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65] 김두호가 만난 21세기 변사 최영준
[인터뷰 365] 김두호가 만난 21세기 변사 최영준
  • 김두호
  • 승인 20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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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성영화 변사 된 만능 재주꾼 최영준
- ‘이수일과 심순애’ ‘검사와 여선생’ 변사
- 개그맨 출신에 MC 가수 배우로도 활동
고전 무성 영화에서 구성진 입담으로 주연 조연 단역의 대사까지 혼자서 읊는 변사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무성영화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변사 최영준 씨는 무성영화 ‘이수일과 심순애’ ‘검사와 여선생’ ‘나운규의 아리랑’ 등에서 '21세기 변사'로 활약하고 있는 이 시대의 마지막 변사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TV예능무대의 개그맨으로 출발한 최영준의 천부적이고 다양한 재기(才氣)가 지금 고전 무성영화 상영에서 독보적인 전문직으로 분류 되는 변사로 옮겨가 빛을 발하고 있다. 더불어 연극과 노래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연활동을 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분주하게 살고 있다.

최영준은 나이 밝히기를 싫어한다.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가 연예인의 나이라고 주장하면서 스스로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 이순(耳順)을 저만치 넘어섰지만 실제 외모는 40대쯤으로 젊어 보인다. 일에 대한 열정과 활동량도 왕성한 젊은 혈기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의 요청대로 <인터뷰365>에서는 나이를 감추었다.

아무나 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희귀한 직종의 변사로 전문성을 인정받게 되면서 5년 전 타계한 한국영화의 ‘마지막 변사’ 신출(1928~2015 본명 신병균) 선생의 빈자리는 그의 차지가 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공개 기념행사에서 무성영화 ‘이수일과 심순애’ ‘검사와 여선생’ ‘나운규의 아리랑’ 등의 필름을 돌리게 되면 그의 구성진 입담이 벙어리 영상을 살려내는 주인공 역할이 되어 변사극을 연출한다.

영화관 사업주들의 단체인 한국상영발전협회(이사장 이창무)가 한국영화 100주년인 2019년을 마감하는 연말에 무성영화 변사로 상영문화 발전에 기여한 성과를 평가해 공로패를 수여하는 자리에서 21세기 변사 최영준을 만났다.

나이 들고 늙을 틈이 없다

무성 영화 변사극을 공연 중인 변사 최영준 씨

- 명함을 보면 ‘한국무성영화발전소’와 ‘최영준 유랑극단’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희귀한 고전 공연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모두 나 혼자 소속된 이를테면 1인 기업, 원맨쇼 단체다. 때로는 큰 무대 공연을 위해 참여하는 동료 예능인들이 있지만 평상시에는 나 혼자 북치고 장고치는 공연이다. 무성영화발전소는 화면이 돌아가면 주연 조연 단역의 대사까지 혼자서 읊어야 하는 변사극(그는 변사를 변사극으로 전문성이 필요한 한 장르의 직종으로 분류하고 있다)을 보여주는 일이다. 유랑극단은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무대만 있으면 온갖 재주를 피우는 모노드라마로 선보여 온 내 특화된 공연을 뜻한다."

- 연극 ‘약장수’ ‘팔불출’이라면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 최영준 개그맨 배우의 소문난 장기(長技) 공연물이 아닌가?

"1980년대부터 1인 공연 연기에 신들린 사람이 되어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나이를 먹고 늙을 틈이 없었다. 이대 앞 극장과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장기간 공연도 했지만 지금은 상설무대를 갖지 않고 수시로 순회 초청 형태로 관객을 찾아가는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무성영화 변사 최영준 씨가 변사를 맡은 무성영화변사극 '이수일과 심순애' 포스터 

- 변사 활동은 언제부터인가?

"‘이수일과 심순애’ 등 고전극을 연극으로 공연하게 되면 진행자나 배우가 변사극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마지막 변사인 신출 선생을 만나기 전부터 기본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신출 선생의 기량을 제대로 익히면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최하는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 등의 작품이 상영될 때 연간 20회 이상 변사로 출연을 해왔다."

-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곳이 TV 개그프로였다.

"그렇다. 나는 타고난 끼를 주체하지 못해 37살 때에 나이를 27살로 속여 개그맨 오디션에 응시, 다행히 합격해 그로부터 좋아하는 직업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무성영화 변사 최영준 씨는 37세에 개그맨 오디션에 합격해 TV개그프로그램으로 활동하며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 천부적이라면 혹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인가?

"전혀 반대쪽이다. 나는 독립투사 후손이다. 해방 후인 1953년에 별세하신 최윤지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으셨다. 민족청년단장으로 활동한 아버지는 건국초기 공안검사를 지낸 최윤칠 작은 할아버지의 추천으로 이범석 장군(독립군 참모장으로 건국초기 국무총리와 국방장관 역임)의 경호대장을 지내셨다. 연예인과 거리가 먼 고지식한 사회 활동가 집안이다. 다만 나의 체질이나 외모, 키는 163㎝인 아버지를 많이 닮아 민첩하면서 작고 마른 체격이다."

- 별난 재능과 끼를 드러낸 시기는?

"5.16 혁명 후 자유당 정권이 사라지면서 우리 집안도 힘들어졌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해 기차 통학으로 서울의 휘문중고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해 경기중을 지망했지만 떨어져 휘문중을 다녔다. 소년기에는 나이가 어려도 생각이 어른스럽고 꿈이 높아 애늙은이 소리를 들었다. 대학도 서울대만 대학으로 보여 진학 시기를 놓쳤다. 그 무렵에 연극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최영준 씨는 한국영화 100주년인 2019년을 마감하는 연말, 무성영화 변사로 상영문화 발전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아 한국상영발전협회로부터 공로패를 수여받았다. 공로패를 수여하고 있는 이창무 한국상영발전협회와 최영준 씨. 

- 연극배우를 먼저 지망했다는 얘기인가?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가 1년 후 장래성이 있다는 인하대 조선공학과를 선택했다. 재학 중 일 때 연극배우를 하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단호하게 집을 나가라며 반대하셨다. 그래서 집을 나와 연극에 빠졌다. 내 인생의 첫 롤 모델이 이호재 연극배우다."

롤 모델이 되어준 이호재 배우

<인터뷰365>와 인터뷰 중인 무성영화 변사 최영준 씨. '21세기 변사'로 활약하고 있는 이 시대의 마지막 변사다./사진=인터뷰365

- 이호재 연극배우에게 매료된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가 출연하는 모든 작품이 좋았다. 눈빛, 목소리, 미세한 표정과 몸짓 등 그의 연기는 나의 연구대상이었고 연기자가 되기 위한 학습 교본이었다. 숨소리까지 엿듣고 싶어서 무대 앞에 바짝 다가간 객석을 좋아했다. 그러나 출연 작품들이 대부분 창작극보다 번역극이 많았던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창작극에 일찍 눈을 돌렸다."

- 자신의 창작극 ‘팔불출’을 스테디셀러로 선보인 모티브로 보인다.

"‘팔불출’은 나의 창작극이고 ‘약장수’는 오태석 작품이다. 그런 작품들을 준비하고 공연하면서 정말 미친 듯이 몰입했다. 꼭 끼어 있어야할 술자리에서도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연습실로 뛰어갔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공연하다보니 지금은 아무 곳이든 빈 공간, 빈 무대만 있으면 맨 몸으로도 관객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 내 공연은 세트시설 등 무대 장치가 없어도 돌아간다. 조명이 없으면 내가 가져간 손전등을 관객석에 나누어 주고 흥미 있게 분위기를 연출 할 수 있다."

무성영화 변사 최영준 씨는 연극과 노래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연활동을 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분주하게 살고 있다./사진=최영준 씨 제공

- 변사극은 흘러간 시절의 고전을 이 시대 관객이 좋아하는 언어 감각으로 리메이크 하는 음성 연기를 필요로 한다. 긴 시간을 두고 목소리를 살려 나가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할 것이다.

"행사가 끝나면 온 몸이 파김치가 된다. 13년 전 성대 결절의 부작용이 나타나 호되게 고생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나는 콧소리인 비음을 통한 소리의 연기를 감지하고 경험했다. 비음을 활용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고, 또 예쁜 여자 목청도 뽑아내게 되었다.

트롯의 원조 노래 ‘목포의 눈물’을 원조 가수 이난영 못지않게 애절한 목소리로 불러 앵콜을 반복토록 하고 있다. 남인수 노래도 100년 전 그의 목소리로 재현할 수 있다."

- 과거를 종합해 보면 모노드라마처럼 공연활동도 혼자서 개척하고 이끌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변사도 아무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나는 언제나 큰 꿈을 가지고 인생을 헤쳐 나왔다. 꿈을 꾸는 놈이 달나라도 갈 수 있다. 가야할 길이 꽃길과 가시밭길, 두 길이 있을 때 나는 기꺼이 남들이 가지 않는 가시밭길을 즐겨 선택했다. 그 길은 힘들지만 성취감이 따른다. 감동을 주는 인생을 바란다면 꽃길보다 가시밭길로 가야한다."

- 하고 있는 활동이 모두 추억과 관련 된 공연 프로그램이다. 앞으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은가?

"젊은이들이 보면 나는 그들 부모들을 위해 재롱을 피우는 옛날식 신파 광대일 뿐이다. 좋게 보면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울고 웃으며 고달픈 인생 고개를 함께 넘어가는 재미있는 배우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층에도 맞는 현대판 공연소재를 꾸준히 보여주는 노력도 하고 있고 오래전부터 수시로 다녀온 미국 등지의 해외 공연도 올해부터 활발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일거리 하나를 찾아내 즐기고 있다. 화가가 그림을 그려 보내주면 나는 그 그림에 짧은 한 줄 싯귀를 얹어 일종의 시화(詩畵) 작품을 완성하는 창작 작업이다. 웹툰화가와 내가 찾아낸 취미생활이다. 언젠가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변사 최영준 씨가 취미생활로 틈틈히 하고 있다는 작업노트. 화가가 그린 그림에 짧은 한 줄 싯귀를 얹어 일종의 시화(詩畵)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고 했다./사진=최영준 씨 제공

- 못다한 얘기나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역사를 보고 미래를 디자인해야 창조적인 좋은 문화가 탄생한다. 디지털시대에 20세기 신파 변사 역할을 하지만 나만의 독창적인 이 시대의 예술문화를 만들어 공연계에 전설을 남기는 것이 필생의 꿈이다. 나의 공연물을 주제로 한 단편 뮤직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손흥민 선수의 축구처럼 죽기 살기로 성과를 거두는 활동을 하겠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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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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