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바름’에 대한 강박이 도달한 ‘독선’...뮤지컬 '데스노트'
[주하영 365칼럼] ‘바름’에 대한 강박이 도달한 ‘독선’...뮤지컬 '데스노트'
  • 주하영
  • 승인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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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
- 팬덤 보유한 日 만화 ‘데스노트’ 원작 뮤지컬, 논레플리카 한국 프로덕션

심층 문화 비평 칼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하영 칼럼니스트가 또 하나의 새 칼럼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을 선보입니다. 짧은 형식 속에 담긴 자유롭고 날카로운 문화적 통찰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주]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야가미 라이토 역(조형균, 왼쪽), 류크 역(임정모), 엘(L) 역(김성규, 오른쪽)./ 사진= 오디컴퍼니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야가미 라이토 역(조형균, 왼쪽), 류크 역(임정모), 엘(L) 역(김성규, 오른쪽)./ 사진= 오디컴퍼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인간은 누구나 정의로운 세상을 원한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바름에 대한 강박은 인간의 진화상 설계에 나타나는 특성”이다.

하이트는 도덕적인 행동을 하도록 설계된 인간의 마음이 문명을 가능하게 만든 힘이라고 말한다. “정의, 도덕성, 혹은 공평성 문제와 관련해 격분을 느끼는” 마음을 뜻하는 ‘바름(righteous)’에 대한 갈망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도덕적 질서와 정의가 실현되는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적 판단은 “직관”에 따라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고, “전략적 추론이 그다음”으로 이뤄지는 특징이 있다.

이야기 속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도덕적인 체”하는 위선에 빠지거나, 성급한 “판단”에 이르는 부주의함을 경계하지 않는 인간의 특징은, “5억 년 동안 동물의 마음을 움직여온 자동적 인지 과정”의 영향이다.

뇌의 평가 기준은 “장차 그것이 위협인가 아니면 혜택인가”에 대한 직관에 근거하고, “의식적 추론”은 추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작동한다. 즉, 인간의 도덕적 본성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지만 눈멀게도 하는” 것이다.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야가미 라이토 역(규현), 류크 역(양승리)./ 사진= 오디컴퍼니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야가미 라이토 역(규현), 류크 역(양승리)./ 사진= 오디컴퍼니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는,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이 떨어뜨린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워 범죄자들을 처단하며 정의를 실현하려는 ‘라이토’와 그를 추적하는 명탐정 ‘엘(L)’의 두뇌 싸움과 ‘정의’에 대한 질문을 다룬 뮤지컬 '데스노트(Death Note)'의 공연이 한창이다.

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60개국에 출간되며 세계에 팬덤을 형성한 일본 만화 '데스노트'(오바 츠구미·오바타 타케시/슈에이샤)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은 프랭크 와일드혼 작곡, 아이반 멘첼 극본, 잭 머피 작사로 2015년에 초연되었다.

한국 프로덕션은 2022년부터 논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무대에 큰 변화를 적용했는데, 바닥과 벽면, 천장까지 1,380장의 고해상도 LED 패널을 배치한 경사진 무대에서 400회 이상의 큐사인(cue sign)으로 연출되는 그래픽 영상의 시각적 효과로 주목을 받았다.

전면과 양 측면에 놓인 초고화질 레이저 프로젝터가 만들어내는 빛의 명암과 조명이 심리적 긴장감을 더하고, 오토메이션 전환으로 빠르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배경들이 공간을 형성하며, 애니메이션의 프레임이 살아있는 듯 느껴지는 무대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관객의 착시와 몰입을 불러왔다.

만화 속 세계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무대를 구현한 뮤지컬 '데스노트' 뉴 프로덕션은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 연출상, 무대예술상, 남자조연상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야가미 라이토 역(임규형), 엘(L) 역(탕준상, 가운데), 류크 역(양승리, 왼쪽)./ 사진= 오디컴퍼니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야가미 라이토 역(임규형), 엘(L) 역(탕준상, 가운데), 류크 역(양승리, 왼쪽)./ 사진= 오디컴퍼니

이름이 적히면 40초 후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신의 노트가 “법은 권력의 도구”일 뿐이며, “정의란 쓸데없는 이론”이자, “허무한 꿈”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진 ‘전국 1등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손에 놓이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죽게 될 인간의 이름을 매일 적는 일이 지겨워진 사신 ‘류크’는 재미 삼아 자신의 데스노트를 인간 세상에 떨어뜨린다.

길에서 노트를 주운 ‘라이토’는 시험 삼아 뉴스 속보에 나온 범죄자의 이름을 적는다. 40초 후, 어린이 8명을 인질로 삼아 경찰과 대치를 벌이던 범인은 현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름 옆에 사인을 쓰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죽는다는 노트에 적힌 말이 현실로 이뤄진다는 것을 인지한 라이토는 “썩은 인간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손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이루겠다고 다짐한다.

일주일 만에 각기 다른 지역에 있는 28명의 흉악 범죄자들이 모두 심장마비로 죽은 사건은 세상의 관심을 끌고, 경찰은 세계 최고의 수사 능력을 갖고 있으나 정체가 베일에 가려진 명탐정 ‘엘(L)’에게 도움을 청한다.

법이 가두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대신 처단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대중은 그를 ‘키라’라고 부르며 신봉하기 시작하고, 눈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하는 것을 봤음에도 살인자가 교묘히 법망을 피하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돌 ‘미사’는 키라에 대한 숭배와 집착에 빠져든다.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렘 역(이영미), 아마네 미사 역(최서연)./ 사진= 오디컴퍼니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렘 역(이영미), 아마네 미사 역(최서연)./ 사진= 오디컴퍼니

‘키라’를 잡으려는 엘(L)과 자신이 ‘키라’임을 들키지 않으려는 라이토,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데스노트를 인간 세상에 던진 사신 류크와 라이토에게 사랑을 바라는 미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사신 ‘렘’, 그리고 라이토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영웅으로 생각하는 여동생 ‘사유’, 경찰국장인 라이토의 아버지와 형사들을 중심으로 전환되는 장면들은 속도가 빠르다.

두 천재의 두뇌 게임이자 퍼즐 맞추기, 승부를 놓고 겨루는 죽음의 경기이기도 한 라이토와 엘의 치열한 대립은 테니스 경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넘버 ‘놈의 마음속으로’에서 극적으로 구현되는데, 무대 그래픽의 전환과 동선 설계가 돋보이는 가장 유명한 장면이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의’에 관한 질문은 첫 장면에서부터 제기되는데, 기원전 380년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집필한 '국가론'에서 다뤄지는 ‘정의’에 관한 논의를 떠오르게 하는 측면이 있다.

교실에서 법과 정의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선생님에게 라이토는 의미 없는 개념이자 가치라고 맞서는데, 마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특히 ‘국가론’에서 글라우콘은 “정의로운 자가 누구든, 무한의 자유를 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면 누구나 욕심과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라고 주장하면서, 리디아의 양치기 ‘기게스(Gyges)의 요술 반지’ 이야기를 꺼내는데, 이는 라이토에게 사신의 노트가 주어진 것과 유사하다.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렘 역(장은아, 왼쪽), 류크 역(임정모)./ 사진= 오디컴퍼니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렘 역(장은아, 왼쪽), 류크 역(임정모)./ 사진= 오디컴퍼니

금반지만 끼면 마음대로 몸을 감출 수 있게 된 양치기가 왕을 죽여 왕국을 차지하고 온갖 일을 원하는 대로 하면서 인간들 사이에서 신처럼 살고자 했던 것처럼, 라이토는 데스노트에 이름을 써서 범죄자들을 처단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자신을 ‘정의’의 유일한 기준으로 세운다.

두려움을 불러와 범죄율을 낮추고 모두가 바르게 살게 만들겠다는 처음의 목표는, 점차 자신을 뒤쫓는 명탐정 엘(L)과의 두뇌 게임에서 승자가 되는 것과, 방해하는 모든 사람을 제거하고 죽음의 신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변질된다.

라이토의 냉철한 이성은 글라우콘의 주장처럼 “진실보다 정당화의 근거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처럼 작동할 뿐, “이성이 겉으로만 선하게 보이는 삶이 아니라 진정 선한 삶을 추구하도록 만든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엘(L) 역(김성규, 왼쪽), 야가미 라이토 역(조형균)./ 사진= 오디컴퍼니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장면. 엘(L) 역(김성규, 왼쪽), 야가미 라이토 역(조형균)./ 사진= 오디컴퍼니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은, 죽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데스노트’의 권능을 갖게 되면서, 독선과 위선, 광기를 향해 나아간다. 인간 세계에 떨어진 데스노트는 소유자에게 속하지만, 그 소유자의 이름을 사신이 직접 노트에 쓸 수 있다는 ‘운명’과 같은 규칙은 이미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천재로 일컬어지는 라이토의 이성은 그 어떤 예측도 하질 못한다. 독선과 아집으로 자신을 ‘정의’로 내세운 라이토의 여정은 오로지 ‘승리’만을 추구한다.

그의 이성은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라는 사신 류크의 말의 숨은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 스스로 ‘더 숭고한 가치’라고 결정한 게임에서의 승리와 신으로서의 군림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뮤지컬 '데스노트'의 최종적인 승자는 누구일까?

상처뿐인 환상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사신 렘의 희생일까, 아니면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던져버린 데스노트의 소유자와 사신 간의 ‘운명’을 결국 실행한 류크의 응징일까? 인간의 어리석음과 차가운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씁쓸함, 그 씁쓸함의 무게 속에 드리워지는 깊은 생각의 그림자가 최후의 승자인 것은 아닐까? 5월 10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주하영
주하영
jhy0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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