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1941년 영화 ‘게리 쿠퍼의 재회’ 원작 뮤지컬 7년 만의 재연
심층 문화 비평 칼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하영 칼럼니스트가 또 하나의 새 칼럼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을 선보입니다. 짧은 형식 속에 담긴 자유롭고 날카로운 문화적 통찰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주]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세상의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위에서부터일까, 아래에서부터일까?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다룬 책 '광장과 타워'에서, “역사의 큰 변화들은 비공식적으로 조직된 집단들의 성과물인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역사가들 대부분이 위계 조직에만 관심을 고착”시켜왔지만, “사회적 네트워크가 항상 훨씬 더 큰 중요성”을 발휘했고, “위계 조직의 세계와 네트워크의 세계”는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시대에서 서로 긴장을 이루며 상호작용 해왔다고 덧붙인다.
15세기 말 유럽에 활자 인쇄가 도입되면서 글과 신문이 힘을 발휘하던 시기인 18세기 말까지를 “첫 번째 네트워크 시대”라고 말하는 퍼거슨은 마이크로프로세서(CPU)의 탄생과 함께 개인용 컴퓨터(PC)의 태동이 시작된 1970년대를 “두 번째 네트워크 시대”의 출발점으로 규정한다.
그는 두 네트워크 시대의 사이에 해당하는 179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기간을 위계 조직이 다시 통제력을 확립한 시기로 분석하는데, 20세기 중반이 “전체주의 체제와 총력전을 벌이던 시대”였음을 강조한다.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네트워크의 수평적 연대’로 구축된 민중 운동과 권위주의를 내세우는 엘리트의 ‘위계적 억압’이 충돌하는 가운데, 익명의 “존 도우(John Doe)”들이 승리하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존 도우' 공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황금기의 거장으로 불리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1941년 영화 '게리 쿠퍼의 재회'(원제: Meet John Doe)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존 도우'는 2018년에 대극장 버전으로 초연을 선보였으나, 2025년 재연에서 소극장 버전으로 변화를 맞았다.
재연 연출을 맡은 이기쁨은 프로그램북 인터뷰를 통해, “16인조 재즈 빅밴드 편성의 155분짜리 극을 100분으로 압축”하고 음악 스타일의 색다름과 출연진의 축소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설명했다.
무대는 1920년대 호황을 누리던 경제가 1929년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대규모의 실직 사태와 금융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었던 대공황 시기를 “뒤죽박죽으로 쌓여 올라간 가구 더미들”로 표현하고, 그 위에 “위태롭게 올라서 있는 하나의 악기”로 ‘드럼’을 배치했다.
무대 2층으로 위치해 라이브로 연주되는 드럼은 실직과 절망, 실패 속에 울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억눌려 있는 시끄럽고 요란한 내면의 외침을 형상화할 수 있는 악기라는 점에서, 일부 장면에서는 음향효과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뉴욕 증시가 무너지면서 패닉 상태에 빠진 월스트리트와 실직자들의 뉴스, 1920년부터 1934년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에 대한 소식이 겹치는 가운데,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긴급 성명서 발표와 절망한 사람들의 자살률이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이어진다.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던 기자 ‘앤 미첼’은 예고도 없이 해고를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앤은 아픈 엄마와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면서 편집장에게 임금을 줄여서라도 일하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편집장은 자신도 별수 없다면서 신문 발행 부수를 올릴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나 마지막으로 제출하고 떠나라고 말한다.
좌절감과 억울함, 분노, 답답함을 느끼던 앤은 세상이 무너져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두렵고 화가 나는지를 떠올리며, ‘익명의 자살 예고 편지’를 기사로 쓴다.
엘리트 계층의 탐욕과 이기심, 실업 문제를 방치한 국가의 잘못과 “세상의 침묵”을 비난하며, “다가오는 성탄절에 시청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라고 예고하는 편지를, 신원 미상의 남성을 지칭할 때 쓰는 이름인 ‘존 도우’로 서명한 기사는 엄청난 사건이 된다.
신문사는 존 도우에게 일자리와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기업들의 제안과 자신이 편지를 보낸 진짜 존 도우라면서 신문사를 찾아온 실업자와 부랑자들로 북새통이 된다.
편집장은 앤에게 정정 보도를 쓸 것을 요구하지만, 앤은 성탄절까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존 도우에 관한 연재 기사를 써서 신문 판매율 1위를 유지하자고 제안한다.
앤은 신문사를 찾아온 부랑자들 가운데 ‘대역’을 할 만한 사람을 고르고, 전직 야구선수였으나 어깨 부상으로 퇴출당한 뒤 가족도 없이 노숙하며 굶주려 온 ‘존 윌러비’를 선택한다.
뮤지컬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기극’을 제안한 앤과 ‘존 도우’로 인해 사회적 저항과 연대의 민중 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존 도우 클럽’을 형성하는 영화의 큰 줄거리를 대부분 그대로 따른다.
신문사를 인수한 사장이자 라디오 방송국까지 소유한 언론계 재벌 ‘노튼’은 ‘존 도우 운동’을 이끄는 상징적 존재인 윌러비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지지한다는 연설을 하도록 앤에게 요구한다.
윌러비는 자신이 가짜임을 밝히려고 하지만, 어깨 수술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진짜 행세를 하기로 한 계약서가 노튼에 의해 신문에 유포되고, 대중은 분노와 실망으로 돌아선다.
결국 윌러비는 존 도우의 가짜 유서에 적힌 그대로 성탄절에 시청 옥상에서 뛰어내려서라도 사회적 민중 운동의 불꽃과 희망을 되살리려 하고, 앤과 존 도우 클럽 사람들은 윌러비를 말리기 위해 시청으로 달려간다.
영화와 뮤지컬이 차이를 보이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윌러비의 떠돌이 친구 캐릭터가 사라진 것 외에 두드러지는 것은 윌러비와 앤의 캐릭터 변화이다.
뮤지컬은 윌러비와 앤을 영화보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인물들로 구현하는데, 특히 윌러비의 경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고 지는 경기라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앤에게 ‘팀(team)’으로 함께 하는 협업과 격려, 신뢰의 가치를 일깨운다.
앤 역시 부와 성공의 기회로 여기며 노튼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하고 따르는 영화 속 인물과는 달리, ‘존 도우’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열기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글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욕망과, 좌절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려는 바람을 품은 것으로 제시된다. 또한, 뮤지컬은 윌러비가 인용하는 야구 영웅 베이브 루스의 명언을 통해 주제를 구체화한다.
팀워크와 결속력을 강조한 “함께 뛰지 않는다면 그 클럽은 가치가 없다”라는 루스의 명언을 이용한 윌러비의 말은 떨어뜨린 공도 주워 다시 던지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를 지지하며, 실패하더라도 곁을 지키며 응원하는 하나의 ‘팀’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각자 모두 세상에 자신이 속하기를,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자신의 위치에서 빛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름 없는 ‘존 도우’로 그림자처럼 쓰고 버려지는 존재로 여겨지는 민중은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같은 처지의 서로를 위로하고, 이름을 기억하며, 연민을 품기로 결심한다.
누군가의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묻고 존재를 기억함으로써 손을 잡아주는 행위는 다시 한번 모두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힘든 세상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희망’을 다지는 길로 연결된다.
뮤지컬 '존 도우'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위계 구조의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가 손에 넣으려고 하는 위기에서 벗어나, 결집력을 되찾는 자기 회복력이 강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모습을 보여준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존재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영화”라고 평가받은 원작은 결말이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카프라 감독은 암울하지 않은 결말을 찾기까지 다섯 가지 다른 결말을 촬영하는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뮤지컬 '존 도우'의 결말 역시 낭만적인 이상주의로 여겨질 수 있지만, ‘존 도우’들의 따뜻한 연대와 위로, 이해와 용서의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호혜적인 네트워크의 ‘선한 힘’을 믿고 따르고 싶어 한다는 의미 아닐까?
통화 질서 붕괴와 국제 분쟁으로 혼란을 겪는 지금이 1930년대 대공황 시기와 유사하며, “권력이 규칙을 대신하는 정글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경고한 헤지펀드의 거물 레이 달리오의 말을 떠올린다면,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선한 네트워크’의 수평적 연대의 힘, 바로 그것이 아닐까? 3월 1일까지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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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칼럼니스트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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