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정동환 연기가 인상적인 힐링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정동환 연기가 인상적인 힐링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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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펼쳐진 무대 배경으로 사별한 아내 그리는 한 남자의 순애보
사진=세종문화회관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배우 정동환/사진=세종문화회관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사랑’이란 느낌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했다. 아내가 가꾼 정원에서 사별한 아내를 추억하는 한 남자의 순애보를 통해...

정동환 배우의 초대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관람한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7월 4일)는 ‘정원’을 테마로 한 이색 연극이다. 희곡의 틀에 갇힌 작품이 아니라 외국 소설을 우리 감성에 맞게 창작한 연극이다. 실험극인 셈이다.

우선 무대만 보아도 힐링이 된다. S씨어터 정방향 너른 무대의 절반 가까이에 정원을 꾸몄다. 냇물이 흐르고 오솔길이 있으며 푸른 잔디밭 여기저기에 펜지, 아네모네, 스위트피, 장미꽃(실제와 다름)이 피어있다. 정원 뒤편에 채광창이 넓은 거실이 있고 피아노와 식탁, 흔들의자가 있다.

눈을 감아도 명상이 된다. 여성 4인(피아노 김인애, 풀루트 양미현, 첼로 이현정, 바이올린 명다솜)의 라이브 연주가 바람에 실려오듯 객석을 감싼다. 라이브 연주는 때로 튀기도 하는데 이 무대에서는 잠자기 좋을 만큼 감미롭게 젖어 든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의 무대. ‘정원’을 테마로 한 이색 연극이다./사진=세종문화회관

형식이 늘 보던 연극과 다르다. 아버지 사미언(정동환)과 딸 로즈먼드(이경미)의 2인극 같기도 하지만 내레이터(김소진)의 역할이 독특하게 작용한다.

창작의 신선함도 작은 너울처럼 밀려든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희곡 형식으로 쓴 작품을 접한 석재원 프로듀서가 이진욱 음악감독과 의기투합하여 황정은 각색, 오경택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조명과 음향에 매료되어도 좋다. 김성구 디자이너가 지휘한 조명의 변주는 관객의 심리를 어루만지듯 위로하고, 사랑의 기쁨 뒤 고독까지도 느껴지게 한다. 조명이 연극에 동참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은 누가 꾸몄을까? 물을 가득 채워 호수를 만든 무대(갈매기)도 보았고 벚꽃을 만개시킨 일본 작품도 있었지만 김종석의 이번 무대디자인은 생화를 써서 자연미를 흠씬 살린게 매력이다.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사진=세종문화회관

미국 뉴욕주에 거주햇던 성공회 신부의 실화를 그린 내용은 단순 소박해서 재미는 별로 없다. 결혼 1년 만에 딸을 낳고 산고로 죽은 아내를 그리며 정원에서 새들의 지저귐과 자연의 소리를 기보(記譜)해온 시미언은 아내에 대한 연민으로 딸 로즈먼드마저 떠나게 한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로즈먼드가 집에 돌아오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시미언이 죽자 딸은 아버지가 평생동안 기보한 '야생 숲의 소리'를 책으로 펴낸다.

그런데 이 에세이풍의 이야기를 정동환을 중심으로 세 명의 배우가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생생한 캐릭터로 소생시켰다. 풀루트와 바이올린이 새소리, 바람소리로 이들과 공생하는 설정도 이 작품의 자연친화적인 매력이다.

정동환 배우는 한국 연극무대에서 독보적 존재다. 필자는 1970년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마의태자'에서 정동환의 역량과 가능성을 발견했다.

연기 인생 50년의 대배우 정동환은 지난해 엄청난 에너지를 요(要)하는 고난도 1인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해내더니, 올해는 대작인 단테의 '신곡-지옥편'에서 시인 베르길리우스 역으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햄릿'과 '레이디 맥베스' 등에서 파워풀한 연기를,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분방한 연기를,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에서 실험적 연기를 펼쳤던 정동환이 이번 무대에서는 죽은 아내의 영혼 같은 정원을 가꾸며 사랑과 그리움에 겨워하는 시미언 역을 맡아 포근하게 우리 곁에 다가오는 감성 연기를 보였다.

“고통, 고통만 남았어. 고통 자체가 여정이야. 아주 바람직한 여정, 생각보다 괜찮은 여정.”

피를 토하듯 외쳐대는 고통에 대한 절규를 정동환은 폭발적 에너지로 쏟아냈다. TV드라마나 영화에서 신부 역을 자주 했던 정동환은 이번 작품에서도 성공회 신부 역을 맡아, 신의 부재(不在)까지 체감한 절망을 딛고 아내를 향한 지고지순의 사랑을 자연에 쏟는 순수한 캐릭터를 멋지게 해냈다.

사진=세종문화회관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공연 장면/사진=세종문화회관

내레이터 김소진의 발견은 큰 수확이었다. 나레이터 역이지만 단순 해설이 아니라 “목소리 자체만으로 연기의 지평을 확대시키면서, 자신의 존재를 자연스레 극에 녹여내리는 환상의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사미언의 음악인 듯, 때로는 극중 인물인 듯, 혹은 그들의 내면인 듯 아름다운 목소리와 이야기하는...”

소리도 아름다웠지만 대사 하나에 의미를 실어 명징하게 전달하는 화술은 이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언어와 음악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까지 해내며 이야기를 시적(詩的)으로 승화시켰다.

딸 로즈먼드와 아내 에바를 1인 2역으로 해낸 이경미는 두 역할 모두를 차분하면서도 따사롭게 해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데다 아버지 곁에서 떠나야 하는 아픔을 겪지만 죽은 엄마를 못 잊는 아버지를 보듬으며 생전의 염원을 이뤄주는 효성의 캐릭터를 단아한 이미지로 잘 소화해냈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는 무대에 정원을 끌어들이고 자연의 소리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을 라이브로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코로나로 심신이 지친 관객들에게 힐링을 주는 ‘명상과 치유의 연극’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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