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협력과 상상력, 단결이 완성한 예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리지널 투어
[주하영 365칼럼] 협력과 상상력, 단결이 완성한 예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리지널 투어
  • 주하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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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의 무대화 버전
- 2026년 오리지널 투어 한국 서울 공연 누적 관객 수 19만 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연출을 맡은 존 케어드는 전체적으로 무대 연극 각색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장면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연출을 맡은 존 케어드는 전체적으로 무대 연극 각색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장면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퍼펫(Puppet)’은 기계적 수단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움직여 연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인형을 말한다.

가장 단순한 손가락 인형부터 손 인형, 막대 인형, 그림자 인형,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 거대한 크기의 자이언트 인형에 이르기까지 퍼펫은 다양한 지역에서 상당히 긴 역사를 이어왔다. 학자들에 따르면, 인형극(puppetry)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문명에서 인형극이 존재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문자를 사용하기 전 인류가 종교의식이나 제례의 일부로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형극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 세속적인 공연으로 변모했으며, 각 민족의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다.

일본의 경우, 17세기 동안 발전한 일본의 전통 인형극인 분라쿠(文楽, Bunraku)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분라쿠는 “실제 사람 크기의 약 3분의 2 정도가 되는 정교한 의상을 입은 인형”을 “세 명의 인형 조종사(퍼펫티어, puppeteer)”가 한 팀으로 조종하며 섬세한 표정과 동작을 구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보통 관객이 볼 수 있도록 검은 복장의 인형 조종사들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으며, 주조종사가 인형의 머리와 오른손을 조종하고, 나머지 두 조종사가 왼손과 다리를 맞춰 움직인다. 세 명의 인형 조종사가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는 다리 조작에만 10년을 필요로 할 정도로 상당히 오랜 숙련 기간과 협업, 노력이 필요한 예술 형태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치히로'는 '강의 신'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경단을 선물받는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치히로'는 '강의 신'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경단을 선물받는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최근 CJ ENM의 주최로 국내에서 첫 내한 공연을 선보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 오리지널 투어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개막 전부터 매진으로 관심을 모았던 공연은 3개월간의 여정 동안 평균 객석 점유율 100%를 넘어서는 성적으로, 유료 점유율 98%, 누적 관객 수 약 19만 명을 기록했다.

2022년 일본을 대표하는 공연 및 영화 제작사 토호의 창립 90주년 특별 기획으로 제작된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도쿄 초연 당시 예매 오픈 4분 만에 전석 매진되었으며, 일본 전국 투어에서도 매진을 기록한 후 제47회 키쿠타 카즈오 연극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24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은 조기 매진으로 인해 5주간의 연장 공연이 이어졌는데, 약 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2025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6)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_치히로X하쿠 (Photo by Johan Person)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용으로 변한 '하쿠'와 치히로의 장면은 6명의 퍼펫티어가 이끄는 거대하고 긴 용 퍼펫과 함께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8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디지털 프로세스로 제작된 첫 번째 애니메이션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하 센과 치히로)은 2001년에 개봉하자마자 전례 없는 흥행 열풍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한 애니메이션은 2002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이자, 비영어권 애니메이션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역대 일본 영화 흥행 수익 1위를 지켜온 애니메이션을 무대 공연으로 옮기는 일은 엄청난 관심과 주목, 부담감을 담보로 한다. 여러 신과 정령,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 돼지로 변해버린 인간, 거대한 온천탕이 등장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연극 공연은 어떻게 출발했을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마녀 '유바바'의 분노를 표현하는 장면은 앙상블이 합체한 자이언트 퍼펫으로 표현된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마녀 '유바바'의 분노를 표현하는 장면은 앙상블이 합체한 자이언트 퍼펫으로 표현된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의 공동 연출가로 1987년에 토니상을 수상한 존 케어드(John Caird)는 일본에서 수년간 대규모 오페라, 연극, 뮤지컬 연출을 맡아왔다.

또한 그는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의 명예 부예술감독이기도 하다. 토호가 상연권을 얻어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도쿄 제국극장(帝国劇場)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인 이후, 일본에서 여러 작업을 해 온 케어드는 토호 창립 9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작품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1,900석의 제국극장을 가득 채울만한 잠재력이 있는 일본 작품을 찾던 중 “위대한 스토리텔러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렸고, 그의 애니메이션 영화 중 '센과 치히로'가 “가장 적합한 후보”라고 생각했다. 케어드는 '플레이 빌'과의 인터뷰에서, “배경이 신들을 위한 일본식 목욕탕이라는 단일 공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신들의 온천탕 본관은 일본 '노 극장'을 닮았으며, 주변의 빈 무대 공간은 다른 장면에서 활용된다. /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신들의 온천탕 본관은 일본 '노 극장'을 닮았으며, 주변의 빈 무대 공간은 다른 장면에서 활용된다. /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케어드는 무대에 일본식 목욕탕을 세트로 설치하기 위해 다수의 수상 경력을 보유한 무대 디자이너 존 보우서(Jon Bausor)에게 아이디어를 구했다. 보우서는 3개의 층으로 구성된 목욕탕 본관을 회전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회전할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 나타나도록 했다.

흥미로운 점은 목욕탕이 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能, Noh)'를 상연하는 전용 무대와 상당히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야외무대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기둥과 지붕이 있는 구조를 갖춘 노 극장은 4개의 기둥과 ‘하시가카리(橋掛り)’라고 불리는 다리(통로)가 배치되어 있다.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거나 퇴장할 때 이동하는 통로인 하시가카리는 유령이나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이승으로 들어오는 경계를 상징한다고 한다.

“현대적인 서양 무대 위에 일본 전통 무대 ‘노’를 배치”한 보우서의 무대는 지속적으로 회전하면서 “다양하게 변모하는 역동적인 공간”을 펼쳐냈고, 목욕탕 본관이 무대의 일부만을 차지하게 함으로써, 나머지 빈 공간들을 더 큰 규모의 장면들을 위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을 부과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정든 친구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차 안에서 '치히로(카미시라이시 모네)'는 외로움과 슬픔을 표출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정든 친구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는 차 안에서 '치히로(카미시라이시 모네)'는 외로움과 슬픔을 표출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연극 '센과 치히로'는 부모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게 된 열 살 소녀 치히로가 차를 타고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 신들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는 애니메이션의 첫 부분을, 성벽 모양의 스크린 벽을 세워 배우들이 객석에서부터 무대 위로 올라가 작은 ‘문’을 통과하도록 함으로써, 관객 역시 여정을 함께 하는 구성을 취한다.

문 안으로 어두운 통로를 지나 도달한 곳이 90년대에 우후죽순 생겨난 테마파크가 황폐하게 버려진 지역이라고 생각한 부모는, 주인이 보이지 않는 한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발견하고,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먹기 시작한다.

불안을 느낀 치히로는 음식을 권하는 부모를 뒤고 하고, 잠시 음식점 골목에서 나와 다른 곳을 둘러본다. 그 사이 부모는 돼지로 변해버리고, 치히로는 ‘신들의 목욕탕’이라는 알 수 없는 세상에 갇혀 버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치히로(카미시라이시 모네)'와 '하쿠(아쿠트 니치카)'는 서로를 돕는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치히로(카미시라이시 모네)'와 '하쿠(아쿠트 니치카)'는 서로를 돕는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비슷한 또래의 소년으로 보이는 ‘하쿠’의 도움을 받아 치히로는 몸이 투명하게 사라질 위기를 모면하지만, 곧 “800만의 신들이 피로를 풀러 오는 온천탕”을 지배하는 마녀 ‘유바바’와 고용 계약을 맺어 살아남아야 할 또 다른 위기에 처한다. 

정든 친구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했던 아이가 느끼는 쓸쓸함과 외로움, 슬픔과 불만의 감정은 이제 홀로 자신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돼지로 변한 부모를 구해 신들의 세상을 벗어나야만 한다는 책임과 의무 속에서 ‘성장’의 길로 나아간다.

케어드는 대부분의 사건이 ‘신들의 온천탕’에서 발생하고, 그 외에는 유바바의 쌍둥이 자매인 ‘제니바’가 살고 있는 늪지대 집만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센과 치히로'가, 가면신과 오물신, 강의 신, 거대한 무 형태의 누에신, 야차신과 같이 무대 위에 구현하기 힘든 비인간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훨씬 연극에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처음부터 다양한 비인간 캐릭터들은 퍼펫 디자이너이자 연출인 토비 올리에(Toby Olié)와의 작업을 통해 ‘분라쿠’에서 영감을 받은 인형들을 적용할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강의 신'의 움직임 역시 비닐 소재의 거대한 천과 퍼펫, 배우의 연기, 조명 효과, 음향을 통해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강의 신'의 움직임 역시 비닐 소재의 거대한 천과 퍼펫, 배우의 연기, 조명 효과, 음향을 통해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6살 때부터 퍼펫을 만들며 인형극에 열정을 바쳐온 올리에는, 영국 국립극장(NT)이 제작해 2011년에 토니상 5개 부문을 수상한 연극 '워 호스(War Horse)'에서 군마 ‘조이(Joey)’의 다리와 머리 조종을 맡아 퍼펫티어로 열연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퍼펫을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공연에 참여한 경력의 올리에는 특히 ‘분라쿠’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는데, '센과 치히로'를 위해 정밀함과 명료함으로 사라 라이트(Sarah Wright)와 데이지 비티(Daisy Beattie)와 함께 분라쿠에서 영감을 받은 60여 개가 넘는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을 퍼펫으로 창조했다.

올리에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퍼펫은 무대에 잠깐만 등장하더라도 그 존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관객이 그 존재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해야만” 상상력을 통해 환상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치히로(카미시라이시 모네)'는 강의 신에게 받은 경단으로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구해 신들의 온천탕을 빠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치히로(카미시라이시 모네)'는 강의 신에게 받은 경단으로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구해 신들의 온천탕을 빠져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모든 무대 세트와 퍼펫(인형) 조종은 무용수이자 앙상블인 배우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무대 위에서 배경과 동화되는 옷을 입고 등장해 무대 소품을 배치하거나 세트 장치를 조작하는 가부키 무대의 '쿠로고(黒衣)' 역할에 영감을 얻어, '센과 치히로' 무대와 어우러지도록 카키색 옷을 입은 앙상블(무용수) 배우들은, “관객에게 어떻게 하는지 더 많이 보여줄수록, 오히려 더 마법 같은 느낌이 든다”는 케어드의 깨달음을 반영한 결과이다.

애니메이션의 환상적인 장면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퍼펫들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보면서 관객이 그 원리를 궁금해하는 순간, ‘몰입’이라는 마법 또한 시작되기 때문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하쿠'가 건넨 주먹밥을 들고 울음을 터뜨린 '치히로' 주변의 수국은 무용수(앙상블) 배우들에 의해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하쿠'가 건넨 주먹밥을 들고 울음을 터뜨린 '치히로' 주변의 수국은 무용수(앙상블) 배우들에 의해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퍼펫을 활용해 기이하고 비인간적인 캐릭터들을 무대에 살아있도록 만드는 데에는 가마 할아범의 6개의 팔 구현과, 하쿠의 날아다니는 용으로의 변신, 마녀 유바바의 얼굴이 거대하게 확장되는 장면 등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많은 어려움들이 존재했다.

그중 가장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은, 하얀 가면을 쓰고 검은 형체를 한 얼굴 없는 귀신 '가오나시(顔なし)'가 외로움에 굶주려 '금'을 미끼로 목욕탕의 직원들을 유혹해 잡아먹으면서 급격하게 커지는 장면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였다.

처음에는 팽창식 풍선 인형으로 시도했지만, 거대한 풍선을 무대 위에서 다루기 힘들었기 때문에 고민하던 중, 가오나시가 무용수(앙상블) 배우들을 삼켜버리면서, '플래시 몹(Flash mob)'처럼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합류해 거대해지는 방식이 제안되었다.

12명의 무용수(앙상블) 배우들은 한 팀으로 검은 천 속으로 뛰어들며 가오나시의 거대한 입과 몸의 움직임을 구성하는데, 장면 창작의 대부분이 안무가와 무용수들의 실험을 통해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하얀 가면을 쓴 검은 형체의 '가오나시'가 급격하게 커지는 장면은 검은 천 속으로 12명의 무용수들이 하나씩 들어가면서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하얀 가면을 쓴 검은 형체의 '가오나시'가 급격하게 커지는 장면은 검은 천 속으로 12명의 무용수들이 하나씩 들어가면서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치히로가 용으로 변한 하쿠를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 또한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와이어 장치가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 케어드는 ‘와이어 사용’에 대한 제안을 단번에 일축했다고 말한다.

그는 '플레이 빌'과의 인터뷰에서, “와이어는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깨뜨리게 된다”면서, 여섯 명의 퍼펫티어가 긴 막대기가 달린 커다랗고 긴 용을 조종하는 가운데, 실제로는 치히로가 퍼펫티어 위에 올라타 있는 연출을 적용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공연 내내 관객이 인형(퍼펫)들이 움직이는 모습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상상력을 통해 충분히 몰입을 지속하며, “무대장치를 과시” 할수록 오히려 더 “마법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라고 덧붙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치히로(카와에이 리나)'가 용으로 변한 하쿠를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 또한 퍼펫과 함께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치히로(카와에이 리나)'가 용으로 변한 하쿠를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 또한 퍼펫과 함께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환상적인 장면들이 넘치는 애니메이션을 무대화한 공연에서 관객들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라고 궁금해하고 감탄할 만한 순간들을 최대한 많이 마주해야 하고, “어떻게 했는지 알아차렸으면서도 여전히 놀라워하는 순간”들을 경험해야만 한다.

케어드는 “그것이 퍼펫(인형)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연극의 마법은 영화의 마법과 다르며, 불가능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관객에게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피력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마녀 유바바의 제자가 된 '하쿠(다이고 코타로)'는 자신의 이름을 잊은 상태이지만 치히로의 이름은 기억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마녀 유바바의 제자가 된 '하쿠(다이고 코타로)'는 자신의 이름을 잊은 상태이지만 치히로의 이름은 기억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실제로 관객은 무대를 보는 내내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을 머릿속에 겹쳐 떠올리게 된다.

눈으로 보는 이미지들이 애니메이션의 프레임들과 비교되면서 거의 흡사하게 구현되는 것에 놀라고, 다른 매체의 한계로 인해 다르게 표현된 장면들에서는 적용된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끼는 경험은, 매 순간 라이브로 살아나는 '센과 치히로'의 무대 버전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일본어로 공연되며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는 공연이기 때문에, 자막을 봐야 하는 경우 무대를 놓치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거의 모든 장면과 대사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어서 영화를 본 경우라면, 무대에만 집중할 수 있다.

케어드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극적 구조를 대부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원작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함과 동시에,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방식이 퍼펫을 통해 가능한 한 그대로 적용됨으로써 팬들이 실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일을 하지 않으면 마법이 풀려 죽음에 이르는 세상에서 '그을음(숯검정) 요정'들은 석탄을 나른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일을 하지 않으면 마법이 풀려 죽음에 이르는 세상에서 '그을음(숯검정) 요정'들은 석탄을 나른다./사진 제공=CJ ENM, ⓒJohan Person

연극으로 구현된 '센과 치히로'에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11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들을 수 있다는 또 하나의 매력이 존재한다.

오케스트라의 존재는 커튼콜 때에야 무대 뒤쪽으로 위치한 단원들의 모습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데, 미국 작곡가 브래드 하크(Brad Haak)에 의해 편곡된 음악은 무대 위의 환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원곡을 무대의 흐름에 맞게 편곡하는 과정은 연극이 영화보다 길게 공연되는 탓에 음악적으로 시간을 더 채울 수 있도록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또 원작 오리지널 스코어에 없던 가마 할아범이 부르는 노래와 온천탕의 종업원 중 한 명이 부르는 짧은 민요가 추가된 부분이 있는데, “연극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위해 삽입”된 부분일 뿐이다.

케어드는 2023년 '스크린 랜트(Screen Rant)'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음악이 곁들여진 연극일 뿐” 뮤지컬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케어드에 따르면, 추가된 2곡의 노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 음악 작곡을 위해 영감을 줄 수 있도록 히사이시 조에게 건넨 비공개 ‘시(poems)’를 참고해 허락을 얻어 창작된 부분이라고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신들의 온천탕에서 '린(히나미 후우)'은 치히로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린'은 치히로의 엄마 역할 배우가 1인 2역으로 선보인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런던 초연 사진. 신들의 온천탕에서 '린(히나미 후우)'은 치히로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린'은 치히로의 엄마 역할 배우가 1인 2역으로 선보인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 '센과 치히로'는 전체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고스란히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케어드의 연출에는 사랑과 관심을 받기를 원하지만, 방법이 서툴기 때문에 외면당하고 상처 입고, 그로 인해 집착하며 폭주하는 외로운 존재인 ‘가오나시’와 ‘치히로’의 상황을 유사하게 배치하는 섬세함이 담겨있다.

치히로는 가오나시의 외로움을 감지하기 때문에 친절함을 베풀고, 가오나시 역시 치히로의 외로움과 따뜻함을 인지하기 때문에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2001년 영화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주인공은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이며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상황을 통해 내면에 이미 존재하던 무언가를 끌어내는 이야기”라고 말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케어드는 치히로의 ‘모성애’와 같은 따뜻함과 위험을 무릎 쓰는 ‘강인함’을 둘 다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추구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다친 하쿠를 구하러 가파른 사다리를 오르는 '치히로(카와에이 리나)'의 장면 역시 무대 위에 유사하게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연 사진.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다친 하쿠를 구하러 가파른 사다리를 오르는 '치히로(카와에이 리나)'의 장면 역시 무대 위에 유사하게 구현된다./사진 제공=CJ ENM, ⓒTOHO Theatrical Dept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협력과 상상력, 땀을 흘려가며 함께 연습하고 노력한 시간이 빚어낸 완벽한 단결, 그 속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는 예술인 연극은, 무대를 구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뿐 아니라, 그 노력의 결과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관객의 적극적인 상상력과 태도가 더해져야만 완성된다.

라이브 연극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감각과 전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리지널 투어가 모두에게 증명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연극이라는 예술의 ‘힘’과 ‘매력’이 아닐까?

주하영 칼럼니스트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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