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삼복 연극가에 '산(山)돼지' 3색(色) 경연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삼복 연극가에 '산(山)돼지' 3색(色) 경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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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의 근대 희곡을 중견 연출가 3인이 다르게 펼치는 '산돼지'
블루팀(연출 정재호), 옐로우팀(송훈상), 레드팀(권혁우)이 펼치는 연극 '산돼지' 포스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코로나 방역 4단계에 30도를 넘는 찜통 더위 속에 100년 전 희곡을 대학로 중진 연출가 3인이 공연 중이다.

극단 이구아구는 개화기 지식인이자 시인인 김우진이 1926년에 탈고한 장막 희곡 '山돼지'를 텍스트로 택해 블루팀(연출 정재호), 옐로우팀(송훈상), 레드팀(권혁우)이 펼치는 제2회 3인3색을 14일부터 명륜동 아름다운극장에서 공연중이다.

제1회는 지난해 황대현의 창작극 '현혹'으로, 무대는 같으나 배우가 다르고 연출의 해석이 달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어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3인3색은 작품 선택이 좀 어려워 보인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기를 바라는 예술가들의 몸짓이 다양함을 통해 전달하겠다”는 의도지만, 개화기 지식인들의 절규와 사랑을 대중들이 3색(色)을 견주며 좋아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반면 상업화가 판치는 연극계에서 지원도 변변히 받지 못하는 극단이 복(伏) 중에 3인 3색의 실험적 공연을 펼친다는 것은 결코 무모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필자가 이 기획에 관심을 갖는 연유다.

우선 연극인들의 참여 마당이 넓다는 점이 기획의 특징이다. 세 팀의 배우와 스탭이 다르다. 팀당 10여명만 잡아도 참여 인원이 30여명에 이른다. 이는 대학로에서 설 무대가 없는 연극인들에게는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둘째로는 공연만 하고 피드백을 하지 않는 연극계에 비교하면서 보고 비평해 보는 학구적 풍토를 조성해 준다는 점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연출가들이지만 관점이나 해석은 다르기 때문에 한 작품으로 세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자 매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이 좀 보편성, 대중성을 지녀야 하나 김우진의 희곡은 연극사 전공자들이나 접할 정도로 학구적이다.

필자는 16일 정재호 연출의 블루팀 공연을 보고 다음과 같은 리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국판 '햄릿'? 연극사학자 유민영 교수가 《한국현대희곡사》에서 "1920년대 한국의 '햄릿'"이라고 갈파한 김우진의 희곡 '산돼지'를 연출가 정재호 버전으로 7월 16일 아름다운 극장에서 관람했다.

극단 이구아구가 3인3색 두번째 작품으로 택한 '산돼지'는 가수 윤심덕과 현해탄에서 정사한 지식인 김우진이 1926년 7월에 탈고한 마지막 장막극(희곡 5편 중)이다. 지난해 3인 3색 '현혹'을 흥미있게 비교 감상했는데, 이번 3인 3색은 어떨지 관심과 기대가 컸다.

그런데 사전 지식 없이 극장에 간 것이 낭패였다. 근 100년 전 희곡이어서 단어나 어투가 생소했다. 줄거리도 모르는데다 초반 한동안은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육성이 잘 들리지 않아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파를 벗어난 근대 희곡이고 표현주의 기법으로 쓴 당대 젊은 지식인의 임상보고서라는 프로그램의 작품소개도 관극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관극 후 유민영 교수의 희곡사를 보니 김우진과 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었으나, 유 교수가 “한국의 햄릿”이라고 한 이유는 공연에서 잘 이해되지 않았다.

'블루팀' 정재호 연출의 '산돼지' 커튼콜 무대에 오른 출연진들./사진=정중헌

줄거리는 식민시대의 암울한 시대에 산돼지처럼 뜻을 펼치려 했던 원봉(서광재)이 집돼지처럼 된 신세를 한탄하고, 신여성과도 갈등을 빚는데다 사랑한 여동생 영순(장주연)을 친구에게 보내야 하면서 들춰낸 출생의 비밀이 기둥이였다.

연기파 서광재 배우가 주인공 원봉 역을 맡아 혼신의 연기를 펼쳤으나 분장만으로는 세대차를 뛰어넘는데 한계가 보였다.

극장 구조인지 모르나 여배우들의 대사가 잘 들렸고 연기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특히 원봉을 키운 영순 엄마 최주사댁 임은연 배우의 연기가 돋보였다. 한복 차림으로 1920년대 안방 여인네 정취를 풍기면서 원봉에 대한 원망을 한 맺히게 풀어내는가 하면 변혁의 시대에 한 집안을 이끄는 여인의 줏대를 꼬장꼬장하게 연기했다. 그 시대 중산층 여인의 체취를 풍기며 쫀득한 화술과 맛깔스런 연기를 펼친 것이다.

영순 역 장주연은 또렷한 대사로 두 남자 사이에서 현명하게 처신 하는 또부러진 연기가 참신했다.

정숙 역 정다은은 한 남자에게 버림당했지만 자기 주장을 야무지게 펼치는 당찬 신여성상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원봉의 생모 역 이은향 배우는 꿈 속 장면에만 등장해 연기 분량이 작은 점이 아쉬웠다.

차혁 역 배찬태 배우가 비중 있는 역을 맡았고, 정식 역 엄지용과 병정 역 전성열 역시 꿈 속 장면에만 등장했다.

'블루팀' 정재호 연출의 '산돼지' 배우 장주연./사진=정중헌

근대 희곡을 무대에 형상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재호 연출은 4각의 링 같은 중심 공간에서 이야기를 펼치며, 특히 꿈속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펼치는데 연출의 포인트를 둔 것 같았다.

리뷰를 본 정재호 연출이 자신의 작품을 ‘한국판 햄릿’과 비교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문자를 보냈다. 필자는 “비교가 아니라 김우진 희곡을 알기 위해 유민영 교수의 희곡사를 읽다가 재미있는 표현이어서 인용해 보았다”는 답을 보냈다.

유민영 교수는 왜 '산돼지'를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비유했을까.

그의 희곡사를 보면 “'산돼지'는 식민지 시대라는 상황에서 봉건적 인습의 고옥(古屋) 속에 유폐되어 몸부림치던 개화 초기 지식인의 좌절을 가장 절실하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했다. 특히 주인공 원봉이 고민에 빠져 출구를 찾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1막이 ‘사느냐, 죽느냐’로 대표되는 '햄릿'과 유사하다는 것이 유 교수의 주장이다.

정재호 버전은 '햄릿'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두 연출자의 관점은 아직 공연을 보지 못해 알 수가 없다.

현대 연극이 보편화된 지금, '햄릿'과 비슷하냐 아니냐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연극을 천직으로 알고 연극에 매진하는 중견 연출가 3인이 '산돼지'를 통해 한국 창작극의 근원을 천착하고 각기 주제와 접근, 표현방식으로 구현해 냈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학구적인 실험을 용기있게 해낸 3인 3색의 '산돼지' 기획과 공연 참가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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