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시대를 풍미했던 감독들, 관객에게 잊혀져도 그들은 여전히 영화를 꿈꾼다
[칼럼] 한시대를 풍미했던 감독들, 관객에게 잊혀져도 그들은 여전히 영화를 꿈꾼다
  • 김두호
  • 승인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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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섭, 배창호 감독을 생각한다

지난 5월 타계한 한국 코미디영화의 거장 심우섭 감독.

【인터뷰365 김두호】지금 서울 시민 절대다수의 부모 또는 조부모 어른들은 농촌 출신이다. 한해 200여 편이 넘는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한국영화 황금기의 초입인 1960년 말 서울시 인구는 245만여 명이었다. 농경사회가 경제기반이던 시대가 차츰 제조공업 중심의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몰려나온 농촌 출신들이 서울시민으로 입성해 지금은 서울인구가 1천만 명을 넘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은 사는 것이 고달팠다. 바로 6, 70년대는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달픈 트로트 가락이 심금을 울려주며 시름을 잊게 했고 극장에서는 눈물을 짜내는 멜로드라마나 코미디언들이 너스레를 떨며 웃겨주던 영화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지난 5월 봄바람이 차갑게 불던 날 새벽에 조용히 88세로 생애를 접은 심우섭 원로감독은 ‘남자식모’ ‘팔푼며느리’ ‘남자기생’ 등 70여 편의 영화 연출 작품 중 대부분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곽규석 박시명 송해 양훈 양석천 등 희극인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들이다. 그들 희극배우들이 개그맨들의 원조였고 코미디언 1세대들이다. 심우섭 감독의 희극영화 연출의 탁월한 역량을 두고 동시대 사극 애정 멜로 영화의 대부였던 신상옥 감독도 “당신의 재주가 부럽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일화를 필자는 생전의 심우섭 감독에게 여러 번 들었다.

심 감독은 일찍 서울에서 안산으로 이주해 잠시 살다가 부천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오래전 부인과 사별한 뒤 부천을 떠나지 않고 혼자서 생활해 왔다. 출가한 따님 한 분은 김해 쪽에 살아 10여년 독신생활을 했지만 무릎 관절 수술 후부터 스틱을 사용하는 정도였을 뿐 건강하게 여생을 보냈다. 작고하기 하루 전날은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건재한 송해 원로 코미디언의 낙원동 사무실(한국연예인상록회)을 방문한 것인데 그는 틈이 나면 충무로 시대를 함께한 송해를 찾아가 정분을 나누고 외로움을 풀었다.

젊은 나이에 충무로를 떠난 심 감독은 영화 카메라 대신 사진 카메라를 들고 영화와 관련된 행사나 인물의 기록사진을 찍는 일에 몰두해 그의 작은 보금자리는 자료창고가 됐고 찍은 사진 중 영화인이 있으면 댓가를 받지 않고 인화를 해서 나누어주는 봉사의 삶을 살았다. 수십 년을 두고 촬영하고 모은 방대한 자료와 개인 소장 시나리오, 영화서적 등을 몇 해 전 “이제는 정리를 해야 할 때”라면서 부천문화원에 기증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세월이 한없이 흘러가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생전의 심 감독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인 자리를 버리지 않고 살았다. 영화 제작 현장을 떠나도 감독들은 그렇게 대다수 머리 속에 늘 연출하고 싶은 작품들의 목록들을 가득 채워두고 막연하게 연출의 꿈을 꾸며 산다. 7년 전쯤 심 감독을 따라 단성사 부근의 커피숍에 갔다가 ‘춘향전’의 이 도령 역으로 한 시대 최고의 인기를 풍미한 마남배우 이민 씨를 만나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도 그와 마지막 한편의 영화를 만들려는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평생 연출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미망의 늪에서 헤매다가 고독하게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영화평론가인 필자는 평생을 두고 많은 영화인들과 인연을 나누며 살고 있다. 신문기자 시절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감독들은 이제 한 분씩 하늘로 돌아가고 있고 생존한 분들도 노령에 접어들어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80년애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끌었던 배창호 감독. '러브스토리' '개그맨' 등의 작품에는 직접 출연도 했다.

최근 1980년대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밤’ 등 줄줄이 히트 영화를 내놓은 충무로의 명장(名匠) 배창호 감독이 지하철역 선로에서 추락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갑자기 뛰어내렸다는 얘기도 있고 불면증 등으로 정신이 몽롱해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당사자가 큰 탈 없이 구조되어 더 이상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다.

어떤 쪽이든 그는 눈부시게 화려했던 젊은 날의 영화감독 배창호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전혀 딴 세상의 인물로 근황을 드러냈다. 그가 조감독으로 입문해 영화작업을 배웠던 이장호 감독이 사고 직후 배 감독을 만나 전해준 배 감독의 최근 생활은 불면의 밤을 보낼 만큼 새로 연출할 작품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감독들은 그렇게 평생을 작품 준비를 하며 산다. 다시 활동을 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줄 알면서도 작품 준비에 매달려 사는 심경은 언제나 간절하고 애절하다.

한번은 늦은 밤 어는 대학에서 차를 몰고 나오다가 낯익은 사람과 마주쳤다. 한 때 화제의 청춘 영화를 연출하며 충무로의 주류 감독으로 활동하던 분이 대학교 주차장의 관리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분도 오랜만에 만났을 때 새로 만들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하이틴 영화의 바람을 일으킨 문여송 석래명 김응천 감독 등도 타계하기 직전 필자가 만난 분들인데 다들 현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마지막 나눈 대화는 준비 중인 영화 얘기였다.


영화감독의 후반 인생은, 여생은 못다 한 연출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쓸쓸한 삶이다. 중년이후의 감독들이 연출 현장에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항상 그려보지만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유럽이나 할리우드에는 노령의 감독들이 쟁쟁하게 현역으로 남아 활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 영화계는 대개 50줄을 넘어서면 창작 에너지를 소진하고 작품에 대한 감각과 역량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시대와 세대가 바뀌지만 영화관객은 언제나 젊다는 것을 의식하고 치열하게 새 작품을 내놓지 못하면 현장 을 떠나야 하는 것이 상업영화의 냉혹한 현실인 탓이다.

심우섭 감독이 평생 거닐었던 충무로 길에서 필자와 함깨.
필자는 어쩌다 현장으로 복귀한 노(老) 감독이 만든 영화가 관객들의 갈채를 받는 모습을 볼 때는 행복하고 희열을 느낀다. 몇 해 전 정지영 감독이 '부러진 화살'로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그의 영화사가 있는 일산으로 달려가 장시간 인터뷰를 하며 기쁨을 함께 나눈 적이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데, 우리 영화의 역사를 이어온 노 감독들이 나이와 세월에 무릎 꿇지 않고 꿈꾸던 연출 현장으로 돌아가 한 번만이라도 멋진 작품 하나씩을 내놓아주기를 기대한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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