인터미션 포함, 러닝타임이 3시간이란 점에 주눅이 들었다. 박경리의 불후의 명작인 '토지'는 소설로 드라마로 접해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연극으로 어떻게 형상화될지는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그 많은 등장인물들과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 시대 변화와 계급, 이념 등등 장대한 서사를 무대에 옮기기란 결코 수월한 작업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긴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후속작을 염두에 둔 '토지I'은 일단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있었고, 대소 장면의 연결과 구성이 매끄러워 지루하지 않았다. 

그 같은 동력은 대하소설 '토지'를 희곡으로 각색한 김민정이 만들어 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원작의 주제를 바탕에 깔면서, 땅 위에서 운명에 순응하며 핍박한 삶을 살아내며 사랑하고 죽고 태어나는 생명에 초점을 맞춘 각색이 '토지'의 무대예술화를 가능케 했고, 이를 잊체화 함으로써 현장 아우라가 빚어내는 감흥을 안겨준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박장렬 경남도립극단 예술감독 겸 연출은 세밀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려냈다.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평사리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살려내면서 마을 전체의 이벤트로 펼쳐내는 집단 연기를 효과적으로 배치시킨 구도가 탄탄했다. 대보름 달맞이 놀이, 상여 나가는 장면, 주민들의 봉기, 커튼콜 직전의 꽉찬 무대 등이 개인사를 감싸안으며, 춤과 노래를 곁들인 역동적인 볼거리로 무대예술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경남도립극단의 대형 연극 '토지I' 공연 장면. 

이를 가능케 한 수훈 갑은 무대디자인(엄진선)이었다. 토월극장의 깊이를 최대한 활용한 무대는 평사리 너른 평야였다. 뒤쪽에 천년은 견된듯한 장대한 노송이 받쳐준 너른 들판에서 민초들의 애환이 펼쳐졌다가 축제의 마당이 되기도 하는 기능적인 무대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고졸하진 않지만 중심 역할을 하는 최 참판 댁 고옥을 절반으로 잘라 무대 전환을 자유롭게 한 점도 돋보였다. 

가사 전달이 잘 되는 민초들의 노래를 작곡하고 장면마다 분위기를 살린 음악(박진규)이 좋았고, 축제 장면에서의 안무(박호빈)도 극에 잘 녹아들었다. 조명(김철희), 의상(박근여), 분장(이지원), 음향(이기봉)의 협업이 조화를 이뤘고, 특히 수많은 등장 인물들을 빠른 장면 전환으로 연계시킨 무대감독(강희순)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작품의 강점은 경상도 사투리가 극과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사투리를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배우들의 발성에서 묻어나는 억양과 운율이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경남도립극단이 '토지'를 창단 작품으로 내세운 것도 경남이 박경리 작가의 고향이자 '토지'의 배경을 이루기 때문인데 그런 점을 잘 살려냈다.

경남도립극단의 '연극 토지I'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연극 '토지'에는 30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도립 단원들을 주축으로 외부 배우도 섞였는데 캐스팅이 잘 되었다고 할 만하다. 연륜이 묻어나거나 지명도가 큰 배우들이 아니라 처음에는 생소하게 보였는데, 저마다 맡은 역을 충실하게 소화하면서 오히려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배역에 따라 연기가 돋보이는 배우들이 있었지만 거의가 자기 역할에 집중하다보니 앙상블로 이뤄내는 하모니가 좀 약한 점은 아쉬웠다.

서희를 주축으로한 젊은 연기진들의 연기가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신선했다. 서희 역 박선혜는 호연했으나 좀 더 비중을 두어 품위를 갖추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상 역 한재호는 상큼한 목소리와 깔끔한 연기로 맡은 역을 소화해내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할만 했다. 노래를 곁들인 봉순 역 이사라의 연기도 투박한 듯 하면서 매력있었다. 윤씨 부인 역 이은경은 줏대와 위엄을 갖춘 마님 역을 잘 해냈으나 분장으로 연륜과 풍채를 살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조준구 역 박승규는 악역을  절제된 연기로 능란하게 펼쳐내 등장인물 중 가장 돋보였다. 홍씨 역 김수현은 개성이 강한 연기를 펼치다보니 과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경남도립극단의 '연극 토지I'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월선 역 김지연, 귀녀 역 김진영, 함안댁 김현수, 삼월 역 하미연 등 여자 배우들이 경연하듯 열정적으로 연기를 펼쳐 극에 사람냄새 짙게 풍긴 것은 좋았는데 그러다 보니 오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신 나갔지만 사건의 현장에 맴도는 또출네 역 박배리는 어려운 역할을 온 몸으로 표출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남자 배우들은 연기력도 고르게 좋았지만 연륜이 묻어나 '토지'의 토속성을 살려내는데 큰 몫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삼수 역 박현철의 개성적인 연기와 성실성을 칭찬하고 싶다. 아역 3인(최연서 이태화 유민지)의 연기도 예뻤고 극의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특히 성인 배우와 교체하는 장면의 연출이 자연스러웠다.

  경남도립극단의 '연극 토지I'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연극 '토지'는 스펙터클한 대서사극에 욕심 내지 않고 도립극단이 해낼 수 있는 역량 안에서 토지의 이야기를 극화하고, 그 안에 작가가 말하려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 특히 사람이 죽고 태어나는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2021년 주목할만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태양과 달과 눈이 대지의 생명력을 뿜어내는 그 땅에서 생존하는 민초들을 경상도 언어로 향토색 짙게 그려냄으로써 지역 연극의 특성을 살려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아쉬운 점은 후속작을 의식해 전반부에 성취해 놓은 연극적 서사를 후반부에서 방송드라마처럼 스토리텔링 위주로 끌어간 것이다. 극의 대미를 좀 더 연극적인 형식으로 장엄하게 이끌었다면 박장렬의 '토지'는 더욱 빛났을 것이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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