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의 몰리에르상 5개 부문 노미네이트 화제작
심층 문화 비평 칼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하영 칼럼니스트가 또 하나의 새 칼럼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을 선보입니다. 짧은 형식 속에 담긴 자유롭고 날카로운 문화적 통찰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주]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편안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디지털 혁명은 분명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 넘쳐나는 정보를 보다 빠르고 쉽게 확보할 수 있는 편리함의 세상을 불러왔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개개인이 네트워크로 접속하는 모든 순간은 데이터를 낳고, 매 순간 쌓이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는 누군가에게 ‘기회’로 작용한다.
대규모 데이터에서 가치를 도출하고 통계적 결과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은 사회가 임의적 추론과 우연의 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정확한 예측’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 정확한 예측을 위해 수집된 막대한 양의 개인정보들은 알고리즘이 인간 행동 및 요구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차원을 넘어 조종하고, 유발하며, 중독시키는 차원으로 ‘권력’을 부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프랑스 출간과 동시에 10만 부가 판매되며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가 된 책 '빅데이터 소사이어티'에 따르면, 빅데이터를 손에 쥔 기술 산업을 지배하는 자들은 “현재와 같은 국가를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며, “크고 강한 정부를 의미하는 빅파더(Big Father)” 대신 “인간의 욕구보다 앞서 나가면서 거부할 수 없는 힘을 행사하는 빅마더(Big Mother)”의 세상을 원한다.
“자식을 행복하게 해 줄 궁리만 하는 어머니처럼 ‘빅마더’는 우리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서 통제하는 부드러운 독재를 펼친다”라고 설명하는 '빅데이터 소사이어티'의 저자 마르크 뒤갱과 크리스토프 라베는, 빅마더가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대가로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지배”를 공고히 한다고 덧붙인다.
최근 막을 내린 서울시극단 2026년 첫 작품인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Mélody Mourey)의 연극 '빅 마더(Big Mother)'는, 허위 정보와 음모론, 정치적 조작이 얽힌 빅데이터 세상에서 진실을 밝히려고 애쓰는 기자들의 분투를 다룬다.
2023년 몰리에르상 5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화제가 된 연극 '빅 마더'는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빅데이터 시대의 대중 조작을 다룬 숨 막히는 저널리즘 스릴러”로 평가받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마치 책 '빅데이터 소사이어티'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을 고스란히 연극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지는 무레의 연극 '빅 마더'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영국의 정치 컨설팅업체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 이용자 8천700만 명의 데이터를 이용자 동의 없이 수집해 허위 정보 유포와 정치 광고에 사용한 사건에 관한 기사를 접한 무레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열정을 다한 탐사 보도 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탐사 보도팀이 가톨릭 교구 사제의 아동 성추행을 취재한 일을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와,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를 맡은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 이야기를 다룬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역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덧붙이는 무레는, “저널리즘 스릴러”에 대한 애정을 피력한다.
무레가 직접 연출 또한 맡았던 프랑스 초연은 “현기증 나는 반전”, “영화 같은 몰입감”, “빠른 속도의 장면 전환”, “매끄럽게 이어지는 역동적인 무대”에 대한 호평과 함께 데이터 조작과 남용, 가짜 뉴스의 범람, 민주주의 제도의 위기와 같은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대 최연소 단장으로 서울시극단장에 취임한 이준우 연출이 선보인 '빅 마더'는 LED 대형 스크린을 무대 위에 배치해 영상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뉴스를 비롯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관객이 접할 수 있도록 적용했다.
지속적인 전환이 필요한 원작의 60개에 달하는 짧은 장면들은 관객의 몰입을 위해 OTT 드라마 시리즈를 볼 때처럼 빠른 호흡으로 흐를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도이체스 테아터의 '렛 뎀 잇 머니'나 이보 반 호브의 '파운틴헤드'를 떠올리게 하는 이준우 연출의 '빅 마더'는, 기자인 인물들이 노트북의 라이브 캠으로 소통하거나 촬영하는 실시간 영상들을 그대로 무대 위 스크린으로 송출함으로써 관객이 ‘실시간’의 느낌을 긴박하고 밀접하게 느끼도록 한 특징이 있다.
홍콩의 한 호텔 객실에서 모든 추적을 피해 숨어 있는 두 기자 ‘쿡’과 ‘줄리아’의 장면으로 시작하는 극은 3개월 전으로 되돌아가 그들이 왜 추적당하게 되었는지, 어떤 “스캔들”을 폭로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펼쳐 보이는 구성을 취한다.
미국 언론사 ‘뉴욕 탐사’ 보도팀은 대선을 앞두고 유포된 현 대통령의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영상에 대한 취재에 나선다. 하지만 영상은 AI조차 잡아내기 어려운 정교한 딥페이크로 조작된 것임이 밝혀지고, 누구의 소행인지를 밝히려는 속에서, 탐사 보도팀은 위기에 봉착한다.
한편, ‘줄리아’는 특정 재판의 피고석에서 4년 전에 사고로 죽은 연인 ‘에단’과 똑같은 사람을 보게 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편집국장인 ‘오웬’의 이름을 허락 없이 이용한다.
전혀 상관없는 듯 보이는 두 사건과, 오웬의 딸 ‘로즈’가 박사 논문 지원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는 컨설팅 회사 ‘헌드레드 몽키’의 대표인 ‘하워드 머서’, 대통령제 폐지와 국회 해산을 주장하며 빅데이터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당 ‘투명사회연합’의 연결고리는, 거대한 음모 속에 복잡한 실타래로 얽혀있음이 드러난다.
따로 각자 펼쳐지는 듯 보였던 장면들은 어느 순간 하나로 연결되며 빠르게 구조를 드러낸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려운 환경들, 자극적인 영상이 불러오는 높은 조회수, 거짓 정보의 높은 전파력과 확산, 온라인에 남아있는 개인정보와 검색 기록들, 알고리즘을 통한 세뇌와 조작, 미디어 테러와 분노는 모두를 설득력 있게 지배하며, 자신들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 특정 노선으로 이끄는 ‘빅마더’의 독재 속에 함몰되어 있다.
빅테이터의 지배자가 마비시킨 판단력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갖다 바치면서 노예가 되고 있음에도,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도록 만든다.
정부와 빅테이터 기업 간의 거래,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요구를 품은 젊은 세대를 이용하는 기술 지배자, 언론의 역할 부재와 무능력에 대한 비판, 민주주의 체제의 유효함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연극 ‘빅 마더’는, 관객이 디스토피아의 미래와 마주하도록 만든다.
모든 진실을 밝히려는 뉴욕 탐사 보도팀의 희생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머서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초연결사회의 거부할 수 없는 힘 ‘빅마더’의 감시는 모두를 의혹과 회의, 비판적 시선이 아닌 수용과 소비, 감정이 충만한 존재들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포비든 스토리’에 업로드된 자료들을 통해 “기자들을 모두 죽여도 우리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외치는 구원의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암울한 미래를 극복하기에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구원은 모두가 상황을 직시하고,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켜, ‘대안’을 찾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보여준 전체주의적 권력 감시 체계인 ‘빅브라더(Big Brother)’는 이제 “너무 정교해서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도 없는” 기술에 휘둘리는 “한 수 위인 빅마더”로 변모해 있다.
책 '빅데이터 소사이어티'의 두 저자는 “알고리즘적 통치를 목표”로 하는 빅데이터 기업들이 “행동의 규제보다는 행동의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고, “개인의 반사 작용을 유발하는 경고의 방식”으로 인간을 통치하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의식적인 사고 과정을 건너뛴 뇌의 즉각적인 반응만을 일으키고, 이성적인 판단의 시간을 주지 않는 방식을 강화함으로써, 모든 데이터의 수집과 처리를 통해 거대 권력을 손에 쥔 주체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상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연극 '빅마더'는 이러한 구도를 관객이 몰입해 파악할 수 있도록 무대 위에 구현한다. 가까운 미래에 다가오게 될지 모를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마치 선택하라는 듯 말이다. 과연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조지 오웰의 경고처럼, “자각하기 전에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는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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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칼럼니스트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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